소설 보다 : 가을 2021 소설 보다
구소현.권혜영.이주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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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유에서든, 어떤 상황에서든 행복하지 못한 이의 삶을 들여다보는 일은 힘들다. 현실이 아니라 소설이라도. 작가의 마음이, 작가의 시선이, 작가의 의도가 어떤 과정을 거쳐 이 글에 이르게 되었을지를, 다 알아내지는 못하더라도, 지극히 일부만 짐작할 수 있을 뿐일지라도 힘들고 아픈 건 분명하다. 왜 이렇게 사는 게 힘들까, 힘들어도 살기는 살아야 하는 건데, 살기 위해 이러는 것일 텐데, 작품 속 인물들의 고단한 목소리에 내내 맥빠지고 만다. 



세 편의 단편소설. 가벼운 가을 분위기에 맞춰 읽기로는 많이 무겁다. 그렇다면 추운 겨울에 읽으면 나을까? 아마 더 춥겠지? 봄은? 여름은? 아니, 계절 탓을 해서는 안 되겠다. 살기 어렵다는 이야기는 어느 계절에 읽든 상관없이 힘겨울 테니까. 게으른 것도 아니고 얍삽한 것도 아니고 남을 속이거나 사기를 쳐서 한탕 벌겠다는 것도 아닌데 어째 다들 이러한 상황에 놓이는 것인지. 막막해서 한숨만 난다.  



비슷한 주제를 다룬 듯 해도 세 작품이 각각의 특징을 보여 준다고 생각했다. '시트론 호러'에서는 유령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는 것, '당신이 기대하는 건 여기에 없다'에서는 비현실적인 시간과 공간을 배경으로 삼았다는 것, '위해'에서는 제목에서부터 다양하게 상상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는 것.  



소설 속 인물의 삶은 곧 그 시대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살기 참 고달프다. (y에서 옮김2021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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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궁전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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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읽고 리뷰를 올리기 위해 제목을 생각하면서 가장 먼저 떠올린 말이 '멋있다'였다. 무엇이 멋있었나, 차분히 짚어보기 전에 멋있다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는 무엇이었을까 궁리해 보았고, 기억력의 한계로 네이버에서 찾아보았더니 다음과 같은 단어들이 주르륵 떠 있었다.


stylishwonderfulnicecoolsplendidlovelygreatfabulousfashionablechic  


이 가운데에서 이 소설에 어울리는 내 느낌에 해당하는 낱말을 골라보니 wonderful이었다. 멋있다라는 우리말과는 어쩐지 좀 거리감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말이 가장 가까워 보인다.


아무래도 내가 미국드라마를 많이 보기는 하는 모양이다. 이 소설 역시 낯설지가 않으니. 게다가 미국이라는 나라와 미국인과 미국인으로서의 삶에 이전에는 가져보지 못한 호감까지 생기고 있으니, 이게 드라마 탓인지 배우 탓인지 이 소설 탓인지, 에구 모르겠다.


문화의 힘에 대해서도 또 생각해 보게 된다. 국가의 힘보다 더 크고 질기고 강력한 문화의 힘. 나라는 혹은 사람은 밉지만 그들의 문화는 배우고 싶다는 그런 생각. 분명히 매력적인 그 무엇. 폴 오스터의 소설은 적어도 내게 미국에 대한 호감도를 확실히 높여준다.


소설은 허구라고 했다.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 일어날 법한 일이라고. 그 속에 진실이 담겨 있는 것이라고. 그래서 비록 허구이지만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의 진실이 담겨 있으므로 가치로운 거짓말이 되는 것이라고.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의 허구를 잘 살려내었다. 거짓말인 줄 미리 알지만 그래도 사실처럼 느껴지는 것, 그래서 이런 사람들이 어딘가에 꼭 있을 것 같다는 것, 혹시라도 만나서 직접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더 좋겠다 싶은 것, 마침내 그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 나서고 싶은 것. 


나는 왜 다른 사람의 삶이 궁금한 것일까.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알게 되면 왜 흥미를 느끼게 되는 것일까. 내가 나 아닌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는 이유가 무엇일까. 답을 전혀 모른다고는 말 못하겠다. 아마 나 스스로 말하기에는 좀 쑥스럽고 부끄러운 이기적인 면을 숨기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굳이,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해 본다면, 나와 다른 사람을 비교하고 싶다는 것, 그것 때문이 아닐까? 


소설 속 인물보다 내가 더 낫다는 느낌, 내가 더 잘 살고 있다는 느낌, 내가 더 똑똑하고 현명하다는 느낌, 나라면 너와 같은 실수는 저지르지 않겠다는 자신감 따위, 나라면 너보다....  글을 통한 위로와 격려와 자부심 같은 것들.     


나는 학생들에게 소설을 통해 우리가 직접 체험해 볼 수 없는 삶을 대신 누려보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래서 다가올 삶에 실수를 줄일 수 있도록 많은 것을 가상 체험으로 준비해 두라고 한다. 사람과의 만남이나 일을 처리하는 방식, 삶에 대한 태도 등을 소설을 읽으면서 미리 배워 보라고.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 결국은 소설 속 현실과 그리 다를 것이 없노라고. 


이 소설에 나오는 세 사람, 화자인 포그와 바버와 에핑. 내 마음에 드는 인물이 하나도 없는데도 이 글처럼 빠져 읽은 기억은 드물었던 것 같다.(마음에는 안 드는데, 이해는 간다는 것, 그게 아무래도 최근에 미국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기 때문이라는 것) 


어떤 사람은 그렇게도 살아가기도 하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살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삶을 나무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도저히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어떤 순간들, 그 순간들의 연속에 이르면 그렇게 살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 지구 위, 어떤 땅이든 개개인의 삶은 어찌 이리도 절박하며 유일한 것인지.   


점점 더 궁금해지는 것 하나. 정말 미국인들은 평소 생활에서도 이 책의 대화처럼 할까. 카페에서 밥 먹으며, 파티에서 술 마시며 이런 내용으로 이야기를 나눌까. 다들 이처럼 깊은 정신 세계를 갖고 있을까. 작가가 그저 소설로 만들어내기만 한 말들일까, 아니면 정말 그들의 생활의 일부일까. 


내가 하는 가벼운 말, 가벼운 글, 가벼운 삶, 가벼운 만남들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고, 문화를 이루는 힘이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잠시 생각해 보고, 미국이라는 나라가 단지 군사력만 강한 나라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노숙자, 장애인, 이혼마저도 내게는 새로운 탐구 대상이다.)  (y에서 옮김2010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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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 3 - 7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7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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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사람을 다르게 볼 수 있다는 것, 안다. 심지어는 같은 사람을 정반대로 평가할 수 있다는 것도 안다. 현실에서도 그런 경우를 더러 보곤 하니까.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가 멸망으로 가는 길을 지켜보면서, 옥타비아누스에 대한 작가의 시선을 새삼스럽게 확인한다. 어째 좀 낯설다. 


이런 내 시선이 오히려 적절하지 않은 것일 수 있다. 역사적 인물을 평가하면서 좋은 사람, 안 좋은 사람으로 나눌 수는 없는 일이니까. 그렇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또 어떤 인물을 두고 좋아한다-안 좋아한다, 존경한다-그렇지 않다,... 등등의 이분법으로 편리하게 구분하고는 한다. 어떤 사람을 왜 좋아하는지는 곧 그 사람의 성향을 나타내 주는 근거가 되기도 하면서.


오래 전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작가의 서술 방향에 이끌려 옥타비아누스에게 깊이 반했다고 기억한다. 그런데 이번 책을 읽으면서 아주 다른 기분이 된다. 안토니우스야 처음부터 전혀 마음에 들지 않은 채로 끝내 저물어 버렸다. 안토니우스의 파멸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클레오파트라도 마찬가지였고. 역사적 기록을 알고 있는 채로 읽어도 여전히 재미있게, 작가가 어떤 상상과 대사와 서술로 풍성하게 만들어 놓았는지를 짚어 가면서. 다만 옥타비아누스가 내게서 멀어졌다. 내가 이런 인물에 반했던가? 작가가 다르기 때문인가? 내가 달라진 탓인가? 물음만 남기면서.


긴 시리즈를 이제야 끝낸다. 로마인의 이야기들은, 로마의 인물 이야기들은 내가 현재의 우리 모습과 상황을 헤아리는 데에 많은 도움을 준다. 특히 권력자들의 속성과 오만과 결말에 이르기까지의 이모저모들. 한낱 평범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내가 이 세상의 권력 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책을 읽는 한 사람으로 남아도 괜찮지 않을까 중얼거리며.


언젠가 지금보다 눈이 더 어두워지는 나이가 되는 그 어느 때, 나는 이 책을 다시 펼쳐 보게 될까? 그랬으면 싶기도 하고 그럴 것 같지는 않을 것도 같고. 책만 쪼로록 세워 두어도 흐뭇하니 이것으로 되었다.  

왜 항상 가장 돈 많은 이들이 세금 내기를 가장 꺼릴까? -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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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여름 2021 소설 보다
서이제.이서수.한정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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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마다 세 편의 새 소설을 읽는 기분, 젊은 작가의 작품이라고 하니 좀더 기대되고 설레고. 그러다가 내 취향에 가까이 다가오는 소설을 만나기라도 하면 더욱 반갑고 더욱 기대되고. 소설을 읽는 데도 연습처럼 홀로 겪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 작가의 글을 계속 읽게 될 것인가 여기서 멈출 것인가를 정하게 되기까지는.   


이번 여름호에 실린 세 편의 글은, 셋 다 꽤 고단하다. 내용도 고단하고 읽기도 고단하고 읽고 난 마음도 고단하고. 2021년을 보내고 있는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이 고단한 세상 한가운데에 놓여 있다는 뜻일 테다. 아니, 젊은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그 어느 때를 막론하고 평온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 그것을, 그 어려움을, 그 힘겨움을 이겨 내는 게 마치 그 시대 젊은이의 특혜처럼 말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지만, 글쎄, 그렇게 말해도 좋은 건지.   


직업을 갖는 일, 결혼을 하는 일, 집을 갖는 일, 아이를 키우는 일 등등. 어느 하나도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자연스럽게 하나씩 이루던 시절이 분명히 있었건만, 그때는 이 일들이 지금의 사정만큼 어려운 일인 줄 몰랐던 시절이건만. 어디서 어떻게 잘못되기 시작한 것일까. 사는 일이 만만하지 않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소설에서 이를 확인하게 될 때마다 더 맥빠지는 기분이 든다. 얼마나 어렵고 얼마나 막막하면 이게 소설이 되는가 말이다.  


이서수의 글이 제일 가깝게 왔다. 가을 장마만큼이나 마음이 무겁다. (y에서 옮김2021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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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 보고서
폴 오스터 지음, 송은주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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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의 삶을 구경하면 둘 중 하나로 반응한다. 좋다거나, 안 좋다거나. 부러움을 느끼거나 무시하게 되거나. 잘 보았다 싶거나 괜히 봤군 싶거나. 내가 구경하고 싶은 사람, 구경하고 싶은 삶을 만나는 게 좋은데 늘 좋은 게 아니라는 데에 아쉬움이 남는다. 이 책, 이 책을 쓴 작가는 잘 만난 경우다. 오래 전에 이 작가의 글을 읽었다는 기억이 있고 내용은 전혀 남지 않았으나 좋았다는 느낌은 선명하여 이 책을 찾아 보았다. 못 봤더라면 퍽 섭섭했을 것이다. 

나를 내보이는 데에는 어떤 힘이 작용할까? 본능인가? 내가 책을 읽고 이런 글을 써서 올리는 것도, 작가들이 자전적 회고록을 내는 것도, 사람들이 사진을 찍어 올리는 것도 다 본능에 가까운 일인 것일까? 내보임으로써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또 증명하고 더 나아가서는 남들보다 잘 살아 있다는 것을 주장하고 싶기까지 하는... 이것이 곧 삶이라는 듯이, 삶 자체라는 듯이, 이 일로 살아가는 사명감을 얻는다는 듯이...

폴 오스터는 잘 살아온 작가다. 그의 고백을 듣고 있으니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고 그런 과정을 거쳤으니 이런 작가가 되었구나 하는 수긍도 절로 되고이런 사람을 내가 알게 되어 고맙다는 생각까지 들도록 해 주었다. 책을 읽는 즐거움과 근사한 작가를 알게 된 기쁨과 이런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는 나 자신의 처지에 대한 고마움까지도.

어쩌다 보니 산문이 넘쳐 나는 시대가 되었다. 아무나 쓰고 쉽게 쓰고 또 발표도 한다. 한편으로는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보아야겠다. 사람은 누구나 제 이야기를 제 말과 제 글로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니까. 읽는 이가 원하는 글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 문제는 다른 차원에서 다루어야 할 일이고. 이 작가의 글을 읽고서 이제부터라도 일기를 쓰고 싶다거나 자신의 회고록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 또한 반가울 일이다. 이 작가는 이 책으로 이런 생각을 너무도 강하게 갖게 해 주었다. 

작가가 오래 전 자신의 어린 시절을 만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도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릴 수 있었다는 게 꽤나 만족스럽다. 다행이었든 부족했든 나도 나대로 그렇게 자라왔던 것이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는. 좋은 책이었다. (y에서 옮김2024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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