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을 읽고 리뷰를 올리기 위해 제목을 생각하면서 가장 먼저 떠올린 말이 '멋있다'였다. 무엇이 멋있었나, 차분히 짚어보기 전에 멋있다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는 무엇이었을까 궁리해 보았고, 기억력의 한계로 네이버에서 찾아보았더니 다음과 같은 단어들이 주르륵 떠 있었다.
stylish, wonderful, nice, cool, splendid, lovely, great, fabulous, fashionable, chic
이 가운데에서 이 소설에 어울리는 내 느낌에 해당하는 낱말을 골라보니 wonderful이었다. 멋있다라는 우리말과는 어쩐지 좀 거리감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말이 가장 가까워 보인다.
아무래도 내가 미국드라마를 많이 보기는 하는 모양이다. 이 소설 역시 낯설지가 않으니. 게다가 미국이라는 나라와 미국인과 미국인으로서의 삶에 이전에는 가져보지 못한 호감까지 생기고 있으니, 이게 드라마 탓인지 배우 탓인지 이 소설 탓인지, 에구 모르겠다.
문화의 힘에 대해서도 또 생각해 보게 된다. 국가의 힘보다 더 크고 질기고 강력한 문화의 힘. 나라는 혹은 사람은 밉지만 그들의 문화는 배우고 싶다는 그런 생각. 분명히 매력적인 그 무엇. 폴 오스터의 소설은 적어도 내게 미국에 대한 호감도를 확실히 높여준다.
소설은 허구라고 했다.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니라 일어날 법한 일이라고. 그 속에 진실이 담겨 있는 것이라고. 그래서 비록 허구이지만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의 진실이 담겨 있으므로 가치로운 거짓말이 되는 것이라고.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의 허구를 잘 살려내었다. 거짓말인 줄 미리 알지만 그래도 사실처럼 느껴지는 것, 그래서 이런 사람들이 어딘가에 꼭 있을 것 같다는 것, 혹시라도 만나서 직접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더 좋겠다 싶은 것, 마침내 그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 나서고 싶은 것.
나는 왜 다른 사람의 삶이 궁금한 것일까.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알게 되면 왜 흥미를 느끼게 되는 것일까. 내가 나 아닌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는 이유가 무엇일까. 답을 전혀 모른다고는 말 못하겠다. 아마 나 스스로 말하기에는 좀 쑥스럽고 부끄러운 이기적인 면을 숨기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굳이, 그리고 조심스럽게 말해 본다면, 나와 다른 사람을 비교하고 싶다는 것, 그것 때문이 아닐까?
소설 속 인물보다 내가 더 낫다는 느낌, 내가 더 잘 살고 있다는 느낌, 내가 더 똑똑하고 현명하다는 느낌, 나라면 너와 같은 실수는 저지르지 않겠다는 자신감 따위, 나라면 너보다.... 글을 통한 위로와 격려와 자부심 같은 것들.
나는 학생들에게 소설을 통해 우리가 직접 체험해 볼 수 없는 삶을 대신 누려보라는 말을 자주 한다. 그래서 다가올 삶에 실수를 줄일 수 있도록 많은 것을 가상 체험으로 준비해 두라고 한다. 사람과의 만남이나 일을 처리하는 방식, 삶에 대한 태도 등을 소설을 읽으면서 미리 배워 보라고.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 결국은 소설 속 현실과 그리 다를 것이 없노라고.
이 소설에 나오는 세 사람, 화자인 포그와 바버와 에핑. 내 마음에 드는 인물이 하나도 없는데도 이 글처럼 빠져 읽은 기억은 드물었던 것 같다.(마음에는 안 드는데, 이해는 간다는 것, 그게 아무래도 최근에 미국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봤기 때문이라는 것)
어떤 사람은 그렇게도 살아가기도 하는 것이다. 내가 그렇게 살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사람의 삶을 나무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도저히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어떤 순간들, 그 순간들의 연속에 이르면 그렇게 살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 지구 위, 어떤 땅이든 개개인의 삶은 어찌 이리도 절박하며 유일한 것인지.
점점 더 궁금해지는 것 하나. 정말 미국인들은 평소 생활에서도 이 책의 대화처럼 할까. 카페에서 밥 먹으며, 파티에서 술 마시며 이런 내용으로 이야기를 나눌까. 다들 이처럼 깊은 정신 세계를 갖고 있을까. 작가가 그저 소설로 만들어내기만 한 말들일까, 아니면 정말 그들의 생활의 일부일까.
내가 하는 가벼운 말, 가벼운 글, 가벼운 삶, 가벼운 만남들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고, 문화를 이루는 힘이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잠시 생각해 보고, 미국이라는 나라가 단지 군사력만 강한 나라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노숙자, 장애인, 이혼마저도 내게는 새로운 탐구 대상이다.) (y에서 옮김2010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