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루인 수사의 고백 캐드펠 수사 시리즈 15
엘리스 피터스 지음, 송은경 옮김 / 북하우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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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톨릭의 고해성사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지만 이번 책을 통해 제법 진지하게 들여다보는 기회를 얻었다. 죄를 고백하고 뉘우치고 용서를 받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고. 이 모든 과정이나 과거에 쓰였다는 면죄부라는 형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 관심을 갖지 않았는데 말이지. 할루인 수사가 온몸과 마음으로 보여준 참회 역시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사랑이 그런 건가? 소설이라서 가능한가? 이루어지기도 하는 사랑이지만 어긋나기도 하는 게 사랑이다. 사랑을 얻지 못해 수사나 수녀가 되어야 했을 그 시절의 이야기.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에서 살아가면서도 아니 그래서 더더욱 사랑에 매달릴 수 있었던 것일까? 짧아도 좋으니 사랑이라도 제대로 해 보고 살자 같은? 


고행은 또 뭐람? 내가 나에게 내리는 벌이라고? 이것도 마음에 안 들고. 그래서 할루인 수사의 고행길을 전혀 응원하지 못하면서 따라가야만 했는데. 글만 읽는데도 어찌나 춥고 시리고 힘들고 괴롭든지. 나는 종교라는 영역에서는 장점보다 단점에 더 많이 휘둘린다. 아무리 소설이라도, 아무리 지어낸 이야기라도. 종교 자체에 경외심보다는 의심을 더 많이 가질 정도로. 뭘, 왜 그리 믿는다는 것인지.


캐드펠 수사가 가끔씩 딴짓하는 태도가 훨씬 따스하게 다가온다. 엄격한 무엇무엇은 대체로, 특히 종교에서의 엄격함이 영 못마땅하다. 다 하나같이 모자란 인간이면서. 그래서 로버트 부원장이나 제롬 수사가 더 밉상으로 여겨지기도 하고. 


캐드펠 수사는 고행하겠다는 할루인 수사를 따라나섰다가 여러 모로 곤란한 처지에 놓인다. 그럼에도 자신의 역할을 훌륭하게 처리해 나간다. 이 시원한 맛에 소설을 읽는 재미는 충분했다. 젊은이들의 사랑은 매번 어찌 이리도 캐드펠 수사의 도움을 얻게 되는 것인지. 이쯤 되면 수사를 사랑의 전도사라고 해도 될 듯.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내 영혼이 참 순수하지 못하다는 생각을 절로 한다. 이기적이고 냉정하고 무심하기만 한. 쓴맛이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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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꾸었다고 말했다 - 2018년 제42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손홍규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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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이어 올해의 작품집도 구해 읽는다. 한동안 못 본 척 했던 것 같은데 이번 작품집도 좋았다. 잘 구해 읽었구나 싶다. 글을 읽겠다고 한다면 읽어야 하는 글, 읽어 두면 좋을 글, 읽을 필요가 있다고 여겨지는 글, 읽었노라 다소 자랑스럽게 말할 수도 있는 글, 이 작품집에 대해 갖고 있는 내 생각이다. 그해의 작품집으로 그해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다고.


이런 생각으로 책을 읽으면서 내가 더듬어 본 2017년은 우울했다. 이상문학상 작품집이 대체로 그런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편이라고 생각해 오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작품을 옮겨 읽을 때마다 더 진한 우울함이 전해 왔다. 아프다 싶을 정도로. 나을 방법이 보이지 않는 아픔,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도 되지 못하는 관계들, 끝이 짐작되지 않는 불안과 절망의 거울들. 이렇게 계속 살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암담함 가득한 소설들. 


전에는 이런 글을 읽기 힘들어 했는데, 그래서 조금 읽다가 포기하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그런 기분을 조금 이겨 내면서 읽고 있는 자신을 느꼈다. 뭐랄까, 나 스스로 조금 단단해졌다고 할까, 아니면 불편한 현실에 내성이 생긴 듯하다고나 할까, 도망가지 말고 부딪히고 싶다는 기분 같은, 그래서 싸울 수 있으면 싸우고 싶은 걸 하는 정도까지 이르는 기분. 단지 소설을 읽는다는 게 무슨 힘이 되랴마는, 한 시절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아 놓은 소설을 읽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세상의 누군가에게는 자그마한 힘을 보태 주는 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낭만적인 기대까지 하면서.


수상자인 손홍규라는 작가는 모르고 있었다. 내가 우리 소설가들의 글을 많이 읽지 않았다는 뜻일 테다. 괜히 미안해지면서 남의 나라, 남의 문화에만 관심을 두지 말고 이제 내 쪽으로도 시선을 붙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올해는 집중하는 대상을 먼 곳에서 찾지 말고 가까운 곳, 내 주변의 사람들, 우리의 것, 내 안의 생명력에서 만나 보려고 한다. 이 작품집이 나의 이런 생각을 좀더 단단하게 해 주었다.  (y에서 옮김2018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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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뭐 먹지? - 권여선 음식 산문집
권여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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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이야기를 한다고 다 맛있게 들리는 건 아니다. 먹방이라고 다 맛있게 보이는 게 아닌 것처럼. 이 책을 만나려고 그동안 별로 맛없는 책들을 그렇게 봤던 모양이다. 그 맛없던 책들까지 모두 용서하겠다.

소설가인데, 이 소설가가 쓴 소설을 읽은 것 같은데(내 리뷰를 못 찾아 봄), 소설에 대한 감흥은 남아 있는 게 없고 나는 또 이렇게 이 산문집에 빠져 든다. 먹는 이야기가 왜 이리 매혹적이란 말인가.

작가는 제목에 '안주'가 빠져 있는 셈이라고 했다. 술을 어지간히 좋아한다는 거지. 술안주로 해장으로 뭘 먹는 게 좋은 건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어떤 음식을 먹어 왔고 어른이 되면서 술과 더불어 어떤 음식들을 먹고 있는지 세세하게 풀어 놓고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일상까지 구별해 놓고 있어서 때에 맞춰 먹는 일이 더 즐겁게 보인다. 한마디로 딱 먹고 싶다. 그것도 술 한 잔과 함께.

물론 나는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할 것이다. 책을 읽다가 음식을 만들거나 음식을 먹거나 술을 마시거나 하지는 않는다. 이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 나는 오로지 책만으로 먹고 마시고 배부름을 느끼고 취한다. 상당히 경제적인 것인데 한때는 섭섭했으나 이제는 즐기기로 했다. 후유증도 없고 책 덮으면 산뜻한 포만감은 남아 있으니까.

먹는 이야기에 내가 왜 이리 빠져 드는 건지 잠깐 생각해 본다. 결핍일지도 모르겠다. 난 어려서부터 뭘 잘 먹는 아이는 아니었고, 잘 먹을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음을 너무 일찍 알아차리고는 스스로 식욕을 닫았던 건지도 모르겠다. 이후 성장기 때도 비슷한 과정을 거치면서 많이 안 먹는 쪽으로 취향을 정해 버린 게 아니었는지. 많이 먹어 생기는 부작용에 더 민감해진 것도 있고. 대신 이렇게 글이나 만화나 사진으로 만족하고 있는 셈인데, 이 과식과 과음은 크게 해로울 게 없어(책값 정도?) 그만둘 생각이 없다.

작가의 소설을 좀 찾아봐야겠다.(y에서 옮김2018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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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안 하는 애인 문학과지성 시인선 577
박라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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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만남에서 깊은 인상을 받은 경우, 이어지는 독서에서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방해가 되기도 한다. 이 작가의 신춘문예 데뷔작인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가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다. 겹치는 게 성가시다. 이건 내 독서에 좋은 현상이 아니다. 이 시인을 알고 난 후로 세월은 제법 흐를 만큼 흘렀고, 작가의 글에 대한 내 기대감은 전혀 낮춰지지 않은 상태라 계속 찾아 보고 있다. 평강공주를 떠나 보내지 못하는 것은 아무래도 내 쪽이겠지? 


시를 읽는 마음이 외로워지지도 고달파지지도 않고 그렇다고 신이 나는 것도 아닌 상태, 무료하다는 느낌에 머문다. 아무것도 안 하는 애인이 되고 만 탓인가. 내 마음이 건조해진 탓인가. 산문시 형태의 배열도 익숙함을 지나니 다른 맛이 안 난다. 

좀 어려웠고 문장과 문장 사이, 낱말과 낱말 사이가 멀어서 내가 읽는 걸음 폭으로는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앞 행이 점점 멀어지는 것을 보며 시를 놓아 보내기만 했다.    


그래도 얻은 몇 행 덕분에 영 아쉽지는 않다. 다시 끄집어 내어 읽어 볼 수 있을 것도 같다. (y에서 옮김20240831) 


못 가본 세계에 발을 얹을 수 있다면 한 번은 얼어야만 사람도 꽃을 피운다면 얼어볼래! 툭툭 고단한 씨앗들 미래를 열 수 있도록 - P16

한 시절 너의 배는 꽃밭이었는데 - P27

늙는다는 것은 물이나 공기의 두께로
얇아지는 새벽이 오는 거 - P32

너 웃는 거 한 번 더 보려고 차린 가을 밥상 깍두기와 백합구이 백합탕 낙지구이 갈치구이 초장 옆에 생굴 다소곳이 앉아 있게 했던 거다 - P35

한 사람을 깊이 안다는 것은 한 봉지의 향기이거나 마약을 곁에 두는 일인 것도 - P40

상처가 노을의 일부인 줄 몰랐을 때
그의 시간 속에 붉은 노을 스며들 때
남남인 어제의 아픈 고백들이 흘러들어와
조금은 더 붉게 붉어졌다 - P119

덜 달고 덜 눈부시면 덜 열매 맺고 덜 연연하면 되잖아! -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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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윤성희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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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 알았다. 실린 글들이 모두 여성작가들의 작품이었다는 것을. 2019년에는 이분들이 돋보였나 보다. 소설의 세계에서 남자와 여자 작가를 구분하는 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지만, 막상 이렇게 묶인 작품집을 보니 새삼스럽게 일깨워지는 기분이 든다. 나는 왜 남자와 여자라는 구분을 시도때도 없이 시도하는 걸까. 


수상작품은 윤성희의 '어느 밤'이다. 맨먼저 읽었고 읽은 후에는 싱숭생숭해졌다. 그런가, 나이 든 이의 어느 밤은 이럴 수도 있는가. 이렇게 되지 않도록 안간힘을 다해도 맞이할 밤은 맞이하고 마는 것인가. 어찌할 수 없는 한계 같은, 벽 같은, 도무지 제 힘으로는 다스리지 못할 것 같은 어느 날 어느 밤의 상황에 놓여 주저앉고 마는가. 나이가 들어서도 못하는 건 못하는 것, 나이 탓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다음의 글은 권여선의 '하늘 높이 아름답게'였다. 이 작품만으로도 이 책을 본 값어치를 다 누렸다. 고귀하다는 말이 어떤 사람에게 쓰여야 하는 것인지를 알게 되었으니 나는 이제 새로워졌다. 고귀한 사람은 고귀하고자 하는 사람과는 달리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사는 게 아닐지. 그래서 본인은 고귀한지 아닌지도 모른 채, 남들이 고귀하다고 고귀하지 않다고 하든 말든, 사람과 생명을 온통 소중하게 받들며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이렇게 나는 고귀한 소설 한 편에 또 반한다.


그리고 남은 다섯 편. 함부로 뭉뚱그리는 것 같아 작가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내게는 다 섞여버렸다. 사건도 소재도 인물도 제각각인데 글의 분위기가 도통 바뀌지 않는다고 여겼던 탓이다. 마치 2019년이 통째로 그러했었던 것처럼. 암울한 시절이 이런 모습일까. 답답하고 막막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세상의 한가운데에서 죽음마저 평온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것을 지켜보아야만 하는 일. 소설가도 독자도 가슴 한 켠에 꽉 막힌 막을 품고 있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어서.        


지나간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이야기를 읽는 일은 늘 고달프기만 하다.  (y에서 옮김2021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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