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의 시대 새소설 17
장은진 지음 / 자음과모음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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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드는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가 마음에 안 든다고 여기고, 그렇다면 돌아가 보고 싶은 시대는 어떤 시대일까? 아니면 과거에는 아예 없고 미래를 향해서만 바라는 건가? 그렇게 바라는 시대의 모습은 어떠할까? 물음만 자꾸 남고 답은 멀리멀리 흩어진다. 살고 있으면서 마음에 안 든다 하니 시대도 우리로부터 뒷걸음질을 치는 것일지 모르겠다. 

부끄러움을 느끼며 살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 부끄러워서 유령처럼 살고자 하고, 유령처럼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의 이야기. 몇 년 전 코로나 19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를 이야기의 배경으로 삼고 있어서 유령같이 살고 싶다는 마음이 쉽게 이해될 정도였다. 세상 남보란 듯이 돋보이며 살고 싶은 이가 있는가 하면 아무도 알아주지 말라는 듯 보이지 않게 살고 싶어하는 이도 있는 것이다. 나는 둘 사이를 내 편의로 오락가락하며 살고 있는 쪽이지만.

등장인물들의 관계는 단순하고 밋밋한 편이다.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런지 서로 간의 갈등도 대립도 첨예하지 않다. 인물과 삶 사이, 부끄러워하는 사람과 부끄러운 삶과 부끄러운 시대 간의 갈등들이 두드러져 보인다고 해야 할까? 어떻게 살아야 하나, 개인으로서는 이 문제만이 뚜렷하게 보이니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수가 없다. 답은 안 보이는데.    

책의 크기는 작은 편, 분량도 많다고는 할 수 없고. 책값에 살짝 떨렸지만 최근에 좋아하게 된 작가라 응원하는 마음으로 눌렀다. 시절이 수상하여 싱숭생숭하기만 한 나를 달래 준 값으로 여기기에도 충분했다. 부끄러움 앞에서도 정직한 사람으로 살고 있는 모습을 글로나마 볼 수 있어서 모처럼 따뜻한 기분이 들었다.  

보태는 말. 소설 속 상황처럼 나도 수제 우산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소설을 읽다가 이런 바람을 갖는 일이 잦다). 검색도 해 보았다. 파는 곳이 있나. 외국에는 있다고 하는데, 수입품도 있다고 하는데, 더 이상 찾지는 않았다. 안 살 것 같다. 값이 싼 것이라고 해도 20만 원이 넘는다고 하니. 아무리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물건이라도 내게 어울리는 소유품은 아니다. 작가가 들려 주는 이야기로 충분히 누리자. 이미 갖고 있는 우산이 많기도 하니까.  (y에서 옮김2024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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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들린 아이 캐드펠 수사 시리즈 8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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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은 언제부터 어떻게 가문을 잇는 존재가 되었을까? 궁금한 의문이기는 한데 굳이 자료를 찾아서 알아보고 싶다까지는 아니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 그러다가 알게 되면 또 아는 대로, 나는 상당히 게으른 독자다. 


차남의 처지. 이 소설의 배경에서는 귀족 가문이나 토지 소유자의 차남 이하의 아들들은 병사가 되거나 성직자가 되는 수밖에 없었나 보다. 혹은 귀족의 외동딸의 남편이 되어 처가 쪽 후계자가 되거나. 그래서 병사가 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일까? 수도원은 수도원대로 그런 처지의 청년들을 받아들여 수도사로 키우면서 여러 방면의 재주를 이어갔던 모양이고. 이 소설은 여러 모로 내 관심을 충족시켜 준다. 천 년 전 잉글랜드라는 곳에 있었을 여러 종류의 삶이 이렇게나 매력적으로 여겨지는 것은 오직 작가의 힘일 수밖에 없겠다. 


이번 책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참 답답했다. 아버지는 장남만 믿는다. 차남은 반항을 하며 살아오는 중에도 기본 도리를 잊지 않는다. 그리고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오해가 생기고 각자의 처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한다. 그에 따른 불행까지도 안으면서. 캐드펠 수사는 당연히도 이 모든 것을 다 헤아려 파헤치는 능력을 발휘하게 되고. 이러다가 내가 캐드펠 수사를 지나치게 믿게 되는 건 아닐지. 아무리 소설 속 주인공이라고 해도 이렇게나 능력자이시니.


이 시리즈의 책을 계속 읽다 보면 이번 책의 내용을 나는 곧 잊게 될 것이다. 그래도 하나는 남을 것을 분명하게 알겠다. 차남의 위치라는 것-물려 받는 게 없이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는 입장. 지인의 집에서 수련을 시키는 일본의 풍습과는 또 다르다. 추리소설이 이렇게나 품이 넓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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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12 11: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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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0-12 13: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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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월의 말 3 - 6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6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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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는 죽고 카이사르의 후계자인 옥타비아누스가 등장하는 대목이다. 옥타비아누스는 안토니우스와 레피두스와 삼두연합을 형성한 뒤 보좌관인 아그리파와 함께 카이사르를 죽인 암살자들을 차례로 해치운다. 글을 읽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혹은 자연스럽게 카이사르와 옥타비아누스의 편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암살자인 브루투스와 카시우스의 입장에는 왜 동조가 안 되는 것인지. 내게 영웅을 좋아하는 습성이 있는 것이 확실하다.

 

문제는 안토니우스다. 안토니우스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지만(고등학교 때 세계사 시간에 이름을 알았던 기억이 가장 강렬하고 뒤에 읽었던 책들에서는 그다지 존재감을 느끼지 못했으니) 참 마음에 안 든다. 이런 인물이 그토록 오랜 세월 역사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니. 물론 클레오파트라와의 인연이 안토니우스라는 이름을 알리는 데에 큰 몫을 하기는 했겠지만.

 

다 알고 읽는 역사라도 또 재미있다. 작가의 힘이다. 오래 전에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었을 때도 큰 인상을 받았었는데, 이 책은 더 크게 와 닿는다. 시오노 나나미라는 작가와 그녀의 역사관에 대한 실망도 작용했을 것이고 소설적 상상력을 담은 이 책이 훨씬 더 크고 진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이천 년 전의 이야기가 지금의 이야기처럼 읽힌다. 보이는 듯하다.

 

아그리파에 대해 갖고 있는 좋은 기억이 고스란히 떠오른다. 옥타비아누스 곁에 지극히 충실한 태도로 있는 장군이다. 위대한 정치가는 주변에 자신만큼이나 위대한 조력자들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겠다. 이 조력자들이 자신의 처지를 뛰어넘는 욕망을 갖지 않는 사람이어야 하며 지도자라면 이를 알아볼 만큼의 안목을 가져야 한다는 것도 두말할 나위가 없고. 옥타비아누스에게는 역량만큼 인연을 만나는 행운도 주어졌던 것이리라. 

 

멀고 먼 남의 나라 역사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자꾸만 우리네 현실이 겹친다. 권력을 얻기 위해 끝도 없이 싸우고 죽이고 모략하고 협상하는 그들. 그 과정에서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져가는 평민의 운명. 읽고 있는 동안은 흥미로우나 이후 생각하는 시간은 고달프다. 나는 역사의 어느 선에서 살짝 머물렀다가 사라지게 될까?

 

이제 이 서사의 마지막 3권이 남았다. 천천히 아껴 가면서 읽어야지.(y에서 옮김2020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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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빵빵 일본 식탐여행 배빵빵 일본식탐여행
타카기 나오코 지음, 채다인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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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것을 찾아 다니는 여행, 일단은 재미있겠다. 양적으로 많이 먹을 수 있어야 하겠지만, 배가 불러도 맛난 음식을 향한 탐험심을 그치지 않아도 좋다면, 그 또한 삶의 큰 즐거움이 될 수 있을 테니까. 


어찌어찌하다가 알게 된 일본 만화 작가이고, 여행과 음식 이야기를 함께 보여 주는 내용이다 보니 내가 좋아하게 된 경우다. 아기자기하고 정겨운 그림과 그림만으로도 느껴지는 식욕과 보태어 보여 주는 사진까지, 이대로 따라서 시도해 보고 싶게 만든다. 별다른 고민이나 신경 쓰일 일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이렇게 돌아다니면서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바로 그 바람을 이루게 해 주는 여정. 


한 해 두 번. 방학 철이 되면 이제 어김없이 찾아 와 주는 방랑으로의 유혹. 이번 겨울방학에는 보충수업 일자가 넉넉하게 잡혀 있어 시간을 내기 쉽지 않게 되었지만, 그래도 틈을 만들어서 콧바람을 쐬고 싶다. 이 책의 작가처럼 차타고 가서 내린 뒤 먹고 다시 돌아다니다가 먹고 또 차 타고 가서 먹고 하게 되더라도. 그러다 먹게 되는 음식들이 모두 썩 맛있는 게 아니더라도 그렇게 좀 놀고 싶다. 아니, 기필코 놀아야겠다. (y에서 옮김2014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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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마음산책 짧은 소설
김금희 지음, 곽명주 그림 / 마음산책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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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이 작가의 [경애의 마음]이 내게는 그리 인상적이지 않아 좀 염려되는 마음으로 본 책이다. 단편보다 훨씬 짧은 소설, 예전에는 콩트라고 불렀던 것 같은데. 이 책은 퍽 마음에 와 닿는다. 짧은 상황 속에서 내보이는 인물 간의 갈등이나 처지가 절실하다. 요즘 젊은이들에 대한 내 시각이 그러한 건지, 작가의 글 솜씨 덕분인 건지 아무튼 둘 다 잘 맞았다.

 

우리네 소설 세계에 대해 어느 작가가 한 말이 생각난다. 우리나라에서 소설가로 등단하는 방법 중 가장 효과적인 것이 신춘문예나 문예지 공모전에서 당선되는 것인데 이 경우 대상 작품은 거의 단편소설이다. 즉 등단하기까지 작가 지망생은 단편 소설을 쓰는 연습을 계속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등단이 된 후에 장편 소설을 발표하는 것을 큰 과제로 여긴다고 한다. 대략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내내 단편을 쓰는 데 골몰하면서도 장편을 머리에서 손에서 놓치 못하는 마음을. 외국의 경우 처음부터 장편 소설로 데뷔하는 작가들이 많이 보였는데, 우리나라와는 출판 사정이 여러 모로 다른 것이겠지.    

 

그래서 그랬던가, 한 작가의 단편 소설과 장편 소설을 읽을 때 그 느낌이 차이날 때가 종종 있다. 이 작가의 경우 내게는 우선 단편이 낫다는 것인데, 읽은 작품이 많이 없어서 좀더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경애의 마음을 읽었을 때보다는 몇 발 더 다가섰으니 이것만으로도 좋은 현상이다.   


글의 분량도 편집도 주제도 부담을 느끼지 않고 읽을 수 있게 해 준다. 비슷한 나이의 독자라면 직접적인 위로를 받을 수 있고, 나처럼 이미 많이 지나온 독자라면 지난 날의 애틋한 추억을 되살려 볼 수 있을 것 같다. 추억조차 부질없다고 여기는 팍팍한 상태에 놓인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두드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y에서 옮김2019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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