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그림자의 춤
앨리스 먼로 지음, 곽명단 옮김 / 뿔(웅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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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노벨문학상을 받았다고 하니, 한 권 정도는 읽어야 할 것 같아서, 어떤 작품이 노벨상을 받나 다시 궁금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작가가 할머니라는 점도 아주 좋게 나를 끌었다.(박완서를 떠올렸던 것 같기도 하고, 이 나이가 될 때까지 글을 써 온 분이라면 자신의 글에 책임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내가 좋아하는 책이다. 내가 좋아하는 소설이다. 희한한 인연이나 우연 없고, 배신과 복수와 증오와 음모 따위는 보이지 않고, 비비 꼬아서 누가 누구의 누구이고 또 누가 누구와 어떤 관계인데 그 누가 누구와 뭔 짓을 한다는 등의 참으로 현실스럽지 않은 사건(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나와 거리가 너무 머니까) 없고, 마침내 죽이고 죽여서 그 죽음 자체를 끈질기게 파내는 그런 전개 없는 글. 마치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의 이집 저집에서 날마다, 혹은 작년이나 내년에도 일어날 법한 이야기들. 꼭 캐나다가 아니어도 그만그만한 사람들이 세계 곳곳에서 소박하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들. 아주 오래전 읽은 임철우의 '그 섬에 가고 싶다'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래, 소설 속 이야기들이 그렇게 아슬아슬하고 소설스럽기만 하다면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한갓져서 움츠릴 수도 있겠다. 개개인에게는 다른 누가 뭐라고 하더라도 더할 나위 없이 대단한 삶이니 이 소설 속 인물들처럼 내면에 충실한 삶도 서로서로 인정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장편소설을 쓰지 않았다고 하는데, 독자로서 아쉬움이 있기는 하지만 단편소설만으로도 충분하다. 실력만 있다면 영어로 읽고 싶건만. (y에서 옮김2013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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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탐독 - 유혹하는 홍콩, 낭만적인 마카오의 내밀한 풍경 읽기
이지상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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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살고 있어서 그런 건지, 원래 취향이 촌스러워서 그런 건지, 나도 도시가 좋다. 자연이 멋지다는 시골 여행보다는 화려하고 번쩍거리는 도시 구경이 더 재미있다. 이 책은 그런 점에서 내 취향을 확실하게 느끼게 해 주었다. 내 로망은 자연보다는 도시 쪽이라는 것.

 

홍콩, 마카오. 이제까지 큰 관심이나 호기심 없었다. 홍콩 영화를 좋아해 본 적도 없고, 쇼핑에도 관심이 없는 편이니 굳이 내가 홍콩에 가 보게 될 날이 올까 여기면서 지내왔다. 책을 보며 넘기는데 살살 들썩이는 것이다. 홍콩 역시 내가 갖고 있는 선입견만의 홍콩은 아니었으니. 할 수만 있다면 기회를 만들어 넘겨다 볼 만한 땅, 문화 배움터가 될 것 같다.

 

이 작가의 글을 오래 읽어온 편이다. 기행문의 세상으로 나를 이끌어 넣은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여행을 하면서 글을 쓰다니, 초기에는 부러운 마음이 많았는데, 나이가 들어도 이렇게 떠돌아 다녀야 하는 삶이라니 싶어 괜히 내 마음이 애잔하다. 작가 쪽에서는 한 곳에 붙박혀 있는 우리네 삶이 답답할 수도 있는 노릇인 것을. 마냥 부러워하는 것만도 아니고 마냥 불평하는 것만도 아닌 생,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격려를 해 줄 수도 있는 것일 테지.

 

도시에서는 필연적으로 사람을 만날 수밖에 없겠다. 사람과의 부딪힘, 그게 도시 여행의 본질일 것이고. 게다가 사람이 남긴 흔적들을 찾아 다니는 일일 테니, 사람을 싫어한다면 도시 여행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고. 나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싫어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일정한 거리감만 유지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는 일은 상당히 흥미진진하니까.

 

홍콩, 나도 구경하러 한 번 가 봐야지. (y에서 옮김20140407)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덧없어 보이는 외양들이 사랑스럽게 보이기 시작했다. 걸어가는 사람들의 표정, 경적을 울리며 달리는 자동차, 트램 지나가는 소리, 번쩍거리는 상품 광고, 어둠에 잠겨드는 건물의 흐릿한 경계와 빛나는 가로등……. 시시각각 변해가는, 근원이 모호한, 진짜가 아닌, 덧없는 시뮬라크르들. 그런데 그것들이 발산하는 표정, 소리, 움직임, 꿈틀거림, 에너지 들을 몸으로 받아들이며 황홀함을 느낄 때, 원본과 복제를 구분하는 것은 의미 없어졌다. 나와 저 사물들의 근원이 무엇인지,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시작과 끝이 어디인지, 의미가 무엇인지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지금, 여기서‘ 꿈틀거리는 빛나는 것들이 사랑스럽게 다가왔다. -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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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용과 강과 착한 물고기들의 노래 ㅣ 문학동네 시인선 117
곽재구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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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읽히면 좋다. 나는 천천히 읽히는 시가 좋다. 짧지만, 한 페이지에 몇 줄 안 적혀 있지만 훌렁 읽히면 마음이 상하고 섭섭해진다. 최근에 몇 번 그런 일이 있었다. 이 책에서는 그러지 않기를 바랐고, 그러지 않았다. 이 시집에는 정말 천천히 흐르는 강이 있었고, 그 강에 착한 물고기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으며, 나는 용을 찾아다녔다. 살짝 무서웠지만. 


김소월과 윤동주와 정지용과의 인연을 말해 주는 대목도 근사하다. 작가라면, 시인이라면, 아니 독자라고 해도 제 스스로 맺은 인연들이 있을 것이다. 누구 덕분에 작가가 되었노라고, 누구 덕분에 독자가 되었노라고 하는. 나는 이 작가와 <사평역에서>로 만났고 <은행나무>로 깊어졌으며 같은 국어 교사여서 홀로 더 친숙해졌다. 아마 그리고는 오래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늘 기다려 왔을 것이다. 작가 역시 그런 시절을 거쳐 시인이 되었을 것인데, 시 사이사이로 그 인연들을 짚어 읽는 게 좋았다. 시 또한 사람 사이에서 꽃을 피우는 몫을 하고 있을 것이므로. 


그러나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이 마냥 환하고 밝고 명랑하지는 않다. 오히려 반대다. 좀 많이 서글프고, 쓸쓸하고, 때로는 속상하기도 하다. 사람살이가 그래서 시인은 강물과 물고기를 불렀는지도 모르겠다. 말없이 위로해 줄 누군가가, 그것도 저 멀리 있는 게 아닌 바로 가까운 곳에 있는 누군가의 따뜻한 눈빛이 그리워서. 용은, 푸른 용은, 시인에게 푸르게 보이는 모든 용들은, 시인을 포함한 이 세상의 모든 용들은, 가여운데도 예쁘게 보인다. 시인의 마음일 테지, 그리고 시인이 바라는 독자의 마음일 테지. 나는 몇 번 망설이다가 슬쩍 쓰다듬어 본다. 용의 반짝이는 비늘, 나도 그 비늘 하나쯤은 갖고 싶다.


어려운 시든 쉬운 시든, 더 많은 사람들이 시를 읽는 시대가 되어야 할 것 같다. 그래야 이 세상이, 우리 처지가 조금 더 살 만해질 것 같다. (y에서 옮김2019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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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기행 ㅣ 니코스 카잔차키스 전집 16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이종인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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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글은 읽기 쉽지 않다. 그런데도 계속 읽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한다는 게 신기하다. 그뿐이랴, 읽기 어렵다는 것을 느끼고 있음에도 다음 책까지 찾아 보게 한다. 이 어려움을 또 느끼고 싶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소설도 여행기도 만만한 글이 없는데, 읽는 내내 글을 읽고 있는 자신을 대견스럽게 여기도록 해 준다. 내가 이 글을 참 묵묵히도 읽고 있구나, 다른 글이 이만큼이었다면 그만두었거나 대충 읽고 넘겼거나 했을 텐데. 나로서는 고마운 일이다.


여행은 제일 먼저 해당 지역의 역사를 알게 해 준다는 좋은 점이 있다. 그 땅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살게 되었는지, 어떤 모습으로 살아오게 되었는지, 지금의 주민들이 왜 이런 삶의 양식을 택하게 되었는지 여행지에서는 이런 의문들이 저절로 든다. 그러다가 하나씩 답을 알게 되고 궁금한점을 해결하게 되면 여행의 만족도가 점점 높아지는 것이다.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을 여행지에서 돌아온 후에 알게 되는 것도 또 얼마나 큰 즐거움인지 경험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영국 여행을 해 본 적이 있다고 할 수 없는 내 형편(딱 하루 있어 보기는 했지만 내게 그건 상징 같은 것이고)에서 이 책은 영국에 대한 동경과 작가에 대한 호기심을 동시에 높여 놓았다. 어렴풋이 알고 있던 영국에 대한 내 지식의 근원을 확인했던 점도 있고, 작가가 영국이라는 나라를 얼마나 좋은 마음으로 여행했는지를 알고 나니 나도 가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 자꾸만 일렁이는 것이었다. 


작가가 영국을 여행하고 이 글을 쓰던 시기는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이었다고 한다. 글 곳곳에 사상의 대립 문제라든가 전쟁의 기운을 담아 놓고 있는데 역사의 결과를 알고 읽고 있노라니 색다른 감회가 생기기도 한다. 곧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 채 일상을 이어 가는 영국민들과 그들을 바라보고 글을 쓴 작가의 의도를 헤아리자니 과거-현재-미래의 관계라는 게 무엇인가 생각해 보게 되기도 한다. 아무튼 작가의 통찰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멋지고 대단하고 감탄스럽다. 할 수만 있다면 나를 분석의 대상으로 맡겨 보고 싶기까지 했다.    


몇 곳을 옮겨 적어 보았다. 영국 혹은 영국민의 특성을 서술하고 있는 부분을 옮기면서 끄덕끄덕하다가 마지막에 젊은이의 특성에 대한 부분을 옮겨 쓰면서 피식 웃고 말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젊은이는, 시공간을 막론하고 젊은이라면 누구나 언제나 다 이렇게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처지에 놓인 건가 싶었기 때문이다. 역사는 개인에서 개인의 삶으로 이어지는 것이고, 어떤 개인은 희생을 하고 어떤 개인은 영광을 누릴 텐데 우리 각자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인지. 이 대목에서 갑자기 자유라는 말이 묘하게도 떠올랐는데 나는 어쩌면 이제야 자유의 의미를 조금 알게 된 것도 같다. (y에서 옮김20180822)   

 



1. 영국민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





 



2. 키플링의 시 <IF>





 



3. 흑사병으로 인구가 줄어들고 난 후부터 제국주의 영국이 되기까지의 과정





 



4. 도시의 세 형태



5. 모국어의 가치





 



6. 스포츠 정신이란?





 



7. 젊은이들의 특성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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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
김미월 지음 / 창비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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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경로로 이 작가의 이름을 얻었는지 전혀 모르겠다. 이 책 이전에 읽었던 작품이 있기는 했지만 특별히 기억에 남아 있지 않았는데. 이 책,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이제야 펼쳐 읽게 된 게 섭섭할 정도로. 가끔 이렇게 뒤늦게 만나는 글이 내 마음에 들 때면, 내 게으름을 탓할 수밖에 없다. 그때는 뭐하고 있었나 싶어서.

2011년에 발간된 책이고 실린 작품들은 2007년부터 2011년에 발표되었다. 10년 전이다. 그때 나는 어디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었던가. 근무했던 곳을 떠올리면 대략 내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인터넷으로 2007년부터 2011년의 10대 뉴스도 찾아보았다. 그런 시절에 쓰였던 소설이구나, 10년이나 지났음에도 답답한 마음이 인다. 세상의 어떤 부분은 참 느리게도 흐르는구나 싶다.

잘 읽히는 소설들이다. 그런데 전혀 가볍지 않다. 주제는 무거운데 표현은 경쾌하고 발랄하다. 그 탓에 자칫 마음을 놓을 뻔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글들이어서 계속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읽는 마음은 뿌듯했고 소설 속 상황에는 흔들렸으며 작고 큰 미움과 분노와 원망과 한탄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그때 그 힘들었던 젊은이들은 지금 또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보다 한 세대 앞선 나로서는 딱히 할 말이 없고 자꾸 숨고 싶어진다. 이래서야 원.

한 편 한 편 다 재미있고 따끔거린다. 배경이 되는 몇몇 곳은 앞으로도 이 작가의 소설을 떠올리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 같다. 서울 프라자 호텔이나, 도시의 공원이나, 중국어 학원 같은 곳들. 무심하고 게으른 내 정서의 한 쪽을 건드리면서 내가 깨어 있도록 해 줄 것이라 생각한다. 고마운 소설집이다. (y에서 옮김2019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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