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초등학생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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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늙어 본 적은 없지만 젊어 본 적은 있다는 말처럼,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은 있다. 그 시절이 실제로 유복했든 남루했든 적어도 다시 떠올리는 기억 안에서는 대체로 아늑하고 흐뭇하기만 한 세상일 것 같기도 한데, 정녕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 또한 생의 축복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리라 싶다.  


이 책은 어른인 작가가 초등학생 때의 자신에게 말을 거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신선하고 또 애처롭다. 이렇게 이렇게 자라 이제는 어른이 된 자신에게 스스로 대견함을 느끼는 면도 있을 것이고 여전히 어떤 부분에서는 안타까움을 갖고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 그때와는 달라진 좋은 것들, 또 어린 시절과 다를 바 없는 여전히 모자란 내 모습. 사람은 변하기도 한다 싶어 들떴다가 사람은 좀처럼 변하지 못하는 거지 하면서 체념하게 되는 우울함까지 다 내 안의 모습이다. 


작가의 추억 속에 있는 그림책 스무 권이 함께 등장한다. 쓸쓸하게도 이 가운데 내가 알고 있는 그림책은 한 권도 없다.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에 그림책 교류가 없었던 것인지, 이런 그림책이 우리나라에서는 출판되지 않았던 것인지, 아니면 내가 어렸을 때 그림책을 제대로 못 읽었던 것인지 그건 모르겠다.(아무래도 마지막일 이유가 가장 클 것 같은데.) 간접적으로나마 아이가 자라면서 책으로부터 받게 되는 영향이 어떠한 것인지를 고스란히 짐작할 수 있겠다.     


그림이 무서워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읽지 않았던 책, 그 그림이 아이의 영혼 한 부분을 건드렸다는 뜻이겠지. 그로 인해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도 어떤 식으로든 자극을 받게 될 것이고. 사람을 좋아하거나 미워하거나, 어떤 동식물을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어떤 음식을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등등. 그러고 보니 내가 고양이와 개를 가까이 하지 못하게 된 이유가 갑자기 떠오르는데,  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와 코난 도일의 '바스커빌가의 개' 때문이 아니었던가 싶기도 하다. 초등학교 때 읽으면서 느꼈던 무서운 기분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 듯하니까.


작가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기억력도 대단하게 여겨진다. 아무리 선택적 기억이라고 해도 이렇게 시시콜콜 건져 올리기는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애써 지웠던, 나의 어린 시절 씁쓸한 몇 장면을 떠올리면서 작가가 약간 원망스럽기도 했다. 굳이 이런 기억은 살려 주지 않아도 좋을 텐데 싶어서. 어린 마음에도 이기적으로 행동했던 나의 소행들, 그로 인한 친구와의 갈등과 다툼, 부모님께도 숨겼던 나의 어긋난 양심 몇 쪽과 헛된 욕심들. 지금 생각해 보면 부끄럽기도 하고 오글거리기도 하고 낯뜨거워지기도 하는 보잘것없는 자만심까지. 마음도 다치고 신뢰를 잃기도 하면서 자라왔겠지, 더 이상의 실수는 하지 말고 살아가자고 다짐도 하면서.   


지난 날이 지금보다 더 좋았다고 회상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그때보다는 지금이 가장 낫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로서는 다행스럽다고 생각하는 점인데, 나는 지금이 내 삶에서 가장 만족스럽다. 예전에 나름 화려했던 기억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굳이 다시 돌아가고 싶은 시절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자신이 있다. 지금의 내가 초등학생 때의 나를 만나게 된다면 그때 이후로 잘 커 왔다고, 막연히 바라던 어른의 모습으로 살아 왔노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작고작은 흔들림은 있었지만 바라던 꿈의 길에서 별로 벗어나지 않았고, 어렸을 때 느꼈던 갖가지 빈곤감은 서서히 지워 나갔으며, 지난날을 그리워하는 것으로 오늘을 낭비하는 일은 없는 어른이 되었다고, 나 역시 작가가 마지막 페이지에서 하는 말처럼 어른이 되어 좋다고.


가볍게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지만 다 읽었다고 가볍게 치울 수 있는 책은 아니다. 어쩌면 작가의 어린 시절을 차지한 그림책 중의 한 권처럼 내게도, 어른인 나에게, 먼훗날 나이가 더 들었을 때 떠올리게 될 책 중의 한 권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할머니인 나에게 젊은 날의 나를 소환하는 기쁨이 되어 줄 테지. 이렇게 하여 마음 한 번 제대로 머문 책은 내내 사라지지 않게 되는 것이리라.  (y에서 옮김2016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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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단비 옆 동바람 ㅣ 반달문고 38
이정아 지음, 김성라 그림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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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편의 이야기. 모두 마음 편하게 읽을 수는 없는 동화들이다. 동화를 자주 읽는 것도 아니고, 요즘 동화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보니 모를 일인데 책을 읽는 마음이 편하지 않다는 것, 이것은 이것대로 문제가 되지 않나 싶다. 당연히 내 문제이겠지만.


첫 번째 이야기, '동단비 옆 동바람'. 단비와 바람이는 형제다. 장애가 있는 형 바람이와 형을 보호하는 입장에서 지내고 있는 동생 단비의 생활 이야기. 


두 번째 이야기, '너 거기 있니?'. 살던 집이 환경 개발 계획에 의해 사라지면서 덩달아 사라지는 것들을 어린이의 눈으로 헤아려보는 이야기.


세 번째 이야기, '고양이가 다녀간 자리'. 고양이와 사람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정녕 궁금해지는 답답한 이야기. 


이 책을 보게 된 동기는 그림을 그린 김성라 작가에게 있었다. 내 기대대로 아이들을 그린 그림은 퍽 마음에 들었으나 글의 내용은 부담스러웠다. 나는 어른이면서도 피하고 싶어하는데 이제는 어린 아이들도 이 세상이 내리누르는 무게를 견디고 살아야 하는 시절인가 보다. 


동화 속 세상이 동화가 아닌 것만 같은, 이래서야 동화는 어디에 있다는 말인지. 나는 이 분야에서 철들지 않고 싶은 사람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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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라는 여자 ㅣ 비채×마스다 미리 컬렉션 3
마스다 미리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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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딸이기도 하고 딸을 둔 엄마이기도 하다. 읽는 내내 흐뭇했다. 책을 보면서 가끔 가슴 뜨거워지는 기분이라는 게 이런 것이구나를 느낀 적도 있고 대체로 평온하고 아늑했다. 좋은 걸 좋은 쪽으로만 보면 이렇게 되는 것이겠지. 세상의 시름 한 쪽 곁들이지 않고 오로지 평화와 안정 속에서만 찾아보는 엄마와 딸의 이야기. 좋은 기억만 골라 골라 담아 놓은 것 같은 이야기. 대딘한 건 아니라고 해도 지극히 평범한 일상 그 자체를 엄마와 딸이 함께 누리면서 보낸 행복한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 남의 나라 모녀나 우리나라 모녀나 다들 비슷하게 사는 모양이라는 생각을 또 해 보았고.

 

내 엄마 생각을 좀 많이 했다.아버지를 일찍 잃으신 편이어서 두 분이 같이 보낸 시간보다 이제 홀로 보내시는 기간이 더 길어졌다. 나이가 드신 만큼의 자잘한 잔병은 갖고 계시지만 몸도 마음도 특별히 염려할 정도는 아니셔서 멀리 떨어져 지내지만 고마울 따름이다. 엄마와의 기억들? 이 작가만큼 많거나 다양하지는 못하다. 그래도 새록새록 떠올려 보면 내가 공부하는 모습을 잘 보살펴 주셨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공부한다고 하면 어떤 집안일도 시키지 않으셨으니 여자라도 제 일은 가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게 투영시키셨던 것이리라.

 

곰곰히 생각해 보니 나와 우리 엄마, 나와 내 딸은 서로에게 꽤 건조한 편이다. 애틋하다거나 애교를 부린다거나 셋 다 이런 성격이 아니다. 보면 보는 모양이고 안 보면 또 안 보는 모양인가 보다 할 정도로 무심하고 심심하다. 그런데 이게 또 서로서로에게 전혀 섭섭하지도 불편하지도 않을 정도이니 자신의 성격을 짐작하여 서로를 헤아릴 수 있어 그런 게 아닌가 싶다.누구를 챙기니 안 챙기니 하면서 상대를 긁는 일도 없으니 싸움이나 갈등 따위는 생길 근거가 없어서 이만해도 괜찮다. 

 

책은 책대로 잔잔해서 좋았고 책 덕분에 엄마랑 딸이랑 나와의 상관 관계를 짚어 볼 수 있어서 또 좋았다. 다음 책은 아빠라는 남자인데, 그건 어떠할지? (y에서 옮김2020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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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측의 증인 ㅣ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77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강표.양현길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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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전환이라는 말, 요즘처럼 자주 떠올리면서 실제의 내 의식과 행동을 바꾼 적이 있었던가 싶다. 일을 하고 있었을 때에는 그냥 날이면 날마다 주어지는 대로, 맡겨진 대로 살았던 것 같은데, 그래도 불만이라거나 불평을 느낀 적은 기억에 없는데, 요즘은 여러 모로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어쩌면 생에 처음으로 맞는 어른으로서의 적응 기간이라 이럴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딱히 지금 내 형편이 어렵다거나 위험하다거나 난감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건, 어떤 이유에서건 내 자유의지가 제한을 받고 있다는 건,- 자유를 잃고서야 그 소중함과 가치를 더 확실하게 알게 되는 것도 있고,- 결코 유쾌한 경험이 아니다. 코로나 19로 인한 행동 제약은 비단 나 자신에게만 끼칠 영향이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줄지도 모른다는 염려로 의외로 깊고 무겁게 다가온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러다가 이대로 죽 살아가야 할지도 모르는, 그동안 지구에서 너무 나댄 인간들에게 경고라도 하듯이, 이런 뒤숭숭한 마음을 달래는 나만의 특효약, 이 작가의 책이다. 


적어도 책을 읽고 있는 동안만은 다른 생각을 안 해도 된다. 그저 재미있으니까. 인간의 본성과 심리와 욕망에 대해 한걸음 밖에서 혹은 한걸음 더 들어가서 덩달아 탐구하는 듯한 기분을 누릴 수 있으니까. 세상에는 마냥 착한 사람도 없고 마냥 나쁜 사람도 없다는 듯 보통의 사람으로서 갖는 이중적인 생각과 행동들을 다양한 소재와 배경을 통해 보여 준다. 그러면서 살짝씩 드러내 주는 반전, 소설 속 인물의 상황이지만 내 것 같은 것들을 발견할 때는 뜨끔하기도 한다. 내게도 이런 면이 있었지, 있었구나, 들키지 않았을 뿐, 아니 들켰을지도 모르는데, 들켰다는 것을 정작 나만 몰랐을 수도 있는데. 나는 글을 읽다가 내 마음 속 욕망의 어둠을 마주할 때마다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기를 거듭 했다.  


사람은 이기적이라거나, 제 본위로 산다거나, 제 이익 앞에서는 다른 배려를 하기 힘들다거나 하는 류의 말들에 나는 좀 나태했다. 내가 꽤 괜찮은 의지와 본성을 갖고 있노라고 홀로 자부하고 있었는데, 그럴 만한 정도는 아닌 모양이다. 그러니 이 작가의 소설을 지치지도 않고 지겹거나 지루함도 못 느끼면서 매번 새롭게 뜨끔거리고 있는 것일 테지. 마치 양심의 가지 끝이나마 놓치지는 않겠다는 듯이.  


소설들은 좀 기괴하고 묘하고 어떤 것은 섬뜩하기도 하다. 세상에 있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들이지만 등장하는 인물들의 생각이나 행동만큼은 우리네 삶의 형태와 다른 점이 없다. 나쁜 사람은 마침내 벌을 받고 착한 사람은 기어이 복을 받는다는 것은 그저 바람일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중독처럼 찾아 읽게 되는 글이다. 이런 방식의 그리고 이 정도의 의식의 마비라도 없다면 너무 힘든 시절이지 않나 싶기도 하고. (y에서 옮김2020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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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터데일 미스터리 - 리스터데일 미스터리 ㅣ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76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강표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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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단편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얼마 전 읽은 '올클리어'에서 주인공 중의 한 명이 시간여행으로 이 작가를 만난다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병원에서 약제사로 근무하는 작가를 본다는 설정이었는데 너무도 그럴 듯해서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얼마나 신기하고 대단하다고 여겨질까 하는 생각을 했다. 과거로 돌아가서 지금은 세상에 없는 유명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 그게 다른 것보다 좋아하는 작가일 경우라면, 상상만 해도 즐거운 기분이다. 어쩌면 이 책 속의 작품들 중 그때 쓴 것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미스터리 추리라는 특성을 갖고 있는 소설들이라 길든 짧든 시작부터 긴장을 하게 된다. 이번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려나, 누구의 욕심을 혼내려나, 숨겨둔 어떤 욕망을 건드리려나... 먼먼 땅 남의 이야기인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나는 글 속에서 나의 속성을 여러 차례 만나곤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않는, 숨기는, 어떤 것은 내 자신도 속이는, 좀 치사하고 유치하며 비겁하기도 하고 그런 줄 알면서도 좀처럼 버리지 못하는 허영이나 욕망들. 아마도 내가 이 작가의 글을 좋아하는 데에는 이 탓도 있을 것이다. 소설 속 인물들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감추고 있던 내 안의 허물이 들켜서 부서지는 장면을 만나게 된다는 것. 내가 못하는 것을 해 주는 작가의 솜씨에 감탄하면서. 

 

돈이든 사랑이든 명예든 자존심이든 얻고 싶은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저마다 원하는 만큼 얻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일 텐데 이런 바람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얼마나 될까. 매순간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바람마저 또 다른 욕망 하나로 삼고서 스스로를 옥죄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게 삶이라고 하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일 테고.

 

단편들의 모음이라 매번 살인 사건을 담은 건 아니다. '재봉사의 인형'에서는 미묘한 현상만을 보여 주기도 한다. 정말 있을 수 있는 일인지 믿기 어려운, 그러나 있을 것도 같은 그런 이야기들. 재미있다. (y에서 옮김2020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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