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미 돌아오다 ㅣ 에리사와 센 시리즈 2
사쿠라다 도모야 지음, 구수영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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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력이 없는 나는 이런 글을 읽을 때마다 신기하다. 소설이든 현실이든 집중해서 관찰할 줄 아는 사람이라야 이런 표현, 이런 전개가 가능할 테니까. 이런 사람들의 기억력도 신통하고. 


에리사와 센. 곤충을 관찰하는 일이 취미이자 본업처럼 보이는 주인공이다. 곤충을 관찰해서 어떻게 먹고 사는지는 모를 일이고. 곤충을 관찰한다는 명목으로 보통 사람들이 가지 않는 곳을 간다거나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것도 에리사와에게는 썩 유리한 상황이다. 곤충에게는 영 관심이 없는 나로서는 좀 떨떠름한 배경이 되고 있지만 읽는 재미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다. 


다섯 편의 글, 다섯 개의 미스터리 사건. 사건이라고 하기에는 좀 가벼운 듯하지만 내 취향에는 더 맞다. 겁나게 무섭거나 잔혹하거나 배배 꼬인 게 아닌, 무심히 넘기는 이에게는 아무런 사건이 되지 못하는 일이 될 수도 있는 것들의 비밀을 파헤치는 과정이 재미있다. 일본 소설에서 자주 보는 장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후속편을 읽고 있다. 에리사와가 계속 활약을 하게 될 모양이다. 독자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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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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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시기에 왜 하필 이 소설이었을까. 작년에 출간된 책인데, 이제서야 읽은 나, 그리고 하필 요즘과 같은 시대에 읽으면서 더욱 마음 아팠던 나. 소설은 역사를 얼마나 살릴 수 있는 것일까. 


팔십 년대 말, 구십 년대 초, 한창 읽었던 소설을 새로 읽는 기분이 들었다. 10여 년 정도의 거리를 뛰어넘어 다시 그때로 돌아간 기분 혹은 그때로부터 바로 지금으로 뛰어넘은 기분, 어느 쪽이든 유쾌하지 않다. 그래, 내가 누구든 내가 얼마나 외롭든 누가 나를 위로해 줄 수 있겠는가. 누구나 다 이만큼 아프고 지겹고 숨고 싶고 도망가고 싶은 때가 있는 것을. 


궁금해지는 것도 있다. 지금 서른이 안 된 청년들은 이 소설을 읽으면서 어떤 생각을 해 볼까. 취직보다 가정보다 연애보다 이상이 더 높았던 그때의 우리 젊음을 어떻게 생각해 줄까. 내 비록 역사의 중심에 서 있지는 못했으나, 그 푸르디푸른 민주화 역사의 변두리에서 남의 눈에도 띄지 못할 정도로 알짱알짱 했을 뿐이지만, 그때를 살아서 지나왔다는 게 홀로 자랑스러운 사람인데.  


'왕후의 밥, 걸인의 찬'-내가 배운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나오던 구절이다. 그때 우리 또래들은 얼마나 이 말을 많이 썼던가. 다시 보는 이 말만으로도 나는 이 책이 참 가깝게 느껴졌다. 공감이었으리라. 


읽기를 잘 했다. (y에서 옮김2008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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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연령 60세 사와무라 씨 댁에 밥이 슬슬 익어갑니다 ㅣ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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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 있었던 온갖 것들이 제 몫의 가치를 드러내는 시절이다. 공기, 물, 시간, 관계 등등. 너무 무심했거나 너무 지나쳤거나 잘난 인간이라고 여기고 저질렀던 오만을 자연이 경고하고 있는 것 같다. 이쯤에서 지구 차원에서 돌아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너나 할 것 없이, 특히 잘 산다는 쪽, 많이 가지고 있다는 쪽에서 더더욱. 

 

만화는 앞선 작품들과 특별히 달라진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다. 40대의 직장인 미혼 여성이 70대의 부모와 함께 살면서 겪는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이야기. 특별한 게 없어서 더 돋보이는 평범한 삶의 가치. 어릴 때야 저마다 큰 꿈을 안고 세계를 정복하거나 인류 역사에 길이 이름을 남길 업적을 세우겠노라고 다짐하면서 크지만 커 보면 곧 알게 된다. 평범하게 사는 것조차 쉽지 않다는 것을. 그러니 이 만화에서 보여 주는 삶의 이야기만 해도 누군가에게는 동경이 될 수 있겠다. 

 

나이 드신 부모님이 건강하시다는 것,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게 뭔가 삶의 과제 하나를 안 한 듯하지만 그래도 또 그런 대로 괜찮게 받아들일 나이로 산다는 것, 비슷한 처지에 비슷한 고민을 나누면서 일상을 나눌 동료가 있다는 것, 비싸고 거창한 건 아니지만 맛있게 사 먹을 음식이 가까이 있다는 것, 변하고는 있으나 조금씩 남아 있는 과거의 추억을 되살려 주는 거리를 산책할 여유가 있다는 것.

 

사는 게 참 별것 없다 싶다가도 사는 게 이토록 대단한 건가 하는 마음이 하루에도 몇 차례 오가는 요즘, 지금 내가 갖고 있고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떠올리자니 갑자기 눈물이 맺힌다. 이만해도 고마운 일이다. (y에서 옮김2020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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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4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송태욱 옮김 / 비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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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일은 아름다운 일이다. 아름답지 않은 삶이 있기는 하겠지만 살겠다는 숭고한 의지로 꾸려 가는 삶이라면 아름답지 않을 수가 없다. 남에게는 평범하고 하찮아 보여도 삶의 당사자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목숨으로 하나밖에 없을 삶을 누리고 있는 것일 테니까. 살아 있는 우리가 겸손해야 하는 한편 살아서 좋다는 자부심을 가져도 되는 이유다.


홋카이도의 가상 마을 에다루. 할머니에서 손자까지 3대의 가족 이야기. 이들과 같이 살았던 홋카이도견 4마리까지. 염상섭의 삼대가 떠오르기는 하지만 분위기는 아주 다르다. 인물들이 살던 사회의 모습보다는 가족 개개인의 삶에 더 집중하는, 삶의 세밀한 모습들을 고요하고 순조롭게 보여주는 아주 내 취향인 소설이었다. 


일단 물어뜯고 싸우는 내용이 없다. 인물 간, 가족 간에 갈등이 있기는 하지만 사람 사는 곳에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이렇게도 소설이 되는구나, 지극히 심심하게 보일 수도 있는 것을 작가의 문장력으로 살려 놓는다. 이야기를 읽고 싶다는 마음도 크지만 문장을 계속 읽고 싶다는 욕망이 사라지지 않는 독서였다.


앞서 읽은 이 작가의 책도 배경이 홋카이도였는데, 이 소설도 홋카이도다. 가 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썩이도록. 가상의 마을이라 현실에는 없는 배경이지만 이름이라도 알고 있는 삿포로라도 아사히카와라도 하코다테라도. 도쿄는 아닌데 홋카이도는 나를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는 땅이란 말이지.


아무 땅 아무 집 사정이라도 이 작가의 손을 거치고 글로 바뀌면 소설이 될 것만 같다. 여자와 남자가 만나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몇 낳고, 그 아이 중 몇은 결혼을 해서 다시 아이를 낳고, 몇은 결혼하지 않은 채 나이 들면서 각각 살아가는 모습의 전부를 모은 이야기. 세상에 먼저 나온 순서대로 세상을 떠나는 게 아니라서 더 슬프고 아프고 그럼에도 남은 사람은 또 살아가는 이야기. 재미와 감동과 위안과 힘을 전해 받는다.


요즘 들어 막연하게 두려운 상황이 떠오른다. 내 가족과 내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몇 번째로 세상을 떠나게 될까 하는 것. 첫 번째로 떠난다고 해도 기막힐 듯하고 마지막까지 홀로 남는다면 그 또한 기막힐 노릇일 텐데. 하지메가 혼자 나이 든 부모와 고모들을 돌보는 장면을 보고 있자니 먹먹하기만 해서... 


이 책을 읽고 모처럼 평온해졌다. 시끄러운 세상을 만들어 시끄럽게 살고 있는 이들이 나에게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 책 덕분에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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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12 1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7-12 11: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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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네치를 위하여 - 제2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
조남주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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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에 그리 감동을 얻지 못한 탓에 이 작가의 글을 찾아 읽지는 않는 중이었다. 영화를 만든다고 하고 다 만들었다고 하고 상영한다고 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반응들이 쏟아지는 것을 보면서 내가 그 소설을 제대로 못 읽었던가 잠시 의문을 가졌다. 그렇지만 책을 다시 읽겠다거나 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고(짜증도 감동도 회한도 얻고 싶지 않았으므로) 이 작가의 다른 글을 읽어 봐야겠구나 싶어 빌린 책이다. 결과적으로 성공한 독서였다.

 

이 책을 안 봤더라면 많이 후회할 뻔했다. 작가에 대한 관심을 확실하게 갖게 해 준 책이다. '82년생 김지영'에서의 느낌과 확연히 다르다. 좋은 쪽으로. 이건 내가 소설의 형식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뜻이다. 이 책은 이야기 그 자체다. 쉬지 않고 풀어 내는, 발랄하고 수다스럽고 아프고 처절하고 가슴 뛰는 이야기. 이 글을 먼저 읽고 작가의 이름을 안 뒤에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더라면 쓸데없는 편견을 갖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어린 여자 아이가 화자로 등장하는 소설은 앞서 몇몇 있었다. 당장 양귀자와 은희경이 떠오른다. 이런 익숙한 느낌에 대해 책 뒤 심사평에서도 언급해 놓기는 했다. 기시감이라고. 그럼에도 글은 잘 읽힌다. 어린 화자에게 몰입도 잘 된다. 어른이 된 후의 화자에게도 동정심이 든다. 그래, 어쩔 수 없다. 내 입장에서는 이만큼의 동정심이 다일 수밖에 없다. 

 

최근 386세대를 향한 반성을 촉구하는 글을 본 적이 있다. 해당 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뜨끔하는 부분이 많다. 요즘의 젊은이들이 겪는 어려움의 원인 중 많은 부분을 책임져야 하는 세대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도 관련되는 내용이 구석구석 등장한다. 아이를 키우는 방법이나 태도, 부동산으로 재산을 늘리는 방법, 사회의 공정성을 해치거나 미루면서 제 이익을 챙겨 간 방법 등등. 그러지 말았어야 할 일들을, 그러면 안 된다고 외쳤던 젊은 날들의 구호가 부끄럽게도 더하면 더했지 모자라지는 않았을 이기적인 일들을 하고 만 이제는 어른인 세대. 그로 인한 불평등의 결과나 피해를 받은 인물들의 사정을 그때를 배경으로 삼은 소설로 읽고 있자니 얼마나 불편한 마음이 그득하던지. 들켜서 그만 시원해졌을 정도다.    

 

생각해 보니 내 생은, 내 주위의 비슷한 친구들의 생 또한 지금까지 참 평탄했다고 생각한다. 어려서는 대체로 다들 가난한 편이었으나 조금만 열심히 하면 곧 괜찮게 살 정도로는 되었다. 대학을 가면 금방 취직이 되었고 직장을 바꾸기도 어렵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결혼도 그랬다. 가진 것 없이도 시작할 수 있었고 둘이 잘 모으면 모으는 보람을 얻을 수 있는 시절이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처럼 앞이 막막한 때는 그다지 없었던 것이다(나와 내 주변이 그러했다는 말이다). 그러니 어찌 이 젊음을 이해한다고 할 수 있으랴. 그저 못난 능력 탓일 것이라고 함부로 비난이나 하고 있는 것이겠지. 이 세대 차이는 진정 극복할 수 있게 될까? 

 

열심히 해도 안 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아는 일만 해도 쉽지 않은데. 인생에 성공이라는 게 과연 무엇인지 어떤 상태인지 모르겠지만, 다들 성공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느라 현재의 생을 지나치고 마는 잘못을 저지른다고도 하는데 이 소설은 참 여러 모로 생각을 많이 해 보게 한다. 정녕 잘 못 살려고 하는 사람은 없는 건데 말이다. 어쩌자고 삶은 이리도 오락가락하는 건지, 어느 날은 살 만하다가 또 어느 날은 이렇게도 지독한가 싶고. 소설은 좋았다. (y에서 옮김2019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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