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게 될 것
최진영 지음 / 안온북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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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책은 한 편도 섭섭하다는 느낌 없이 잘 읽었다. 이름이 꽤 알려져 있는 작가이고 이 작가의 글을 읽은 적도 있었는데 이번만큼 호감을 가진 기억이 없다. 그렇다고 막 너무 좋다 여기까지 이른 것은 아니고. 이대로 계속되었으면 좋겠다는 정도? 이 작가의 책읽기는 이제 시작이군 하는 마음으로.

소설가들은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한 글을 잘 쓰는 사람일까. 누구에게 들어 본 말인지 혼자 떠올려 본 말인지 모르겠다. 상관없다. 사건과 인물과 주제를 다루고 있는 모습에 따라 나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세 시제를 두로 잘 쓰는 사람도 있을 테고 특별히 한 영역에 대해 탁월하게 잘 쓰는 사람도 있을 테고. 읽는 쪽에서도 이 점에 유의해 보면 달리 보이는 것도 있을 것 같은데.

이 작가의 이번 책은 미래가 주인공인 모양이다. 책 제목으로 잡은 것에서부터 알아챌 수 있겠다. 나는 책의 제목이 된 작품보다는 '인간의 쓸모'에 더 끌렸다. 우리네 인간은, 아니 작품 속에 나오는 말처럼 우리 '사람'은 정녕 지구 미래에 쓸모가 있는 존재일까. 미래를 밝게 그리는 쪽과 어둡게 그리는 쪽도 가치관을 나타내는 하나의 취향이라고 하더니. 

작가가 그리는 미래는 대체로 밝지 않다고 읽었다. 그렇다고 아주 어두운가. 또 마냥 그렇지도 않았다. 바람이 깃든 때문이겠지. 어둡지만, 어두워 보이지만 밝았으면, 밝게 만들어 나갔으면, 밝아 주기를,... 과 같은 소망을 가진 작가로서. 그래서 내가 이 작가의 글에 마음이 열린 것일 수도. 예전 독서에서는 찾아 내지 못했던 빛살 같은 것들 덕분에.

사람이 사람을 창조하는 일의 가치와 사명을 생각한다. 대단해 보이고 존경스러워진다. 대상이 무엇이든 창조되어 존재하고 나서부터는 세상이 전과 달라진 것이 된다. 하물며 우리네 사람이라면 더더욱. 신비한 세상에 신비하게 머물러 있다가 떠났으면 한다. 작가가 내가 준 선물처럼. (y에서 옮김20241127)

여름날 땀 흘린 뒤 시원한 찬물 샤워. 겨울날 따뜻한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바라보는 밤하늘. 잠에서 깨었을 때 당신과 맞잡은 손. 마주 보는 눈동자. 같은 곳을 향하는 미소. 다정한 침묵. 책 속의 고독. 비 오는 날 빗소리. 눈 오는 날의 적막. 안개 짙은 말의 음악. 햇살. 노을. 바람. 산책. 앞서 걷는 당신의 뒷모습. - P290

폭우의 빗방울 하나. 폭설의 눈송이 하나. 해변의 모래알 하나. 그 하나가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 P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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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를 죽였다 ㅣ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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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읽은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에서 가르쳐 준 범인도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해 슬펐던(?) 기억을 안고 단단히 마음먹고 읽었다. 이번에는 놓치지 않으리라 하면서. 


그래서 초점을 둔 게 캡슐 갯수였는데, 아뿔싸,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는 것. 그리고 이번에도 결국은 책만으로는 해결을 하지 못하고 인터넷에 다시 범인을 물어본 후에 답을 받아냈다. 두 권 모두 나는 완전하게 작가와의 승부에서 졌다는 것이지, 그래도 재미있고 흐뭇했다.    


다만 이 소설의 기본 배경인 '근친상간' 설정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 일본 소설이라고 해도, 편견이라고 해도, 나는 불편하다. 이 작가의 소설 가운데 몇 편 거북한 것이 이런 비슷한 소재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내 취향이 편협되고 고루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겠다. 


두 사람이 만나면 어떤 식으로든 강자와 약자가 생기게 된다. 강자의 입장일 때 약자의 상황을 고려하지 못하고 취하는 폭력은 어떤 불행을 낳게 될지 모를 일이다. 물론 강자 입장에서는 그게 폭력이라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게 더 불행한 일이기도 하고. 


범죄가 없는 세상에서 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우리는 결코 그렇게 평화로운 시대를 맞이하지는 못할 것 같다. 그렇다면 적어도 내 쪽에서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말이나 행동을 하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 추리소설을 읽다 보면 쉽게 얻을 수 있는 교훈이다. (y에서 옮김2014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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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꼭두각시
윌리엄 트레버 지음, 김연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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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 좋지 않다, 이 소설도, 이 소설을 읽고 난 후의 내 상태도, 오늘 날씨도, 이 모든 것이 운명이라고 한다면.


소설은 천천히 읽었고 천천히 흘렀으며 천천히 지웠다. 작가의 이름만 남기고 다 지우고 싶었다. 윌리도 윌리의 사랑도 아일랜드도 영국도 어느 하나 갖고 싶은 게 없다. 나에게는 아일랜드에 가 보고 싶다는 열망도 남지 않는다. 이 운명, 참 싫다.


이번에도 아일랜드의 역사와 함께 읽었다. 앞서 이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기억하자고 다짐했던 내용이 많이 사라졌고 나는 허둥대며 읽었다. 불우한 역사, 불우한 민족, 불우한 인물, 불우한 생에 대하여. 작가는 쓰는 동안, 다 쓰고 난 후에 글을 쓰는 자신으로부터 조금이라도 위로를 받았을까. 주고받는 것 없이 영국을 막연하게 좋아하는 나로서는 제국주의 영국의 실상 때문에 힘들었다. 어쩔 수 없었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지긋지긋한 관계가 떠올랐던 것도. 


아일랜드는 어떤 곳일까? 그 나라에서 나고 자라고 사는 사람들은 세상을 어떤 태도로 마주하고 있을까? 지구의 반대쪽에 있는 우리나라에 대해서 나처럼 궁금하게 여기는 이도 있을까? 그리고 궁금해 할까? 운명에 대하여. 어찌할 수 없음에 대하여. 이런 어찌할 수 없음을 철저하게 드러내는 작가의 운명에 대하여.


이런 운명의 꼭두각시가 되고 난 다음에도 세상을 살 만하다고 여기고 산다면, 우리도 참 망각의 동물 혹은 의지의 화신인가 싶다. 어지간하면 이런 소설을 읽고 기어이 살아가겠다는 의욕을 느꼈다고 쓸 텐데, 지금의 나는 못하겠다. 기운이 떨어진다. 날이 흐려서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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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09 18: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9-11 15: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춘천은 가을도 봄
이순원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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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이라고 다 같은 청춘은 아니겠다는 생각을 새삼스럽게 해 본다. 그래서 이른바 '나때는, 우리 때는'과 같은 '-라떼' 농담이 나오게 된 게 아닐까 싶고. 나는 이 소설에 충분히 젖어들었는데 과연 요즘의 청춘에게도 우리 시대의 그 시절 고민들이 가 닿을 수 있을까를 추측해 보았다. 마치 80년대 대학을 다니면서 60년대의 민주화 운동이나 6.25전쟁 전후의 이념 논쟁 사건이나 더 앞서 일제강점기 시대의 독립 운동에 참여했던 청춘들의 이야기를 읽었을 때의 내가 느꼈던 거리감을 떠올렸다고나 할까. 내 감정이입 능력이 하찮아서 그랬던 것이라면 좋겠다.

 

박정희 정권의 말부터 전두환 정권의 시작 무렵은, 생각만 해도 한숨이 저절로 난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남아 있는 데다가 그 문제가 또 문제를 낳아 소용돌이처럼 크게 번져 있는 이 시대에, 이 시대의 청춘은 자신들이 느끼는 절망의 근원이 그곳으로부터 비롯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을까. 아니, 그곳만이 근원이라고는 할 수 없겠구나, 거기서 또 그 전의 어떤 곳으로 줄곧 이어져 있는 것일 테니. 역사는 어떤 지점이더라도 한 세월의 앞뒤를 똑 잘라 버릴 수는 없다는 것을 끊임없이 가르쳐 주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의 너는 이전의 어떤 상황으로 말미암아 생겨난 존재라고.  

 

작가가 배경으로 제시한 두 곳, 독자에게 춘천은 춘천이 아니어도 좋고, 명진 역시 명진이 아니어도 괜찮겠다. 그무렵 저마다 살던 곳이 다 춘천이거나 명진이었을 테니까. 내게는 춘천과 명진이 한 곳이었고 주인공의 추억과 경험들은 많은 대목에서 내 것과 겹쳤다. 반갑기도 했고 쓸쓸하기도 했고 아쉽기도 했고 허무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때 느꼈던 분노나 증오심이나 좌절감이나 죄책감이 지금까지도 전혀 사그라들지 않고 있음을 확인하면서 글읽기는 고달팠다. 그런 시대의 청춘이었던 것이다. 이후의 생을 결코 놓아주지 않을 것임을 그때는 몰랐을 뿐이었으니.  

 

어디에선가 봤다. 실패한 생이란 없는 것이라고. 같은 의미로 본다면 청춘 역시 실패하는 경우는 없겠다. 그저 서로 좀 다르고, 서로 좀 멀어지는 것일 뿐. 그럼에도 회한은 남겠지. 회한조차 허락하지 않겠다는 고집을 부리는 이의 욕망만이  딱할 뿐, 그를 비난하거나 나무란다고 당사자가 알아먹기나 할 일인가 말이다. 세상 어디에도 실패의 길로 가겠다고 나서는 청춘이야 없을 테고, 성공으로 가는 길을 찾는 이보다 못 찾는 이가 더 많을 세상에서 흔들리고 있을 스스로를 다잡는 의지만이라도 굳게 품고 있기를 바랄 따름이다.

 

요즘의 청춘들에게도 도움이 될 책이겠지만 제2의 청춘을 누려 보겠노라며 새로 뭔가를 준비하는 세대들에게 권해 주고 싶다. 그때 자신이 품었던 이상적인 자신의 모습과 지금의 자신이 일치하는지 혹은 얼마나 가까워졌는지 또 혹은 아주 멀어지지는 않았는지 확인도 해 볼겸. 글쎄, 영 멀어진 사람은, 소설 속 '길우'와 같은 인물이라면 아예 이런 책을 쳐다보지도 않겠지만. 아니다, 어쩌면 남몰래 숨어서 읽고는 눈물 글썽일지도 모르겠다. 제 청춘에 조문을 보내면서.

 

나는 조금만 글썽이겠다. (y에서 옮김20200731) 

 

Y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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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자꾸만 가고 싶다 - 문화사학자 신정일의 발로 떠나는 우리 시 기행
신정일 지음 / 다산책방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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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 시집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오면 기쁘다. 내가 무언가를 발견한 기쁨이라고도 할 수 있고 내 기쁨을 나누어 주고 싶은 마음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내가 좋으니 내가 좋은 만큼 너도 좋았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을 전하고 싶을 때.


이 책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책 속의 시들이 낯선 것은 아니었다. 이미 알고 있던 시들이 대부분이었다. 작가가 자신이 좋아하는 시들을 가려 엮으면서 자신의 마음을 한쪽에 보태 놓았는데, 골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게다가 가끔 등장하는 사진 화면은 얼마나 근사한지, 꼭 이곳으로 찾아가서 이 시들을 읽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난 그랬다.


이성복의 <강>, 송수권의 <산문에 기대어>, 기형도의 <밤눈>을 옮겨 적었다. 이 세 사람의 시집이 이미 나에게 있지만, 그리고 그 시집 속에 이 시들도 들어 있지만 적어 보았다. 시는 읽기만 해서는 섭섭하다. 외우면 제일 좋은데, 그렇게까지는 내가 부지런하지 못하고 그냥 한번 써 본다. 시를 지은 시인의 마음을 천분의 일이라도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지난 겨울에 나온 시집인데 이 가을에 더 어울리는 책이다. 쓸쓸함을 좋아하는 사람들, 쓸쓸함을 나누고 싶은 사람들, 쓸쓸함이 있어서 삶이 덜 외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 시집을 권한다. 잘 읽다 보면 누군가의 시집을 또 사고 싶은 마음이 생기리라. (y에서 옮김20071028) - 이제는 품절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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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09 18: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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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9-11 15:5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