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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꼭두각시
윌리엄 트레버 지음, 김연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평점 :
절판
아, 좋지 않다, 이 소설도, 이 소설을 읽고 난 후의 내 상태도, 오늘 날씨도, 이 모든 것이 운명이라고 한다면.
소설은 천천히 읽었고 천천히 흘렀으며 천천히 지웠다. 작가의 이름만 남기고 다 지우고 싶었다. 윌리도 윌리의 사랑도 아일랜드도 영국도 어느 하나 갖고 싶은 게 없다. 나에게는 아일랜드에 가 보고 싶다는 열망도 남지 않는다. 이 운명, 참 싫다.
이번에도 아일랜드의 역사와 함께 읽었다. 앞서 이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기억하자고 다짐했던 내용이 많이 사라졌고 나는 허둥대며 읽었다. 불우한 역사, 불우한 민족, 불우한 인물, 불우한 생에 대하여. 작가는 쓰는 동안, 다 쓰고 난 후에 글을 쓰는 자신으로부터 조금이라도 위로를 받았을까. 주고받는 것 없이 영국을 막연하게 좋아하는 나로서는 제국주의 영국의 실상 때문에 힘들었다. 어쩔 수 없었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지긋지긋한 관계가 떠올랐던 것도.
아일랜드는 어떤 곳일까? 그 나라에서 나고 자라고 사는 사람들은 세상을 어떤 태도로 마주하고 있을까? 지구의 반대쪽에 있는 우리나라에 대해서 나처럼 궁금하게 여기는 이도 있을까? 그리고 궁금해 할까? 운명에 대하여. 어찌할 수 없음에 대하여. 이런 어찌할 수 없음을 철저하게 드러내는 작가의 운명에 대하여.
이런 운명의 꼭두각시가 되고 난 다음에도 세상을 살 만하다고 여기고 산다면, 우리도 참 망각의 동물 혹은 의지의 화신인가 싶다. 어지간하면 이런 소설을 읽고 기어이 살아가겠다는 의욕을 느꼈다고 쓸 텐데, 지금의 나는 못하겠다. 기운이 떨어진다. 날이 흐려서만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