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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 친구들 2
줄리언 반스 지음, 한유주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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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셜록 홈즈라는 위대한 캐릭터를 탄생시킨 아서 코난 도일의 이야기이다. 당시에도 셜록의 인기가 얼마나 엄청났던지 작품 속에서 캐릭터가 죽은 것만으로도 신문사들이 항의기사를 쓸 정도였단다. 물론 셜록 홈즈는 여전히 지금에도 영화, 드라마 등으로 사랑 받고 있는 캐릭터이다. 그러니 그 어디서도 들을 수 없었던 코난 도일의 이야기라니, 그것도 줄리언 반스가 그려낸 작품 속에서, 기대가 되지 않을 수가 없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아서 코난 도일과 조지 에들지라는 두 인물의 이야기이다. 조지 역시 실존 인물로 인도계 혼혈 영국인 변호사이다.

그들의 믿음을 흔든 사람은 조지 자신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그들로 하여금 오랫동안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스스로 던지게 했는지도 모른다. 오늘:우리는 조지를 알고 그가 결백하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3개월 뒤에:우리는 조지를 안다고 생각하고 그가 결백하다고 믿는다. 그리고 1년 뒤에:우리는 조지를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여전히 그가 결백하다고 생각한다. 누가 이런 변화를 탓할 수 있겠는가.

작품은 전체 4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장 시작들에서는 이들 두 인물의 어린 시절을 그리고 있다. 꼼짝 않고 앉아 있지 못하는 기운 넘치고 고집 센 아이였던 아서는 상상력이 풍부했고, 어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좋아했다. 그는 의사로 생계를 꾸려가면서 본격적으로 글도 쓰게 된다. 단편들이 장편소설로 성장했으며, 결국 셜록 홈즈라는 위대한 캐릭터를 통해 유명한 소설가가 된다. 목사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조지는 상상력이 부족했고, 어떻게 친구를 만드는지 몰랐던 어리숙한 아이였다. 인도계 혼혈이었던 탓에 어릴 때부터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했고, 그들 가족은 지속적으로 협박 편지를 받으며 괴롭힘에 시달린다.

그렇게 아서와 조지의 이야기가 번갈아 교차 진행되다가, 2부 결말을 동반한 시작에 이르러 어느 순간 조지의 이야기가 비중이 높아진다. 말과 소, 양 등 가축들이 훼손되는 사건이 주기적으로 발생하는데, 정말 희한하게도 그 사건의 범인으로 조지가 주목 받게 되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만다. '기차 탑승객을 위한 철도법' 책을 발간하고 매우 소박하고 규칙적으로 살고 있는 사무변호사 조지. 근면, 정직, 검약, 자선, 그리고 가족에 대한 사랑만을 믿고 배워왔던 그에게 엄청난 닥친 시련이다. 자유인으로 태어난 영국인인 조지는 정상적인 삶을 이어가는 것이 당연한 권리이지만, 인도계 혼혈이라는 점은 그를 매 순간 발목 잡아 넘어뜨린다. 그가 이 사건에 대해 유죄 판결을 받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보자면, 사람들의 편견이 얼마나 무서운 흉기가 될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나 무섭기까지 하다. 조지가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아서와의 교집합은 전혀 없이 1, 2장이 끝나버린다. 그가 교도관에게 너덜너덜한 염가판 '바스커빌의 개'를 읽고 훌륭하다고 생각했다는 것 정도의 그들의 교집합이 될까.

작업에 착수하면서 아서는 친근한 감정을 느꼈다. 새 책을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하나의 이야기를 생각해냈지만 아직 그것이 완벽하게 구성되지 않았을 때의 기분, 대부분의 인물들을 생각해냈지만 아직 그들이 완전하게 다듬어지지 않았을 때의 기분, 이야기의 연결고리들이 전부 다 만들어지지 않았을 때의 기분이었다. 아서에게 이야기의 시작과 결말은 결정되어 있었다. 동시에 그의 머릿속은 대단히 많은 요소들을 담고 있어야 했다... 아무튼 이는 아서에게 익숙한 작업이었다. 그는 소설을 쓸 때처럼 중요한 사안들을 정리하고 간략한 주석을 덧붙였다.

2권이 시작하자마자, 아서와 조지가 어떻게 만나는 지 그들의 만남이 드러난다. 1권 내내 그들 각각의 이야기만 거의 교집합 없이 진행되어 대체 이들이 어떻게 만나는 지 궁금했었는데, 드디어 3장에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다. 셜록 홈즈 덕분에 전세계에서 온갖 요청과 요구들이 아서에게 밀려들기 시작한다. 사람이나 물건이 불가해한 상황에서 사라진 경우, 경찰이 평소보다 당혹스러워하는 경우, 부당한 일을 당한 경우등등 사람들은 홈스와 홈스를 창조해낸 사람에게 호소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독자들이 분명 실재한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 인물을 창조해낸 죄(?)로 아서는 이들에게 사설 탐정과도 같은 역할을 떠맡게 된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는 우체국에서 자동으로 '주소불명' 도작이 찍혀서 반송이 되고, 가끔 아서 경이 감동을 받거나 깊은 인상을 받아 답장을 직접 보내는 것은 극히 드물다. 그러던 어느 날 아서는 조지의 탄원서를 흥분한다. 너무도 명백하게 조지가 결백하기 때문에, 답장만 보내서 될 게 아니라 사건을 되살려내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어 조지와 아서의 만남이 이루어진다.

그들의 첫 만남에서 아서는 조지의 '에들지' '이달지 씨'라고 두 번이나 잘못 부른다. 조지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다시 그의 이름을 잘못 발음했을 때 아서는 '온몸으로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표현되어 있어 이들의 진지한 분위기와 별개로 큭큭 웃음이 터져 나올 뻔했다. 어쨌거나 그들은 그렇게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아서는 서재에 틀어박혀 파이프에 담배를 채우고 전략을 짜기 시작한다. 오해의 소지가 있는 증거들로 인해 조지에게 잘못된 선고가 내려졌으니, 그가 전적으로 무죄라는 점을 밝히고, 진짜 용의자를 밝혀내어 내무성이 잘못을 시인하도록 하고, 진범에게 유죄를 선고하기 위해서 말이다. 아서는 계획을 세우면서 그것이 이야기를 창조하고, 책을 쓰는 것과도 비슷하다고 느낀다. 재미있게도 그가 직접 셜록 홈즈 같은 탐정이라도 된 것처럼 행동하고 있으니 말이다.

도일은 자신이 언제까지 셜록 홈스를 만들어낸 벌을 받아야 할지 궁금했다. 사람들은 끝없이 그의 말을 고치려 들고, 되도 않는 충고를 하고, 심지어는 꾸짖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는 계속 해야만 했다. 앤슨이 아무리 도발해오더라도 성질을 내서는 안되었다.

그러니까, 진짜 살아 있는 것 같은 너무도 리얼한 탐정을 만들어낸 대가는 아서가 조지의 사건을 조사하는 내내 치룰 수 밖에 없다. 사실 무려 2015년인 지금도, 셜록 홈즈는 진짜 살아 있는 캐릭터처럼 느껴지니 말이다. 그렇지만 덕분에 우리는 매우 흥미로운 장면들을 이 책을 읽는 내내 목격하게 된다. 그가 바로 셜록 홈즈의 창시자이기 때문에 특별해지는 그런 순간들 말이다. 아서가 결국 조지의 결백을 밝히는지에 관해서는 직접 책을 읽어보면서 알게되어야 하므로, 더 이상 자세한 줄거리 언급은 하지 않겠다. 그저 상상력과 관찰력이 뛰어났던 아이 아서와 영특했지만 상상력은 부족했던 조지가 어떻게 법의 영역 안에서 정의를 찾아가는지 그 여정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풍부하고, 다채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그리하여 "아이는 보고 싶어한다"로 시작하는 아서의 이야기가 "그는 무엇을 볼 것인가?"로 끝나는 조지의 이야기로 이어져 하나의 거대한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것을.

줄리언 반스는 독자들이 '보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써내는 대단한 재능이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야기란 이런 것이다. 시작이 있고, 결말이 있고, 과정을 이루는 인물들이 있고, 그리고 여운을 남겨주는 시작을 동반한 결말. 독자들은 보고 싶어한다. 세기의 명탐정 셜록 홈즈를 만들어낸 장본인이 마치 홈즈 처럼 뛰어난 추리와 수사를 해서 위기에 빠진 평범한 누군가를 구원해주기를. 더 이상 무엇 설명이 필요하랴.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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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불능 낙천주의자 클럽]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구제불능 낙천주의자 클럽 1
장미셸 게나시아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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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내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고전들을 탐독했다. 나는 한 소설가의 책들이 아니라 한 인간의 작품들을 읽고 있었다. 어느 작가가 어떻게 살았는지 알아본 결과 그의 인간 됨됨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작품을 좋아할 수가 없었다. 인간이 작품보다 더 중요했다. 작가의 삶이 영웅적이거나 명예로우면 소설들이 한결 재미있었다. 반면에 사람의 됨됨이가 혐오스럽거나 시시껄렁하면 읽어내기가 어려웠다.

시간을 허비하는 게 싫었던 미셸이 보기에 정말 쓸모 있는 일은 책을 읽는 것밖에 없었다고. 아침에 일어나 불을 켜면 책부터 집어 들었고, 다 읽을 때까지 그것을 손에서 놓지 않았던 탓에 어머니는 책에 코를 쳐 박고 있는 그의 모습에 짜증을 내기 일쑤였다. 어머니의 말에 대답도 하지 않고, 저녁 먹으라고 불러도 소용이 없자, 방의 전기를 아예 끊어버리는 사태에 이르기까지. 결국 하는 수 없이 주방에로 내려와 식사를 하면서 책을 읽다가 이제는 아버지의 역정을 사고 만다. 그는 이를 닦거나 용변을 보면서도 책을 읽고, 걸어가면서도 책을 읽다 종종 지각을 하고, 수업시간에도 종종 책을 넓적다리에 올려놓은 채 독서를 계속한다. 강박에 쫓기듯 책을 탐하는 독서가의 모습이 어느 시절의 내 모습 같아서 뭉클했다. 물론 작품에는 작가의 삶을 넘어서는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할아버지의 말처럼, 작가를 선택할 때 작품을 봐야지 그들이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따지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말이다.

그는 밤에 몰래 빠져나갔다 어머니에게 흠씬 두들겨 맡지만, 그 와중에도 피에르에게 받은 <화씨 451>이라는 책이 손상되지 않았을까 걱정한다. 그리고 침대 머리맡의 스탠드를 켜고 소설을 읽어간다. 그는 브래드버리의 그 책을 읽으며 저항할 줄 알아야 하고, 타협하거나 양보해서는 안 되며 힘의 지배를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는 것을 배운다. 물론 자신을 괴롭힌 사람들을 벌하는 나름의 방식이 고작 가족들에게 침묵으로 보호막을 치는 거였지만. 책을 통해서 가르침을 받고, 그걸 몸소 실천하려는 어린 소년의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수염이 헙수룩한 남자가 커튼 뒤로 사라졌다. 천이 해어지고 여기저기 얼룩이 묻은 레인코트 차림의 남자였다. 이런 계절에 저런 차림으로 뭘 하러 들어가는 거지? 몇 주째 비가 내리지 않던 때였다. 나는 호기심에 이끌려 커튼을 젖혔다. 문에 서툰 솜씨로 써놓은 글귀가 보였다. '구제불능 낙천주의자 클럽'. 나는 가슴을 두근거리며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내 평생 그토록 크게 놀라보기는 처음이었다.

중학생이던 미셸은 그곳 체스 클럽에서 장폴 사르트르와 조제프 케셀을 보며 무엇에 홀린 듯한 기분이 든다. 그는 프랑크와 세실에게 자신이 본 놀라운 소식을 전하지만, 세실은 카뮈를 더 좋아했고, 사르트르를 떠받드는 프랑크는 카뮈를 싫어했다. 그들이 카뮈냐, 사르트르냐에 대해 논쟁한 덕분에 미셸은 하루에 케셀과 사르트르와 카뮈를 동시에 알게 된다. 미셸은 다시 클럽에 갔고, 차츰차츰 클럽의 회원들을 알아나간다. 그렇게 그는 테이블 풋볼을 함께 즐기던 친구들을 버리고, 클럽의 최연소 회원이 된다. 이 클럽은 소년과 동유럽과 그리스에서 넘어온 망명자들의 체스 클럽이다. 국적도 다르고 망명 이유도 제각각인 그들 중에는 여전히 사회주의를 믿지만 해결책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는 이들도 있고, 고국을 그리워하며 사회주의와 절연한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모두 무국적자였고, 누구나 역경에 빠져 있다는 공통점도 있다.

이 책은 미셸이라는 소년이 청소년기를 보내면서 차츰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의 삶을 그리고 있다. 배경이 프랑스의 1959년에서 1964년까지의 시기인 만큼 역사의 큰 사건들과 개인의 삶이 교집합을 이루는 부분들이 그려져 있다. 외부의 사건이 개인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런 시대적 변화를 겪으면서 그 와중에 낙천주의자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한 번 쯤 생각해 보게 만들어준다.

"아름다운 것은 기억밖에 없어. 나머지는 먼지고 바람이야."

체스 클럽 망명자들의 이야기와 미셸 가족들의 이야기가 교차되어 들려지는데, 소소하게 펼쳐지는 미셸의 풋사랑, 부모에 대한 반항, 로큰롤, 테이블 풋볼 그리고 책에 대한 엄청난 열망들과 가족과 사랑을 두고, 이념을 버려야 했던 망명자들의 에피소드는 너무도 이야기 거리들이 풍성해 두툼한 책 두 권을 읽는 내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된다. 미셸이 동경하던 피에르가 군데에서 불의의 죽음을 맞고, 복무 중이던 미셸의 형 프랑크는 살인 사건에 휘말려 종적을 감추고, 그 일로 의견 충돌이 있던 어머니와 아버지는 결국 이혼에 이르고. 주변에서 안 좋은 일들이 벌어질 때마다 미셸은 체크 클럽의 친구들로부터 도움을 받는다.

어수선한 시대에 휘말려 평범하지 않은 사춘기를 보내는 미셸의 삶은 소설 첫 머리에 실린 문구 "나는 비관주의자로 살면서 언제나 똑똑하게 굴기보다 실수를 저지르며 낙천주의자로 살고 싶다"로 고스란히 연결된다. 사실 지금 우리의 시대도 그렇지 않은가. 매일같이 뉴스에서 들려오는 사회에 대한 불신들을 치솟게 하는 소식들은 삶을 낙관하기 어렵게 만들어주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우울한 시대에도 우리는 꿋꿋하게 살아나가야 한다. 어차피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면, 살아남아야 한다면 비관하고 우울해하기 보다는 낙관하고 희망의 끊을 놓치지 않는 게 스스로에게 더 좋지 않느냔 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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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을 지배하라 - 끝판대장 오승환의 포기하지 않는 열정
오승환.이성훈.안준철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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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지금은 남편이 된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할 때, 가장 자주 가던 곳이 영화관과 야구장이었다. 둘 다 영화 광에 야구 마니아였는데, 야구장은 단순히 우리가 응원하는 팀의 홈구장 뿐만 아니라 전국의 모든 야구장을 다니며 여행을 다녔다. 왜냐하면 우리는 특정 팀만 좋아했던 게 아니라, '야구'라는 스포츠 자체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서울에 있는 잠실, 목동은 물론이고, 부산, 인천, 대구, 광주, 대전, 창원까지... 전국을 다니면서 야구장 순례를 했다. 그러니 올해의 신생 팀인 KT의 구장을 빼고는 모든 팀의 홈구장을 전부 다녔었는데, 그 중에서도 여러 번 가본 곳이 바로 삼성의 홈구장인 대구이다. 이유는 대구 구장이 작은 편이라 관중석에서 필드가 너무 가까워서 좋고, 가격도 너무 저렴하기 때문이었다. 서울에서 홈플레이트 뒤편의 테이블 석에 앉으려면 티켓을 구하는 것도 어렵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아서 십만 원을 훌쩍 넘는데, 대구 구장에서는 그런 좌석이 단 돈 몇 만원으로 앉을 수 있었다. 그래서 다른 지역들은 한 두번 가본 게 다 인데, 대구에는 서너 번 이상은 가본 것 같다.

나는 넥센 히어로즈의 팬인데, 이상하게도 우리가 대구에 갈 때마다 경기에 지곤 했다. 그 말인즉, 당시 삼성의 마무리 투수인 오승환 선수가 우리가 관람을 갈 때마다 나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건 만약 점수가 한 두 점 차라면 9회말이 되어도 경기가 어떻게 될지 모르므로 우리 팀을 끝까지 응원하게 마련인데, 오승환 선수가 일단 등장하면 우리 팀이 이길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거의 제로가 된다는 것. 물론 오승환 선수도 사람이기에 가끔 블론 세이브를 하지만, 관람하는 입장에서 그저 심리적으로 그의 등장만으로도 아 이제 경기 끝났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그는 압도적인 선수였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이 처음 대구에 갔을 때 오승환 선수가 등장하던 순간인데, 전광판에 '끝판대장'이라는 문구가 뜨고 관중들이 엄청난 환호성을 질러대면 야구장이 막 떠나갈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이다. 나는 그가 상대편 선수임에도 그저 그의 플레이가 놀라웠고, 멋있었다는 기억이 있다.

지금도 친구들이 나를 놀리는 단골 메뉴가 있다.

"넌 정말 야구하기 잘 했다. 다른 종목 했으면 망했을 거야. 운동 선수가 어쩌면 그렇게 운동 감각이 없냐?"

오승환 선수는 축구, 농구, 족구 등 어떤 종목을 해도 공 다루는 게 어설프다고 한다. 자신이 잘하는 건, 그냥 항상 전력으로 미련하게 열심히 뛰어다니는 것이라고. 어쩐지 우직하게 직구로만 승부하는 그의 근성이 바로 이런 데서 나오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오승환 선수가 대단한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투수한테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인 '포커 페이스'가 아닐까 싶다. 정말 말도 안 되게 절체 절명의 순간에 등장하는데, 어떤 순간에도 흔들려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마무리 투수이기 때문이다. 야구 경기를 볼 때마다 우스갯 소리로 마무리 투수는 항상 심장이 쫄깃한 순간에 등장해서 피 말리는 싸움을 해야 하니, 수명이 몇 년을 줄 거 같다고 한 적도 있으니 그들의 단단한 심장이야말로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지금이야 너무도 대단한 선수라 처음부터 탄탄대로를 걸었을 것 같지만, 그에게도 실패를 겪어야 했던 순간들이 있었다고 한다. 고등학교 시절 프로지명을 앞두고 척추 분리증이라는 진단을 받아 프로 입성에 실패하고 대학생이 되었고, 대학에 가서도 팔꿈치 인대 손상으로 재활 운동에 매달려야 했다.

"야구선수 한 명 키우는 데 학교 예산 5천만 원이 드는데 승환이는 2년 동안 보여준 게 없습니다. 신입생을 받으려면 승환이가 야구부를 그만둬야 할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펑펑 울면서 코치님의 손을 잡고 빌었다.

이 책에 실린 많은 일화들은 그가 정상에 오른 것이 그저 쉽게 된 것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도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주어서 좋았다. 돌부처라는 별명처럼 어떤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그가 가끔은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을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터진 아이돌과의 열애 소식도 처음 듣고는 의아했을 정도로, 그가 너무도 야구에만 최적화되어 있어 감정이 전혀 없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인간 오승환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 수 있게 된 것도 같고, 그가 왜 어여쁜 아이돌 가수와 연애를 할 수 있었는지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순간은 내가 지배한다."

이닝, 점수차, 상대타자가 누구인지와 같은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부분은 중요하지 않다. 승부는 내가 공을 던져야 시작된다. 내 공만 마음먹은 대로 던지면 결과는 하나뿐이다. 누구도 제대로 던진 내 공을 칠 수 없다. 그래서 다음 공을 던지는 데에만 모든 걸 집중했다.

자신이 최고의 마무리 투수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저 한 타자 한 타자를 승부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 단지 타자와 승부하는 그 순간을 지배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하는 오승환. 순간을 지배한다는 말이 너무도 멋지게 들린다. 야구에서든, 일상에서든, 회사 업무 중에든, 연애 중에든.. 그 순간을 자신이 컨트롤하고, 지배한다는 건 대단히 멋진 일이 아닐까 싶다. 지금은 일본으로 건너가 한신 타이거즈에서 마무리투수로 활약하고 있는 오승환 선수가 언젠가는 메이저 리그로 갈 수도 있고, 수 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 다시 삼성으로 돌아와 은퇴 전까지 활동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가 어느 자리에서, 어떤 모습을 하든 지금처럼 최고의 모습으로 남아 있길 야구 팬의 한 사람으로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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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5-06-15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국의 야구장을 순례하셨다니 엄청난 야구팬이시군요. 저는 넥센팬아니고 엘지팬인데 목동야구장이 멀지 않아서 가끔 엘지 원정겜 보러 갈 때가 있어요. 문제는 엘지가 넥센한테 워낙 약해서 보러 갈때마다 자주 진다는 점이기는 한데...하기는 엘지는 다른 팀들한테도 다 약해서..ㅠㅠ

피오나 2015-06-16 21:01   좋아요 0 | URL
하핫..제 주변에도 엘지 팬들이 잔뜩 있는데, 맥거핀님도 역시ㅋㅋ 넥센도 엔씨만 만나면 정신을 못차리곤 해요. 다들 그런 팀이 하나씩 있나봅니다. ^^;; 그나저나 맥거핀님도 야구장 나들이를 가실 정도로 야구를 좋아하신다니 괜히 막 반갑네요. 호호호
 
서점의 다이아나
유즈키 아사코 지음, 김난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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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멀리 벤쿠버에 살고 있는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아이를 낳았단다. 카톡으로 보내온 사진 속의 아기 얼굴에서 친구의 모습을 발견하고, 아침부터 기분이 좋아졌다. 이 친구는 중학교 1학년 때 나의 짝꿍이었던 친구이자, 내 인생에서 손꼽으면 다섯 손가락 안에 꼭 들어가는 베스트 프렌드이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넘어가던 그 시기에는 누구나 그랬겠지만, 어쩐지 내가 아이에서 조금은 어른이 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던 시절이었다. 초등학교 때 친한 친구들은 모두 뿔뿔히 흩어져버렸고, 중학교에 반을 배정받아 가고 보니 여러 초등학교에서 온 모르는 애들 투성이라 어딘지 의기소침해 있었던 것 같다. 낯가림이 심해서 먼저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편도 아니었기에, 나는 평소처럼 소설 책을 꺼내 들고 읽고 있었던 것 같다. 그때 나에게 먼저 말을 건네준 친구가 바로 이 친구이다. 조용하고 내성적이었지만 가까워지면 털털해지는 나와 달리, 밝고 리더십있고, 아기자기하고 여성스러운 면이 강했던 그 친구 주변에는 항상 친구들이 모여 있었고, 그녀는 결국 반장을 맡았었다. 중학교 3년 중에 겨우 일년 같은 반이었고, 고등학교도 다른 곳으로 배정되었고, 대학도 전혀 다른 곳으로 가게 되었지만, 그 친구와의 우정은 우리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재미있게도 이 친구를 비롯해서 나와 가깝게 지낸 이들은 모두 나와 성격이나 외모가 정반대인 친구들이 많다. 아무래도 자신이 가지지 못한 다른 면을 친구에게서 발견하고 나도 모르게 끌리거나, 동경을 하게 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 <빨간 머리 앤>아니? 앤의 친구 이름이 다이아나야."

. 다이아나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빨간 머리 앤>은 거의 베스트 원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좋아하는 책이다. 줄줄 외울 정도로 볓 번이나 읽었다. 앤이라는 수다쟁이에 공상을 좋아하는 여자아이가 좋아 미칠 것 같았다. 딸리 물과 퍼프소매, 하트모양 캔디 등 귀엽고 맛난 것들로 가득한 책이다. 다이아나는 앤이 자랑하는 예쁜 친구이고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이 통하는 사이로 등장한다. 읽으면서 내내 둘의 관계가 너무 부러웠다. 이렇게 남과 책 얘기를 할 수 있다니.

나 역시 어린 시절의 소중한 추억을 함께한 친구들이 있었기에, 이 책 <서점의 다이아나>를 읽는 내내 가슴이 쿵닥쿵닥거리며, 마치 연애를 하는 것처럼 마음이 설레였다. 앤과 다이아나 처럼, 혹은 다이아나와 아야코처럼 그렇게 학창 시절 내내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했던 그런 단짝 친구가 있었던 그 누구라도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가 너무도 매혹적이다.

우리의 주인공 다이아나는 새 학기가 시작되어 자기 소개를 하는 시간이 오는 것이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다. 바로 너무도 싫어하는 자신의 이름 때문이다. 외국인도 아닌데 '다이아나'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고, 거기다 한자로 쓰면 뜻이 '큰 구멍'이기 때문에 항상 친구들의 놀림을 받아왔다. 아빠는 다이아나가 태어나자마자 어디론가 떠나버렸고, 카바레 클럽에 다니는 엄마인 티아라가 자신처럼 다이아나의 머리도 노랗게 물들여 놓아 가만히 있어도 튀는 소녀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데, 그런 그녀 앞에 '다이아나는 이상한 이름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예쁜 소녀가 나타난다. 눈매가 곱고, 피부가 도자기 인형처럼 매끄러운, 다른 아이들과는 뭔가가 분명하게 다른 그 소녀는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책을 언급하며 다이아나라는 이름이 정말 부럽다고 말한다. 좋은 환경에서 곱게 자란 것이 고스란히 보여지는, 누구라도 친구가 되고 싶어할 그런 미소를 가진 소녀가 말이다.

가나자키 아야코의 집에 놀러갔던 4월 중순의 일요일을 다이아나는 평생 잊지 못하리라.

그 날을 경계로 인생이 바뀌었다. 자신이 편하게 숨 쉴 수 있는 장소가 어떤 곳인지 선명하게 그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야코의 집에는 다이아나가 원하는 모든 것이 있었다. 이랬으면 좋겠다고 꿈꾸던 풍경이 자연스럽게 존재하고 있었다.

다이아나는 요리 연구가인 너그러운 엄마와 출판사 편집자인 차분한 아빠를 가진 아야코가 부러웠다. 엄마 앞에서는 마치 다른 사람처럼 응석을 부리고 조잘대는 아야코의 모습이 정말 부러웠고, 자신도 그렇게 너그러운 엄마의 품에 모든 것을 내맡기고 어리광을 피우고 싶었다. 그리고 자신도 자신을 따뜻하게 안아주고, 지켜줄 아빠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아야코는 다이아나가 살고 있는 이 집의 반짝거리는 마력에 푹 빠져 있다. 조그만 방은 마치 소꿉놀이하는 인형의 집 같다. 여기저기에 알록달록한 병이 조르륵 놓여 있고 온 벽에는 공주늠 드레스 같은 옷이 걸려 있다.....냉장고, 전기 밭솥에 이르기까지 반짝거리는 스티커와 비즈로 장식되어 있어 한없이 바라보고 싶어진다.

아야코는 다이아나가 복잡한 가정에서 동화 속 주인공처럼 자란 여자아이일 거라고 상상한다. 헐렁한 티셔츠에 더러운 실내화차림이지만, 사실은 소공녀 세라처럼 좋은 집안의 자녀일 것 같다고. 그리고 다이아나의 이야기 하나하나에 가슴이 설렌다. 열다섯 살, 자기 이름을 스스로 짓고, 아빠를 찾아 여행을 떠나고. 어쩌면 이렇게 드라마틱할 수 있을까.

아야코와 다이아나는 서로가 가지지 못한 것을 경험하고, 상대를 부러워한다. 아야코는 다이아나가 순식간에 만들어준 인스턴트 음식의 강렬한 맛에 감동하고, 다이아나는 아야코의 엄마가 직접 만들어준 젤리의 맛에 황홀감을 느낀다. 수수하면서 멋진 아야코를 동경하는 다이아나와 반짝반짝 화려한 다이아나를 부러워하는 아야코는 그렇게 세상에서 둘도 없는 단짝이 된다. 이유는 둘다 책을 너무 좋아했고, 그 책을 매개체로 하여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교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혀 다른 외모와 완전히 상반된 가정 환경에도 불구하고, 책 읽기를 좋아한다는 이유 만으로 친구가 되는 건 이렇게 어린 시절에만 가능한 일이다. 어른이 되고 나면 마음을 터놓는 친구를 만들기가 하늘에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 되니 말이다. 아야코와 다이아나는 중학교 입시를 앞두고 사소한 오해로 멀어지고, 결국 그녀들이 다시 말을 하게 되는 건 그로부터 무려 10년 뒤가 된다. 쉽게 가까워지는 것만큼의 순수함이 반대로 이렇게나 긴 시간 동안의 단절을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십여 년의 시간을 각기 다르게 겪어가는 두 소녀의 이야기와 비밀이 많은 호스티스 티아라, 다이아나가 찾아내는 자신의 아버지, 그리고 아야코의 두 부모들을 통해서 가족에 관해, 여자들의 삶에 관해 아기자기하고 따스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리고 순수했던 소녀들은 나이를 먹으면서 인생이 내 마음 같지 않다는 거. 소설처럼 삶도 모든 게 멋지게 돌아가지는 않다는 걸 배워간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어른이 되어 가는 게 아닐까. 어떤 상황이라도 책을 펼치면 누군가의 품에 안겨 있는 것처럼 안심이 되는 당신이라면, 분명 이 책은 풋풋한 첫사랑의 기억처럼 설레이는 모습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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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름
박범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곳이 내 집인가.

나는 생각했다. 저 여자가 내 아내인가. 저 아이들은? 아내는 미소 짓는 얼굴로 내 옆에 바싹 붙어 앉아 있었는데, 살진 턱과 화장으로 간신히 감춘 기미와, 화장으로도 감추지 못한 눈가의 잔주름이 주는 전체적인 이미지는 우울했다......

내가, 내 아내가 아니야. 저건, 내 아이들이 아니야. 마치 낯선 집에 잘못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견고한 구조라고 여겼던 것들은 깨어지고 없었다. 오래 전부터 이미 깨져 있던 걸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았다.

 

어린 동생들과 병든 부모를 뒷바라지 하기 위해 점심과 저녁, 2개의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며 하루 열 몇 시간씩 일했던 남자. 결혼 후에도 수당이 있든 없든 밤늦게까지 일했고, 상사에겐 무조건 복종했으며, 경우에 따라선 몸종처럼 봉사하길 자청했던 남자. 일이 그의 취미였고 사랑이었으며, 아내와 아이들이 일밖에 모른다고 불평해도 자신의 삶의 방식이 틀렸다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집을 뛰쳐 나간다.

그 동안 나는 뭐하고 살아온 거야.

나는 도대체 여태껏 뭘 해왔던가.

스스로에 대한 자각은 자신이 형편없이 초라하게 느껴지게 만들었고, 급기야 '난 실패한 인생이 아닐까'라는 생각에 이르러 시도 때도 없이 멍해지고, 밥맛도 없어지고, 이제까지의 삶이 수치스럽기도 하고 억울해지기도 한 것이다. 전에 없던 건망증, 마음 속의 분노 들은 어떤 울분으로 이어져 결국 아내와의 말다툼 끝에 평생 처음으로 아내의 뺨을 때리게 만들고 만다.

평온하고 안정된 삶을 살던 평범한 남편이자 아빠였던 남자의 삶은 어느 날 문득, 그렇게 금이 가버리기 시작한다. 회사에서 자금 담당 이사로 근무 중인 50대 중반의 남자는 그리고 시인이자 화가인 천예린이라는 여자를 만나게 된다. 그녀를 예전에 만났더라면 그저 스쳐 지나갔을 지도 모르지만, 하필이면 자신의 생에 대한 후회와 자각을 하게 된 그 시점에 만났기에, 뻔한 일상에 사로잡힌 평범한 아줌마인 자신의 부인과 너무도 달라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동안은 미처 자각하지 못했지만 너무도 뻔한, 기계로 찍어낸 싸구려 공산품 같았던, 황폐하고 부식된 삶을 그제야 깨닫게 되면서 말이다. 그러니 아무런 긴장과 감흥이 없는 무난한 부부 관계는 도발적이고, 퇴폐적이면서도 진취적이고, 자신보다 무려 네 살이나 위였지만 어느 순간에는 30대 초반처럼 보이기도 하는 매력적인 여자 천예린에 의해 산산이 조각나버리고 만다.

 

그것은 사멸한 줄 알았던 내 옛 꿈의 작은 단서였다. 네 회화적 직관이 놀랍구나, 라고 하던 선생님의 말소리도 선연했다. 천예린, 그녀를 만나기 전까진 완전히 잊었던 삽화들이었다.

 

아내와 아이를 버리고, 회사의 공금을 횡령해서 도주한 남자 김진영은 천예린과 단어 그대로 '미친' 사랑을 한다. 생애 한 번쯤은 이렇게나 난폭하고, 모든 걸 다 버리고, 바닥까지 가보는 사랑을 해보고 싶다는 욕망을 가질 수도 있다. 그리하여 부도덕한 남편이자 무책임한 아빠가 된 그 남자의 사랑의 여정은 그렇고 그런 수순대로 이어진다. 섹스는 했으나 사랑은 하지 않았던 천예린에게 버림받고, 그녀를 쫓아서 케냐로, 모로코로, 카사블랑카로, 스코틀랜드로, 그리고 시베리아로 무작정 여정을 시작한다.

이 작품이 그저 부도덕한 러브 스토리나, 막장 불륜 스토리가 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여행을 통해서 그는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불치의 병을 앓고 있어 죽음 가까이 다가서고 있는 천예린은, 그녀의 성격대로 앉아서 죽음에게 유린당하지는 않겠다고 말하고, 그렇게 행동한다. 김진영도 물론 알고 있다. 그녀가 자신을 사랑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을. 벌거벗고 함께 시시덕거리며 밥 먹고 똥 싸고 살 때조차 말이다. 하지만 그는 그녀가 떠날 때까지 그녀를 지독하게 사랑한다. 작품 속의 화자는 대부분 김진영 자신이지만, 부분 부분 남겨진 그의 아들의 목소리로 말한다. 아버지가 회사 공금을 챙겨서 여자를 쫓아 떠나가고, 온 나라에 IMF 한파가 몰아닥치고, 아파트가 압류되고, 어머니가 쓰러져 뇌 수술을 받고, 아버지 대신 집안의 가장 역할을 해야 했던 그의 아들. 그래서인지 아버지의 불편한 여정은 지나치게 비현실적이지만, 남겨진 가족들의 모습에서 현실적인 그림도 함께 엿볼 수 있었다. 아버지 자신에겐 목숨마저 걸 정도로 절박한 사랑이, 남겨진 가족에겐 어떤 상처가 되는지 말이다.

제목만큼이나 이력이 독특한 책이다. 이 작품은 1999 '침묵의 집'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고, 2600여 매나 되는 긴 분량이었기에 두 권으로 간행되었다. 박범신 작가는 자신이 지나치게 말이 많았거나 참을성 없이 비명을 질러댄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고 한다. 그는 그 책을 잘 보이지 않는 뒷줄 책장에 처박아두고 그것으로부터 떠나려고 애썼지만, 무려 7년이 지나서 그 책을 다시 꺼내 든다. 어차피 떠날 수 없다면 정면으로 마주치는 게 낫다고 여겼기 때문에 그 긴 소설을 1500여 매 이하로 아프게 깎아냈고, '주름'이라는 이름으로 2006년 다시 출간한다. 그리고 다시 9년여 시간이 지나, 다시 300여 매쯤 깎아내고 결정적인 장면의 서술을 일부 바꾸어 다시 출간된 것이 바로 이번에 출간된 버전이다. 이후에 다시 7~8년이 지난 뒤에 또 깎아내는 짓을 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하는 작가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것은, 한 권의 책을 통해 시간의 주름을 켜켜이 쌓아가는 대단한 감성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마침내 단 한 줄로 삶의 유한성이 주는 주름의 실체를 그려낼 수 있게 된다면' 작가로서 성숙했다는 느낌을 가지게 될 거라는 박범신 작가의 겸손함은 글쓰기에 대한 그의 깊은 내공을 짐작하게 한다. 나는 기존에 출간되었던 다소 긴 버전의 이 작품을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어쩐지 지금 출간된 버전을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고, 많은 것을 상상하고, 추측하게 만들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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