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을 지배하라 - 끝판대장 오승환의 포기하지 않는 열정
오승환.이성훈.안준철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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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지금은 남편이 된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할 때, 가장 자주 가던 곳이 영화관과 야구장이었다. 둘 다 영화 광에 야구 마니아였는데, 야구장은 단순히 우리가 응원하는 팀의 홈구장 뿐만 아니라 전국의 모든 야구장을 다니며 여행을 다녔다. 왜냐하면 우리는 특정 팀만 좋아했던 게 아니라, '야구'라는 스포츠 자체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서울에 있는 잠실, 목동은 물론이고, 부산, 인천, 대구, 광주, 대전, 창원까지... 전국을 다니면서 야구장 순례를 했다. 그러니 올해의 신생 팀인 KT의 구장을 빼고는 모든 팀의 홈구장을 전부 다녔었는데, 그 중에서도 여러 번 가본 곳이 바로 삼성의 홈구장인 대구이다. 이유는 대구 구장이 작은 편이라 관중석에서 필드가 너무 가까워서 좋고, 가격도 너무 저렴하기 때문이었다. 서울에서 홈플레이트 뒤편의 테이블 석에 앉으려면 티켓을 구하는 것도 어렵지만, 가격이 만만치 않아서 십만 원을 훌쩍 넘는데, 대구 구장에서는 그런 좌석이 단 돈 몇 만원으로 앉을 수 있었다. 그래서 다른 지역들은 한 두번 가본 게 다 인데, 대구에는 서너 번 이상은 가본 것 같다.

나는 넥센 히어로즈의 팬인데, 이상하게도 우리가 대구에 갈 때마다 경기에 지곤 했다. 그 말인즉, 당시 삼성의 마무리 투수인 오승환 선수가 우리가 관람을 갈 때마다 나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재미있는 건 만약 점수가 한 두 점 차라면 9회말이 되어도 경기가 어떻게 될지 모르므로 우리 팀을 끝까지 응원하게 마련인데, 오승환 선수가 일단 등장하면 우리 팀이 이길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거의 제로가 된다는 것. 물론 오승환 선수도 사람이기에 가끔 블론 세이브를 하지만, 관람하는 입장에서 그저 심리적으로 그의 등장만으로도 아 이제 경기 끝났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는 것이다. 그만큼 그는 압도적인 선수였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이 처음 대구에 갔을 때 오승환 선수가 등장하던 순간인데, 전광판에 '끝판대장'이라는 문구가 뜨고 관중들이 엄청난 환호성을 질러대면 야구장이 막 떠나갈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이다. 나는 그가 상대편 선수임에도 그저 그의 플레이가 놀라웠고, 멋있었다는 기억이 있다.

지금도 친구들이 나를 놀리는 단골 메뉴가 있다.

"넌 정말 야구하기 잘 했다. 다른 종목 했으면 망했을 거야. 운동 선수가 어쩌면 그렇게 운동 감각이 없냐?"

오승환 선수는 축구, 농구, 족구 등 어떤 종목을 해도 공 다루는 게 어설프다고 한다. 자신이 잘하는 건, 그냥 항상 전력으로 미련하게 열심히 뛰어다니는 것이라고. 어쩐지 우직하게 직구로만 승부하는 그의 근성이 바로 이런 데서 나오는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오승환 선수가 대단한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투수한테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인 '포커 페이스'가 아닐까 싶다. 정말 말도 안 되게 절체 절명의 순간에 등장하는데, 어떤 순간에도 흔들려서는 안 되는 것이 바로 마무리 투수이기 때문이다. 야구 경기를 볼 때마다 우스갯 소리로 마무리 투수는 항상 심장이 쫄깃한 순간에 등장해서 피 말리는 싸움을 해야 하니, 수명이 몇 년을 줄 거 같다고 한 적도 있으니 그들의 단단한 심장이야말로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지금이야 너무도 대단한 선수라 처음부터 탄탄대로를 걸었을 것 같지만, 그에게도 실패를 겪어야 했던 순간들이 있었다고 한다. 고등학교 시절 프로지명을 앞두고 척추 분리증이라는 진단을 받아 프로 입성에 실패하고 대학생이 되었고, 대학에 가서도 팔꿈치 인대 손상으로 재활 운동에 매달려야 했다.

"야구선수 한 명 키우는 데 학교 예산 5천만 원이 드는데 승환이는 2년 동안 보여준 게 없습니다. 신입생을 받으려면 승환이가 야구부를 그만둬야 할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펑펑 울면서 코치님의 손을 잡고 빌었다.

이 책에 실린 많은 일화들은 그가 정상에 오른 것이 그저 쉽게 된 것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도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주어서 좋았다. 돌부처라는 별명처럼 어떤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그가 가끔은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을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터진 아이돌과의 열애 소식도 처음 듣고는 의아했을 정도로, 그가 너무도 야구에만 최적화되어 있어 감정이 전혀 없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인간 오승환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 수 있게 된 것도 같고, 그가 왜 어여쁜 아이돌 가수와 연애를 할 수 있었는지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순간은 내가 지배한다."

이닝, 점수차, 상대타자가 누구인지와 같은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부분은 중요하지 않다. 승부는 내가 공을 던져야 시작된다. 내 공만 마음먹은 대로 던지면 결과는 하나뿐이다. 누구도 제대로 던진 내 공을 칠 수 없다. 그래서 다음 공을 던지는 데에만 모든 걸 집중했다.

자신이 최고의 마무리 투수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저 한 타자 한 타자를 승부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 단지 타자와 승부하는 그 순간을 지배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하는 오승환. 순간을 지배한다는 말이 너무도 멋지게 들린다. 야구에서든, 일상에서든, 회사 업무 중에든, 연애 중에든.. 그 순간을 자신이 컨트롤하고, 지배한다는 건 대단히 멋진 일이 아닐까 싶다. 지금은 일본으로 건너가 한신 타이거즈에서 마무리투수로 활약하고 있는 오승환 선수가 언젠가는 메이저 리그로 갈 수도 있고, 수 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 다시 삼성으로 돌아와 은퇴 전까지 활동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가 어느 자리에서, 어떤 모습을 하든 지금처럼 최고의 모습으로 남아 있길 야구 팬의 한 사람으로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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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5-06-15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국의 야구장을 순례하셨다니 엄청난 야구팬이시군요. 저는 넥센팬아니고 엘지팬인데 목동야구장이 멀지 않아서 가끔 엘지 원정겜 보러 갈 때가 있어요. 문제는 엘지가 넥센한테 워낙 약해서 보러 갈때마다 자주 진다는 점이기는 한데...하기는 엘지는 다른 팀들한테도 다 약해서..ㅠㅠ

피오나 2015-06-16 21:01   좋아요 0 | URL
하핫..제 주변에도 엘지 팬들이 잔뜩 있는데, 맥거핀님도 역시ㅋㅋ 넥센도 엔씨만 만나면 정신을 못차리곤 해요. 다들 그런 팀이 하나씩 있나봅니다. ^^;; 그나저나 맥거핀님도 야구장 나들이를 가실 정도로 야구를 좋아하신다니 괜히 막 반갑네요. 호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