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골동품 상점 (무선)
찰스 디킨스 지음, 김미란 옮김 / B612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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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신간의 홍수 속에서 고전을 '굳이' 찾아 읽기엔 다소 무리가 있다. 매일같이 부지런히 읽어도, 정말 읽고 싶은 책들을 다 볼 수는 없는 것이 짧은 인생이니 말이다. 그래서 내 기억 속에 고전이란 학창 시절에 읽었던 것이 거의 대부분인데, 이상하게도 사회에 나와서도 가끔 찾아보게 되는 고전들이 있다. 바로 영화나 드라마, 혹은 뮤지컬 등의 다른 매체로 만나게 되는 경우이다. 그만큼 시대를 넘어서서 변주될 수 있을 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라는 말인데, 백 여년 전에 쓰인 작품이 지금 만나도 전혀 낡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니 말이다. 그렇게 대중들에게 친숙한 고전 작가 중에 손꼽히는 작가가 바로 찰스 디킨스이다. <두 도시 이야기>, <위대한 유산>, <크리스마스 캐럴>, <올리버 트위스트> 등 너무도 유명한 작품들을 써낸 거장 찰스 디킨스의 새로운 작품이라니, 지금이라도 국내최초완역으로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말 궁금하고 반가웠다.

넬의 심장이 희망과 확신으로 요동쳤다. 배고픔이나 추위, 갈증, 아픔 따위는 생각하지 않았다. 넬은 그저 예전에 누렸던 소박한 즐거움의 회복과 골동품 상점의 우울한 고독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안도감, 타인의 시련에 무관심한 비정한 사람들로부터의 해방감, 할아버지의 건강 회복과 마음의 평온, 그리고 고요하고 행복한 삶만을 떠올렸다. 햇살, 시냇물, 들판, 여름날의 정경이 눈앞에 펼쳐지며 그 찬란한 그림에 어두운 색조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특히나 이 작품에 대한 당시의 일화가 너무도 유명해서, 무려 '19세기의 해리포터라고 불릴 만큼이었다고 하니 작품의 인기를 짐작하기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 작품은 1840년에 집필되었는데, 당시 신생잡지에 연재되어 당시 사람들이 주인공인 넬을 실존인물로 착각할 정도였다고 한다. 마치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를 대하는 당시의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다시 바꾸어 살려놓았을 정도로 말이다. 그래서 불쌍한 우리의 주인공 넬을 불행하게 만들지 말라는 편지가 쇄도했고, 그녀가 죽는 분량이 배포되었을 때는 전 영국이 울음바다가 됐다고 한다. 이 작품 역시 영화, 오페라, 연극, 뮤지컬은 물론 TV드라마 등으로 제작됐었고, 올 크리스마스엔 BBC에서 새롭게 제작한 드라마를 선보인다고 하니 정말 시간의 틈을 뚫고 살아있는 작품이라는 생각도 든다.

넬은 '지켜보는 사람도 어떤 보살핌도 없이 혼자인 아이이다. 어머니는 가난하게 살다 먼저 세상을 떠났고, 그녀는 오래되고 진기한 물건들이 가득한 작고 낡은 골동품 상점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지내고 있다. 하지만 노인과 소녀는, 거의 쫓겨나다시피 골동품 상점을 떠나게 되고, 이어지는 그들의 여정은 험난하기만 하다. 무려 칠백 페이지가 넘는데, 그들이 골동품 상점을 떠나는 것이 겨우 백여 페이지 정도의 지점이다. 그러니 그 뒤 수많은 페이지 속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란, 사실 어찌 보면 뻔하다. 결코 해피 엔딩이 될 수 없다는 의혹이 점점 짙어질 수밖에 없는, 촘촘히 짜여진 이야기의 모자이크는 페이지를 넘어갈 수록 묵직해진다. 끝이 어떻게 될 거라는 걸 알면서도, 그러니까 이 스토리에 반전 따위가 숨겨져 있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읽는 걸 멈출 수 없다는 건 이 작품 만의 강력한 힘이다. 사실 요즘 대부분의 신간들은 초반 삼, 사십 페이지에서 결판이 나지 않다. 사실 나는 그 정도 읽었는데도 나를 매혹시키는 점이 없는 작품은 끝까지 읽지 않는다. 시간을 더 투자하는 게 낭비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디킨스의 이 작품은 웬만한 작품 두 권 분량인데도 읽는 걸 미루거나 멈출 수가 없었다.

우리가 인생에서 겪는 모든 일은 그것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대부분 상대적이다. 만약 지금 넬이 이 소박한 장소의 평화에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인상을 받았다면 그건 지친 발로 여행하며 겪었던 어둡고 힘들었던 과정 때문일 것이고, 그것은 엄숙한 곳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깊은 울림과도 같은 것이리라.

......이곳에는 희미한 빛줄기, 돔형 지붕의 침하, 조금씩 허물어지는 벽, 낮게 내려앉은 바닥, 비문의 글이 닳아 없어진 장엄한 무덤, 대리석, , , 나무, 먼지와 같은 폐허의 공통된 상징물들이 모두 존재했다.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 소박하게 살았던 사람과 부자로 살았던 사람, 위풍당당한 사람과 볼품없는 사람 이 모든 사람이 이곳에서는 평등했다.

누구 하나 그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도움의 손길을 건네는 사람도 없는 현실을 오롯하게 몸으로 부딪쳐 겪어 내야 하는 어린 소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탓하거나, 자신의 운명을 비관하거나 불행해하지 않는다. '이익이나 손해는 따지지 말고, 운도 시험하지 말고, 그저 할아버지와 함께하려 했던 미래만 떠올려보자'는 넬의 말은 그녀가 어른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먹먹하다. 그리고 그녀의 삶에 대한 그런 태도와 결단력은 매우 생경하게 느껴지면서도 대견스럽기만 하다. 자신의 앞가림도 제대로 하기 어려운 나이에, 할아버지까지 보살펴야 하는데도, '타인의 조언이나 도움의 손길을 전혀 기대하지 않기'란 쉬운 일이 아니니 말이다. 자신과 할아버지, 두 사람의 생을 떠안고 책임감을 가지려는 넬의 모습은 애처롭고, 마음이 아프기만 하다. 아프다고 말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며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고, 점점 몸 상태가 나빠와서 자신이 서서히 죽어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두려움이나 걱정 따위는 하지 않는 모습은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 감정 이입해서 제발 좀 영악해지라고 한마디 해주고 싶어질 정도이기도 했다.

어쩌면 이 오래된 작품 속 사람들의 모습과 현대의 우리네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지도 모른다. 타인의 슬픔에 무관심하고,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한 모습들 말이다. 돈도 없고 빽도 없고, 세상에 기댈 것 하나 없는 사람이 백마 탄 왕자님을 만나 갑자기 부자가 될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말이다. 무려 175년 전의 작품인데, 이렇게나 리얼하게 현실을 투영하고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자신의 앞에 닥친 어려움에 쉽게 주저 앉고 마는 나약한 사람들에게, 문제가 생기면 숨거나 피하고만 싶어하는 무력한 사람들에게도 이 작품 속 넬이 시사하는 바가 많을 것 같다. 디킨스가이 책은 당신의 폐를 열어 주고, 당신의 얼굴을 씻어 주고, 당신의 안구를 정화하고, 당신의 치밀어 오르는 화를 잠재울 것이다. 그러니 마음껏 울어도 좋다라고 말한 이유를 알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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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를 부탁해 - 베스트 레시피북
JTBC <냉장고를 부탁해> 제작팀 엮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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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은 스타 셰프들이 많아서인지 공중파, 케이블 할 것 없이 요리 프로그램이 우후죽순 생겨나 선택할 수 있는 폭도 넓어졌고, 전문 쉐프들이나 할 법한 레시피를 쉽게 집에서도 따라 할 수 있게 되었다. 한참 '먹방'에 관한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더니, 이제는 '쿡방' 모든 방송사를 휘어 잡고 있다. 바라만 보는 먹방보다는 직접 참여해볼 수 있는 쿡방이 더 즐거운 오락이 된 것이다. 요리와 일상을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고, 이런 방송들은 집밥 열풍으로 고스란히 이어져 건강한 라이프 스타일의 추구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거기다 젊고 실력있는 데다 재미있기 까지 한 인기 셰프들도 한 몫을 하고 있다. 바야흐로 대세는 요리하는 남자인 것이다. 오죽하면 '요섹남'이라는 단어까지 생겼겠는가.

 

 

바로 그런 셰프들을 대세로 만든 것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 아마도 <냉장고를 부탁해>라는 프로그램이 아닐까 싶다. 나는 이 프로그램이 인기를 이렇게나 끌게 될지 몰랐을 때부터, 어쩌다보니 첫 회부터 오십 회가 넘어선 현재까지 꾸준히 지켜보고 있는 시청자이다. 물론 이 프로그램 외에도 스타 셰프들이 등장하는 요리 프로그램들이 꽤나 많지만, 나는 지금도 여전히 이 프로그램이 최고가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이 프로그램은 다른 방송과 달리 '요리를 먹는 대상'이 매우 중요한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내가 요리를 좋아하는 이유 또한 단 한가지이다. 내가 해준 음식을 먹고 기분 좋아할 사람을 떠올리며 요리를 하는 순간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레시피를 줄줄 외워서 자동적으로, 혹은 단순히 끼니를 때워야 해서, 아니면 자신의 화려한 요리 실력을 뽐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요리를 먹어줄 단 한 사람의 만족감을 위해서 존재하는 셰프라니, 이건 정말 앞으로도 전무후무한 방송이 아닐까 싶다. 물론 그것을 경쟁 구도를 만들어 게임처럼 풀어가고는 있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으니 말이다.

바로 그 <냉장고를 부탁해>의 주옥 같은 레시피를 모은 레시피 북이 출간된다고 해서 손꼽아 기다렸었다. 실제로 방송을 보다 보면 전문 셰프가 하는 어려운 레시피처럼 보이지 않고, 누구나 재료만 있으면 따라 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순간이 종종 있다. 그래서 나도 몇몇 요리들은 실제로 만들어서 먹어 본 적이 있고, 가족들의 좋은 호응도 얻고는 했다. 물론 셰프님들이 한 요리만큼의 멋진 비주얼은 나오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소에 먹는 흔한 요리가 아니라서 그런지 먹는 즐거움을 잔뜩 주었던 시간이었다. 그 중에서 정말 쉽기도 하고, 평범한 주부인 내가 만들어도 맛있어서 여러 번 해 본 요리는 정창욱 셰프의 '괜찮아 목심이야'와 김풍 작가의 '자투리타타'이다.

 

정창욱 셰프의 요리에서보다는 고기 위의 사과, 야채가 너무 듬뿍이어서 비주얼은 좀 그렇지만, 맛은 정말 훌륭했다. 김풍 작가의 자투리타타는 기존에 먹던 프리타타나 오믈렛과 비슷한 듯 하면서도 다른, 정말 중독성있는 맛이었다. 프라이팬에서 천천히 익히는 것이 번거로워 오븐에 구웠더니 비주얼이 상당히 달라지긴 했지만 말이다. 다음에 도전해보고 싶은 레시피는 박준우 기자의 '라벤더 숲'과 미카엘 셰프의 '백 투 더 치킨'이다. 특히 미카엘 셰프의 요리들은 내가 사랑하는 닭을 재료로 독특한 레시피들이 많아 방송을 볼 때마다 도전 욕구를 마구 불러일으키곤 했었다. 그동안 방송을 보면서 이렇게나 멋진 레시피들을 한꺼번에 정리해두면 좋겠다 싶은 순간들이 많았는데, 이렇게 레시피 북이 나오니 소장용으로도 가치가 있을 것 같다. 인기 메뉴 92개의 레시피들이 상세하게 실려 있고, 정확한 조리 분량이라던가, 셰프들의 쿠킹 팁에 방송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읽을 거리들도 풍부하다.

 

티비 요리쇼를 보다 보면 엄마가 해준 따뜻한 밥을 먹는 것처럼 마음이 따뜻해졌고, 하루 동안 나를 스트레스 받게 했던 그 모든 순간들이 모조리 사라져버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한다. 나를 괴롭히던 문제들은 내일 생각해도 괜찮을 것 같은 여유로움이 생긴다고 할까. 세상에 먹는 일만큼 중요한 게 또 뭐가 있겠냐 싶다는 생각이 들면, 그 어떤 문제도 더 이상 껴안고 있겠다는 마음이 사라지게 되니 말이다. 요리는 우리를 잠시나마 이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데려가 주곤 한다. 지금 내 상황이 어떤지, 나를 기다리고 있는 문제 거리들이 얼마나 쌓여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일이 또 오늘 같이 반복될 거라는 거라는 걸 생각하면 얼마나 지루한가. 거기다 오늘도, 내일도 늘 비슷한 반찬에 끼니를 때우기 위한 식사가 된다면 식사 시간이 즐거울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런 당신을 위한 따뜻한 책이 바로 이 책이 아닐까 싶다. 깨끗한 재료들과 정확한 레시피, 그리고 발과 프라이팬과 양념들로 정직한 노동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항상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요리이다. 그리고 그렇게 뱃속을 따뜻하게 데워줄 요리들은 우리의 허전하고, 외로운 마음마저 만져주곤 한다. 지금 요리하는 남자들에게 푹 빠져 있다면, 당장 내일 뭐 해먹을지 걱정이라면, 매일 똑같은 끼니 때우기에 지쳤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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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어둠의 이야기 1,2/아모스 오즈

현대 히브리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아모스 오즈의 장편소설

사실과 허구가 어우러진 자전적 소설로, 유대인 박해의 역사와 현대 이스라엘 건국에 대한 이야기를 작가 자신의 개인사를 통해 아름답게 풀어냈다고 평가받는 걸작이란다.

 

역사를 자전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작품이라 궁금하다.

 

 

 

 

 

 

베를린이여 안녕/크리스토퍼 이셔우드

노리스 씨 기차를 갈아타다/크리스토퍼 이셔우드

 

이 두 작품은 '베를린 이야기'라는 하나의 연작으로서, 서로 맞물리는 시공간과 등장인물, 연속되는 이야기들이 하나의 큰 그림을 이루며 1930년대 베를린 사회를 생동감 있게 재현해낸다고 한다.

크리스토퍼 이셔우드의 작품을 아직 만나보지 못한 터라 기대가 크다.

 

 

 

 

 

 

허공에서 춤추다/낸시 크레스

 

낸시 크레스의 작품집이 국내에 첫 출간된 거라, 꼭 읽어보고 싶었던 작품이다.

SF계의 그랜드 데임이라 불리는 그녀의 작품 세계를 만나보고 싶다.

 

 

 

 

 

 

 

 

 

불안한 낙원/헨닝 망켈

 

헨닝 망켈의 스릴러 작품들을 좋아하는데, 이제는 더 이상 그의 새로운 작품을 만나볼 수 없다는 사실이 슬프지만.. 그래도 아직 국내에 출간되지 않은 책들의 등장은 언제나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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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5-12-02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저랑 거의 같은 시간에 올리셨네요. 그런데 겹치는 책이 한 권도 없어요.하하

피오나 2015-12-02 23:19   좋아요 0 | URL
하핫.. 그러게요. 신기하게 같은 책이 한 권도 없다니... ㅋㅋㅋㅋㅋ
 
조선 마술사 무블 시리즈 2
이원태.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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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눈속임? 사기? 손장난? 마술은, 상대의 마음을 얻는 일이다. 앞뒤 좌우를 따지지 않고 박수 치게 만드는 일. 마술사는 관객에게 손짓 눈짓 몸짓으로 계속 말을 건다. 마음의 벽을 허물기 위해서다. 젊은 규수들은 환희가 검지만 까닥해도 딸려 왔다. 청명처럼 환희를 비웃고 사라진 여인은 없었던 것이다. 환희는 이 '' 거절의 여인이 어디 사는 누굴까 궁금했다.

말 물, 밝을 랑, 정자 루. 밝음이 없는 곳. 마술을 펼치기에 더없이 넓고 아득한 판을 조선의 도읍지 한양 사람들은 물랑라루라고 불렀다. 마술이 벌어지는 팔각형 판의 중앙 천장은 원각사지 10층 석탑보다 두 길이 높았고, 만석이면 무려 1000명이 동시에 마술을 구경할 수 있을 만한 규모였다. 게다가 창문이 없어 관객 입장 후 문을 달으면 외부의 빛이 전혀 들지 않아 관객의 눈에 오로지 마술사와 그가 선보이는 마술 외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 또한 특징이었다. 이렇듯 밝음이 없는 물랑루는 공맹이 지배하는 조선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으니, 입장료를 낸 관객들은 양반, 천것 할 것 없이 공평하게 대접받았다. 그리고 이곳 물랑루를 주름잡던 광대패 이름이 바로 환희단으로, 이 패의 흥망을 쥐락펴락하는 으뜸 마술사가 환희였다. 구사하는 마술만 1000가지가 넘는 마술사인 그의 인기는 어마어마했다.

청명은 궁궐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옹주였다. 그녀의 어머니는 딸을 낳은 후 사흘 만에 세상을 떠났고, 왕은 그녀를 가엾게 여겨 출궁 시키진 않았지만 곁에 두고 각별히 아끼지도 않았다. 청명의 거처인 작은 별당은 폐가처럼 고요했다. 지켜보는 눈이 많고, 말이 만들어져 험담이 되곤 하는 궁궐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녀는 그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게 살아가는 법을 자연스레 익혔다. 인적 드문 밤에 돌아다니길 즐겼고, 누구도 모르는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고, 혼자 소설을 읽는 시간을 즐겼다. 그녀의 유일한 벗은, 어머니의 오라버니 영의정의 외동딸인 은미였다. 구김살이 없고 나서기를 좋아하는 은미를 통해서 청명은 환희라는 이름을 처음 듣게 된다. 그녀는 마술도 믿지 않고, 환상도 없다 여겼지만, 물랑루라는 건물에는 관심이 있었기에 공연을 보러 가게 된다.

그리고 환희는 그날 밤, 마지막 마술을 하기 위해 여자 관객을 무대 위로 불러 올려야 하는 순간, 자신보다 물랑루와 허공에 더 관심이 많아 보였던 청명을 지목한다. 하지만 청명은 나갈 수 없었다. 평생 그늘에서, 어두운 곳에서만 살아왔기에 결코 판으로 나갈 수 없었던 것이다. 환희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지목 받은 관객이 올라오지 않은 적이 없었기에, 청명의 거절에 당황한다. 그렇게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된다

"이 나라의 왕이시니 못할 일이 무엇이겠사옵니까. 다만 마술은 공연하는 판을 없애거나 찾아오는 관객들을 내쫓는다고 사라지지 않사옵니다. 마술은 마음이 만들기 때문이옵니다."

"마음이 마술을 만들다니?"

"현실을 견디기 힘든 사람은 저마다 황당한 꿈을 꾸옵니다. 이뤄지기 힘들지만 그 꿈을 꾸는 동안엔 위로를 받사옵니다. 마술은 그들의 꿈을 판 위에 잠시 옮겨 보여 주옵니다. 마술사가 마술을 하는 것이 아니옵니다. 마술을 보고자 하는 이들의 마음이 마술을 만드는 것이옵니다."

이 작품은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조선시대에도 마술사가 있었다는 작은 기록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소설가 김탁환과 기획자 이원태가 결성한 창작 집단 '원탁'의 두 번째 장편소설로 카카오페이지에 연재되며 모바일로 소설을 읽는 독자에게도 호평을 얻었고, 다음달에는 유승호 주연의 영화로 개봉될 예정이다. 기획 단계부터 영화, 웹소설, 책 출간을 염두에 두고 제작되어 '‘원 스토리 멀티 유즈의 제대로 된 사례가 아닐까 싶다. 로맨스 독자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플랫폼인 웹소설로 모바일 콘텐츠 플랫폼 카카오페이지에서 공개되어 한 달 동안 7만 뷰를 달성했다고 하니, 다음달에 개봉할 영화에도 어느 정도의 힘이 되어 줄 것 같다. 재미있는 건 웹소설 특유의 속도감 있는 빠른 스토리 진행과 군더더기 없이 간단명료한 문장들을 가지고 있음에도, 종이책으로 처음 만난 나 같은 독자들도 만족시킬 만하다는 것이다. 사실 조선 시대의 마술사와 사랑에 빠진 공주가 등장한다고 하니, 뻔하고 닭살스런 로맨스 소설 아닐까 싶었는데, 시대적인 배경과 마술이라는 매혹적인 장치가 만나 매우 그럴싸한 작품으로 탄생해 전혀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특히나 태어나서부터 계속 고독하게, 어둠 속에서 자신을 감추며 살아와야 했던 공주 청명이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가 마음에 들었다. 왜 소설을 좋아하느냐고 묻는 환희에게 그녀는 이렇게 대답한다. "당신을 만나기 전까진 일상이 지리멸렬했어. 소설엔 지리멸렬함을 단번에 날려 버릴 보물이 숨어 있지." 그리고 그 보물이란 바로 "등장인물의 마음. 그 마음만이 시시하고 하찮은 하루하루를 뒤흔들어 부수지." 라는 것이다. '마음'이라니, 청명은 정말 소설을 사랑하는구나 싶었다. 게다가 그녀는 소설을 필사하는 취미가 있었는데, 손수 옮겨 적고 나서는 간단한 후기를 여백에 적어두곤 했다. 이야기를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그걸 글로 옮겨 적고, 나아가서 직접 이야기를 만들기까지 했던 것이다. 내가 여러 장르의 책 중에서 유독 소설만을 편애하는 이유도 바로 그녀와 같다. 바로 소설에는 '감정'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 인물들의 피부 속까지 파고들어 마치 페이지마다 그들의 땀과 체취가 느껴지는 것처럼 묘사되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이 내 마음과 동일시 되는 순간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극중 환희의 마술에는 백성들이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가 흘러 넘쳤다고 한다. 그렇다면 마술사와 소설가는 상상을 직업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마술을 소재로 한 소설은 꽤 많았지만, 이렇게 로맨틱한 작품은 참 오랜만인 것 같다. 마술이 시작하기 전, 암전 상태에서 곧 펼쳐질 신비로운 무대를 기대하듯, 그렇게 설레이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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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부아르 오르부아르 3부작 1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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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었던 4년 간의 전쟁이 곧 끝나고, 휴전이 될 거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뉘는데, 하나는 군장을 꾸려 놓고 느긋이 어서 전쟁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이들이고, 다른 하나는 남은 시간 동안 조금이라도 더 독일 놈들과 치고 받고 싶어 안달하는 이들이다. 휴전에 대한 기대감 속에 평온한 나날이 흘러가던 어느 날, 갑작스레 독일군 정찰 명령이 떨어졌고 정찰병으로 갔단 어린 군인과 늙은 군인이 총격으로 사망하고 만다. 분노에 휩싸인 프랑스군은 독일군 진지를 급습하기에 이르고, 전투 중에 알베르는 총격 사건의 어마어마한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진상을 은폐하려는 프라델 중위 덕분에 알베르는 포탄 구덩이에 산 채로 파묻히고, 다리 부상 덕분에 멈추었다가 그를 발견한 에두아르는 포탄 파편에 맞아 얼굴의 반쪽을 잃게 된다. 한 사람의 욕심이, 단 한 순간에 앞날이 창창하던 두 사람의 인생을 지옥 끝까지 이끌게 된 것이다. 무려 4년 동안이나 전쟁 통에 부상 한번 당하지 않고, 게다가 죽지도 않고 잘 버텨왔건만, 휴전을 코 앞에 두고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그래서 한 치 앞도 볼 줄 모르는 게 인간이라던가. 그렇게 비극의 시작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갑작스레 다가오고 만다.

두 사람이 산 자의 세계에 돌아온 방식은 사뭇 달랐다.

오장육부를 다 토해 내며 죽은 자들의 세계에서 귀환한 알베르는 포탄과 탄환 들이 날아다니는 어느 하늘 가운데서 어렴풋이 의식을 회복했는데, 이것이 그가 진짜 삶으로 돌아왔다는 신호였다. 그는 아직 알지 못했지만, 프라델 중위가 시작하고 지휘한 공격 작전은 벌써 끝나 가고 있었다. 113고지는 아주 쉽게 점령됐다고 말할 수 있다. 격렬한, 하지만 그리 길지 않은 저항 후 적군은 투항했고 포로가 되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 전 과정이 하나의 요식 행위에 불과했던 이 작전을 통해 서른여덟 명의 전사자와 스물여덟 명의 부상자(독일 놈들은 계산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리고 두 명의 실종자가 발생했다. 다시 말해서 매우 훌륭한 결과였다.

전쟁 전에 회계원으로 일했던 평범한 알베르와 그림에 남다른 재능을 지녔던 부유한 에두아르. 이들은 결국 끔찍한 전쟁에서 살아남았지만, 사실 인생이라는 게 단순히 목숨을 부지하는 것만으로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전쟁을 끝내고 사회에 돌아왔지만, 여전히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투를 벌여야만 했다. 나라에서는 전쟁을 정당화하려는 기념식이나 죽은 영웅들의 기념비를 세우기에 바쁠 뿐, 전쟁을 통해 많은 것을 빼앗긴 젊은이들의 삶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골치 아픈 생존자들을 버리려 하는 국가와 가진 자들의 위선 속에서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진 그들은 희대의 '사기극'을 벌이기에 이른다. 국가와 국민들 모두를 향해서 말이다. 에두아르가 하는 것은 명백한 범죄이지만, 하지만 나는 그가 악행을 저지르기로 한 그 마음을 어쩐지 이해하고 싶었다. 세상에 설 자리가 없어진 그가 새로운 삶을 얻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는 것을 알기에 말이다.

실제로 1차 세계대전 이후 참전한 군인들은 전우의 시체를 먹으며 생명을 이어나가야 했고, 남겨진 사람들도 제각기 이유로 고통 받았으며, 아이들은 고아가 됐다고 한다. 전쟁은 종결됐지만, 그것이 남겨진 사람들의 고통마저 끝이 났다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놀랍게도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는데, 전사자들을 위한 32000개가 넘는 위령탑들이 순식간에 지어지는 와중에 팔다리가 잘리고 얼굴도 망가져버린 병사들이 간신히 목숨만 유지해서 돌아왔을 때 누구도 그들을 신경 써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국가는 그들에게 일자리도, 연금도 마련해주지 않았다.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병사들은 얼마나 억울하고, 막막했을까. 피에르 르메트르는 바로 여기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오르부아르의 두 주인공 역시 그랬으니까. 뭐라고 할 수 밖에 없었던 두 젊은이들이었기에, 그들이 잃어버린 동료들을 위한 위령탑을 가지고 대국민 사기극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그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이 책을 읽어나가는 데 중요한 의미가 되기도 한다.

알베르는 윤리의 이름으로 복수를 꿈꾸고 있었다.

"자넨 이 모든 걸 개인적인 복수로 만들고 있어." 에두아르가 썼다.

"당연하지. 난 지금 일어나는 일이 아주 개인적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럼 자넨 아니란 말이야?"

아니, 그는 아니었다. 복수는 정의 실현의 이상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한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은 충분치 않았다. 비록 지금이 평화시이긴 하지만, 에두아르는 전쟁에 대해 전쟁을 선포했고, 이 전쟁을 그의 방식으로, 다시 말해서 그의 스타일로 하기를 원했다. 윤리는 그의 체질이 아니었다.

그 동안 국내에 출간되었던 피에르 르메트르의 출간 작들은 모두 추리소설이었기에, 게다가 나는 그의 '카미유 베르호벤' 시리즈를 너무도 사랑하기에, 사실 그가 공쿠르 상을 받은 이 작품은 매우 의외였다. 왜냐하면 공쿠르상은 프랑스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문학상'이기 때문이다. 당시 선정위원회는 르메트르가 전후 생활에서 지속하는 공포를 잘 포착했으며 영화 같은 글쓰기에도 높은 점수를 줬다고 밝혔었다. 처음으로 추리 장르를 벗어나 쓴 작품으로 공쿠르 상을 받다니, 어쩌면 그의 내면에 순 문학에 대한 욕망이 그 동안 숨겨져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의 추리 소설들을 좋아했던 이유는 플롯과 구성, 캐릭터 모두가 엄청나게 정교하고 치밀하게 짜여져 있어, 꽤나 방대한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불필요한 부분이 전혀 없이 소설의 모든 요소들이 전부 다 꼭 있어야 할 자리에 놓여 있다는 그런 느낌 때문이었다. 게다가 시리즈의 주인공 카미유 베르호벤 반장은 외모적으로도 매우 독특하고, 개성적인 캐릭터인데, 그 외에도 그의 팀원들 하나하나가 모두 톡톡 튀는 이력의 소유자들이라 더욱 읽는 재미를 주기도 했고 말이다.

피에르 르메트르는 공무원과 도서관 사서를 하다가 55세에 첫 소설을 출간했다. 그것도 22개 출판사에서 외면 당하다 겨우 빛을 봤다고. 그는 '젊은이들에게 중요한 결정을 하기 전 50년쯤은 기다리라고' 하며 자신이 만사에 느린 편이라 데뷔 하기에 늦은 나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59세에 늦둥이도 없었다고 말이다. 우리 역시 전쟁의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는 민족이기에, 이 작품이 더 의미 있게 다가올 수도 있을 것 같다. 그의 말대로 과거는 이미 지나갔지만, 문학은 그것을 바라보는 비전과 시각, 그리고 기억을 바꿀 수 있으니 우리는 이 작품을 절대 놓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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