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를 부탁해 - 베스트 레시피북
JTBC <냉장고를 부탁해> 제작팀 엮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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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은 스타 셰프들이 많아서인지 공중파, 케이블 할 것 없이 요리 프로그램이 우후죽순 생겨나 선택할 수 있는 폭도 넓어졌고, 전문 쉐프들이나 할 법한 레시피를 쉽게 집에서도 따라 할 수 있게 되었다. 한참 '먹방'에 관한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더니, 이제는 '쿡방' 모든 방송사를 휘어 잡고 있다. 바라만 보는 먹방보다는 직접 참여해볼 수 있는 쿡방이 더 즐거운 오락이 된 것이다. 요리와 일상을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고, 이런 방송들은 집밥 열풍으로 고스란히 이어져 건강한 라이프 스타일의 추구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거기다 젊고 실력있는 데다 재미있기 까지 한 인기 셰프들도 한 몫을 하고 있다. 바야흐로 대세는 요리하는 남자인 것이다. 오죽하면 '요섹남'이라는 단어까지 생겼겠는가.

 

 

바로 그런 셰프들을 대세로 만든 것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 아마도 <냉장고를 부탁해>라는 프로그램이 아닐까 싶다. 나는 이 프로그램이 인기를 이렇게나 끌게 될지 몰랐을 때부터, 어쩌다보니 첫 회부터 오십 회가 넘어선 현재까지 꾸준히 지켜보고 있는 시청자이다. 물론 이 프로그램 외에도 스타 셰프들이 등장하는 요리 프로그램들이 꽤나 많지만, 나는 지금도 여전히 이 프로그램이 최고가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이 프로그램은 다른 방송과 달리 '요리를 먹는 대상'이 매우 중요한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내가 요리를 좋아하는 이유 또한 단 한가지이다. 내가 해준 음식을 먹고 기분 좋아할 사람을 떠올리며 요리를 하는 순간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레시피를 줄줄 외워서 자동적으로, 혹은 단순히 끼니를 때워야 해서, 아니면 자신의 화려한 요리 실력을 뽐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요리를 먹어줄 단 한 사람의 만족감을 위해서 존재하는 셰프라니, 이건 정말 앞으로도 전무후무한 방송이 아닐까 싶다. 물론 그것을 경쟁 구도를 만들어 게임처럼 풀어가고는 있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으니 말이다.

바로 그 <냉장고를 부탁해>의 주옥 같은 레시피를 모은 레시피 북이 출간된다고 해서 손꼽아 기다렸었다. 실제로 방송을 보다 보면 전문 셰프가 하는 어려운 레시피처럼 보이지 않고, 누구나 재료만 있으면 따라 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순간이 종종 있다. 그래서 나도 몇몇 요리들은 실제로 만들어서 먹어 본 적이 있고, 가족들의 좋은 호응도 얻고는 했다. 물론 셰프님들이 한 요리만큼의 멋진 비주얼은 나오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소에 먹는 흔한 요리가 아니라서 그런지 먹는 즐거움을 잔뜩 주었던 시간이었다. 그 중에서 정말 쉽기도 하고, 평범한 주부인 내가 만들어도 맛있어서 여러 번 해 본 요리는 정창욱 셰프의 '괜찮아 목심이야'와 김풍 작가의 '자투리타타'이다.

 

정창욱 셰프의 요리에서보다는 고기 위의 사과, 야채가 너무 듬뿍이어서 비주얼은 좀 그렇지만, 맛은 정말 훌륭했다. 김풍 작가의 자투리타타는 기존에 먹던 프리타타나 오믈렛과 비슷한 듯 하면서도 다른, 정말 중독성있는 맛이었다. 프라이팬에서 천천히 익히는 것이 번거로워 오븐에 구웠더니 비주얼이 상당히 달라지긴 했지만 말이다. 다음에 도전해보고 싶은 레시피는 박준우 기자의 '라벤더 숲'과 미카엘 셰프의 '백 투 더 치킨'이다. 특히 미카엘 셰프의 요리들은 내가 사랑하는 닭을 재료로 독특한 레시피들이 많아 방송을 볼 때마다 도전 욕구를 마구 불러일으키곤 했었다. 그동안 방송을 보면서 이렇게나 멋진 레시피들을 한꺼번에 정리해두면 좋겠다 싶은 순간들이 많았는데, 이렇게 레시피 북이 나오니 소장용으로도 가치가 있을 것 같다. 인기 메뉴 92개의 레시피들이 상세하게 실려 있고, 정확한 조리 분량이라던가, 셰프들의 쿠킹 팁에 방송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읽을 거리들도 풍부하다.

 

티비 요리쇼를 보다 보면 엄마가 해준 따뜻한 밥을 먹는 것처럼 마음이 따뜻해졌고, 하루 동안 나를 스트레스 받게 했던 그 모든 순간들이 모조리 사라져버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한다. 나를 괴롭히던 문제들은 내일 생각해도 괜찮을 것 같은 여유로움이 생긴다고 할까. 세상에 먹는 일만큼 중요한 게 또 뭐가 있겠냐 싶다는 생각이 들면, 그 어떤 문제도 더 이상 껴안고 있겠다는 마음이 사라지게 되니 말이다. 요리는 우리를 잠시나마 이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데려가 주곤 한다. 지금 내 상황이 어떤지, 나를 기다리고 있는 문제 거리들이 얼마나 쌓여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일이 또 오늘 같이 반복될 거라는 거라는 걸 생각하면 얼마나 지루한가. 거기다 오늘도, 내일도 늘 비슷한 반찬에 끼니를 때우기 위한 식사가 된다면 식사 시간이 즐거울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런 당신을 위한 따뜻한 책이 바로 이 책이 아닐까 싶다. 깨끗한 재료들과 정확한 레시피, 그리고 발과 프라이팬과 양념들로 정직한 노동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항상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요리이다. 그리고 그렇게 뱃속을 따뜻하게 데워줄 요리들은 우리의 허전하고, 외로운 마음마저 만져주곤 한다. 지금 요리하는 남자들에게 푹 빠져 있다면, 당장 내일 뭐 해먹을지 걱정이라면, 매일 똑같은 끼니 때우기에 지쳤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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