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욕의 기술 - 추락하는 의지를 상승시키는 심리 스프링
제이슨 워맥.조디 워맥 지음, 김현수 옮김 / 다산북스 / 201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누구나 마음속에는 타성에 안주하고 싶은 고장 난 스프링이 있다. 이 스프링은 처음에는 탄력이 강해 조그만 자극에도 쉽게 튀어 오르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탄력을 잃고 만다. 솟구치던 의욕이 바닥을 드러냈을 때, 하기 싫은 일에 뛰어들어 야 할 때, 성과는커녕이만하면 됐지라는 타성에 지쳤을 때 우리는 마음속 스프링에 탄력을 주어야 한다.

누구나 어떤 프로젝트를 시작하길 원하고, 어제와는 조금은 달라지기는 변화를 바란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하지만'이 있다는 게 문제라고 이 책의 저자는 말한다. 뭔가에 정체된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는 말들은 이렇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그냥 늘 하던 대로 살래요. 이 정도로도 괜찮아요. 예전에 시도했지만 실패했어요. 새로운 걸 해보고 싶긴 하지만, 그랬다가 제 삶의 다른 것들을 망치면 어떡해요? 제가 정말로 원하는 변화는 너무 엄청난 것이라서 엄두가 안 나요. 등등..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변명들이다. 저자는 솟구치던 의욕이 바닥을 드러냈을 때 '심리 스프링 메커니즘'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진정 원하는 내가 되기 위한 행동 변화를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추진력'이라는 뜻의 '모멘텀'을 저자는 '의욕을 솟구치게 만드는 심리적 스프링'으로 정의하고 있다.

솟구치던 의욕이 바닥을 드러냈을 때, 하기 싫은 일에 뛰어들어야 할 때, 심리 스프링의 스위치를 켜라!!

저자가 독자들에게 권하는 것은 전세계 수십만 명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직접 실천하며 증명해 보인 실용적이고 과학적인 방법들이다. 무엇보다 뜬구름 잡는 이론이 아니라, 실제로 시도해볼 수 있는 행동들이라는 점이 매력적이다.

당신에게 무엇이 가능한지 보여줄 수 있는 사람, 그래서 당신이 따라가고, 만나고,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그들을 찾아내서 만나고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을 공유하도록 한다. 당신의 목표인나는 어떤 사람으로 알려지길 원하는가?”의 진가를 인식하는 멘토를 만나면, 당신은 힘을 받아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이, 빨리, 쉽게 배울 수 있다.

포춘이 선정한 변화를 선도하는 500대 리더 중 한 명이자 미국의 100대 최고 행동 변화사상가인 제이슨 워맥은 중요한 일을 앞두고도 시작을 미루거나, 인생을 붙잡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고 미루는 사람들의 심리를 연구해왔다. 그는 의욕을 갖지 못해 꽉 막힌 상태에 머무른 사람들에게서 공통된 행동 특성을 발견했고, 그 속에 숨겨진 심리와 행동의 비밀에 관해 이 책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다. 게다가 그는 시작부터 이야기한다. "나는 사람들에게 동기나 부여하자고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진부한 문구들로 가득 찬 자기 계발서를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이 읽어 왔다. 이 책은 그런 뻔한 말들이 아니라, 실제로 용기를 내고 대담하게 행동할 수 있게 만드는 전략들을 제시한다.

행동할 수밖에 없는 마음의 지점을 정확히 간지럽혀라.는 문구 아래 이미지는 과녁의 중앙을 건드리는 깃털이다. 심리 스프링의 스위치를 켜라는 문구 아래에는 머릿속에 숨겨 있던 스프링을 통해 뛰어 오르는 사람의 이미지가 있다. 잘 정리되어 있어 한 눈에 쏙 들어오는 글만큼이나, 중간중간 삽입된 도표나 이미지들 또한 인상적이다. 이미지를 보는 것만으로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이 고스란히 느껴진다거나, 너무 유쾌하고 재미있어 깔깔대면서 읽게 만들고 있으니 말이다. 지쳐서 나가떨어지는 지점에 쿠션을 깔아둬라. 한 번에 세 달씩 나의 미래를 창조해보라. 당신의 현재 상황을 수치화하라. 당신의 내비게이션은 믿을 만한가? 잘못 들어선 길이란 걸 어떻게 재빨리 알아챌까? 저자가 던지는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찾아 가다 보면 어느 새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해 있다. 그만큼 흥미진진하고, 유익한 책이었다. 일단 제일 쉬운 것부터 시작해보자. 남의 속도에 억지로 맞추지 말고, 속도를 늦춰 자신의 페이스로 차근차근 해나가다 보면 결국엔 나만의 작은 승리를 거머쥐게 될 테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행, 잘 먹겠습니다 1~2 세트 - 전2권 여행, 잘 먹겠습니다
신예희 지음 / 이덴슬리벨 / 201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곳의 사람들과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공기를 마시며 같은 똥을 싸기. 이것은 내 마음대로 공표하는 내 여행의 핵심이다. 여행지에서 만나는 그 나라, 그 지방, 그 민족의 맛있는 음식들 속에는 기후가, 지형이, 역사가, 그리고 문화가 오롯이 담겨 있다. 냠냠 씹어 꿀꺽 삼키는 이 행복한 행위를 통해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운다.

우리는 여행을 통해서 삶에 필요한 활력소를 얻고, 일상에서 얻지 못하는 지혜를 얻고, 평생 간직할 수 있는 추억이라는 선물까지 받는다. 거기에 하나 더, 그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들! 먹는 것이야말로 그 나라의 문화를 체험하고, 현지의 생활을 느끼고 이해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그래서 나에게 여행이란 맛있는 음식, 현지에서만 먹어볼 수 있는 음식들을 찾아 다니며 즐기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자 즐거움이었다. '한 나라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곳의 음식을 직접 맛보는 것'이라는 말처럼 요즘은 아예 '미식여행'을 작정하고 떠나는 경우도 많고, 예능 프로그램 중에는 '원나잇푸드트립'이라고 해서 1 2일 내내 먹고, 또 먹는 먹방 해외 여행이 있기도 하다. 이 책은 바로 그런 미식여행의 결정판이라고 볼 수 있겠다. 저자는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40회가 넘는 해외 미식여행을 다녀온 이력으로 세계 음식 탐방을 리얼하게 펼쳐 보이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가 소개하는 나라는 총 네 곳인데, 불가리아, 신장 위구르, 말레이시아, 벨리즈이다. 그저 요거트가 유명한 것으로 알고 있었던 동유럽의 불가리아, 베이징에서 기차를 타고 50시간이나 쉼 없이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낯선 곳 신장 위구르, 멜시코와 과테말라 사이에 있는 아주 작은 나라인 벨리즈는 나에게 너무도 낯선 나라들이어서 어떤 음식이 소개될 지 너무도 궁금했다. 그나마 싱가포르에 여행을 다녀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익숙한 말레이시아의 음식들만 덜 낯설었는데, 여기서 소개되는 음식들 중에는 먹어보지 못한 것들이 더 많았다. 불가리아의 아침을 책임지는 바삭한 페이스트리 바니차, 귓속까지 얼얼해지도록 매운 벨리즈의 하바네로 고추, 신장 위구르의 양고기로 속을 채운 따끈한 군만두 쌈싸, 말레이시아의 국민 음료인 달콤한 떼 따릭 등... 다양한 음식들이 눈을 즐겁게 해주고, 감칠맛 나는 저자의 설명들이 보는 것만으로도 입에 침이 고이게 만들어 준다.

 

 

먹는 것 좋아하지, 여행 좋아하지, 신기한 음식이다 싶으면 일단 입에 넣고 우물우물 해봐야 직성이 풀리지, 저 같은 사람에겐 다문화 거리는 놀이공원이나 다름없습니다. 길게 늘어선 노점들, 외국어 간판이 붙어있는 식당들. 그곳에서 만나는 음식 한 접시 한 접시에 각각의 길고 짧은 얘깃거리가 가득합니다. 때로는 이건 대체 무슨 맛이냐며 기겁하기도 하고 때로는 접시의 영혼까지 핥아먹을 기세로 열광하기도 합니다.

<여행, 잘 먹겠습니다> 1권은 <여행자의 밥>의 개정판이다. 그리고 이번에 새롭게 출간된 2권은 굉장히 독특한 구성이다. 바로 '동네 속 세계 음식 탐방'이라고 해서 국내에서 지하철로 떠나는 세계 여행이라고 할까. 국내에서 해외의 맛을 찾는다는 설정도 흥미롭지만, 실제로 책에 실린 화보들을 보면 이게 대체 국내가 맞는 걸까 싶을 만큼 이국적인 풍경들이다. 이태원의 이슬람 거리, 가리봉동의 연변 거리, 광희동 몽골,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거리, 안산 다문화 거리, 건대 양꼬치 거리, 평택 미군부대 앞 거리, 인천 차이나타운 등등... 내가 알고 있던 곳은 이 중에서 겨우 몇 곳, 나머지는 전부 처음 듣는 곳들 투성이었다. 굳이 여권 챙겨서 비행기 탈 필요 없이 세계의 음식들을 현지인의 손으로 직접 만들어주는 곳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다니 얼마나 놀라운가. 이태원에 가면 달달한 중동과자가 있고, 가리봉동에 가면 대륙 스케일의 엄청 큰 왕 꽈배기가 있고, 광희동의 양고기 음식들과 혜화동의 따끈한 오리알과 코코넛 밀크향 디저트 등등... 세계의 매력적인 요리들을 국내에서 만나볼 수 있다.

 

아직도 나는 여행지의 추억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그곳에서 인상적이었던 음식을 떠올리게 된다. 괌에서 먹었던 단맛의 극치를 보여주는 끝장나게 달콤했던 시나몬 롤, 오키나와에서 먹었던 겉은 바삭, 속은 촉촉하고 은은한 닷맛이 인상적이었던 슈크림빵, 싱가폴에서 먹었던 매콤, 달달했던 칠리 크랩과 그 소스에 푹 찍어 먹었던 바삭한 튀긴 꽃빵, 오사카에서 먹었던 국물에 달랑 유부와 면만 들어 있었지만 쫄깃한 면발이 살아 있어 너무 맛있었던 우동과 대만에서 먹었던 엄청난 크기의 치즈카스테라 등등... 열거하자면 끝이 없는 추억들. 그 음식들을 먹던 당시의 날씨와 풍경이 고스란히 머릿속으로 재현되면서 그저 떠올리는 것만으로 나는 잠시 그곳에 다녀오는 기분이다. 그러니 맛있는 음식은 미각에 기쁨을 줄 뿐 아니라 그곳의 문화와 사람들을 만나는 통로 역할을 해낸다고 말하고 있는 이 책들이야말로 당장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위로이자 힐링이 되지 않을까 싶다. 생생한 사진과 유쾌한 카툰으로 만나는 세계 여행, 당신도 지금 떠나 보시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름다운 흉기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봐, 농담하지 마. 그럼 그게 여자가 한 짓이라는 거야? 여자가 경찰 목을 졸라 죽였다고?"

준야는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두 손을 들었다. 그러나 쇼코는 진지한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보통 여자가 아냐. 어릴 때부터 센도 밑에서 자랐어. 물론 평범하게 키우진 않았겠지. 너희들이 상상도 못 할 일이 그 아이에게 행해졌을 거야."

한밤중, 호숫가의 별장에 전직 국가대표였던 이들 네 명이 몰래 숨어 든다. 허들 육상선수였던 유스케, 체조선수였던 쇼코, 단거리 육상선수였던 준야, 역도 일본 챔피언인 다쿠마까지. 이들은 별장의 주인인 스포츠 닥터 센도가 가지고 있던 자료를 찾으려 하지만 우발적으로 센도를 살해하고 만다. 그들은 살인의 흔적과 함께 찾지 못한 자료도 없애기 위해 저택 전체를 태워버리자고 방화를 하고, 그 모든 것을 브라운관을 통해 지켜보고 있는 한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남자 셋, 여자 하나로 이루어진 침입자들의 얼굴을 바라본다.

이 자들이 그를 죽였다.... 죽이고, 불태웠다.

 

처음에는 단순한 절도범의 소행처럼 보였던 화재 사건은, 별장 뒤 편에 잠겨 있던 창고에서 경찰관이 살해당하면서 살인 사건으로 대대적인 수사가 시작된다. 체조용 매트와 바벨, 트레이닝 머신 들이 놓여 있어 체육관처럼 보이는 의문의 창고에는 누군가 살고 있던 흔적이 있었고, 그곳에서 사라진 것은 바로 센도가 비밀리에 키우던 강력한 헵태슬론 선수였다. 육상 7종 경기에 능숙한 신체로 실험을 통해 극한의 능력을 끌어올려 만들어진 괴물 같은 여자, 타란툴라. 이야기는 센도의 복수를 하기 위해 타란툴라가 네 명의 범인들을 쫓는 여정으로 이어진다.

 

그 남자가 말한 대로 하면서 실제로 오랜 염원을 이룰 수 있었다. 신기록, 일본 대표, 국제무대 등등……. 덕분에 준야는 명예와 안정된 생활을 손에 넣었다.

하지만 나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달렸던 걸까. 준야는 생각했다.

자신의 능력을 시험하기 위해서? 그게 자신의 능력이었을까? 아니면 이기기 위해? 누가 누구를 이기기 위해……. 나는 이길 수 없었다. 아니, 어쩌면 달리지도 못했던 것인지 모른다.

타란툴라가 지나간 현장에서 발견된 흔적들이란 도저히 보통 인간의 힘으로 죽였다고는 할 수 없을 정도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하물며 여자가 한 짓이라는 걸 상상하기엔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괴력을 보여주는 모습에, 네 명의 스타 스포츠 선수들은 자신들을 향해 점점 포위망을 좁혀 오는 그녀에 대해 공포를 느낀다. 마치 할리우드 액션 영화를 보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너무도 거침없이 사람을 죽이고, 괴력을 휘두르는 타란툴라의 모습은 센도가 남몰래 키워온 거구의 인간 병기를 마치 사이보그처럼 보이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니까, 세상에 적수가 없는, 천하 무적의 그것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 작품에서 운동선수들이 성적을 높이기 위해 자행하는 도핑을 주 소재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처음부터 범인을 밝혀 놓고 시작한 스토리인데다, 그 범인을 찾아 복수하려는 인물 또한 명백하게 보여주고 진행되고 있어 미스터리 보다는 서스펜스에 가까운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그야말로 '피도 눈물도 없는' 타란툴라의 복수의 여정 뒤에 함께 하는 것은 바로 과거 센도와 스포츠 선수들이 저질렀던 도핑과 관계된 배경이다. 센도는 단순한 도핑을 넘어서 나치의 인체 실험에 관한 자료를 바탕으로 인간의 육체를 개조하는 연구를 해왔던 걸로 보인다. 특히나 여자가 임신을 하면 근력을 증강시키는 물질이 평소보다 몇 배 더 분비되는 걸 알아내, 여자 선수를 일부러 임신시켜 근육이 붙기 쉬운 상태로 만들어 트레이닝하고 일정 시기가 되면 중절을 시켰다는 무시무시한 연구를 해왔다. 혈액 도핑보다 더한 악마의 실험이 아닐 수 없다. 출간된 지 30여 년이 지난 히가시노 게이고 초기 작품이지만, 지금 읽어도 여전히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힘이 있는 작품이다. 이번에 리커버 개정판으로 새로운 표지로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내용만큼이나 강렬한 표지 이미지가 인상적이다. 속도감 있는 추격전이 일품이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페이지를 넘기게 만드는 작품이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남겨주는 여운은 인간의 광기 어린 욕망이 불러온 비극 이면의 그것을 보여주고 있어 여운을 남겨 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특별판)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우리 주위를 보면, 국면 타개를 위해 조바심 치며 먹구름에 싸인 성으로 돌격하다가, 결국은 옥쇄하고 마는 바보들이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들은 분명 사랑스러운 남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만용은 있어도 용기는 없는 남자들이다...우선은 그녀가 나라는 보기 드문 존재에 익숙해져야 한다. 본체 공략은 그 뒤다.

5월의 어느 날, 주인공는 대학 선배의 결혼을 축하하는 술자리에 참석했다가 테이블 구석에 앉아 있던 '그녀'를 보게 된다. 클럽 후배인 그녀에게 첫눈에 반했는데, 워낙 어수룩한 성격 탓에 아직 친근하게 말 한번 주고받지 못했던 거다. 술자리가 끝나고 2차에 합류하지 않는 그녀를 쫓아 어떻게든 말을 건넬 기회를 노리고 따라갔는데, 그만 골목에서 그녀를 놓치고 만다. 그렇게 그는 이야기의 무대에서 의도와 상관없이 퇴장하고, 그녀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녀는 술자리에서 선배들 틈에 편하게 술을 마실 수 없었던 터라, 조심할 것 없이 술을 마셔보고 싶어 아는 사람이 가르쳐준 바로 향한다. 거기서 처음 보는 중년 아저씨가 불쑥 말을 걸어와 이야기를 나누다 자리를 옮기게 되고, 그녀의 가슴을 만지려는데 누군가 나타나 그녀를 구해주게 된다. 그렇게 키고 크고 늠름한 여성 하누키 씨와 색 바랜 유카타를 입은 히구치 씨를 알게 되어 그들과 또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윤기 있는 검은 머리를 단정하게 자른 아담한 체구의 귀여운아가씨'는 너무도 순수하고 맑고 천진난만해 현실에서는 전혀 없을 것 같은 캐릭터이다. 그래서 더욱 그녀에 대한 망상 가득한 한 남자의 짝사랑이 그럴 듯해 보이기도 하고, 생판 처음 만나는 이들과 너무도 잘 어울리고, 그들을 아무런 의심 없이 믿는 모습 때문에 이어지는 황당한 에피소드들이 이상하지 않게 느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두 번째 에피소드인 헌책시장에서 생긴 일들은 더 재미있는데, 악랄한 수집가를 응징하기 위해 온 헌책시장의 신은 정말 기발한 설정이 아니었나 싶다. 책과 수집가의 만남을 이루어지게 하기도 하지만 맘에 안 들면 무시무시한 벌도 내린다는 헌책시장의 신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진짜 모습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한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헌책시장의 신이 어떤 모습인지는 직접 읽어 보시길. 어린 시절 애지중지 읽고 또 읽던 동화책을 찾으려고 하는 아가씨와 그 책을 구하기 위해 자극적인 냄새가 나는 뜨겁고 매운 냄비요리를 먹는, 그야말로 목숨을 건 처절한 시합에 나서게 된 ''는 과연 어떻게 될까. 그 외에도 대학축제에서 광란의 무대에 서게 된 이야기, 감기의 신을 퇴치하기 위해 맹활약하는 아가씨의 에피소드 등 그녀와의 우연한 만남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우습지만 안타까운 청년의 사연이 이어진다.

 

그때 내 뇌리에 떠오른 건 '또 어쩌다 지나가던 길이었어'라는 말 한마디뿐이었다.

“어차피 꿈이야하고 훼방 놓는 후진 사람은 개한테나 먹혀버려라. 꿈이든 현실이든 그건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내 재능의 보물 상자는 확실히 바닥을 드러낸 듯했다. 그러나 아직 나에게는 전무후무한 재능이 남아 있었다. 망상과 현실을 뒤죽박죽으로 섞어버리는 재능!

오래 전에 모리미 토미히코의 <유정천 가족>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를 너무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어딘가 유쾌하면서도 기묘한, 그리고 현실을 넘나드는 매혹적인 판타지와 특유의 이야기꾼다운 문체와 스토리가 인상적이었다. 이번에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가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개봉을 하게 되면서, 특별판이 출간되었다. 표지도 애니메이션 버전으로 바뀌었고, 영화 포스터와 프레스키트도 함께 받을 수 있는 기회이다. 게다가 영화를 일본의 천재 애니메이터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이 만들었고, 애니메이션 작품상을 수상하고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도 초청받는 등 호평을 받았다고 하니 영화도 기대가 된다. 사실 만화적인 상상력이 돋보이는 너무 귀여운 스토리의 이야기라, 십 년 전에 이 작품을 읽을 때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던 터라 더 기대가 되기도 한다.

사실 스토리는 매우 단순하다. 술자리에서 우연히 만난 '검은 머리의 귀여운 후배 여학생을 짝사랑하는 어수룩한 선배 남학생의 고군 분투기'라는 한 줄로도 설명 가능한 이야기니 말이다. 하지만 상투적이고 평범한 설정으로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상력을 기반으로 종횡무진 마구 달려간다. 그야말로 상큼하고, 유쾌하고, 포복절도에, 아스라한 향수까지 불러온다고나 할까. 그야말로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드는, 상상력을 넘어서 망상력을 보여주는 전무후무한 작품이다. 게다가 너무도 상큼발랄한 스토리라 요즘 같은 봄에 읽기에 딱 좋은 작품이기도 하다. 벚꽃 날리는 밤 거리를 설레는 누군가와 걷는 느낌이 드는 이야기라 싱숭생숭해지는 봄 날씨에 데이트하는 기분이 들테니 말이다. 옆구리 허전한 당신에게, 뭔가 설레는 일 없을까 하는 당신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뉴런하우스 - 너에게 말하기
김정규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 행동의 얼마나 많은 부분들이 사실 껍질에 불과한 것인지, 우리는 내면의 상처들을 만나고 아파하고 눈물을 흘리고 치유가 되기 전까지는 그것을 온전히 깨닫기 어렵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상처들을 억압하여 내면 깊숙이 가둔다. 그것들을 직면하는 것이 아프고 두렵기 때문이다. 상처들은 껍질 속에 갇힌 채 우리의 존재로부터 소외된다. 하지만 그것들은 결코 그냥 없어지지 않는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불쑥불쑥 고개를 내밀어 우리를 불안에 빠뜨리거나 공허와 외로움에 허우적거리게 만든다.

독일에 유학을 온 지 벌써 40년이 다 되어가는 영민은 그 동안 박사학위를 받고 전임강사 자리를 얻어 교수의 꿈을 키워나갔지만, 어렵사리 얻은 자리에 사직서를 던지고 베를린으로 훌쩍 떠나 왔다. 그렇게 베를린에서 연인 한나와 함께 베를린 부부 가족치료 연구소를 열어 심리치료를 하기 시작한 것이 벌써 17년 전의 일이었는데, 그 동안 자신의 삶의 전부라고 여겨왔던 연구소와 한나를 떠나 고국으로 돌아가기로 돌연 결정한다. 모든 것이 안정되어 자리를 잘 잡아가는 시점마다 알 수 없는 감정들이 불쑥불쑥 고개를 내밀었던 것이다.

 

그 즈음 영민은 우연히 한국심리학회 구인광고란을 보게 되었고 셰어하우스인 '뉴런하우스'에서 전문심리치료사를 구한다는 소식을 발견한다. 그곳의 이한빈 대표는 심리치료를 하는 셰어하우스를 구상하게 된 이유로, 오늘날 뿔뿔이 흩어져 각자도생하며 사는 도시의 삶이 우리를 병들게 하고 있다는 생각에 치료공동체를 구상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뉴런이라는 이름도 신경 세포처럼 각각 독립적이면서도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살아있는 생명체, 살아 있는 공동체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지은 것이라고.

 

자신이 벽을 쌓고 있는 줄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참 많다. 외롭다고 호소하는 사람, 모두가 자기를 싫어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아무도 믿을 수 없다고 의심하는 사람, 세상이 무서운 곳잉라고 말하는 사람, 차라리 혼자 사는 것이 편하다고 믿는 사람..... 모두 스스로 벽을 쌓고 있지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뉴런하우스’라는 이름의 셰어하우스는 대학로 인근 평범한 주택으로, 방값이 저렴한 대신 두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반드시 주 2 '창문 닦기 대화모임'에 성실히 참여할 것.

둘째, 입주 기간 동안 일체 자살 관련 행동을 하지 않을 것.

 

신청자들 대상으로 설명회를 하고, 면접을 진행한 다음 최종 선발된 인원은 모두 여덟 명의 남녀. 나이도, 직업도, 성격도, 살아온 환경도 너무 달라 각자의 뚜렷한 개성을 가지고 있는 그들과 집단 상담을 통해 이들을 관찰하고 치유하는 영민의 이야기가 소설처럼 진행되고 있다.

 

 

저자는 게슈탈트 심리학 국내 최고 권위자로 알려 졌는데, 그래서 소설 속 장면들이 모두 허구의 이야기만은 아니라는 점이 더욱 공감과 이해를 불러 일으킨다. 40년 가까이 사람들의 내면을 탐구하고 실제 상담을 통해서 닫힌 마음을 열고,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보아 왔기에 그 과정이란 매우 생생하고 리얼할 수밖에 없다.

 

소설로서의 기승전결이나 사건, 반전 등을 기대하기 보다는 독특한 형식의 심리학서로 읽는 다면 더욱 흥미롭게 이 책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소설로 구성되어 있어 쉽게 술술 읽히지만, 그 속에서 현대인들의 심리와 상처 받은 내면을 숨기고 살고 있는 사람들의 벽을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부록으로 수록된 '마음 들여다보기'에서 조금 더 전문적인 심리학적 이론이 정리되어 있어 전체 소설 내용을 다시 한번 분석해주는 느낌도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