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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야스, 에도를 세우다
가도이 요시노부 지음, 임경화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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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야스는 기다림의 천재였다. 기학적이라고 할 만큼 '견뎌서 이겨내는' 것을 즐기는 인물이었다.

'간토 8주로 가시오.'

육 년 전 히데요시의 명령을 순순히 받아들인 것도 가장 밑바닥에는 이에야스의 이런 기질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전국시대 3대 영웅하면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말하는데, 이 중 최종 승자는 기다림의 미학을 알았던 도쿠가와 이에야스였다. 모 드라마에도 나왔던 이들에 관한 가장 유명한 에피소드로 만약에 울지 않는 두견새가 있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이들 셋의 답은 이러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먹이를 주거나 윽박지르거나 어떻게든 울게 만들겠다고 했고, 오다 노부나기는 울지 않는 새는 죽여 버려야겠다고 했다. 반면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새가 울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대답했다. 훗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자신의 주군이었던 오다 노부나가 암살 당했을 때 반란자를 제압하여 1인자의 자리에 올랐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 후에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해 1인자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이 작품은 바로 그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 시대를 구축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전국시대의 대혼란기, 이에야스의 당시 나이 마흔아홉이었다. 대게 그 나이면 앞날을 생각하기보다 과거를 되돌아보며 은퇴를 하거나 자손들을 위해 평온한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이 보통일텐데, 에야스는 황폐하기 그지없는 땅을 바라보며 새 시대를 꿈꾼다. 이야기의 서두에 이에야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로부터 호조 가문의 옛 영지를 양도받게 되는데, 가신들은 모두 그것을 거절해야 한다며 그를 내쫓아버리기 위한 교활한 술수에 지나지 않는 것을 받아들이는 이에야스를 걱정한다. 하지만 그는 이번 일은 자신의 뜻대로 밀고 나가게 해달라며, 간토에는 미래가 있다고 이야기한다. 모두들 자신을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바로 그거야."

이에야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세대에는 우리 세대만의 상식이 있지.'

화약 냄새, 피 냄새, 살이 타는 냄새가 코를 찌르는 수많은 전쟁터. 그곳에서 살아남은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육감이라는 것이 있다. 이에야스는 곧바로 천수각을 지으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렇게 이에야스는 에도에 발을 들여놓게 되는데,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형편없는 에도성을 보자마자 자신이 실성했는지도 모르겠다며 망연히 중얼거리고 만다. 그곳은 도무지 방벽처럼 보이지 않았고, 나무들만 무성한 것이 마치 황폐한 절 같아 보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에야스는 가신들에게 이곳을 오사카처럼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가신들은 하나 같이 온갖 최신 기술과 문물이 모인 히데요시 정권의 사실상 수도인 오사카를 목표로 삼다니, 너무도 무모하기 짝이 없는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 과연 이에야스는 그의 장대한 계획대로 일본 최고의 도시를 건설할 수 있을까. 이 작품이 흥미로운 것 중의 하나는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이에야스의 등장이 그리 많지 않다는 거다. 강중기를 바꾸고, 화폐를 주조하고, 식수를 끌어오며, 석벽을 쌓고, 천수각을 올리는 각 장 마다 령과 성격이 다양한 여러 기술자들이 등장해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그리고 그런 장인들의 뒤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있다.

사실 일본의 역사에 대해서는 그다지 아는 것도 없고, 에도 시대라는 것은 미야베 미유키나 쓰네카와 고타로의 작품 속에서 만나본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는데 그치지 않고, 수도 시설 정비를 위한 기기들, 화폐 주조의 세밀한 과정, 에도 성 증축에 대한 건축학 정보 등 도시 건설에 대한 지식 등이 총망라되어 있어, 실제로 도시 건설 현장을 직접 목격하고 있는 듯한 생동감이 느껴지도록 하고 있다. 400여 년 전에는 불모지였지만 지금은 세계 최고의 도시 도쿄가 된 땅인 과거의 에도가 구축되는 과정은 그 자체로도 훌륭한 스토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 나처럼 일본 역사에 대한 정보가 그리 많지 않은 이들이라면, '장인정신이 일구어낸 도시 탄생기'로 읽더라도 흥미로운 대목이 많을 것 같다. 그리고 역사 소설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지점, 바로 과거와 현재가 맞닿는 경험과 인내심의 대가 이에야스라는 독특한 인물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는 부분들이 많아 흥미로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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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범죄에 로그인 되었습니다 - 전 세계 사이버심리학 1인자가 말하는 충격 범죄 실화
메리 에이킨 지음, 임소연 옮김 / 에이트포인트(EightPoint)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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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에서 나는 어디에 있을까? 주격 인칭대명사로서 나는 주관적이고 의식적인, 현실 세계 속 진짜 자아다. 사이버 공간의 최전선에서 사이버 자아를 나타내주는 셀피는 모두 목적격 인칭대명사 다. 셀피는 대상이고, 더 깊게 파고들 것이 없는 사회적 가공품이다. 이는 셀피 속 주인공의 표정이 텅 빈 것처럼 보이는 이유일는지 모른다. 그 속에 의식이란 없다. 디지털 셀피는 피상적 사이버 자아일 뿐이다.

사이버 공간은 실재하는 장소일까? 대부분 인터넷을 하다가 정신을 깜빡 놓고는 음식을 태우거나, 약속 시간에 늦거나, 뭔가를 깜빡 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적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온라인에서는 시각 왜곡 효과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게다가 휴대전화 사용자들은 매주 1,500번이나 무심코 휴대전화를 확인하고, SNS 게시물을 수시로 체크한다. 그리고 이런 행동들은 그 사람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무엇은 하고 하지 않는지 알려주는 지표가 된다. CSI, FBI, 인터폴, 백악관이 선택한 세계 최고 사이버심리학자라 불리는 저자는 인류가 점점 사이버 공간으로 이주하는 요즘, 그들의 사용 패턴을 분석하고 실제 그것을 이용한 범죄 사례들을 분석해 인류의 지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고찰하고자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인간과 기술의 교차점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하는 사이버심리학이 그 가치를 어떻게 보여줄 지 기대가 되었다.

저자는 서두부터 이렇게 단언한다. '사이버 환경이 현실 세계보다 안전하며, 온라인에서 타인과 연결되는 것이 직접적인 만남보다 덜 위험하다는 것은 착각' 이라고. 실제로 사람들은 온라인 상에서의 '익명성'이라는 부분 때문 사이버 공간에서 해방감을 느끼고 대담해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셀피(자신이 직접 찍은 사진)와 섹스트(야한 이미지를 주고받는 것)를 비롯해 소셜 네트워크 사이에서 주고받는 추파 메세지 등으로 현실에서는 상식적이고 이성적인 사람들이 사이버 공간에서는 이성과 자제력을 내려 놓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인터넷은 전에 없던 성적 자유를 가능하게 했고, 이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것들을 통해서 누구나 온라인에서 쉽게 사이버 사회화되고 있다. 문제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사이버 환경의 효과나 그 결과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데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사이버라는 미지의 영역은 우리 모두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인류는 사이버 공간으로 빠르게 이주 중이고, 이런 대규모 이동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인터넷이 세상에 등장하고 고작 40년의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현재 32억 명의 사람들이 온라인에 접속해 있다. 2020년까지 15억 명이 더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곧 5년 이내에 약 50억의 인구가 사이버 공간에 공동 거주하게 될 것임을 의미한다.

컴퓨터와 스마트폰 없이 진행되는 삶을 상상하기 어려워진 오늘, 우리는사이버 세상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저자인 메리 에이킨 박사는, 중독될 수밖에 없도록 치밀하게 설계된 사이버 세상에 어떤 끔찍한 부비트랩이 숨어 있는지 우리가 알아야만 한다고 말한다. 게임 중독으로 인해 현실이 엉망진창이 된 사람들, 어른들의 스마트폰 중독이 어린 아이에게 교육적으로 미치는 무시무시함, 사이버 왕따, 소셜 네트워크로 인한 사회적 광기, 디지털 프랑켄슈타인에게 납치당하는 소녀들, 무책임한 셀피로 인한 심각한 문제들, 온라인 데이트 강간, 스마트폰 포르노 산업, 웹갬 성매매로 인한 아동 피해자들 등... 실제로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이버 범죄들의 사례는 그야말로 엄청났다. 이제 더 이상 사이버 범죄라 뉴스에서만 볼 수 있는,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 아닌 것이다. 해킹, 온라인 사기, 살인 청부 암거래, 아동 포르노 제작 등 그 범죄 양상 또한 다양하고, 무엇보다 무심코 클릭한 링크 하나 혹은 고작 몇 분 동안의 로그인이 우리를 무방비하게 범죄 속으로 밀어 넣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범죄자는 사이버 세상에 잘 숨어 있지만, 그에 비해 우리는 완전히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어른들이 사이버 공간에서 10대들을 제대로 보호하거나 지켜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10살짜리 소녀가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검색할 수 있는 기술은 지능적이지만, 인공지능이 정보를 제공하는 상대가 10살짜리 아이라는 사실은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때부터 그 아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아이는 우연히 부적절한 사이트에 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고, 아이의 호기심 때문에 문제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거다. 우리는 아이가 기계나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데 도사리고 있는 윤리적 문제를 충분히 생각해본 적이 없다. 인간이 만든 기계가 인간에게 해를 끼칠 때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 매우 재미있고 쉽게 술술 읽히지만, 그 기저에 깔린 심각성과 위험성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이 두툼한 책을 다 읽고 나자 다시 한번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아이가 있는 부모라면, 누구나 꼭 한번 이 책을 읽어보았으면 한다. 사랑하는 이들이 잔인한 함정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당신의 아이가 로그인하기만을 기다리는 사이버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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펫숍 보이즈
다케요시 유스케 지음, 최윤영 옮김 / 놀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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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펫숍의 뭐가 나쁘냐고!"

아니나 다를까, 고타가 폭발했다. 시카다 씨는 앉은 채로 빙그르르 의자를 돌려 우리를 정면으로 쳐다봤다.

"나는 동물을 좋아해. 당신들과 다르지. 잘 팔리는 동물만 모아놓고는 유행 지나면 홱 갖다 버리는 짓 너무 무책임하지 않아? 인기 있는 종류만 모아놓고선 그 다음은 나몰라라 하고. 진짜 싫어."

"우리는 그런 안일한 생각으로 일하고 있지 않아!"

 

이야기의 배경은 '유어 셀프 가미조 지점 펫패밀리' 라는 대형 홈센터 내에 자리한 펫숍이다. 이곳에서는 포유류와 열대어, 곤충에서 파충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동물을 취급하고 있는데, 정직원은 점장을 포함해 단 세 명이고, 기본적으로는 파트타임 직원과 아르바이트생으로 운영된다. 주인공 미나미 가쿠토는 취업준비생이자 펫숍의 아르바이트생으로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씨 착한 인물이다. 펫숍의 분위기 메이커인 구리스 고타는 광적일 정도로 엄청난 동물 애호가로, 원래는 수의사를 꿈꾸며 대학에 들어갔지만 중퇴하고 지금은 아르바이트만 하는 프리터이다. 그리고 이십대 중반의 가게 주임인 가시와기 료야는 술도 약하고, 새소리만 들어도 기겁하는 겁쟁이지만 일을 매우 잘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의 교육 담당이다.

 

 

 

이들 세 인물은 동물을 사랑한다는 공통점으로 똘똘 뭉치는데, 펫숍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풀어나가면서 인간관계에 대한 깨달음도 얻어가며 성장한다. 여섯 가지 에피소드들은 각각 별개로 읽어도 재미있을 만큼의 아기자기한 사건, 사고를 보여준다. 펫숍의 직원과 단골손님, 그리고 의문의 인물들이 얽히는 여섯 가지 사건들은 당연히 모두 동물과 관련되어 있다. 사람처럼 말을 하는 잉꼬 유리, 사랑스러운 고양이 아메리칸 쇼트헤어, 야생의 북방여우, 도롱뇽의 일종인 일본얼룩배영원, 항상 웃는 인상의 개 사모예드 등이 그 주인공이다. 주인공인 가구토처럼 동물에 관한 전문 지식이 없더라도, 모두 흥미롭게 읽을 수 있도록 간단한 설명 들도 이야기 속에 있어 굉장히 재미있다. 시시하고, 엉뚱해 보일 수도 있는 사건들이지만 보통 사람들에게는 평범하고도 중요한 문제가 되는 일상의 풍경들이라 공감할 만한 대목도 많았고, 무엇보다 책을 읽는 행위 자체에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스토리라 따뜻했다.

 

 

정말 다행이야. 나보다 더한 둔감왕이 여기에 있었다니..........

가시와기 씨는 뒤이어 선생의 품에 안겨 있는 여우를 보며 "아이까지 있었다니....... 알았어요. 인간 대표로서 먹이는 댈게요"라고 말해서 선생님을 불안에 떨게 만들었다. 고타는 웃어도 좋은 상황이라 판단했는지 깔깔거리며 웃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여우에게 마음속으로 속삭였다.

'인간도 나쁜 사람만 있는 건 아니야.'

 

다케요시 유스케는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한 일본의 추리 작가이자 사서이다. 그의 기존 작품들이 정통 미스터리에 가까웠다면,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품 <펫숍 보이즈>는 코지 미스터리 형식으로 아주 평범한 등장인물들이 힘을 모아 사건을 하나씩 풀어가는 과정 속에서 유머와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한정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매우 소소한 사건들이 코지 미스터리로서의 매력도 충분히 보여주고 있지만, 코믹한 청춘 소설로서의 재미도 그에 못지 않다. 깔깔대고 웃게 만드는 순간도 있었고, 뭉클함이 느껴지는 대목도 있었으며, 무엇보다 동물을 사랑하고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온 입장에서 너무도 친근하고 사랑스러운 작품이었다.

 

 

극중 가쿠토가 생각하는 것처럼, 결국 인간도 개도 서로 다른 개체이지 않나. 하지만 인간들은 개의 얼굴을 보며 '웃고 있으니 행복한가 보네' 하고 믿는 수밖에 없다. 아무리 개가 인간의 최고 파트너라고 할지라도 머릿속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건 아니니 말이다. 그리고 이건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같은 언어로 말이 통해도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악의가 없는 선의의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생긴다. 평생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 또한 많으며, 이렇게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일 자체가 어렵다는 거다. 이렇게 동물들의 경우에서 비롯된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결국엔 사람들간의 관계에 대한 고찰로 이어지는 드라마도 훌륭했다.

그리고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 중 하나는, 한국어판에서만 볼 수 있는 일러스트가 아닐까 싶다.

<재수의 연습장>의 저자 재수가 그린 일러스트들은 에피소드의 한 장면을 보여주기도 하고,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인물과 동물들을 사랑스럽게 포착하고 있기도 하다. 몇몇은 마치 웹툰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면서, 이 소설을 더욱 유쾌하고 사랑스럽게 만들어 주고 있다. 그리고 띠지에는 소설 속 캐릭터들의 성격과 행동을 잘 포착해서 그린 인물 소개 일러스트가 숨겨져 있어 그것 또한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실제로 많은 동물들이 이기적인 인간들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지만,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처럼 진심으로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도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통해서 더 많은 이들이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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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대신해 드립니다
하라다 마하 지음, 김성미 옮김 / 북플라자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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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늘도 잠깐, '토막 여행' 어떠셨나요?

정말 여행은 신기하네요.

떠나보면 다양한 것을 발견해요. 새로운 만남이 있어요.

떠나보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가 없어요.

그러니 아무튼 떠나지 않으실래요? 마음의 세탁, 잠깐의 휴식.

<낙원의 캔버스>, <암막의 게르니카>로 만났던 하라다 마하의 소설이다. 이번에는 미스터리가 아니라 감동과 힐링의 드라마라고 하니 기대가 되었다. 이야기의 주인공 오카에리는 여행을 다니는 방송인이다. 그녀는 한때 아이돌이었지만 7,8년 전부터는 '전직 아이돌 출신 방송인'이라 불렸고, 2,3년 전부터는 '인기 없는 방송인'으로 불렸다. 지금 그녀가 유일하게 맡고 있는 방송은 바로 '토막 여행'이라는 프로그램이다. 스탭 몇명과 함께 가족처럼 팀을 꾸려 일본 열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프로그램인데, 저예산임에도 불구하고 기적적으로 5년째 폐지되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그렇게 오카에리가 여행 방송 리포터로 방송을 이어가는 덕분에, 그녀가 소속한 회사의 직원 세 명이 어떻게든 먹고 살고 있는 형편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유일한 협찬사의 제품명을 경쟁사의 그것으로 잘못 말하는 바람에 프로그램 자체가 없어지고 만다.

갑작스럽게 궁핍한 상황에 빠진 오카에리와 소속사 사람들은 옷을 벗는 화보라도 찍어야 되나 어쩌나 하면서 고민을 하는데, 그녀와 사장 모두 고향에 다시 돌아갈 생각은 없었기에 난감하기만 하다. 그러던 중 우연한 계기를 시작으로 남을 대신해 여행을 떠나는 일을 하게 된다. 그런데, 여행이라는 것은 직접 가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인데, 그것을 타인에게 맡기는 것을 과연 여행이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 여행 그 자체를 누군가가 대신 해준다는 다소 황당하고 이상한 설정은 이 작품의 이야기를 어디로 끌고 가게 될까.

"의미 없는 여행 같은 건 없어요."

타이시 씨는 조용히 말했다.

"이 여관에 있으면 매일같이 여러 곳에서 다양한 목적을 가진 여행자를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목적이 없는 사람도 많아요. 뭘 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사람도요. 하지만 그들 모두 뭔가를 꼭 얻고 돌아갑니다."

몸이 불편한 딸을 대신해 가족 여행을 가달라는 어머니부터 각자 여행을 떠날 수 없는 절절한 사연을 가진 이들의 의뢰가 이어진다. 그렇게 시작된 '여행대리업'은 기본적으로 인터넷으로 영업을 한다. 의뢰인은 언제, 어디로, 무엇을 하러, 어떤 이유로 오카에리에게 여행을 부탁하고 싶은지를 메일로 써서 보내고, 그 내용을 토대로 일주일에 한 건만 의뢰를 받는 것이다. 사례금은 의뢰인에 따라서 천차만별이라 상담을 통해서 결정을 하게 되었고, 오카에리는 본격적으로 '나그네' 생업을 재개하게 된다. 항상 꿈꿨던 '일상의 중심이 여행이 된 삶, 여행을 축으로 돌아가는 생활'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여행을 떠나야만 얻을 수 있는 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누구나 일상을 벗어나 잠시라도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원하는 때에 여행을 떠나기 힘든 이들이 훨씬 더 많다. 하라다 마하는 바로 그런 이들을 위해 여행을 대신 떠나는 인물로 드라마를 쓴 게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는 여행을 통해서 삶에 필요한 활력소를 얻고, 일상에서 얻지 못하는 지혜를 얻고, 평생 간직할 수 있는 추억이라는 선물까지 받는다. 하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지금 떠날 수 없었다면, 이 책을 읽으면 어떨까. 당장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근질거리던 욕구를 충분히 해소 시켜 주고, 가슴 따뜻한 감동과 힐링도 함께 안겨 줄 것이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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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의 추억 - 한가람 대본집
한가람 지음 / 북로그컴퍼니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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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 "그러지 말고 내가 먼저 죽으면 언니가 좀 불러줘. 내 구 남친들."

해원 : ". 불러서 뭐하게. 뺨이라도 한 대 치게?"

여름 : "고맙습니다."

해원 : ('' 쳐다보면)

여름 : "이렇게 별거 아닌 나를. 한때라도 빛나게 해준 당신. 감사합니다.

JTBC 드라마페스타 [한여름의 추억] 영상 대본집이 출간되었다. 원래 방송된 드라마는 4회 차의 원작을 2부작 방송용으로 재구성한 것이었다. 그래서 이 대본집이 더 특별한데, 이 책에는 전반부에 2부작 방송용 대본과 스틸 사진이 실려 있고, 후반부에 총 4회로 구성되었던 원작 대본을 함께 실어 놓았다. 무엇보다 4회 차의 대본에는 방송에는 없었던 '세진'이라는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그러니 우리는 이 대본집을 통해서 원래 방송에서 맛본 그 여운과 함께 전혀 다른 새로운 이야기도 함께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주인공 한여름, 12년차 라디오 작가로 서른일곱이다. 그녀도 서른 이전에는 예쁘고 매력 있었던 보통 여자였지만, 지금 그녀를 사랑해주는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다. 그리고 그녀와 한때 사랑을 했던 여름의 남자들 네 명. 한여름이 가장 사랑했던 남자 박해준, 팝 칼럼니스트로 이성적이고 칼 같은 성격의 소유자이다. 과거에 여름에게 프로포즈 했지만 능력과 배경이 안 된다는 이유로 거절당한 후 사랑을 믿지 않는다. 라디오 PD인 오제훈은 돌싱으로 이 여자 저 여자와 동시다발 썸을 타는데, 작가들 사이에서도 바람둥이로 유명하다. 한여름과도 썸을 탔었는데, 애매모호한 걸 딱 질색하는 여름과는 지금도 데면데면하게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여름과 대학시절 C.C.였던 김지운, 대기업 연구팀 대리로 활발하고 낙천적인 성격이다. 여름과 연애 시절에 징글징글하게 싸운 기억들 뿐이라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해 한다. 여름이 고3 때 만났던 최현진, 그녀의 첫사랑이다.내숭 떠는 여자들은 재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소개팅에 나오는 여자들은 하나같이 그런 여자들뿐이다.

 

여름과의 연 후 그들 남자들의 현재 각기 다른 사람과 연애를 하고 있지만, 여름과 보낸 시간들은 여전히 그들의 현재 연애관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솔직한 여자가 싫다. 불같은 여자가 싫다. 첫사랑을 믿지 않는다. 사랑을 모두 믿지 않는다.

 

 

 

나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당신이 구겨서 버린 편지 속에

두 갈래로 찢긴 사진 속에

평생 열지 않을 상자 속에

서랍의 끝머리와 삭제된 메일함 속에

고함 한 번 지르고 온 바다 속에

그리고 언젠가 당신과 함께했던 시간 속에.

 

 

 

 

 

 

여름 또한 그들 네 명의 남자들을 만나 오면서... 조금씩 달라졌다. 그들 각각이 여름을 완전히 다르게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여름은 그 연애들을 통해서 달라지고, 배우고, 성장했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어릴 때 잠깐 만났던 선배를 통해선 마음을 감추고 내숭만 떨면 누구도 내 진심을 몰라준다는 걸 배웠고, 스무살 즈음 지겹게 싸워댔던 남자친구한테선 헤어지자는 말을 함부로 해선 안 된다는 걸 배웠다. 가장 오래 만났던 남자한테선 자신의 욕심 때문에 상대의 진심을 짓밟으면 벌을 받는 다는 사실도 깨달았고... 그 외에도 비 오는 날 어떤 음악을 들으면 좋은지, 와인은 어떤 게 좋은 건지, 맥주를 맛있게 마시는 방법은 뭔지 등등을 지난 연애에서 배웠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거쳐 온 서른 일곱의 여름은 지금, 외롭다. 이제 반짝반짝하던 시절은 지나가 버렸고, 남자들은 더 이상 그녀를 바라보지 않는다.

 

 

 

여름은 생각한다. 지금의 내가 너무 거지 같아서, 누군가에게 사랑받았던 그 언젠가의 일들이 전부... 꿈같다고. 분명 내 인생에 어떤 시기에는 내가 엄청 빛났었던 것 같은데 단숨에 초라해져버린 것 같다고. 꼭 누가 불을 끄고 가버린 것처럼. 분명 사방이 빛이었던 때도 있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하지만 여름은 이런 생각도 한다. 내가 죽으면 내 구 남친들이 모두 장례식에 와 줬으면 좋겠다고. 여름과 친한 라디오 작가 선배인 해원은 묻는다. 지나간 남친들을 불러서 뭐하려고 그러냐고. 여름은 그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는 거다. 빛나고 아팠지만 모두 당신 덕분이라고. 이렇게 별거 아닌 나를, 한때라도 빛나게 해주어서 고맙다고 말이다.

 

방송을 보면서 느꼈던 뭉클함과 안쓰러움과 싱그러움과 설레임이 대본을 읽는 내내 페이지 가득 묻어났다. 무엇보다 서른 일곱이라는 나이에 여름이 느끼는 주변의 시선들이 안타까웠는데, 이 책에만 실려 있는 4회로 구성된 대본에서 현재의 그녀에게 새롭게 나타난 존재가 있어 조금은 충족된 느낌도 들었다. 과거의 연인들과의 추억 만으로 여름의 생을 구성하기에는, 최강희라는 배우가 만들어낸 여름이라는 캐릭터가 아까웠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렇게 나이 먹고 초라해진 그녀에게 새롭게 찾아온 사랑이라는 존재가 신선했고, 설레였다. 마치 극중 여름처럼 내가 새로운 존재와 사랑에 빠지기라도 한 것처럼.

한가람 작가는 "내가 죽으면 슬프다고 울어주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라는 의문에서 이 모든 이야기가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어느 날 갑자기 죽어버렸는데 아무도 울지 않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너무 잔인한 설정이 아닌가 싶겠지만, 어쩐지 그게 당연한 현실일 것만 같았다는 거다. 그래서 이 현실적인 연애 이야기는 조금 슬프고, 허망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만큼 공감할 부분이 많고, 매 장면이 모두 다 내 얘기 같아서 이해되는 그런 이야기였다. 누구나 한번쯤 쳐다만 봐도 두근 거리고, 잠을 못 이룰 만큼 설레고, 다시 생각해보면 너무 창피한, 그럼에도 다시 한번 할 수 있다면 내 남은 생에 무엇을 줘도 아깝지 않겠다 싶은 그런 감정들을 겪게 된다. 누구나 연애를 하면서 예쁘고 아름다운 순간만 겪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욱하기도 하고, 비굴해지기도 하고, 못될 때도 있고, 지긋지긋할 때도 있다. 그러니 나도 한때 한여름이었고, 당신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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