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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 (특별판)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우리 주위를 보면, 국면 타개를 위해 조바심 치며 먹구름에 싸인 성으로 돌격하다가,
결국은 옥쇄하고 마는 바보들이 일일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들은 분명 사랑스러운
남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만용은 있어도 용기는 없는 남자들이다...우선은 그녀가 나라는 보기 드문 존재에 익숙해져야 한다.
본체 공략은 그 뒤다.
5월의 어느 날, 주인공 ‘나’는 대학 선배의 결혼을 축하하는 술자리에 참석했다가
테이블 구석에 앉아 있던 '그녀'를 보게
된다. 클럽 후배인 그녀에게
첫눈에 반했는데, 워낙
어수룩한 성격 탓에 아직 친근하게 말 한번 주고받지 못했던 거다.
술자리가 끝나고
2차에 합류하지 않는 그녀를 쫓아 어떻게든 말을 건넬 기회를 노리고
따라갔는데, 그만 골목에서
그녀를 놓치고 만다. 그렇게
그는 이야기의 무대에서 의도와 상관없이 퇴장하고,
그녀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녀는 술자리에서 선배들 틈에 편하게 술을 마실 수 없었던 터라, 조심할 것 없이 술을 마셔보고 싶어 아는 사람이
가르쳐준 바로 향한다. 거기서
처음 보는 중년 아저씨가 불쑥 말을 걸어와 이야기를 나누다 자리를 옮기게 되고, 그녀의 가슴을 만지려는데 누군가 나타나 그녀를 구해주게
된다. 그렇게 키고 크고
늠름한 여성 하누키 씨와 색 바랜 유카타를 입은 히구치 씨를 알게 되어 그들과 또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윤기 있는 검은 머리를 단정하게
자른 아담한 체구의 귀여운 ‘아가씨'는 너무도
순수하고 맑고 천진난만해 현실에서는 전혀 없을 것 같은 캐릭터이다.
그래서 더욱 그녀에 대한 망상 가득한 한 남자의 짝사랑이 그럴 듯해 보이기도
하고, 생판 처음 만나는
이들과 너무도 잘 어울리고, 그들을 아무런 의심 없이 믿는 모습 때문에 이어지는 황당한 에피소드들이 이상하지 않게 느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두 번째 에피소드인 헌책시장에서 생긴 일들은 더
재미있는데, 악랄한 수집가를
응징하기 위해 온 헌책시장의 신은 정말 기발한 설정이 아니었나 싶다.
책과 수집가의 만남을 이루어지게 하기도 하지만 맘에 안 들면 무시무시한 벌도 내린다는 헌책시장의
신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진짜 모습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한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헌책시장의 신이 어떤 모습인지는 직접 읽어
보시길. 어린 시절 애지중지
읽고 또 읽던 동화책을 찾으려고 하는 아가씨와 그 책을 구하기 위해 자극적인 냄새가 나는 뜨겁고 매운 냄비요리를 먹는, 그야말로 목숨을 건 처절한 시합에 나서게
된 '나'는 과연 어떻게 될까. 그 외에도 대학축제에서 광란의 무대에 서게 된
이야기, 감기의 신을 퇴치하기
위해 맹활약하는 아가씨의 에피소드 등 그녀와의 우연한 만남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우습지만 안타까운 청년의 사연이 이어진다.
그때 내 뇌리에 떠오른 건 '또 어쩌다 지나가던 길이었어'라는 말 한마디뿐이었다.
“어차피
꿈이야” 하고 훼방 놓는 후진
사람은 개한테나 먹혀버려라. 꿈이든 현실이든 그건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었다.
내 재능의 보물 상자는 확실히 바닥을 드러낸 듯했다. 그러나 아직 나에게는 전무후무한 재능이 남아
있었다. 망상과 현실을
뒤죽박죽으로 섞어버리는 재능!
오래 전에 모리미 토미히코의
<유정천 가족>
과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를 너무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어딘가 유쾌하면서도 기묘한, 그리고 현실을 넘나드는 매혹적인 판타지와 특유의
이야기꾼다운 문체와 스토리가 인상적이었다. 이번에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가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개봉을 하게 되면서,
특별판이 출간되었다.
표지도 애니메이션 버전으로 바뀌었고, 영화 포스터와 프레스키트도 함께 받을 수 있는 기회이다. 게다가 영화를 일본의 천재 애니메이터 유아사 마사아키 감독이 만들었고,
애니메이션 작품상을 수상하고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도 초청받는 등 호평을 받았다고 하니 영화도
기대가 된다. 사실 만화적인
상상력이 돋보이는 너무 귀여운 스토리의 이야기라,
십 년 전에 이 작품을 읽을 때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던 터라
더 기대가 되기도 한다.
사실 스토리는 매우
단순하다. 술자리에서 우연히
만난 '검은 머리의 귀여운
후배 여학생을 짝사랑하는 어수룩한 선배 남학생의 고군 분투기'라는 한 줄로도 설명 가능한 이야기니 말이다. 하지만 상투적이고 평범한 설정으로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상력을 기반으로 종횡무진 마구 달려간다. 그야말로 상큼하고, 유쾌하고,
포복절도에,
아스라한 향수까지 불러온다고나 할까. 그야말로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드는, 상상력을 넘어서 망상력을 보여주는 전무후무한
작품이다. 게다가 너무도
상큼발랄한 스토리라 요즘 같은 봄에 읽기에 딱 좋은 작품이기도 하다.
벚꽃 날리는 밤 거리를 설레는 누군가와 걷는 느낌이 드는 이야기라 싱숭생숭해지는 봄 날씨에
데이트하는 기분이 들테니 말이다. 옆구리 허전한 당신에게, 뭔가 설레는 일 없을까 하는 당신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