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의 철학 - 깊은 공부, 진짜 공부를 위한 첫걸음
지바 마사야 지음, 박제이 옮김 / 책세상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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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깊게 공부하는 이유는 환경의 동조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다. 근본적으로 깊은 공부, 즉 래디컬 러닝이란 언어 편중적 인간이 되는 것이다. 언어 편중적 인간이 된다는 것은 어떤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행위 하기 위해 언어를 사용하는 상태에서 벗어나 언어를 그 자체로서 조작하려는 의식을 높이는 것이다. 언어의도구적 사용에서완구적 사용으로 향하는 것이다. ‘굳이 말하려면 할 수 있지하는 감각으로. 마치 장난감을 다루듯 언어를 조작하며 환경의 요구에서 벗어나 자신이 지니게 될 다양한 가능성을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게 된다.

공부란 무엇인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부'가 비단 학창시절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걸 누구나 알고 있다. 해외 여행을 위해 외국어를 공부한다거나, 회사 업무에 필요한 서류 작성이나 컴퓨터 기술을 공부한다거나, 정년 후에 철학이나 종교에 대해 배우거나, 취미로 미술이나 악기를 배워 본다거나, 재테크를 위해서도, 집을 장만하기 위해서도, 아이를 낳고 육아를 위해서도, 우리는 매번 공부를 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들이 시작할 때는 누구에게나 '처음'이니 말이다. 공부란 책을 통해서도, 인터넷을 통해서도, 학원이나 모임 등을 통해서도 시작할 수 있다. 문제는 요즘 시대가 그에 대한 정보가 너무나 넘쳐나는 시대라는 거다. 저자의 말처럼 현대는 그야말로 '공부의 유토피아'라고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에서 정보 과잉 상황을 공부의 유토피아로서 적극 활용해 나름의 깊이 있는 사고를 하는 방법에 대해 고찰한다.

입시와 취업 때문이 아니더라도, 대부분 우리는 거의 평생을 공부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하며 살아간다. 공부란 무엇이고, 왜 필요하며, 어떻게 해야 남들과 차별되는 공부를 해나갈 수 있을까? 그런데 저자는 시작부터 '공부란 곧 자기 파괴다'라는 파격적인 주장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는 새로운 지식과 스킬을 더하는 것이 공부라는 생각부터 버리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냥 공부가 아니라, 깊이 있는 공부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지금보다 많은 가능성을 생각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새로운 자신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의 여지를 열어야 한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파괴하고, 새롭게 변신하며, 자기만의 언어를 갖는 일이 깊은 공부를 향한 첫 걸음이다.

정보 과잉 시대인 현대에는 유한화가 절실한 과제다. 날마다우선은 여기까지 해냈다는 경험을 쌓아가자. 하나의 임시 고정에서 새로운 임시 고정으로 나아간다. 이것이 바로 공부를 계속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공부는 어떤 단계에서 그만두더라도 나름대로 공부했다고 말할 수 있다. 바로 중단에 의한 임시 고정이다.

그렇게 공부의 언어론적 고찰을 비롯한 원리가 이어지다 3장부터 공부의 주제를 찾아내는 방법과 관련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실천편이 시작된다. 특히나 흥미로운 부분은 바로 4장인데, 공부를 진행하는 데 필요한 기초적인 기술이 본격적으로 소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이 장에서 파격적인 주장을 하고 있는데, 바로 '완벽한 독서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독서라 하면 처음 나오는 문장부터 마지막 마침표까지 통독하는 거라고 생각할 텐데, 통독했다 하더라도 기억하는 내용은 부분적이므로 실제로 '완벽하게'는 읽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띄엄띄엄 읽는 것도 충분히 독서라고 말한다. 심지어 목차만 파악해도, 나아가 제목만 보더라도 어떤 말은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그가 말하는 독서의 본질이란 대체 무엇일까. 깊이 있는 공부를 위한 것이 다독이나 통독이 아니라면 말이다.

이어지는 독서의 기술, 노트의 기술, 그리고 글쓰기의 기술에는 매우 실용적인 팁들도 함께 담겨 있다. 어떤 분야를 완벽하게 통달한 '공부 완료' 상태란 있을 수 없으므로, 어느 정도 '일다는 공부했다'는 상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그리고 비로소 '중단을 통해, 일단 공부를 성립시킬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완벽이란 존재하지 않으므로, 어떤 단계에 있든 '나름대로 공부한' 것이니 말이다. 중요한 것은, 일단 중단한 후에는 반드시 재개해야 한다는 것. 중단과 재개를 반복해야 한다는 것이 포인트이다. 굉장히 흥미로운 책이었다. 애초에 들뢰즈와 가타리의 철학과 라캉의 정신분석학을 배경으로 시작된 이 책은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읽다 보면 그가 제안하는 공부 프로세스에 나도 모르게 현혹되고 말 테니 말이다. 철학적으로 읽어도 재미있고, 공부에 관한 에세이로 읽어도 훌륭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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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몰래 널 사랑하고 있어
뤼후이 지음, 김소희 옮김 / 밝은세상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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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같은 이야기로 건네는 위로는 확실히 비현실적인 측면이 있다. 그러나 어느 날 삶에 크게 일격을 당하고 나면, 우습게 보았던 문장들이 막막하고 어두운 밤에 희미한 한 줄기 빛이 되어주기도 한다. 마음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이야기 하나가 흐르는 피를 잠시 멎게 해줄 유일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페이지에 써 있는 문구에 가슴이 쿵 했다. 그건 바로 <믿어도 좋다. 세상은 당신을 도울 준비가 되어있다>라는 평범하지만 힘 있는 두 문장이었다. 사실 에세이라는 형식으로 출간되는 작품들이 공통적으로 전달하려는 이야기가 대부분 사랑과 희망, 꿈 등 긍정적인 메세지라서 이런 류의 책을 읽을 때 어느 정도 뻔한 이야기를 할 거라고 지레 짐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책을 읽기도 전에 어느 정도 마음에 방어막을 치고 시작했는데, 믿어도 좋다는 이 문구 하나에 뭔가 봉인 해제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거다.

이 책은 총 8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중국에서 숫자 8은 부귀영화를 상징한다고 한다. 구성부터 뭔가 행운을 상징하는 것 같은 저자의 이야기는 뻔한 것 같으면서도 식상하지 않았고,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특별한 공감대를 만들어 주었다. 가족과 친구, 연인간의 사랑과 나 자신에 대한 사랑, 그리고 결혼이라는 현실적인 문제와 낯선 이들과의 관계, 우리가 삶에서 겪게 되는 역경과 실수 등 다양한 생각할 거리들이 실제 사례로 소개되고 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모두 동시대성을 가지고 있어 중국의 그것이기도 하지만, 2018년 현재 대한민국의 그것처럼 고스란히 읽히고 이해되고 공감이 되고 있었다.

 

삶에서 놓치고 사는 것들이 있다. 누군가의 행동에 실린 호의와 진심을 우리는 돌아선 후에야 알게 되기도 한다.

삶이 나를 못난이 취급하며 마구 괴롭힌다는 생각이 들 때, 내가 만난 모든 것들이 못생긴 개구리처럼 보일 때, 비극으로 생각하는 대신 입을 한번 맞춰보자. 개구리가 왕자로 변해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는 그녀가 만났던 할머니 세 분에 관한 이야기였다. 파리에서 만난 이웃 할머니는 일흔을 훌쩍 넘긴 분이었는데, 가까운 가족이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쓸쓸함이나 슬픔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고 한다. 방안 구석구석 새로운 꽃들이 있고, 찻잎과 커피가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고, 시를 읽으며 젊은이들과 대화하는 걸 좋아하는 매력적이고 우아한 할머니. 두 번째는 소문난 대갓집의 친척 할머니인데, 고풍스럽고 단정했던 그 분은 가세가 기울어서도 기품과 품위를 잃지 않는 분이었다. 세 번째는 동네에 살던 가난한 할머니인데, 자녀들에게 버림받은 후 작은 집에 혼자 사시는 분이었다. 가난하고 고된 삶을 사시는 분이었지만, 언제나 흐트러짐이 없으셨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청결 그 자체에, 입가에는 언제나 미소가 걸려있는 분이었다. 저자는 시시각각 할머니와의 기억들을 떠올리며 부끄러운 스스로를 돌이켜 반성하고는 한다고 했다. 운명과 처지는 제각각이었지만 모두가 품위 있는 삶을 살아냈던 세 할머니의 일화가 감동적이었다. 항상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내 삶을 돌볼 시간도, 힘도 없다고 투정했던 시간을 돌이켜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중국 젊은이들이 가장 사랑하는 에세이스트 뤼후이의 최신작이다. 발표하는 책마다 100만 부 이상 판매되어 ‘100만 베스트셀러 작가로 불리기도 한다는데, 왜 젊은 세대들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는 작가인 지 알 것도 같다. 그녀는 언제나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삶에서 글감을 찾는다고 하는데, 덕분에 뜬구름 잡는 위로가 아니라 현실에 굳건하게 발을 디디고 있는 글을 통해서 진심을 전달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샌가 정말 그녀의 말처럼 세상을 보게 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세상이 혹독하게만 보여도, 유독 운명이 나한테만 가혹한 것 같아도,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세상이 몰래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데 아직 모르고 있을 뿐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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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힘 - 영원한 세일즈맨 윤석금이 말한다
윤석금 지음 / 리더스북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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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즈는 개인의 역량이 최대화되었을 때 성공할 수 있는 분야다. 거기에 지식, 정보, 경험, 언변, 호감도가 혼합되어야 성과를 높일 수 있다. 그렇다고 세일즈맨 개인의 역량에만 의존해서는 곤란하다. 개인의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회사의 시스템이 뒷받침되어야 탁월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회사가 아무런 뒷받침도 하지 않고 모든 걸 세일즈맨 개인의 능력에 떠맡기면 지속적인 성과를 유지하기 어렵다.

오랜 시간 기업을 경영해 온 한 회사의 수장이 자신은 언제나 '사람의 힘'을 믿고 이를 활용해왔다고 한다는 것부터 뭔가 뭉클한 부분이 있었다. 사실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이가 누가 있겠나. 하지만 직장 생활을 몇 년 만 해보았다면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다. 정작 회사에서 중요한 게 여겨지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고 말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윤석금 회장이 운영하는 웅진그룹에 다니는 사원들은 참 행운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문화, 학벌, 고향, 성별로 차별을 두지 않는 공정한 인사제도와 윤리적이고 투명한 기업 경영으로 쌓은 노사 간의 신뢰를 통해 사람이 가진 힘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회사란 절대 흔치 않으니 말이다. 이 책은 윤석금 회장이 오랜 사업 경험을 토대로 영업과 세일즈에 대한 애정과 사람 경영을 하며 얻은 정신적 가치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이제는 부모에게서 경제적인 도움을 받지 못하는 흙수저라는 표현이 익숙해진 사회, 게다가 하루가 다르게 끔찍한 뉴스 보도가 이어지고 있는 헬조선에서 젊은 세대들에게 취업이란, 그리고 꿈을 이루는 것이란 희망보다는 좌절에 가까운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그런 시대에 살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윤석금 회장의 사례는 엄연히 흙수저도 오직 자신의 능력으로 금수저가 될 수 있고, 위기와 좌절을 겪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교과서 같은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영어로 된 백과사전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판매한 세일즈맨이라는 안정된 자리를 버리고 회사를 설립해, 창업 10년 만에 최고의 교육문화 기업으로 성공시킨 윤석금 회장. 게다가 건설 사업 실패로 기업회생을 신청했을 때도 그가 믿는 '사람의 힘'으로 14개월 만에 기업회생에 성공했다. 그야말로 우리나라 기업 운영의 모범적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일방적으로 지시만 하는 리더 밑에서 어떻게 조직원의 창의력과 조직의 경쟁력이 자랄 수 있겠는가. 리더가 새로운 의견이나 정보를 무시한 채 자신의 경험만을 결정의 잣대로 삼으면, 시대에 뒤떨어진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훌륭한 리더는 아랫사람들을 통해 다양한 의견과 정보를 접하고, 그것을 자신의 경험과 종합해 최선의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다.

특히나 흥미로웠던 부분은 그가 사업을 하면서 스토리를 많이 활용해왔다는 부분이었다. 경쟁 제품과 확실하게 차별화되는 독특한 이미지를 만들고, 고객이 그 제품에 특별한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이 모두 '스토리의 힘'이라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알려주는 훌륭한 스토리텔링을 위한 10가지 법칙으로 정리해서 보여주고 있다. 첫마디에서 호기심을 끌어야 하고, 진실해야 하며, 제품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스토리를 만들어야 한다. 소재가 풍부해야 좋은 스토리가 나오며, 무엇보다 쉬워야 하고, 감동이 있어야 한다는 식의 법칙들은 영업이라는 경험이 전혀 없는 내가 읽기에도 마음을 이끄는 대목들이 많이 있었다. 현재 세일즈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굉장히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 외에도 매력적인 영업인이 되는 10가지 방법, 실무자들을 위한 효과적인 코칭 10계명,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살아가는 리더가 해야 할 일 다섯 가지, 임원이 꼭 지켜야 할 20가지, 팀장 이상의 관리자들이 지켜야 할 사항 20가지 등등... 실제로 기업을 운영하고 있거나 회사에 다니고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도움이 될 만한 실용적인 정보들이 가득하다. 그러니까 이 책을 그룹 회장이 자신의 성공담을 들려주는 자서전 식으로 보면 안 된다. 이 책은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하는 이들에게도, 실제 사회 생활을 하며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오래 전에 먼저 겪은 사회 선배의 경험담으로 읽어야 한다. 웬만한 자기 계발서 못지 않게 밑줄 긋고 싶은 대목도 많았고, 경영과 영업에 대한  성공 사례들이 담겨 있어서 흥미로웠다. 딱딱하고, 교과서적인 정보만 나열하고 있는 게 아니라 실제 경험을 통한 드라마가 함께 있는 이야기라 술술 재미있게 읽힌다는 점도 장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 기업의 그룹 총수가 이렇게 사람 냄새나는 인물일 수도 있다는 어떤 사회적인 편견을 깨주는 책이기도 해서 좋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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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시간의 역사 - 시곗바늘 위를 걷는 유쾌한 지적 탐험
사이먼 가필드 지음, 남기철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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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가 우연인가, 아니면 모든 일은 정해져 있는 것인가? 우리가 만든 물건에 대한 통제력을 잃은 것인가? 30초 일찍 경기장을 나섰다면, 좀더 세게 페달을 밟아 한 바퀴만 더 빨리 달렸다면.... 나를 수술했던 의사는 일찌감치 귀가하여 아내와 함께 좋은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서로 연결되어 벌어진 일련의 일들은 시간 탓이 아니었다. 각자 스스로 결정한 일들이며, 세월이 흐르면서 서서히 조정되어 온 현대적 스타일의 배합이다. 나는 이러한 배합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했다.

매번 새 책이 한 가득 도착할 때마다 생각한다. 왜 하루는 스물 네 시간밖에 안 되는 걸까. 책을 구입할 때,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도 같이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항상 시계에 맞춘 삶을 살고 있으며, 좀처럼 오랫동안 시간의 여유를 갖지 못한 채 하루를 보내고 있다. 나처럼 하루 24시간 중 많은 시간을 활용하려 하면서 시간을 낭비할 까 고심하기도 하고 말이다. 과거에는 수동적으로 시간을 소비했던 사람들이 요즘에는 대단히 적극적으로 시간을 이용한다. 시간이 사람들의 일상사를 지배하는 모습을 초창기 시계를 만든 장인들이 보았다면 절대 이해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사이먼 가필드의 이 책은 바로 이런 '인간들의 시간에 대한 강박적인 집착'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시간 측정, 시간 통제, 시간 판매, 시간에 관한 영화 만들기, 약속 시간 이행, 시간의 불멸화, 그리고 시간의 의미화를 갈망하는 인간의 모습들이 등장해 지난 250년간 시간이 어떻게 우리 일상에 파고들어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최근에 시간이라는 복잡한 관념을 고대의 문명사를 통해 이야기하는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현대사를 거의 반세기 동안 연구해온 역사학자가 저자였던 터라 굉장히 흥미로운 역사서로 읽었던 기억이 난다. 반면 이 책은 시간을 비현실적인 존재가 아닌, 우리 삶의 주인공, 때때론 우리 가치의 유일한 척도가 되는 실질적인 존재로 본다는 점에서 더 쉽고 재미있게 읽힌다. 사고를 당했을 때 그 순간 시간이 멈춘 것 같다고 느끼는 그런 감각에서 지나치게 감아버린 시계태엽처럼 팽팽하던 긴장감이 풀어지면서 시간에 관한 모든 것이 뒤집히는 경험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리고 새 역사를 쓰기 위한 새롭지만 혼란스러운 달력을 만든 사례를 소개하면서, 숫자가 10시까지만 적혀 있는 벽시계도 등장하는 등 시간 흐름의 방향을 바꾸려는 프랑스의 오랜 전통을 소개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이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에 따라 각각 다른 시간으로 공연되는 점을 보여주면서, 예술에 절대성이란 없으며 인간의 감정은 시간으로 측정할 수 없다는 점을 시사하기도 한다.

 

엄청난 일이 벌어진 그날의 그 중요한 시간에 버넷은 라이카 카메라의 필름을 갈고 있었다. 게다가 그가 사용하던 라이카는 필름을 끼우기가 까다롭기로 악명 높은 카메라였다. 버넷 기자도 네이팜탄을 투하하는 비행기와 시커먼 연기를 뚫고 뛰어오는 베트남 사람들을 보았다... '한 순간에...., 닉 우트가 정치와 역사를 초월한 장면을 포착했습니다. 무고한 사람들에게 들이닥친 전쟁의 공포를 상징하는 장면이지요. 사진은 시간과 감정 등 온갖 요소를 포착하며 절대 지워지지 않습니다.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기차가 대륙을 가로지르기 시작하면서 기차 사고를 면하려 표준시간을 채택하게 된되면서 어쩔 수 없이 시간에게 우선권을 내주었던 사례도 있었고, 저장 장치의 용량 한계로 인해 대부분의 앨범이 재생시간 70분 내외로 정해진 기준에 맞춰서 음악을 감상하는 것처럼 우리가 항상 시간이라는 것의 영향을 받으면서 살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도 한다. 거기다 현재를 잡아두는 사진기자, 영화 속 장면들로 24시간을 표현한 영화감독에게서는 시간의 새로운 해석을 엿볼 수도 있다. 그야말로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시간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기 위한 장치들의 사례가 너무도 다양하고 무궁무진해서, “책 속에 들어있는 거대한 시간박물관이라는 표현이 너무도 와 닿는 느낌이었다. 철학적 개념도 과학 이론도 없이 오감으로 시간을경험하는 것은 오로지 사이먼 가필드라서 가능하게 만드는 것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읽을 거리들이 풍부해 너무도 재미있는 시간 여행이었다.

자동차 조립 라인에서부터 프랑스 혁명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직접 시계 제조회사 작업실에서 시계 만드는 방법을 배우는 과정까지 등장하고 있다. 거기다 시계 산업을 지배하고 있는 스위스의 시계는 대체 무엇이 다른지, 시간에 대한 강박 관념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던 운동 선수들의 사례와 어떻게 하면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지에 대한 전략까지 수록되어 있다. 시간이라는 테마가 얼마나 폭넓은 이야기를 다룰 수 있는 지에 대한 그 결정체라고 느껴지는 이 책은,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읽어도 금방 이야기에 빠져들 정도로 쉽고 재미있게 쓰여져 있어 누구라도 부담 없이 시간 여행을 떠날 수 있도록 해준다. 그야말로 제목처럼 '시곗바늘 위를 걷는 유쾌한 지적 탐험'을 해보고 싶다면,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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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7번째 기능
로랑 비네 지음, 이선화 옮김 / 영림카디널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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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 바르트는 죽었어요."

"하지만 누가 그를 죽였다는 겁니까?"

"시스템이죠. 당연히."

푸코가 사용한 '시스템'이라는 단어는 바야르가 막연히 품고 있던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었다.

프랑스의 저명한 기호학자이자 문예 비평가인 롤랑 바르트, 그는 타고난 관찰자이며 관찰하고 분석하는 것을 직업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날은 이런 저런 생각들과 근심들로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주변을 전혀 의식하지 않으며 걷고 있었다. 바로 그 덕분에 사무실까지 불과 몇 십 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트럭에 부딪히고 만다. 1980 2 25일 오후, 그렇게 롤랑 바르트는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하게 되고, 결국 그렇게 병원에서 세상을 떠난다. 이것은 역사에 기록된 사실이다. 저자인 로랑 비네는 여기서 의문을 제기한다. 만약 그게 우연히 일어난 사고가 아니었다면? 사고 직전 롤랑 바르트가 괴력의 비밀문서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세상을 뒤집을 만한 위력을 가진 문서였다면? 그렇다면 과연 누가 롤랑 바르트를 죽였을까. 라는 질문에서 이 작품이 시작된다.

이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정보국 수사관 바야르 경위가 파견되고, 그는 롤랑 바르트의 주변 인물들 탐문을 시작한다. 그리고 바르트의 죽음과 연루된 '실존인물'들이 대거 등장하기 시작한다. 프랑스 후기구조주의의 대가인 미셸 푸코,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 해체주의를 주창한 자크 데리다, 기호학자이자 작가인 움베르토 에코를 비롯해서 실제 언어학자와 철학자, 작가, 비평가 등이 등장해 자신만의 언어로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한다. 당연히 바야르 경위는 그들이 하는 이야기들을 거의 대부분 이해하지 못한다. 어쩌면 이 작품을 읽고 있는 독자들 대다수도 그와 비슷한 상황에 처할지도 모르겠다. 기호학이라니, 그 이름만으로도 어쩐지 뜬구름 잡는 듯 실체가 보이지 않는 형이상학적 학문처럼 들리지 않나. 나 역시 롤랑 바르트는 <사랑의 단상>이라는 저서로는 알고 있었지만, 그의 사상이나 이론 체계는 전혀 알지 못했던 평범한 독자이기에 초반을 견뎌내기가 만만치가 않았다. 그런데 중요한 건 그 주요 인물들이 떠들어내는 어려워 보이는 그 이론들을 전부 이해하지 않아도 이 소설을 즐기는데 사실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당신이 그저 중도에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저는 압니다. 하지만 증거가 없습니다. 실마리도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압니다. 저는 지식인이기 때문에, 작가이기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하려고 애쓰며 이 문제에 관해 사람들이 쓰는 모든 글을 읽으려고 애쓰며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 혹은 알지만 입을 다물고 있는 모든 진실을 알아 내려고 애쓰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로랑 비네는 인상적인 데뷔작 <HHhH>이후 5년 만에 두 번째 작품으로 이번 작품을 내놓았다. <HHhH> 역시 역사 속 하이드리히 암살작전과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라는 인물에 대해 그리며 기존의 그 어떤 이야기와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생소하고 낯설게 역사를 그리는 작품이었다. '역사적인 사실을 매우 정확하게 고증하는 소설도 있고, 실제 일어난 사실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소설도 있고, 왜곡까지는 아니지만 역사적 진실이라는 벽을 교묘히 우회하는 역사 소설도 있다.' 하지만 로랑 비네는 자신이 역사를 픽션으로 다루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며, 매 순간 모든 장면이 실화라는 느낌이 고스란히 살아 날 수 있게 글을 쓰고자 한다고 밝힌 적이 있다. 그래서 <HHhH>에서는 대놓고 작가의 시선이 개입되는 부분들을 보여주는 일종의 작가 노트와 소설이 번갈아 가면서 진행되는 구성이었는데, 이번 <언어의 7번째 기능>에서도 중간 중간 그런 부분이 있다. 실제로 벌어진 사건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다, 다음 장에서 '이 이야기에는 맹점이 있다. 이야기의 시발점이기도 하다'라고 단언하며 문제의 그 날에 대해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 실존 인물들은 절대 알 수 없었던 것들을 소설 속에서는 언제든 끄집어내어 밝혀낼 수 있다고 말하는 식이다.

그렇게 다혈질 수사관 바야르와 풋내기 기호학자가 20세기 최고의 지성들 사이에서 롤랑 바르트의 죽음과 숨겨진 괴문서를 둘러싼 수수께끼를 파헤치는 이 작품은 일반적인 형태의 스릴러, 미스터리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긴장감을 조성하고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처럼 굉장히 지적이고, 당대 최고 지성인들의 민낯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당돌함과 수수께께를 풀어가는 미스터리로서의 매력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기호학과 철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이라면 굉장히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고, 그렇지 않더라도 그 동안 만나본 적 없는 독특한 지적 유희를 즐길 수 있는 작품이 될 것이다. 게다가 이렇게나 유명한 실존 인물들이 대거 등장하는 팩션이 또 있었나 싶을 만큼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하는 작품이니,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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