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분 사용법 - 불안을 다스리고, 자존감을 높이는 100가지 심리 도구
사샤 바힘 지음, 이덕임 옮김 / 어크로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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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 상황을 묘사하려고 할 때 우리는 주관적 해석에 빠지기 쉽다. 예를 들어 '상사가 내 보고서의 오타를 지적했다'라는 객관적 진술과 '이 돼지 같은 자식이 나를 또 끝장내려고 하는 군!'이라는 주관적 해석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생각과 감정의 차이가 늘 자명한 것은 아니다. 일례로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는 '느낌'이 아니라 '생각'일 뿐이다. 이 경우에 상응하는 감정은 아마 두려움이나 수치심일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관찰할 때 자기가 쓰는 표현에 주의를 기울이고 생각과 감정을 분리해보자.         p.99~100

 

수십 개의 알람을 맞춰 놓고, 매일 해야 할 일들의 리스트를 체크하고, 데스크 달력은 일정들로 빽빽하고, 이번 주 안에 끝내야 할 일과 다음 주에 해야 하는 것들로 늘 몇 주 분량의 스케줄을 따라가다 보면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대체 나는 왜 이렇게 '해야만 하는 일'들에 둘러싸여 살고 있는 걸까. 그러다 보니 늘 여유가 없고, 쫓기듯 뭔가를 하게 되고, 일정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최근에는 거기에 더해 지독한 감기로 고생 중이라 스트레스 지수가 더 높아지는 참이었는데, 그런 나에게 꼭 필요한 책을 만났다.

 

이 책은 100가지 심리 도구를 활용해 내 감정을 인식하고 관리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독일인이 사랑하는 '마음 주치의' 사샤 바힘은 진료실 안에서 VIP 환자들에게만 처방되던 비밀의 심리 도구를 이 책에서 공개하고 있는데, 불안을 다스리고, 충동을 조절하고, 고민에서 벗어나고, 우울을 떨쳐내고, 두려움을 이해하고, 스트레스를 관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개인적으로 지금의 내게 꼭 필요한 도구는 32번이었는데, '반드시 해야 해'라는 생각을 과감히 삭제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기 때문이다. 100가지 심리 도구들은 결심, 변화, 자존감, 행복, 관계라는 다섯 개의 카테고리로 나뉘어져 있고, 또 그 속에서 네가지 챕터별로 구분되어 있어 필요할 때마다 찾아 보기에도 좋다.

 

 

 

삶은 끊임없이 도전 과제를 던지며 우리를 어렵게 만든다.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나 아픈 몸, 복잡한 인간관계는 에너지를 빠르게 고갈시킨다. 갑자기 삶이 무겁게 여겨지고, 나를 한없이 땅으로 끌어내리는 무거운 추가 목에 걸려 있는 듯하다. 그러한 상황에서는 나에게 균형점을 찾을 힘이 있다는 사실을 잊기 쉽다. 그 힘이란 어려운 상황의 스트레스를 헤쳐나가기 위해 활성화할 수 있는 에너지원, 아니면 그런 상황을 예방하기 위해 자신을 강화할 수 있는 자원이다. 저울을 상상해보자. 스트레스로 가득 찬 저울의 다른 한쪽에 에너지원을 올려놓는다면 저울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            p.226

 

어째서 수많은 사람들은 새해만 되면 다이어트에 도전하고, 끝내지 못할 영어 공부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것일까. 대부분 제대로 성공한 적이 없는, 언제나 효과를 거두지 못하거나, 실패로 끝이 나는 것들을 말이다. 저자는 우리가 실은 단 한 번도 성공한 적 없는 전략에 지금껏 의지해왔다는 사실부터 지적한다. 그리고 새해 결심이 번번이 수포로 돌아가는 이유는 대개 우리가 스스로에게 가하는 압박과 스트레스 탓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무한 반복되는 굴레에서 우리를 구해내기 위해 몇 가지 간단한 심리 도구를 활용해 지켜지지 않는 결심의 유효성과 배년 반복되는 습관을 확인해, 뭐라도 다르게 행동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 외에도 걱정을 달래고, 우물쭈물과 작별할 수 있도록, 책임감의 함정에서 벗어나고, 자존감을 높이고, 잡생각을 버릴 수 있도록 보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해 새로운 습관을 만들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 준다.

 

심리 치료사는 다들 커다란 도구 상자를 하나쯤 가지고 있다고 한다. 심료 치료 과정에서 환자들을 위해 그 속에 있는 올바른 도구를 찾아 사용하다보면, 어떤 면에서는 심리 치료사 자신이 마치 마술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마술 쇼는 대개 VIP 관객들을 위한 것으로, 집장권으로는 진단서가 필요하다. 행복한 삶을 위한 비밀 처방전은 굳게 닫힌 진료실 안에서, 예약 환자에게만 조금씩 공개된다. 그러니 우리가 이 책을 통해 바로 그 비밀의 도구 상자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셈이다. 이 책 한 권이면 이유 없이 우울하거나, 짜증이 솟구치고, 부정적 감정들로 마음의 나사가 풀리기 시작할 때, 빠르게 응급처치를 도와줄 수 있는 심리 도구들을 곁에 두는 셈이니 든든하지 않은가. 더 이상 내 기분에 휘둘리고 싶지 않다면, 이 책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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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 사막이 들어온 날
한국화 지음, 김주경 옮김 / 비채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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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집요한 질문들에 포위된 느낌이다. 당신은 언제부터 당신의 삶이 이처럼 혼란스러워졌는지, 무슨 이유로 점원들이 당신에게 그렇게 물었는지, 당신이 왜 이 여름에 그토록 두꺼운 외투를 입었는지 생각해본다. 어떤 깊숙한 구멍 밑바닥에 빠진 느낌이다. 당신은 온전한 상태가 어떤 건지조차 잘 모른다. 이전의 삶에서 매일 하던 것들, 예전의 습관들은 이제 단지 머나먼 기억일 뿐이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생각들이 당신을 자극한다. 심장이 격하게 고동친다.           - '구슬' 중에서, p.77

 

한국인 작가가 프랑스어로 쓴 소설을 다시 한국어로 번역 출간한 독특한 소설집이다. '모국어의 제약을 벗어나 더 유연한 사고가 가능한 중립적인 영역이 필요했다'는 작가는 프랑스어로 쓴 8편의 소설이 수록된 이 소설집을 프랑에서 출간하며 소설가로 데뷔했다. 흥미로운 지점은 저자가 태어날 때부터 프랑스에서 태어나 모국어로 프랑스어를 한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파리로 이주해 제2외국어로 프랑스어를 접했을 거라는 점이다. 작가는 프랑스어를 사용하며 살아낸 시간이 적었기 때문에 언어와 자신 사이에 어느 정도의 두꺼운 겹이 존재했으며, 이 이야기들을 하기 위해서 그만큼의 거리가 필요했다고 한다.

 

간결한 문체로 쓰인 여덟 편의 이야기들은 추상적이고, 모호하며, 상상력을 자극하는 여백들이 많았다. 분명 언어로 표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지가 시각화되어 보이는 듯한 기분이 드는 이야기들이기도 했다. 고층 빌딩들 사이로 보이는 황백색의 하늘 한 점, 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축축하고 춥고 음산한 방, 눈의 백색이 모든 것을 뒤덮어버린 풍경, 어둠 속에서 빛나는 가로등 불빛.. 도시 곳곳을 유령처럼 부유하는 사람들의 풍경이 그림처럼 그려지고 있는 소설들이다. 상상으로 그려낸 도시의 이미지는 현실과 환상 사이 어딘가에서 무너진 세상을 향해 악몽과도 같은 이야기를 보여준다.

 

 

나는 버려진 채로 남아 있는 오래된 망루 꼭대기에서 밤을 보낸다. 그곳은 도시 한가운데 있지만, 이 꼭대기까지 사람이 올라오는 일은 절대로 없다. 틀림없이 예전에는 이 망루가 주변의 어떤 빌딩보다 높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여기보다 훨씬 높은 유리 빌딩이나 콘크리트 건물이 주변에 즐비해, 보잘것없는 구조물이 되고 말았다. 이 망루는 더는 불도 켜지지 않고 지키는 사람도 없다. 오늘날 도시는 폐허가 된 이 구조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아예 잊기로 작정한 것 같다. 아무도 내가 여기 있는지 모른다. 아무도 나를 볼 수 없다. 난 도시 한가운데 있으면서 동시에 모든 것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밤의 어둠 속에 감춰진 채로.           - '방화광' 중에서, p.178~179

 

이 책을 읽으면서 도시를 뒤덮은 모래바람 속에서 사막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왜 도시는 사막이 되었을까. 사막은 어떻게 도시로 들어온 걸까. 사람들은 제각각 사막이 들어온 시기를 다르게 기억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라고, 또 어떤 사람은 강가에 신기루가 나타난 이후라고, 또 다른 사람은 자기 이웃이 죽은 후라고 말이다. 사람들은 자신을 기준으로 항상 언제 이전이거나 언제 이후라고 대답했고, 그들의 의견이 같은 시기를 가리킨 적은 없었다. 도시를 흐릿하게 뒤덮은 모래바람 속에서 여덟 편의 이야기는 각기 다른 화자를 내세우고, 그들의 목소리로 각자의 하루를 살아 낸다. 누군가는 침대에서 수백 명의 죽은 아이들이 나타나는 꿈을 꾸고, 수수께끼의 도시에서 기이한 하루를 보내고, 온갖 소음과 광기로 가득한 강 건너편의 대도시로 가출하고, 집 안을 가득 채운 소음을 피해 음악 속으로 숨어 들기도 하며, 방치된 망루 꼭대기에서 불꽃놀이를 내려다보기도 한다.

 

서사보다는 이미지가 잔상처럼 남는 이 소설들은 그로테크스한 표지 이미지처럼 우리를 특별한 상상력의 세계로 데려간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도시가 사막으로 변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각기 다른 의견을 주장하는 여러 명의 화자들처럼, 이 소설을 어떻게 읽고 느낄지는 각자 다를 것 같다. 한줌의 모래 알갱이처럼 손바닥에 올려 두면 스르르 바닥으로 사라져 버릴 것 같은 기묘한 감각이 여운처럼 남는 독특한 이야기들이 궁금하다면 이 작품을 만나 보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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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살이도 신의 레벨 혼자살이
가마타미와 지음, 스즈키 나쓰코 옮김 / 비채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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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타미와가 자취 20여 년의 노하우를 총망라한 '혼자살이'만화 시리즈 그 두 번째 작품이다. '프로의 영역'에서 '신의 레벨'로 경지가 올랐으니,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된 혼자살이 팁들이 등장한다. 특히나 저자가 첫 책에서 그리지 못한 '혼자'를 최대한 즐기는 법에 대해서도 자세히, 집요하게 그렸다'고 밝히고 있으니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혼자살기 몇 년 만에 '생활'이 가치관의 중심이 되었기에, 모든 것이 실용적인 모드로 바뀌게 된다. 혼자서도 너무 잘하는, 혼자 놀기의 비법들이 늘어나기 시작하고, 혼밥과 혼자 여행하기에도 고수가 되어 간다. 손님을 위한 요리 하나쯤은 척척 만들어 낼 수 있게 되기도 하고 말이다. 물론 그 속에서 끊임없이 실패하고, 좌절하지만, 그 속에서 나름의 방법들을 터득해 나가는 과정 또한 혼자살이의 묘미 중 하나이다.

 

 

가마타미와는 일본 최대 블로그 사이트 아메바블로그의 톱랭킹 블로거이기도 하다.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며  '혼자 사는 가마타미와의 반경 3미터의 카오스'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파워 블로거이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사람과 만난 일을 잊어버리기 아쉬워 매일 일기를 쓰기 시작했고, 그 중에서 특별히 좋아했던 사람들, 재미있었던 사람들의 사건사고를 만화로 그리게 된 것이 <반경 3미터의 카오스>라는 작품으로 나오게 되어 처음 가마타미와의 만화를 만났었다.

 

일상에서 이렇게 특이하고, 재미있는 사람을 유난히 많이 만나게 되는 상황이 다소 비정상적으로 느껴지긴 했지만, 실제로 이런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개성 넘치는 인물들의 향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페이지를 넘겼던 기억이 난다. 전작에 비해 '혼자살기' 만화 시리즈는 보다 현실적이라 더 공감되는 부분들이 많았다.

 

 

자신처럼 ‘혼자살이를 사랑하는 동료’를 늘리고 싶다는 가마타미와의 소박한 바람에서 시작된 이 만화는 때로 공감하고 때로 폭소하며 쉴 새 없이 책장을 넘기게 하는 마성의 에피소드들로 가득하다. 올컬러의 산뜻한 색감에 특유의 유머를 귀엽고 재미있게 그려내고 있는 그림이라 머리가 복잡할 때 기분 전환 용으로 읽어도 딱 좋을 것 같다. 일상 속 유쾌한 사연들 외에도 혼자 여행 체크리스트, 끝없이 기분이 가라앉을 때 해결 방법, 그때 도움이 되었던 만화 블로그들, 플리마켓 활용법 등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혼자살기 놀하우도 가득하다.

 

 

물론 가끔은 누군가와 같이 살고 있었으면 할 때도 있다고 한다. 문단속을 깜빡한 날이라던가, 샤워실에 싫어하는 민달팽이가 등장했다던가, 아플 때 요리를 한 날이라던가, 여행에서 돌아온 날이라던가 등등 말이다. 게다가 너무 혼자 집에만 있으면 목소리가 안 나오거나, 반대로 혼잣말을 많이 하게 되거나, 이상한 망상에 지배당하는 순간도 겪게 되고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살이의 매력이 더 무궁무진하게 많다는 것이 이 시리즈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이긴 하다는 게 재미있지만 말이다.

 

<혼자살이도 프로의 영역>과 <혼자살이도 신의 레벨>에 이어 다음에 나올 이야기의 제목은 <혼자살이도 궁극의 경지>이다. 어떤 일이든 오래 지속하다 보면 자신만의 노하우가 생기게 마련인데, 그 어느 정도를 넘어서게 되면 일종의 경지에 오르게 된다. 그러니 가마타미와의 혼자살기는 또 얼마나 레벨업이 되었을지, 다음에 나올 이야기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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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살이도 프로의 영역 혼자살이
가마타미와 지음, 스즈키 나쓰코 옮김 / 비채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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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경 3미터의 카오스>라는 작품으로 만났던 가마타미와의 신작이다. 저자는 '혼자 사는 가마타미와의 반경 3미터의 카오스'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파워 블로거이자,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이다. 전작에서는 일상에서 만나게 되는 특이하고, 재미있는 사람과의 에피소드를 탁월한 만화 센스와 유머 감각으로 보여주었었다. 이번에는 자취 20여 년의 노하우를 총망라한 '혼자살이'만화를 시리즈로 선보인다. 이번에 <혼자살이도 프로의 영역>과 <혼자살이도 신의 레벨>이 동시에 출간되었고, 곧 <혼자살이도 궁극의 경지>도 나올 예정이다. 취미이자 특기가 혼자살이라고 해도 될 만큼 전혀 질리지 않고 좋다고 말하는 저자이기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해졌다.

 

 

하루의 업무를 끝내고 지친 저녁, 사람 만날 기분도 아니고, 놀 체력도 없을 때는 일단 편의점에 간다. 궁금했던 만화 속 감자칩을 사들고, 오랜만에 '우리집 영화제'를 열기로 한다. 간단하게 술도 하나 사고, 안주도 사고, 집에 있던 간단한 음식들을 준비하면 끝. 손이 닿는 곳에 안주랑 술, 의자는 푹신한 걸로, 불 끄고 화면 밝기 조절하고, 중간에 추워지지 않게 수면양말 신고 담요도 준비, 휴대전화는 매너 모드로 설정. 상상만으로도 행복해진다. 자신도 모르게 '고마워 세상아!'를 외치게 되는 행복한 시간. 하루 종일 지친 마음이 노곤해지고, 떨어졌던 텐션은 점점 올라간다.

 

혼자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뜰한 살림을 하게 된다. 그 중에서도 마트 반값 세일 타임은 놓칠 수 없다. 오죽하면 '반값 스티커'를 본 것만으로 연애할 때도 나오지 않던 아드레날린이 분출된다고 할 정도이니 말이다. 그렇게 많이 산 반찬들은 바로 하나씩 양을 나눠서 냉동, 그 외 냉동을 못하는 음식들은 그날 저녁에 먹으면 된다. 작가는 일이 바빠 놀러 가지도 못하던 시기에는 모든 스트레스를 마트에서 발산했다고 하는데, 공감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원하는 타이밍에 마음껏 욕조를 차지 할 수 있다거나, 아무리 이상해도 내 스타일로 인테리어를 할 수 있는 자유, 허접한 룸웨어를 마음껏 입고 활보할 수 있는 등 혼자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상의 소소한 재미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마트 반값 세일 타임을 놓치지 않고, 감기에 걸렸을 때 유용한 음식들을 구비해두고, 냉장고에 있는 재료만으로 간단하게 요리할 수 있는 레시피, 효과적인 절약 팁 등 오랜 세월 축적한 자취 노하우들도 만날 수 있다.

 

자꾸 혼잣말이 늘어난 끝에 집 안 물건과 대화를 하기도 하고, 가전제품이 줄줄이 고장 나서 당황하기도 하며, 집안일에 게을러져서 벌레가 출몰하는 등 좌충우돌 에피소드들도 재미와 공감을 함께 안겨준다. 

 

 

마지막에는 번외편으로 혼자살이 가마타미와의 즉석 만남이라는 코너가 수록되어 있다. 혼자 집에 있어도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나, 밖으로 나가면 더욱 이상한 일이 가득했습니다, 로 시작되는 이 에피소드들은  <반경 3미터의 카오스>를 읽었다면 더 반갑게 보게 될 것 같다. 새벽에 만난 취객과의 초현실적인 장면, 이케부쿠로 옷가게 점원의 은근 무서운 옷 추천 멘트, 속옷 피팅룸에서의 황당했던 만남, 너무 솔직한 미용사, 피트니스장에서 만난 독특한 할아버지까지... 그야말로 일상이 코미디라는 말이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이 책을 통해서 혼자살이의 매력을 느끼게 되어 독립을 꿈꾸게 될 수도 있고, 그 동안 혼자 살면서 겪었던 어처구니없는 실패담들이 떠올라 웃으면서 보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갈수록 1인 가구 비중이 크게 증가하고 있는데다, 갈수록 싱글 라이프를 꿈꾸는 이들도 많아지고 있다. 오로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일상을 한 번쯤 생각해 본 적이 있다면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지금 혼자 살고 있거나, 언젠가 혼자살이를 꿈꾸고 있는 당신에게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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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마지막에 본 것은 그날, 너는 무엇을 했는가
마사키 도시카 지음, 이정민 옮김 / 모로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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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 발견 현장에는 어울리지 않는 초연한 모습. 그의 주변만 공기가 희박해서 마치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처럼 지면에서 2~3센티미터 떠 있는 듯하다. 곱슬기 있는 앞머리, 가늘고 긴 눈은 날카롭지만 입꼬리가 올라가 있어서인지 전체적인 표정으로 보자면 미소와 비탄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것 같다. 다른 형사들과 함께 가쿠토 옆을 지나친 그는 시신의 약 1미터 앞에 멈춰 서서 두 손을 모으고 머리를 숙였다. 살벌한 분위기 속에 그 혼자만 다른 세계에 있는 듯 뒷모습이 고요하고 편안해 보인다.         p.7~8

 

화려한 트리 장식과 조명이 거리를 수놓은 크리스마스이브날 밤, 한 노숙인 여성이 시신으로 발견된다. 한겨울인데도 블라우스와 슬랙스만 입고 있는 여성의 옷은 흐트러졌고, 두부에는 타박상이 있었다. 신원을 알아낼 만한 게 아무것도 없었으며, 나이는 50세에서 60세 정도의 중년 여성이라는 것만 알 수 있었다. 사건을 맡은 건 경시청 수사1과 살인범 수사 제5계 형사 미쓰야 슈헤이이다. 그는 종잡을 수 없고 상식을 벗어난 것 같은 분위기 때문에 괴짜로 알려졌지만, 워낙 실력이 출중해 누구나 인정하는 존재이다. 시신 발견 현장에는 어울리지 않는 초연한 모습으로, 그의 주변만 마치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처럼 지면에서 몇 센티미터 떠 있는 것 같다.

 

그의 파트너는 신입 형사인 다도코로이다. 두 사람은 살해당한 노숙인 여성의 죽음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실종자 리스트와 신원을 대조하고 있지만 일치하는 인물이 없었는데, 흥미로운 건 시신의 지문이 데이터베이스에 등록이 되어 있었다는 거다. 작년 여름, 한 공원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남자가 있었는데, 당시 살해 현장에서 채취한 지문 중 하나가 노숙인 여성의 지문과 일치했던 것이다. 1년 4개월이 지난 지금도 범인을 잡지 못했던 사건인데, 올해 크리스마스이브날 밤에 시신으로 발견된 여성의 지문이 당시 피해자의 가방에서 채취한 지문 중 하나와 일치했다. 노숙인 여성이 그 사건의 범인인 것일까? 아니면 당시 피해자였던 남자와 어떤 접점이 있었던 것일까. 미쓰야와 다도코로는 노숙인 여성의 삶을 조사하며 동시에 미해결 사건과 관련된 주변 인물들도 다시 조사하기 시작한다.

 

 

 

내 인생은 뭐였을까, 하고 생각했다.
행복해지고 싶다고, 좋은 경험을 하고 싶다고 그토록 간절히 바랐건만, 뒤돌아보면 나는 없어도 되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인간에 불과했다. 쓰레기 같은 거다. 그렇다, 그 노숙인처럼.
나는 쓰레기 - . 그 말에 각오가 섰다. 나루미는 머리 위로 등유통을 들어올리려 했다. 그때 뒤에서 팔을 붙잡혔다.          p.335

 

이 작품은 <그날, 너는 무엇을 했는가>의 속편이다. 우리가 쉽게 믿고 있는 '가족이라는 환상'을 집요하게 파헤쳐 그 끝에 도달했을 때 어떤 것이 보이는지, 그것을 직면하게 만들어 주는 흡입력 있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던 작품이었는데, 시리즈가 나올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해당 작품과 스토리 상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아니고, 당시 사건을 수사했던 미쓰야와 다도코로 형사가 다시 등장하기 때문에 이들 캐릭터의 시리즈로 이어지는 것 같다. 미쓰야는 전작에서 등장 시에도 어린 시절 자신의 어머니가 살해된 사건의 최초 발견자로 끊임없이 어머니가 살해되어야만 했던 이유를 찾아 왔던 캐릭터로 나왔었다. 이번 작품에서는 그의 독특한 성격과 행동이 더 본격적으로 드러나고 있어, 캐릭터의 종잡을 수 없는 매력이 더 돋보였던 것 같다.

 

마사키 도시카는 <그날, 너는 무엇을 했는가>라는 한 권의 작품으로 25만 독자의 사랑을 받으며 2020 게이분도서점 문고 대상을 수상했었다. <그녀가 마지막에 본 것은>으로 전작을 뛰어 넘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시리즈 누적 40만 부를 돌파했다고 한다. 시리즈로서의 출발점은 아주 훌륭한 것 같은데, 앞으로 미쓰야와 다도코로 형사 시리즈가 더 이어질 지도 기대가 된다. 400 페이지 가까이 되는 이 작품은 다양한 인물 군상들이 등장하며 얽히고설킨 그들의 욕망과 불행을 밀도 높은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다. 중반이 훌쩍 지나도록 대체 누가 노숙인 여성을 죽인 것인지, 왜 그녀는 노숙인이 되어야 했던 것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어 더 조바심을 내며 페이지를 넘기게 되었던 것 같다. 그만큼 탄탄한 구성과 군더더기 없는 문장, 반전 등이 잘 짜여진 작품이었다. 무더운 여름 날씨를 잊을 만큼, 단번에 몰입해서 읽을 수 있는 작품을 찾고 있다면, 이 작품을 적극 추천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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