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마지막에 본 것은 그날, 너는 무엇을 했는가
마사키 도시카 지음, 이정민 옮김 / 모로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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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 발견 현장에는 어울리지 않는 초연한 모습. 그의 주변만 공기가 희박해서 마치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처럼 지면에서 2~3센티미터 떠 있는 듯하다. 곱슬기 있는 앞머리, 가늘고 긴 눈은 날카롭지만 입꼬리가 올라가 있어서인지 전체적인 표정으로 보자면 미소와 비탄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것 같다. 다른 형사들과 함께 가쿠토 옆을 지나친 그는 시신의 약 1미터 앞에 멈춰 서서 두 손을 모으고 머리를 숙였다. 살벌한 분위기 속에 그 혼자만 다른 세계에 있는 듯 뒷모습이 고요하고 편안해 보인다.         p.7~8

 

화려한 트리 장식과 조명이 거리를 수놓은 크리스마스이브날 밤, 한 노숙인 여성이 시신으로 발견된다. 한겨울인데도 블라우스와 슬랙스만 입고 있는 여성의 옷은 흐트러졌고, 두부에는 타박상이 있었다. 신원을 알아낼 만한 게 아무것도 없었으며, 나이는 50세에서 60세 정도의 중년 여성이라는 것만 알 수 있었다. 사건을 맡은 건 경시청 수사1과 살인범 수사 제5계 형사 미쓰야 슈헤이이다. 그는 종잡을 수 없고 상식을 벗어난 것 같은 분위기 때문에 괴짜로 알려졌지만, 워낙 실력이 출중해 누구나 인정하는 존재이다. 시신 발견 현장에는 어울리지 않는 초연한 모습으로, 그의 주변만 마치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처럼 지면에서 몇 센티미터 떠 있는 것 같다.

 

그의 파트너는 신입 형사인 다도코로이다. 두 사람은 살해당한 노숙인 여성의 죽음을 조사하기 시작한다. 실종자 리스트와 신원을 대조하고 있지만 일치하는 인물이 없었는데, 흥미로운 건 시신의 지문이 데이터베이스에 등록이 되어 있었다는 거다. 작년 여름, 한 공원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남자가 있었는데, 당시 살해 현장에서 채취한 지문 중 하나가 노숙인 여성의 지문과 일치했던 것이다. 1년 4개월이 지난 지금도 범인을 잡지 못했던 사건인데, 올해 크리스마스이브날 밤에 시신으로 발견된 여성의 지문이 당시 피해자의 가방에서 채취한 지문 중 하나와 일치했다. 노숙인 여성이 그 사건의 범인인 것일까? 아니면 당시 피해자였던 남자와 어떤 접점이 있었던 것일까. 미쓰야와 다도코로는 노숙인 여성의 삶을 조사하며 동시에 미해결 사건과 관련된 주변 인물들도 다시 조사하기 시작한다.

 

 

 

내 인생은 뭐였을까, 하고 생각했다.
행복해지고 싶다고, 좋은 경험을 하고 싶다고 그토록 간절히 바랐건만, 뒤돌아보면 나는 없어도 되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인간에 불과했다. 쓰레기 같은 거다. 그렇다, 그 노숙인처럼.
나는 쓰레기 - . 그 말에 각오가 섰다. 나루미는 머리 위로 등유통을 들어올리려 했다. 그때 뒤에서 팔을 붙잡혔다.          p.335

 

이 작품은 <그날, 너는 무엇을 했는가>의 속편이다. 우리가 쉽게 믿고 있는 '가족이라는 환상'을 집요하게 파헤쳐 그 끝에 도달했을 때 어떤 것이 보이는지, 그것을 직면하게 만들어 주는 흡입력 있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던 작품이었는데, 시리즈가 나올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해당 작품과 스토리 상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아니고, 당시 사건을 수사했던 미쓰야와 다도코로 형사가 다시 등장하기 때문에 이들 캐릭터의 시리즈로 이어지는 것 같다. 미쓰야는 전작에서 등장 시에도 어린 시절 자신의 어머니가 살해된 사건의 최초 발견자로 끊임없이 어머니가 살해되어야만 했던 이유를 찾아 왔던 캐릭터로 나왔었다. 이번 작품에서는 그의 독특한 성격과 행동이 더 본격적으로 드러나고 있어, 캐릭터의 종잡을 수 없는 매력이 더 돋보였던 것 같다.

 

마사키 도시카는 <그날, 너는 무엇을 했는가>라는 한 권의 작품으로 25만 독자의 사랑을 받으며 2020 게이분도서점 문고 대상을 수상했었다. <그녀가 마지막에 본 것은>으로 전작을 뛰어 넘었다는 평가를 받으며, 시리즈 누적 40만 부를 돌파했다고 한다. 시리즈로서의 출발점은 아주 훌륭한 것 같은데, 앞으로 미쓰야와 다도코로 형사 시리즈가 더 이어질 지도 기대가 된다. 400 페이지 가까이 되는 이 작품은 다양한 인물 군상들이 등장하며 얽히고설킨 그들의 욕망과 불행을 밀도 높은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다. 중반이 훌쩍 지나도록 대체 누가 노숙인 여성을 죽인 것인지, 왜 그녀는 노숙인이 되어야 했던 것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어 더 조바심을 내며 페이지를 넘기게 되었던 것 같다. 그만큼 탄탄한 구성과 군더더기 없는 문장, 반전 등이 잘 짜여진 작품이었다. 무더운 여름 날씨를 잊을 만큼, 단번에 몰입해서 읽을 수 있는 작품을 찾고 있다면, 이 작품을 적극 추천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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