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국정감사에선 코로나시대로 인해 물량이 많아진 택배노동자들의 과로사문제가 이슈가 되었었고 간간히 배달대행노동자들의 문제들도 뉴스를 통해 보곤 하는데 이런 가운데 플랫폼노동에 관한 두 책을 읽었다,
한 권은 『플랫폼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라는 책이고 한 권은 『공유경제는 공유하지 않는다』라는 책이다. 작년 쯤에 팟캐스트에서 플랫폼 노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다. 그 방송에서는 갑자기 떠오른 새로운 형태의 노동을 어떻게 우리가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인터넷 뉴스를 보다가 이 책의 존재을 알아 도서관에서 빌리려고 했더니 계속 누가 빌리는지 대출중이라고 떠서 최근에 와서야 두 권 모두를 읽게 되었다. 두 권은 다르면서도 비슷하다. 다른 점이라면 저자의 분야가 다르다, 둘 다 현재의 플랫폼 경제(미국에선 통상 긱(gig)경제라고 칭한다)에 대해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플랫폼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의 저자는 법학교수로서 플랫폼 노동에 대해 그의 맞는 새로운 노동법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으며 『공유경제는 공유하지 않는다』의 저자는 사회학 교수답게 플랫폼 노동자 80여명과의 인터뷰를 통해 플랫폼 노동의 민낯을 사회학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미 몇 년 전부터 플랫폼 경제 혹은 공유경제, 긱경제로 불리는 새롭게 성장한 경제형태가 나타났다. 쉽게 말해서 우버나, 에어 비앤비등의 서비스 등장이다. 한국에서도 작년부터 논쟁이었던 차량공유서비스인 '타다'라던가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요즘, 외출과 다른 사람과의 대면활동이 어려워지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하고있는 '배민', '요기요'등의 배달대행서비스도 이에 해당될 것이다.
경제계나 경영계에선 새로운 경제형태의 출현에 찬사를 보냈다. 생각해보면 작년에 있었던 '타다'와 택시업계의 갈등 속에 타다의 이재웅대표도 혁신이 늘 이겼다고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할 만큼 플랫폼 경제는 혁신이란 단어가 늘 따라왔다.
'타다' 논란 이재웅 쏘카 대표 "혁신은 늘 이겨왔다" <연합뉴스>
언뜻보면 혁신같기도 하다. 미국에서 흔히 쓰는 긱경제의 '긱'이라는 단어의 어원(1920년대 재즈가 유행하던 미국 뉴욕, '공연장 주변에서 연주자를 구해 단기간의 공연 계약을 맺는 행위'를 당시 음악가들이 '긱'이라 부른 것)대로 흔히 존재하는 노동형태인 사용자-노동자간의 계약을 통해 노동하는 형태가 아니라 노동계약을 일정기간이 아닌 기간을 잘게 쪼게 건별로 계약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노동시장에서는 노동자는 내가 하고 싶을때만 계약할 수 있고 수요자는 자신들이 원하는 노동력을 쉽고 빠르고 게다가 값싸게 구할 수 있다. 이렇게 모두가 만족한 형태라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지만.. 저자들은 실제로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노동측면에서 본다면 긱 경제의 혁신은 신화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GPS 위치 탐지기와 인터넷에서부터 손바닥만한 크기의 강력한 프로세서에 이르기까지, 앱과 플랫폼 기업들이 이용하고 있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는 종종 진정으로 혁명적인 혁신과 돌파(Breakthrough)의 직접적인 결과물이다. 그러나 업계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그 밑에 깔려있는 사업 모델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복잡한 직무가 아닌 저숙련 과업, 대규모 노동력을 통제하는 강력한 중개자 그리고 개방된 시장과 폐쇄된 위계 조직 사이의 혼합된 형태까지 긱 경제는 수백 년 동안 지속되어 온 노동시장 관행의 최신(그리고 아마도 극단적인) 사례에 불과하다.
(『플랫폼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P. 149)
긱경제는 현대 사회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공하기보다는 신기술로 포장했을 뿐 실상은 노동자 보호장치가 부족하고 보상을 요구하기도 어려운, 이른바 초기 산업사회와 같은 시스템에 노동자를 종속시킬 뿐이다.
(『공유경제는 공유하지 않는다』, P. 102)
현대사회는 그야말로 저성장시대다. 거기에다 코로나 쇼크로 이어지면서 기존의 산업이 더더욱 휘청거리고 있다. 특히 한국이 자랑하는 제조업의 미래가 그다지 밝지 않음에 따라 노동의 형태도 점점 바뀌고 있다. 흔히 말하는 대기업의 정규직일자리는 점점 더 줄어들 것이다. 제조업은 일자리가 생기는 몫 대부분을 직접 책임지지 않는 외주화형태로 변경하고 있고 그나마 똘똘한(?) 정규직 자리는 국가가 직접 운영하는 공무원이라던가 그에 준하는 공기업의 일자리가 대부분이기에 취준생들도 이곳에 몰려드는 시대다. 이러한 상황에서 플랫폼 기업의 성장은 필연적이었다. IT산업의 발달로 인한 IT인프라 구성이 쉬워지고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스마트 폰을 통해 언제 어느곳이던지 인터넷이 가능해졌다. 그 속에서 플랫폼 노동이 태어났고 수요자든 노동자든 모두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위 인용글에서 보듯이 저자들은 그 밑에 깔려있는 모델은 새로운 것이지도 않고 노동자 보호장치도 부족한 오히려 초기 산업사회를 보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언제 일할지 선택할 수 있는 자유는 주문형 경제의 중요한 매력 중 하나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에서 플랫폼 기업들이 고객 수요 저점의 위험을 노동자들에게 직접 전가함에따라 어떻게 유연성이 빠르게 일방적인 것으로 될 수 있는지 보아 왔다.
그 결과는 유연성이 아니라 불안정성이다.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이었고 현재는 버클리대학 교수인 로버트 라이시는 이것을 '부스러기를 나눠 갖는 경제(The shere-the-scraps economy)'라고 불렀다.
(『플랫폼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P. 211)
이와 같은 임시 노동, 적시 일정 관리, 대량 정리해고를 모두 택한 공유경제는 노동자를 박대하는 수법을 기술적으로 혁신한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 공유경제는 기업이 아무 의무도 지지 않고 고용한 임시 인력을 앱과 연결해 주문이 들어오는 즉시 일정을 생성함으로써 편의를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적시 일정 관리, 인력회사를 이용한 아웃소싱, 단돈 1센트까지 챙기는 회계를 실현할 수 있는 최적의 수단이다. 한 CEO는 "1만 명을 10~15분간 고용할 수 있습니다. 일이 끝나면 그 1만 명은 증발하죠"라고 말했다.
(『공유경제는 공유하지 않는다』, P. 292)
업계에선 '그 사람들은 노동자가 아니야, 독립적인 계약자야.'라고 말하겠지만 한꺼풀 벗겨보면 어떤가? 계약서엔 사장님이라고 치켜세우지만 막상 독립적인 계약자의 지위도 누리지 못한다. 알고리즘과 등급평가를 통해 완벽히 플랫폼 노동자들을 묶어둘 수 있기 때문이다. 플랫폼경제가 진정으로 혁신이라고 불리길 원한다면 그 속에서 발생하고 있는 플랫폼 노동의 취약성을 보호하고 안전장치를 마련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플랫폼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의 저자 제레미아스 아담스-프라슬 교수는 거기에 맞는 노동법이 새롭게 필요하고 그 속으로 플랫폼 기업도 들어와야 플랫폼 경제도 건강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기존의 노동자의 개념과는 다르게 플랫폼 노동자들의 개념이 아직 완벽히 자리잡질 못했기 때문에 이제부터라도 어떻게 규정지을 것인지 논의가 필요해보인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근로자들은 소득 보호와 집단적 대표, 보건과 안전 그리고 해고 보호에까지 이르는 법적 안전망을 누리기 때문이다. 반면에 긱 노동자를 독립계약자로 분류하면 기업들은 대부분의 사업상의 위험을 그들에게 전가할 수 있고 대신에 상당한 비용 절감효과를 볼 수 있다.
(『플랫폼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P. 7)
저자 모두 플랫폼 경제 자체를 나쁜 것이다고 말하진 않는다. 플랫폼 경제가 사회적 흐름속에서 이미 많은 사람들의 삶속에 자리잡았고 저성장시대에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역할도 분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사회적으로 확립되어 왔던 노동자보호장치를 파괴하면서 이득을 취하는 것을 혁신이라고 포장하기보다 그 안에서 일하고 있는 플랫폼 노동자들의 취약성을 보호하는 방향의 노동법으로 공평하게 적용되고 일관성으로 시행될 때 플랫폼 기업도 건강해지는 거고 플랫폼 경제도 진정한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