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때도.. 철학이 어려워서 정치철학수업 버리고 경제학 전공선택수업들었던 나인데..11월 12월달 여성주의 책 읽기 선정도서가 미셸 푸코의 책『성의 역사』시리즈었다. 어엉? 푸코..? 이름은 들어봤는데..프랑스 철학자.. 아 그래 앞에서 말한 그 버렸다는 정치철학 수업의 교수님도 프랑스에서 공부하신분이였다. 부르디외 전공자였던걸로 기억이 난다. 

뭐.. 사전같은 책도 읽어왔던 나인데 성의 역사 쯤이야.. 하고  1권을 뒤 늦게 읽기 시작했는데 같이 읽는 분들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 
















처음 받아든 성의 역사 1권의 느낌은 '어.. 뭐 두껍지도 않고. 할 수 있겠네.' 


그렇게 약 일주일만에 1권은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 책 내용이 뭐였지? 읽었는데 도저히 모르겠다. 이 책을..

앞서 읽었던  『'장판'에서 푸코 읽기』는 괜찮았는데 푸코의 책으로 넘어오니 역시 만만치 않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푸코에 대한 해설이나 글들을 찾아보면서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중이다. 


다행히 먼저 읽으신 분들의 말에 따르면 2권부터는 해볼만 하다고 들었다. 그래! 2권부터는 다르다. 2권.3권을 택배로 받고나서 보니 1권보다 두껍네.. 시작부터 몸이 움츠러든다. 에이 겁부터 먹지 말자..우울했던 2020년.. 푸코와 보내도 따뜻하게 보낼 수 있겠지? 















원래 성의 역사는 6권을 계획하고 있었으나 1권을 76년에 발간후 80년 초 푸코의 건강의 악화로 인해 서둘러 2, 3권을 그가 사망하던 해에 내었고 사후에 4권이 18년에 발간되어(한국엔 19년) 4권짜리가 되었다.  

 

푸코는 왜 성에 대해 쓴 것일까?


내가 제기하려고 하는 물음은 '왜 우리가 억압받는가'가 아니라, '왜 우리가 우리의 가까운 과거와 현재 그리고 우리 자신에 대해 그토록 커다란 열정과 강렬한 원한을 품고서 스스로 억압받고 있다고 말하는가'이다. 

(…)

왜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성과 죄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었는가 하고 자문하는 것은 확실히 정당하다. 이 연결이 어떻게 성립되었는가도 또한 살펴보아야 할 것이고, 성이 "단죄되었다"고 일괄적으로 성급하게 말하지 않도록 삼가야 할 것이며, 왜 우리가 예전에는 성을 죄악시했다가 오늘날에는 이에 대해 매우 강한 죄의식을 느끼고 있는가도 자문해야 할 것이다. 

(P.16~17)


푸코는 절대적이거나 보편적인 진리가 있다는 생각에 반대해왔던 철학자였다. 그 보편은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진리는 어떻게 이해되었는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왔다.

'성'에 대해서도 그러한 질문을 던지기 위해 이 책을 썼던 것이다. 그리고 푸코 본인이 동성애자로서 이 분야에 대해 더 의문을 가졌을 거라고도 생각이 든다. 


일반적으로 '성'이 억압되어 왔다는 것이 통념이었지만 푸코가 역사(여기서의 역사는 서양의 역사)를 통해 살펴본 바 통념과 달리 근대로 넘어오면서 오히려 성에 대한 담론들을 끊임없이 형성해왔다는 것이다.(이 말이 전혀 억압된 적이 없다라는 주장과는 다르다고 하였다) 


사제권력의 고백에서 비롯된 내밀한 욕망의 공개 방식은 성에 대해 모든 것을 공개하게 만들었지만 어린이의 성이라던지 성도착자들의 성등의 '주변부적인 성적 욕망'에 대해서는 철저히 통제와 감시의 대상이 되었고 비정상적인 것으로 분류되었다. 이후 이런 것들은 교육이나 성 과학, 의학 권력(정신의학등)에 의해 통제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이러한 주변부적인 성적 욕망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서는 지식과 권력의 출현이 필요하다.  

 

이렇듯, 『성의 역사』 1권은 1년 전에 나온『감시와 처벌』(1975)의 연장선 상에서 동일한 문제의식(권력-지식관계)을 섹슈얼리티의 영역으로 확장시킨 책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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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0-12-19 04: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이렇게 풀어서 얘기해주시니 이해가 되네요. 쫌. ㅎㅎㅎㅎ 푸코는 완전 제 아웃 오브 안중인데....열심히 읽으셔서 정리해줘요. 저는 그럼 푸코는 그것으로 만족하는 것으로. 👍😅

블랙겟타 2020-12-20 23:17   좋아요 0 | URL
그래도 아직까진 어렵네요 가장 얇은 1권만 읽어서 ㅎㅎㅎㅎ
앞으로도 노력해볼게요 라로님. ^^ (언제 다읽지..ㅋㅋㅋ)

다락방 2020-12-19 08: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열심히 읽고 계시네요, 겟타님! 감사해요.
전 3권까지 읽었지만 그래도 이 페이퍼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1권 읽었는데도 여기 인용문 보면서 이런 게 있었나 싶고 ㅜㅜㅜ 전 어떡해요 ㅜㅜㅜㅜㅜㅜㅜㅜ 빨리 1월 와서 육식의 성정치 읽었으면 좋겠어요. ㅠㅠ

블랙겟타 2020-12-20 23:18   좋아요 1 | URL
저도 적어도 3권까진 이달에 읽어야 될텐데요. ㅋㅋㅋㅋ
그래서 그런지 얼른 1월의 책이 기다려지는 ㅋㅋㅋㅋㅋ

비연 2020-12-19 09: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겟타님. 열심히 열심히 읽어서 저를 앞지르고... 제 2권은 저어기 얌전히 놓여 있답니다. 흠흠. 어쨌든 다 읽어보기로. 흠흠.

블랙겟타 2020-12-20 23:20   좋아요 2 | URL
역시 아직 철학이 어려워요.. 특히 프랑스... ㅋㅋㅋㅋㅋ
저도 눈 딱 감고(응?) 3권까지는 읽어보려구요

scott 2020-12-19 10: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푸코 ㅜ.ㅜ겟타님이 이웃님들에 푸코 전도사였어 ㅋㅋㅋ

블랙겟타 2020-12-20 23:21   좋아요 1 | URL
제가 전도한건 아니고 더 많이 읽으신 분도 계실거에요 ㅋㅋㅋㅋ
1권밖에 읽지 못했는 걸요 ㅎㅎ 아직 이해하기엔.. ㅠ

수이 2020-12-20 14: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푸코와 보내는데 어떻게 따뜻할 수가 있지!!!!!!!!!! 🙅‍♀️🙅‍♀️🙅‍♀️😎😎😎🤬🤬🤬

블랙겟타 2020-12-20 23:22   좋아요 1 | URL
그래서 그런걸까요? 난방을 켜두었는데도 춥더라구요.. ㄷㄷㄷ

han22598 2020-12-22 02: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왜 성의 욕망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한 걸까요?주변부적 또는 비정상적으로 분류하면서 왜 통제하려 했던 것일까요? 아니면 통제의 수단으로 성을 이용한건가요? 흠.........(겟타님 아시죠? 제가 답변을 요구하는건 아니라는거...그냥 책을 읽지 않은 이의 머리 속에 떠오르는 궁금증이에요 ㅎㅎ )

블랙겟타 2020-12-29 23:28   좋아요 1 | URL
han님 답글이 늦었지요?(사실 바로 단다는게 깜박하고 있었어요. 죄송ㅠ)
타인을 통제하려는 권력의 기능이 성(섹슈얼리티)의 분야에도 작동한 것이 아니였을까요?
18세기 서양에서 성의 관한 의학적, 과학적 지식이 등장하면서 개인의 성적행동과 의식을 통제(정상/비정상의 분류)하게 되었다고 푸코는 보았는데요.(이것은 프로이트와도 연결이 되는 것 같기도..)
이렇게 의학적, 과학적 지식이 권력을 얻게된 과정을 통해 푸코는 권력과 지식이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닌 두개가 긴밀한 관계다라고 보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프로이트도 만만치 않았는데 철학.. 특히 프랑스철학은 더욱 어렵네요. 읽는것과 별개로 이해하는 것이 또다른 과정이니 말이죠 ㅋㅋㅋ

han22598 2020-12-31 03:45   좋아요 1 | URL
아 그렇군요. 권력과 지식의 상관관계!
저도 잊고 있었던 답글인데, 기억해주시고 답글 달아주시다니...대단.대단하십니다.
감사해요 블랙겟타님!

2021년에도 즐거운 알라딘 놀이 계속 해요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scott 2020-12-24 15: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겟타님 행복한 크리스마스 따스한 연말 보내세요.
푸코 책 옆에 트리 한그루 심어놓고 갈께여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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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erry ☆ Christma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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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메리 크리스마스 ^.~

블랙겟타 2020-12-25 09:5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scott님도 즐거운 크리스 마스 보내세요~

scott 2020-12-31 1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겟타님 2021년 새해 좋은일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해피뉴이어 !

\-----/
/~~~~~\ 2021년
| 福마뉘ㅣ
\______/

블랙겟타 2020-12-31 23:04   좋아요 0 | URL
먼저 댓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scott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말랑말랑한 노동을 위하여 - 좋은 일의 기준이 달라진다, 2021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도서
황세원 지음 / 산지니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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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일을 하며 살아간다. 생계를 위해서든 일을 통해 삶의 의지를 느끼기 위해서든.

누가 '나쁜'일을 하고 싶어할까? '나쁜'일인지 '좋은'일인지 주관적일수도 있지만 한국이 한창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루던 시대(70~80년대)엔 우리 부모님 세대들은 흔히 생각하는 '나쁜'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마다하지 않았던 것은 박봉에 노동환경이 나빴더라도 경제성장을 피부로 느꼈기도 했고 성장에 대한 믿음도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그 본인들이 느꼈을 노동을 하며 열악한 노동환경과 사회적인 평가가 자식에게 만큼은 이런 일 안시켜야지 하는 의지도 강했으리라.  

반대로 그 당시 '좋은' 일이라고 하는 것은 판-검사등의 큰 일(?)하는 사람들이나 의사라던가 대기업의 사무직 노동자등이 하는 일일 것이다. 그 '좋은' 일이란게 그 일을 함으로써 보람되는 일이기때문에 '좋은'일이 된지는 의문이다. 주위의 평판일 수도 있고 급료의 차이일 수도 있고 덜 육체적이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다. 

비정규직 일자리가 본격적으로 양산된 IMF시대를 거쳐 사람들 마음 속에 조금씩 '좋은 일'이라는 개념이 바뀌기 시작했다. 안정적인 일자리 즉, 정규직이라도 하는 것을 원했다. 그런 생각도 이제 20년이 넘게 흘렀다. 지금의 '좋은 일'은 뭘까? 대기업, 정규직의 일자리일까?


이런 물음으로 부터 출발한 이 책은 변화하고 있는 '좋은 일'에 대한 기준을 살펴보는 책이다. 

제목인 말랑말랑한 노동? 말랑말랑과 노동은 뭔가 쉽게 매치가 되지 않는다. 무슨 뜻일까? 표지에도 곰돌이 젤리가 보이고..

저자인 황세원대표는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을 오피스 노동이라고 칭하며 딱딱한(경직적인) 노동이라고 하였고, 흔히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노동(예를 들면 돌봄노동, 택배노동, 학습지교사등)을 동네노동이라고 칭하며 이 경우엔 흐물흐물한(흘러내리는) 노동이라고 구분지었다. 


 저자가 보기엔 우리가 흔히 좋은 일자리라고 알려진 오피스노동도 너무 경직되어서는 문제가 생길것이고 동네노동의 흘러내리는 수준이 커진다면 그것 또한 문제로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노동이 경직되는 것도 아닌 흘러내리는 것도 아닌 말랑말랑한 정도로 양쪽을 맞출 수는 없을까라는 의문에서 이 책을 시작한다. 당연히 그렇게 되면 좋은 건 누구나 안다. 그렇다면 왜 실제론 안될까? 저자는 한국사회에 여러 걸림돌이 있다고 보았다.


먼저 '공부지상주의'가 한국에서 강하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다른나라또한 없는 것은 아닐테지만 한국은 특히 더 심하다는 것인데 한국을 사회진입직전까지 청소년기에 한줄로 서 있는 사회라고 보았다. 그럼 한 줄로 줄 세운(누가 앞에 있고 누가 뒤에 있는) 근거는 뭘까? 당연하게도 성적이다. 특히 대학입시 성적인 경우로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그리고 우리사회는 이 줄세우기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고..  


이제 우리, 고3 때까지 공부 잘했냐 아니냐는 최대로 치더라도 한 5년 정도만 인정해 주는 게 어떨까? 그다음에는 서로 어느 대학 나왔는지 묻지도 말고, 알려고 하지도 말았으면, 그런 얘기 꺼내는 사람은 ‘완전 구리다’고 여겨졌으면 좋겠다. 현재 하는 일과 지향에 따라서 자기를 들어내고 서로 이해하는 사람들끼리 잘사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p. 206)


단순화시켜 한국을 사람들이 한 줄로 100명이 서 있는 사회라고 가정해보자. 앞의 10~15명정도의 사람들이 들어가게 되는 일터는 흔히 말하는 큰조직의 정규직이고 평균 이상의 복지, 사내 복지혜택을 누릴 수 있는 곳이다. 좋은 일자리는 한정적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앞 몇명만 들어가게 된다. 나머지의 사람들은 좋은 기업의 비정규직으로 들어가거나 중, 소기업혹은 동네노동에 종사할 확률이 높다. 이 동네노동은 사회적 차별도 있고 저임금에 무시와 하대도 있을 수도 있고 4대보험이 안되며 상대적 위험한 노동환경인 일자리일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두 그룹이 들어가는 일자리의 질이 너무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러한 문제에 가만히 있었을까? 아니, 정부도 나름 정책을 펼치고 대책을 만들었다. 위의 모델을 통해 설명하자면 좋은 일자리에 10~15명 갈 수 있었던 것을 5명더 추가해 20명정도가 갈 수 있게 만들어 준 식이었다. 물론 5명 정도 더 들어가게 만들어주는 것 또한 의미있는 것 아니냐라고 항변할 수도 있겠다. 맞다. 하지만 단지 들어갈 수 있는 문을 조금 더 넗혀준 것으로 정부의 역할을 다했다라고 생각할 수 있을지는.. 이제는 다른 식의 해법을 사회가 함께 고민해봐야한다.


IMF 외환위기 이후로 '불필요한 노동력을 줄이는' 식의 구조조정이 기업의 체질을 고치고 경쟁력을 높이는 데 필수적이라는 인식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정부 및 공공기관조차도 필수 인력을 최대한 적게 잡고, 가능하면 외주화하거나 임시계약직으로 채용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 및 조직들이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외부의 개입으로 장기근속(지속고용) 일자리들을 늘리게 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런 데다가 공기업, 대기업, 금융기관과 같은 조직들일수록 '공채'문화가 강하기 떄문에 인위적으로 채용 규모를 늘린다고 해도 이와 구분되는 직군이거나 임시 계약직일 가능성이 높다.

(『코로나 0년, 초회복의 시작』, p.72~73)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좋은 일자리에 가지 못한 나머지 사람들 중엔 그럼 공무원 공부해야겠다라는 방향이 생긴다. 공무원시험은 나이제한도 없고 우리나라에서 그나마 '공정'하다고 남아있는 몇 안되는 곳이다. 이런 흐름에서 이제는 복병이 생겼다. 최근에 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 팬더믹이라던지 기술변화, 산업의 변화로 좋은 일자리로 가는 문(정부가 조금이라도 늘리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은 오히려 더 줄어드는 상황이다. 


세계 곳곳 뿐만아니라 한국도 이미 저성장시대로 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코로나 팬더믹으로 이러한 흐름은 더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을 기존의 방식대로 유지하는 것이 괜찮은 걸까? 저자의 말대로 이제는 기존의 딱딱한 노동시장을 다양한 선택지의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한 노동시장으로 변화해야 되지는 않을까? 사회전체로 봤을 때도 효율적측면에서도 좋은 방향일 지도 모른다. 이런 주장을 하면 노동계에선 발끈할 것이다. 아니! 그럼 쉬운 해고를 하는 사회가 되어야하냐고.. 이해는 간다. IMF시절 큰 사회 변화를 겪었기 때문이다. 경영계에서 주장하는 유연한 노동시장을 떠올릴 수도 있고. 당연하게도 이런 변화의 전제조건은 노동의 질이 어느정도 비슷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노동의 최저선을 올려야 할 것이고 어떤 형태로 일하든 큰 차이없는 사회를 만드는 방향으로의 모든 구성원의 논의가 필요하다.  


두번째의 걸림돌은 정규직의 개념의 모호성이라고 하였다. 


정부는 대체로 정규직 전환을 '기간의 정함이 없는 고용'형태로 전환해 주는 것으로 여기는 반면 일반적인 인식 가운데는 '임금을 포함해서 일자리의 전반적인 질적 수준을 높인다'는 뜻과 '직장 안의 차별적인 제도와 관행을 적극적으로 시정한다'는 의미가 존재한다.

(p. 89~90)


통계청에서 발표해서 분석하는 것으로는 우리나라의 정규직 비율을 보통 63~65%정도로 보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일반 시민들에게 물어보면 그렇게 느끼질 못한다. 정규직의 개념이 정부에서 보는 것과 일반 시민들이 생각하는 것과 괴리가 있다. 이런 괴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 올해 떠들썩했던 인천국제공항의 정규직 전환 갈등이었다. 아무리 정부가 선한 의지로 움직였을지라도 이 정도의 사회적 문제가 일어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청년세대들의 공정에 대한 왜곡된 인식도 물론 문제가 있었다고 보지만 정부쪽에서 보다 더 세심하게 접근을 하지 못한 정책 실책의 탓도 크다.   


동시에 한국 사회에는 열악한 일자리에서 힘겨워하는 사람들, 심지어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일자리에서 목숨을 잃는 사람들을 보면서도 '진작 노력해서 안정적이고 좋은 일자리에 들어갔어야지'하는 식으로 개인 탓을 하는 경향이 있다.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정책에 부정적인 사람들은 대체로 '어떤 사람들은 죽도록 노력해서 정규직이 되는 데, 비정규직들이 아무 노력 없이 그 희소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논리에 기반하고 있다.

(『코로나 0년, 초회복의 시작』, p.74~75)


이 책에서 나오듯 그렇다면 일반 시민들이 생각하는 정도로 다시 정규직 비율을 추정해보면 7~10%정도로 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볼때 정규직 사회로의 이행을 목표로 하는 정책이 가능할까? 오히려 위에 썼던 것처럼 노동의 최저선을 올리는 것이 더 현실적일 수 있다. 이젠 IMF이전 호시절로 다시 돌아가기는 어렵다. 오히려 단기 근속사회로 도래하고 있는 시대인데 우리 대부분이 장기근속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았을까? 꼭 하나의 직업만이, 정규직만이 아니더라도 좋은 일일 수 있다. 


우리에게 일은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삶 전체는 아니다. 우리 삶에서 일이 큰 부분을 차지하므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좋은 일'을 할 수 있어야 할 뿐이다.

(p. 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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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0-12-04 04: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친구한테 똑같은 이야기를 들엇어요. 비정규직들을 그냥 쉽게 정규직으로 전환시키면, 자기들처럼 죽자사자 열심히 노력한 사람들은 기운 빠진다고...... 정규직까지 되기 위한 자신들의 열심을 인정하기 위해서라도 비정규직들이 존재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또는 비정규직들은 정규직들을 바라보면 나도 저들처럼 될길 소망하면서 매일 매일 노력하며 살아가야 하는지....ㅠㅠ 참...머라할 답을 내기에 어려운 문제인것 같아요. 어느 정도는 우리의 직업 (일) 을 통해 스스로를 규정하고 살아가고는 있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님을 점점 느끼고 있는 요즘이에요.

블랙겟타 2020-12-04 23:11   좋아요 2 | URL
댓글 감사합니다. han님 ^^
이 책에도 han님이 말한 질문이 나와요 . 설사 좋은 학력과 높은 입사 경쟁률을 뚫은 실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정규직이 된 순간 신분이 높아져서 다른 사람을 차별할 자격이 생긴건 아니라고요. 물론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많은 취준생이나 입사한 2-30대의 입장은 당연히 이해는 가요. 그들이 이렇게 만든건 아니니깐요. 사회전체적으로 정규직이 하기에는 덜 중요하고 하찮은 일에 비정규직을 쓰는 관행이 없어지지 않는한 이런 인식이 바뀌기가 힘들 것 같아요. ㅜㅜ 직업의 귀천이 없다고 말은 하지만 그동안 사회전체적으로 은근히 암묵적으로 나눠서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저 부터 반성을 하게되네요..

han22598 2020-12-05 07:32   좋아요 2 | URL
저에게도 사실 자신이 없는 부분이라서....더 실랄하게 비판을 못하겠어요. 누군가 너부터 똑바로 살아랏! 이럴 것 같아서요 ㅠ

블랙겟타 2020-12-06 23:05   좋아요 2 | URL
저도 그 부분에선 자유롭진 못하죠. ㅠㅠ
그와 별개로 어쨋든 한국도 단기근속 사회로 가는 흐름이라 모두가 이 새로운 미래를 살아갈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정부나 정치권도 단순히 억지로 정규직을 늘릴 방향보다는 일의 형태가 다양해질 미래에 대응해 일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사회적 보험이라던가..)에 대한 정책적인 고민을 해봐야겠지요. 개인 차원에서도 모든 일에 대한 존중 위에 좋은 일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해봐야겠구요..
(글은 이렇게 써놨지만 생각보다 어렵다는 것도 알기에.. ㅠㅠ)
 

오늘 밤엔 한국 남자축구대표팀와 카타르의 평가전이 열린다.

며칠 전엔 멕시코와 평가전이 있었고 이 두 경기을 위해 남자축구대표팀은 멀리 오스트리아로 날아갔다. 왜 멕시코도 아니고 한국도 아니고 제 3국에서 경기를 하나 싶지만 코로나의 사정으로 이렇게 이루어진 듯하다. 그런데 오스트리아가 코로나로 심각한 상황이였다. 그럼에도 이전부터 잡아논 일정이었기 때문에 위험을 감수하고 오스트리아로 간 것이다.

결국 우려한대로 뉴스를 본 사람들은 알지만 한국 남자 대표팀선수 5명이 오스트리아 현지에서 코로나 확진을 받았다.

그럼 왜 이런 세계적으로 위험한 상황에서 외국에 모여 축구경기를 할까? 좀 쉬면 안되나? 

축구뿐만 아니라 스포츠가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전체적으로 커다란 산업화가 이루어져 이제는 비지니스차원으로 움직인다. 

하기 싫어도 마냥 미룰 수만 없는 사정도 있다. 그래서 그 인기있다는 유럽의 축구시장도 큰 위기를 겪고 있다. 서유럽의 코로나 유행이 다시 일어나는 와중에도 (예를 들면 영국의 경우 봉쇄령이 내려졌음에도 리그는 지속되고 있다.)리그가 열리고 있고 A매치(국가간 경기)도 무관중으로 진행되고 있다. 아마 스폰서와 중계권을 맺은 방송사와의 계약내용을 이행해야되는 조건들이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한국 남자축구대표팀의 경우엔 올해 초 나이키와 12년 장기 계약을 체결을 맺었는데 전문가들이 하는 말엔 1달만 늦었으면(코로나 유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런 대형계약을 체결하지 못했을 거라고 하였다. 

그만큼 코로나19로 인해 스포츠에 끼친 피해는 어마어마할 것이다. 선수들 연봉에도 분명 영향을 끼칠 것이다.
















한국 축구남자대표팀이 있는 곳이 오스트리아라고 하니 마침 지금 읽고 있는 책의 주인공이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사람이다.(우연?)

바로 지그문트 프로이트다. 마침 프로이트도 스포츠에 대한 이야기를 한적이 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스포츠가 인간 안의 공격적인 욕구가 신체적으로 드러난 것일 수도 있는데 이는 곧 사회적으로 타나토스적 에너지(인간의 파괴적이고 공격적인 면)를 방출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런 면에서 코로나시대에 스포츠의 역할이 꼭 비지니스 산업으로 보지 않더라도 타나토스 에너지를 간접적으로 해소시켜 주는 역할으로서도 필요하다고도 생각한다.


프로이트라는 사람은.. 그의 만행(?)에 대해서 책을 통해 보기만 봤지 그의 생애나 그가 남긴 책을 읽은적은 없었다.

프로이트가 말한 남근선망-거세공포로 인해 꾸준히 읽고 있는 여성주의 책 안에선 당연히 프로이트를 좋게보지 않는데 이 입문서를 읽으면서 프로이트 당신이 뭔데?! 라며 읽으려고 했었다. 깔땐 까더라도 알고나 까려고..


프로이트의 이론, 곧 정신분석학은 사랑·증오·유년기·가족 관계·문명·종교·성욕·판타지 등 우리의 일상생활을 구성하는 여러 상반되는 감정을 이해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공했다. 오늘날 우리는 혁신적인, 그렇지만 논쟁의 여지가 있는 프로이트 개념들의 그늘 아래 살고 있다. 프로이트의 글은, 그것이 포괄하는 범위나 이후 그것이 끼친 영향의 측면에서 본다면, 한 이론가의 생각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의 개념과 그 개념의 정수를 구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P.19)


생각해보니 지금까지도 좋든 싫든 프로이트의 그늘 아래 살고 있는 것인가..


프로이트는 1856년 오스트리아(지금은 체코)의 모라비아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7남매의 장자로 태어났다. 어릴 때 부터 총명했던 프로이트는 어려운 집안사정에도 불구하고 부모는 아들의 교육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집에 있던 두 개의 방중 하나를 그에게 공부방으로 내어줄 정도였다. 이렇게 부모로부터 받은 높은 기대가 훗날 그의 정서에 어느정도 영향을 준 것 같다. 그리고 나이가 들었을 때는 1차 세계대전시기의 일어난 반유대주의 사상으로 인해 인간의 사회적 특성을 비관적으로 보기 시작하였다.

실제 프로이트는 완벽과 정확성을 추구하는 강박적인 성격으로 자기얘기를 잘 하지않는 사람이었다. 호감을 사는 사람이 아니여서 자신의 이론을 수용하지 못한 사람들(아들러, 융)과 결국 결별하기도 했다. 

그만큼 고집스러운 성격이 지금의 프로이트를 만든 것일 수도 있겠다.


사회 이론으로서의 정신분석학은 상당히 보수적인 성향을 띠는 것처럼 보인다. 프로이트는 공산주의가 약속하는 것과 같은 사회적 유토피아에 대해서는 별다른 믿음을 드러내지 않았다. 인간 본성과 관련해서 염세적이고 회의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경제적 요인들의 변화가 인류의 기본적인 본성의 변화를 초래할 것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았던 것이다. 프로이트는 사회규범들을 받아들이기는 하면서도 그것들이 돌에 씌어져 있는 것도, 자연적인 것도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오히려 그에게 사회규범들을 이해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공할 수 있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정신 분석학은 개인이나 사회의 변형에 대한 이론이라기보다 현재 상태를 인정 및 옹호하는 이론이다. 인간 본성(이드)이 함축하는 욕망들은 제어될 수 없다.

(p. 210)


입문서이긴 했지만, 이 책과 생애를 다룬 논문을 읽으보며 느낀건 프로이트는 천재는 맞는 것 같다.

프로이트를 통해 우리는 우리를 이해할 수 있는 깊은 통찰을 갖게된 것은 분명하다.

정신분석에 대한 체계화된 이론을 최초로 제시한 사람으로 당시에 프로이트가 제시한 설명들은 너무 획기적이였고 지금 봐도 납득가능한 타당한 설명을 제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프로이트 본인이 19세기 백인 유대계 남성의 시선으로 바라보았기 때문에 인간보편적으로 보는 것은 실패하였다. 남성이었기 때문에 여성에 대한 관찰이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었고..시대의 한계일 수도 있고. 


또, 마르크스가 제시했던 사회문화적 측면을 간과한 것도 한계라고 볼 수 있다. 프로이트는 섹슈얼리티, 성욕이라고 대표되는 어떤 인간의 욕구로 모든 것을 설명하고자 했고 인간은 결정되는 존재로서 바라보았다. 즉, 과거에 의해 결정되어버린 존재로..

하지만 인간이 정말 그런 존재일까? 인간이 성욕으로 전부 설명될 수있을까? 


프로이트의 용어들을 약간만 바꾸면 '여성들이 어떻게 성차를 상실이나 결핍으로 경험하게 되는가?'라는 문제와 관련한 그의 분석이 옳았다는 것을 알게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상실은 어떤 신체 기관의 상실이 아니라 지위(사실상 여성이 결코 점유할 수 없는 지위)의 상실이다. 모든 사람이 갈망하는 것은 사실 구체적인 신체 부위가 아니라 권위나 확신, 존경이며, 사회에서 여성보다 남성이 이런 종류의 권력들, 그러니까 자아를 형성하는 사회적 권력들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프로이트가 젠더 간의 불평등을 발생시키는 원인들에 대해서는 완전히 옳았다고 잘못된 주장을 했지만, 젠더 간의 불평등 구조에 대한 견해에서는 옳았다고 할 수 있게 된다. 

(p. 240~241)


한계도 분명한 학자임에도 현재에도 왜 여러분야의 책에서 프로이트가 소환이되고 그럴까? 인간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만든 '통찰'을 발견하게 된 최초의 사람으로 가지는 위상은 대단한 것이다. 이 프로이트의 이론들을 통해 그가 가진 한계들을 보완해나가면서 사람을 더 잘 이해하는 방향으로 발전해나가는 것이 후세를 살고 있는 우리의 몫이다.  


욕할려고 읽기 시작했는데 어느정도 프로이트에 대해 알고 나니 그를 아주.. 약간 이해한 것 같지만..여기서 멈추자. 너무 이해하면 안된다고.. ㅋㅋㅋ

그것보다 잠시만.... 프로이트 책을 다 읽고 나니.. 주위에 아무도 없는게 느껴진다..;;; 다들 푸코에 가 있겠지..ㅠㅠ(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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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11-17 17: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마지막 문장 뭔가 했어요.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게 무슨말이지? 했는데 푸코였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블랙겟타님 너무 좋아요ㅜㅜ 프로이트 읽기 전과 후의 감상이 저랑 결이 너무 비슷한 것 같아서 씐나서 읽었네요. 읽느라 고생하셨어요. 그리고 늘 드리는 말씀이지만 같이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그리고 이제 빨리 푸코로 오세요!

부산 가고 싶네요 ㅠㅠ

블랙겟타 2020-11-19 13:58   좋아요 0 | URL
뒤늦게 골인지점에 와보니 아무도 없더라구요.. 다들 다음 코스로 가버려서요 ㅋㅋㅋㅋ

다락방님도 감상이 저와 비슷하셨군요. 감사합니다.
책 읽고 글도 쓰고 하면 더 이해가 되라구요. 정리도 되니깐요. (당연하자나!! ㅋㅋㅋ)
네! 푸코 입문서로 함께 다음코스로 넘어갑니당!!

하루빨리 상황이 좋아져야할텐데요...ㅠ

수이 2020-11-17 22: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해하고 싶지 않아.......프로이트.........ㅋㅋㅋㅋㅋㅋㅋ 푸코에게 얼른 오세요!!

블랙겟타 2020-11-19 13:56   좋아요 0 | URL
이제..프로이트는 제쳐두고 하고 푸코로 가요! (수연님은 이미 저 멀리 간것 같은데..ㅠㅠ)

han22598 2020-11-19 00: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는 불변성에 대해 부정하긴 어려운데..프로이트님은 우리에게 존재하는 본성을 인정하고 옹호하는 것이 인간의 욕망을 제어할 수 있다고 하시는 것 같은데 (맞나?)..저는 반대로 본성은 인정하되 그 본성을 잘 다스리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살아가고 있는데..(사실 모든 욕망은 제어하지 않아도 되니.) 아...먼가 프로이트가 궁금해지긴 하네요. 하지만 선뜻 읽어볼 용기는 나지 않네요 ㅋㅋㅋㅋ

블랙겟타 2020-11-19 14:32   좋아요 1 | URL
댓글 감사합니다. han님^^
저도 프로이트의 저서를 직접 읽어본 것이 아니라 입문서로 읽어본거라 정확한 건지는 모르겠지만요.
프로이트가 주장한 인간 마음의 구조적 모델인 자아(에고)/원초아(이드)/초자아(슈퍼에고)에서 본성(이드)의 존재를 인정하고 옹호하더라도 이드가 너무 많이 힘을 가지게 되고 있을 땐 충동적이거나 파괴적이되기 때문에 건강한 삶을 위해선 자아의 기능(개인과 타인의 안녕을 해치지 않으면서 본능적 욕구(이드)를 충족시키는 기능)이 중요하다고 했었거든요. 이렇게 볼땐 프로이트도 han님의 말씀과도 비슷한 것 같구요...^^;;
이 책은 입문서라 생각보다 어렵진 않을 거 같아요. 다음에 기회가 되시면 읽어보세요.

han22598 2020-11-20 00:41   좋아요 1 | URL
저도 댓글 감사해요 ^^흠..한가지 문득 떠오르는 생각. 사실 본능이라는 범주가 어디까지인지도 궁금하지만, 사실 본능이라 생각하면 언뜻 머리속에 떠오르는 것들은 쾌락, 욕망 이런것들이잖아요. 하지만 남을 불쌍히 여기는 긍휼의 마음, 다른 사람과 함께 하고픈 마음, 저는 이러한 것들도 인간의 본능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이 또한 자의적인 생각인 것 같아서 본능의 정의를 찾아보니 유전적으로 몸에 지니고 있는 성질이라네요....그렇다면 유전적인 요소가 달라지면 각 개인의 본능도 달라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인데...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암튼 프로이트가 주장한 논리를 적용해보면, 이러한 선한(^^)이드는 많은 힘을 가질 수록 그리고 초자아 (나 중심적 사고 또는 삶)가 잘 작동하지 못할수록 인간의 본연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해봤어요. (물론 이 생각의 가정은 성선설이네요.ㅎ, 만약 인간이 자기중심적인 생각이 본능이라고 생각하면 이 생각은 뒤집어지는거죠.)

블랙겟타 2020-11-21 13:41   좋아요 1 | URL
han님이 말씀하신 흔히 우리가 아는 쾌락이나 욕망을 프로이트는 원초아(이드)라고 했지만 또 han님과 다르게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함께 하고픈 마음 등은 본능의 범주에 넣지 않았던 것 같아요. 초자아(슈퍼에고, 도덕이나 규범)라고 이것은 자라면서 배우는 것이라고 해석했던 것 같아요.
프로이트의 생애(태어날 당시부터 복잡했던 가족관계, 가난, 유대인으로서 청년기 이후에 겪은 사회적 냉대, 15년간에 걸친 의사 집단으로부터의 따돌림, 정신분석 치료의 실패에 따른 위기감, 그리고 말년에 겪었던 여러차례의 구강암 수술의 고통)를 보며 느껴지는 건 프로이트는 성선설의 입장은 아니였을 것 같아요..^^;;
프로이트는 사회에서 사람들과 같이 사는 이상 자연적인 본능(원초아)만 힘을 가져서도 안되고 도덕이나 규범(초자아)가 너무 강해서도 안되기 때문에 원초아와 초자아를 적절히 컨트롤(충족 또는 해소) 해 현실세계에서 보다 성숙한 행동할 수 있게 하는 자아의 기능이 잘 발휘될 때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라고 보았기 때문에 han님의 생각과 약간 다를 것 같아요. 본연의 모습이라기 보다 사회적으로 건강한 삶이라고 생각했다고 느낌이 들어서요. (어? 왜 자꾸 내가 프로이트를 이해하는 것 같지?? 정신차리자! ㅋㅋㅋ)
그래도 이런 프로이트의 해석이라고 무조건 정답은 아니니깐요. 저도 아.. 이런 접근도 있구나라고 느끼지 han님의 생각도 동의해요. 저도 인간의 선한 마음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요 :D
(그런데..제가 한 권밖에 안 읽은 거라 군데 군데 프로이트에 대해 제가 이상하게 해석 했을 수도 있어여.. ㅠㅠ 알면 알수록 어렵네요 하하..;;)

han22598 2020-11-24 05:11   좋아요 1 | URL
프로이트는 초자아에 속한 도덕적양심이나 규범들이 본능을 잘 다스리고 조절할 때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했는데, 사실 이 말의 큰 착각(오류)는 ˝도덕적 양심과 규범의 완벽성˝이라고 생각해요. 게다가, 그런 양심, 도덕, 법, 규범들이 시대에 따라 변화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고려가 되었는지 궁금하네요. 시간의 변화 가능성은 슈퍼에고 뿐 아니라 이드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참...책도 안 읽고 말만 많네요 ㅋ)

블랙겟타님, 친절한 답변 감사해요^^ 이상하게 저는 책을 읽기 전에 질문이 더 많은 것 같아요 ㅋ 유명한 고전책들은 (특히 프로이트님ㅋ) 적극적으로 읽으려는 부지럼은 없는 반면에, 읽고 난 사람들의 반응을좀 지켜보곤 하는데, 무언가 좀 일관된 생각들이 보여지면 좀 마음이 심드렁해져요 ㅎㅎ. (성격이 이상한가봐요 ㅋ) 아무튼, 질문에 꼬리를 물고 생각하기는 좋아하는데, 답정책 처럼 이미 정해진 리뷰에 편승하는 책 읽기는 재미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블랙겟타님이 저의 욕망을 조금 채워주시는 것 같아서 감사해요. ^^

블랙겟타 2020-11-25 21:39   좋아요 0 | URL
저도 han님의 의견에 동의해요 ^^
han님과 댓글이 오간 덕분에 ‘아! 그 부분은 내가 생각치 못했었구나‘라고 책 다시 찾아보면서 공부가 더 되는 느낌을 받아 좋았습니다. 책을 읽기 전 의문을 가지는 건 좋죠ㅋㅋ 저는 그렇게는 아직 안되고 그냥 좋은 느낌이 드는 책이 있으면 바로 읽거든요 ㅎㅎ 그리고.. 이상한 성격도 아니에요(소근소근) ㅋㅋ
제가 조금이나마 채워드렸다면 다행이네요!
앞으로 저도 han님의 글 열심히 읽을게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D
 

올해의 국정감사에선 코로나시대로 인해 물량이 많아진 택배노동자들의 과로사문제가 이슈가 되었었고 간간히 배달대행노동자들의 문제들도 뉴스를 통해 보곤 하는데 이런 가운데 플랫폼노동에 관한 두 책을 읽었다,


 

 













한 권은 플랫폼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라는 책이고 한 권은 공유경제는 공유하지 않는다』라는 책이다. 작년 쯤에 팟캐스트에서 플랫폼 노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적이 있다. 그 방송에서는 갑자기 떠오른 새로운 형태의 노동을 어떻게 우리가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인터넷 뉴스를 보다가 이 책의 존재을 알아 도서관에서 빌리려고 했더니 계속 누가 빌리는지 대출중이라고 떠서 최근에 와서야 두 권 모두를 읽게 되었다. 두 권은 다르면서도 비슷하다. 다른 점이라면 저자의 분야가 다르다, 둘 다 현재의 플랫폼 경제(미국에선 통상 긱(gig)경제라고 칭한다)에 대해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플랫폼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의 저자는 법학교수로서 플랫폼 노동에 대해 그의 맞는 새로운 노동법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으며 공유경제는 공유하지 않는다』의 저자는 사회학 교수답게 플랫폼 노동자 80여명과의 인터뷰를 통해 플랫폼 노동의 민낯을 사회학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미 몇 년 전부터 플랫폼 경제 혹은 공유경제, 긱경제로 불리는 새롭게 성장한 경제형태가 나타났다. 쉽게 말해서 우버나, 에어 비앤비등의 서비스 등장이다. 한국에서도 작년부터 논쟁이었던 차량공유서비스인 '타다'라던가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요즘, 외출과 다른 사람과의 대면활동이 어려워지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하고있는 '배민', '요기요'등의 배달대행서비스도 이에 해당될 것이다. 


경제계나 경영계에선 새로운 경제형태의 출현에 찬사를 보냈다. 생각해보면 작년에 있었던 '타다'와 택시업계의 갈등 속에 타다의 이재웅대표도 혁신이 늘 이겼다고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할 만큼 플랫폼 경제는 혁신이란 단어가 늘 따라왔다. 

'타다' 논란 이재웅 쏘카 대표 "혁신은 늘 이겨왔다" <연합뉴스>


언뜻보면 혁신같기도 하다.  미국에서 흔히 쓰는 긱경제의 '긱'이라는 단어의 어원(1920년대 재즈가 유행하던 미국 뉴욕, '공연장 주변에서 연주자를 구해 단기간의 공연 계약을 맺는 행위'를 당시 음악가들이 '긱'이라 부른 것)대로 흔히 존재하는 노동형태인 사용자-노동자간의 계약을 통해 노동하는 형태가 아니라 노동계약을 일정기간이 아닌 기간을 잘게 쪼게 건별로 계약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노동시장에서는 노동자는 내가 하고 싶을때만 계약할 수 있고 수요자는 자신들이 원하는 노동력을 쉽고 빠르고 게다가 값싸게 구할 수 있다. 이렇게 모두가 만족한 형태라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지만.. 저자들은 실제로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노동측면에서 본다면 긱 경제의 혁신은 신화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GPS 위치 탐지기와 인터넷에서부터 손바닥만한 크기의 강력한 프로세서에 이르기까지, 앱과 플랫폼 기업들이 이용하고 있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는 종종 진정으로 혁명적인 혁신과 돌파(Breakthrough)의 직접적인 결과물이다. 그러나 업계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그 밑에 깔려있는 사업 모델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복잡한 직무가 아닌 저숙련 과업, 대규모 노동력을 통제하는 강력한 중개자 그리고 개방된 시장과 폐쇄된 위계 조직 사이의 혼합된 형태까지 긱 경제는 수백 년 동안 지속되어 온 노동시장 관행의 최신(그리고 아마도 극단적인) 사례에 불과하다.

(『플랫폼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P. 149)


긱경제는 현대 사회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공하기보다는 신기술로 포장했을 뿐 실상은 노동자 보호장치가 부족하고 보상을 요구하기도 어려운, 이른바 초기 산업사회와 같은 시스템에 노동자를 종속시킬 뿐이다.

(『공유경제는 공유하지 않는다』, P. 102)


현대사회는 그야말로 저성장시대다. 거기에다 코로나 쇼크로 이어지면서 기존의 산업이 더더욱 휘청거리고 있다. 특히 한국이 자랑하는 제조업의 미래가 그다지 밝지 않음에 따라 노동의 형태도 점점 바뀌고 있다. 흔히 말하는 대기업의 정규직일자리는 점점 더 줄어들 것이다. 제조업은 일자리가 생기는 몫 대부분을 직접 책임지지 않는 외주화형태로 변경하고 있고 그나마 똘똘한(?) 정규직 자리는 국가가 직접 운영하는 공무원이라던가 그에 준하는 공기업의 일자리가 대부분이기에 취준생들도 이곳에 몰려드는 시대다. 이러한 상황에서 플랫폼 기업의 성장은 필연적이었다.  IT산업의 발달로 인한 IT인프라 구성이 쉬워지고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스마트 폰을 통해 언제 어느곳이던지 인터넷이 가능해졌다. 그 속에서 플랫폼 노동이 태어났고 수요자든 노동자든 모두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위 인용글에서 보듯이 저자들은 그 밑에 깔려있는 모델은 새로운 것이지도 않고 노동자 보호장치도 부족한 오히려 초기 산업사회를 보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한다.


언제 일할지 선택할 수 있는 자유는 주문형 경제의 중요한 매력 중 하나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에서 플랫폼 기업들이 고객 수요 저점의 위험을 노동자들에게 직접 전가함에따라 어떻게 유연성이 빠르게 일방적인 것으로 될 수 있는지 보아 왔다. 

 그 결과는 유연성이 아니라 불안정성이다.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이었고 현재는 버클리대학 교수인 로버트 라이시는 이것을 '부스러기를 나눠 갖는 경제(The shere-the-scraps economy)'라고 불렀다.

(『플랫폼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P. 211)


이와 같은 임시 노동, 적시 일정 관리, 대량 정리해고를 모두 택한 공유경제는 노동자를 박대하는 수법을 기술적으로 혁신한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 공유경제는 기업이 아무 의무도 지지 않고 고용한 임시 인력을 앱과 연결해 주문이 들어오는 즉시 일정을 생성함으로써 편의를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적시 일정 관리, 인력회사를 이용한 아웃소싱, 단돈 1센트까지 챙기는 회계를 실현할 수 있는 최적의 수단이다. 한 CEO는 "1만 명을 10~15분간 고용할 수 있습니다. 일이 끝나면 그 1만 명은 증발하죠"라고 말했다.

(『공유경제는 공유하지 않는다』, P. 292)


업계에선 '그 사람들은 노동자가 아니야, 독립적인 계약자야.'라고 말하겠지만 한꺼풀 벗겨보면 어떤가? 계약서엔 사장님이라고 치켜세우지만 막상 독립적인 계약자의 지위도 누리지 못한다. 알고리즘과 등급평가를 통해 완벽히 플랫폼 노동자들을 묶어둘 수 있기 때문이다. 플랫폼경제가 진정으로 혁신이라고 불리길 원한다면 그 속에서 발생하고 있는 플랫폼 노동의 취약성을 보호하고 안전장치를 마련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플랫폼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의 저자 제레미아스 아담스-프라슬 교수는 거기에 맞는 노동법이 새롭게 필요하고 그 속으로 플랫폼 기업도 들어와야 플랫폼 경제도 건강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기존의 노동자의 개념과는 다르게 플랫폼 노동자들의 개념이 아직 완벽히 자리잡질 못했기 때문에 이제부터라도 어떻게 규정지을 것인지 논의가 필요해보인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근로자들은 소득 보호와 집단적 대표, 보건과 안전 그리고 해고 보호에까지 이르는 법적 안전망을 누리기 때문이다. 반면에 긱 노동자를 독립계약자로 분류하면 기업들은 대부분의 사업상의 위험을 그들에게 전가할 수 있고 대신에 상당한 비용 절감효과를 볼 수 있다.

(『플랫폼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P. 7)


저자 모두 플랫폼 경제 자체를 나쁜 것이다고 말하진 않는다. 플랫폼 경제가 사회적 흐름속에서 이미 많은 사람들의 삶속에 자리잡았고 저성장시대에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역할도 분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사회적으로 확립되어 왔던 노동자보호장치를 파괴하면서 이득을 취하는 것을 혁신이라고 포장하기보다 그 안에서 일하고 있는 플랫폼 노동자들의 취약성을 보호하는 방향의 노동법으로 공평하게 적용되고 일관성으로 시행될 때 플랫폼 기업도 건강해지는 거고 플랫폼 경제도 진정한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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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11-10 12: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네요. 겟타님의 관심 분야가 여실히 드러나는. 플랫폼 노동에 대한 이슈는 향후에 진지하게 논의되어야 할 부분인 듯. 매우 취약한 분야가 되고 있고 될 가능성도 높아서.. 두 권의 책, 보관함에 푱.. 입니다^^

블랙겟타 2020-11-10 21:46   좋아요 1 | URL
맞아요. 비연님
앞으론 이러한 플랫폼 노동에 종사할 경우들이 점점 늘어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기존 노동법이 커버할 수 없는 사각지대를 보완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나중에 시간되시면 한번 읽어보세요~
사실 한국에서 나온 <디지털의 배신>이라는 책도 읽어보고 싶었거든요. 지금은 도서관에 누가 빌려가서 나중에 읽어보려구요. ^^

syo 2020-11-10 14: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래, 이거다!! 바로 이거야. 이렇게 하시라구요, 자주요.....

블랙겟타 2020-11-10 21:48   좋아요 0 | URL
바로 이건가요 syo님? 몰랐,,ㅋㅋㅋㅋㅋ
마지막 그 말은.. 앞으로 명심할게요..^^;;

얄라알라 2022-01-03 20: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소개해주신 두 권, 이어서 읽어야겠습니다^^

블랙겟타 2022-01-03 22:36   좋아요 1 | URL
네 제가 관심있는 분야가 노동이기도 하고(그래서 제가 지금 읽고 있는 책이… ㅋㅋㅋㅋ) 그래서 당시에 좋았던 기억이 나네요.

얄라알라 2022-01-03 22: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불쉿잡을 읽어보려고요^^ 2022년에. 블랙겟타님께서는 이미 읽으셨으리라는 데 한 표를

블랙겟타 2022-01-03 22:46   좋아요 1 | URL
아… 죄송해요 그 한표의 가치를 떨어뜨려서요…아직 못 읽었어요.. 😭
어디선가 추천하는 걸 본거 같은데 왜때문에?! 제 장바구니에 아직 없었던 것이죠? ㅋㅋㅋㅋ(얄라님한테 뭐라 그러는 건 아니구요. 저 혼잣말이에요😅)
당연히 저도 관심가질 만한 주제라서 얄라님의 추천으로이제야 장바구니 안으로 넣었답니다..

얄라알라 2022-01-03 22: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전에 담아놨었는데 친한 분이 읽으시고 엄지척척척 해주셨던 책인데다가 [지속불가능 자본주의]에서도 인용되기에 꼭^^

블랙겟타 2022-01-03 22:50   좋아요 0 | URL
네네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저도 조만간 읽어볼게요!!
 

10월의 책을 9일이 지나서야 읽으면서 어딜(?)가는 중.
두근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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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0-10-09 11: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책 자주 보이네요!! 저도 이 책 샀어요. 한달 이상 걸려서 올 듯 하지만 왕 기대하고 있어요!!!😍

블랙겟타 2020-10-09 12:25   좋아요 0 | URL
이 책, 많은 분들이 읽고계시죠?
라로님도 사셨군요.
오래걸리면 기다리느라 힘드시겠지만 받을 때의 기쁨은 더 클 것 같아요 (੭>▿<)੭⁾⁾
같이 읽어요 라로님 ( ・ワ・)
저는 이 책 읽으면서 틈틈이 글도 써보려구요.😁

다락방 2020-10-09 13: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디가는건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블랙겟타 2020-10-09 13:38   좋아요 1 | URL
저도 모르겠어요 ( ๑˃̶ ꇴ ˂̶)♪⁺ ㅋㅋㅋㅋㅋㅋㅋ

북깨비 2020-10-10 15:06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 댓글 읽다가 저까지 덩달아 신났어요~ 저도 책들고 어디 가야겠어요. 🤣

수이 2020-11-02 12: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댓글 달려서 와봤더니 페이퍼가 새로 보이지 않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