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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의 흑역사 - 아름다움을 향한 뒤틀린 욕망
앨리슨 매슈스 데이비드 지음, 이상미 옮김 / 탐나는책 / 2022년 4월
평점 :
절판
대부분의 국가에서 보건 및 안전 관련 법안과 관련해서, 샴푸나 데오드란트 등이 여성들이 주로 쓰는 화장품과 염색약 등에 비해 더 엄격하게 관리된다고 한다.
남성들이 쓰는 물건이나 의복은 활동성과 힘을 강조하며, 이동성과 안전성에 좀 더 신경을 쓰지만 여성들의 의복은 그저 기능이나 안전성보단 남들이 보기에 아름답다는 것에 더 신경을 쓴다는 것, 이런 차이점이 생활용품의 안전기준에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패션의 흑역사, 잔인하고 끔찍함을 숨긴 뒷이야기들이다.
사진과 그림들이 많아서 좋았던 책이다.
천연두를 앓던 이의 모피를 북미원주민들에게 “평화협정” 선물로 내놓았던 미국인들, 그로 인한 엄청난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화려한 모자 장식을 위해 아름다운 깃털을 가진 새들이 멸종되었고, 그 새들을 박제하는데 비소가 사용되어, 여성들의 건강에도 치명적인 위협이 되었다.
거기다 모자 장식으로 유행한 각종 조화들에도 비소가 든 색소가 사용되었고, 이런 조화를 만들던 이들은 비소중독으로 죽어나갔다. 물론 대부분 여성들이다.
19세기 비소와 아날린 염색은 염색하는 이와 입는 이 모두에게 건강에 치명적이었다.
특히 아날린은 활동성이 큰 아이들과 남성에게 더 치명적이었는데, 땀을 흘리면 더 쉽게 독성이 흡수되었기 때문이다.
플란넬의 모조품인 플란넬레도 불에 잘 타지만 싸고 따뜻해서 인기가 많았다. 가난한 아이들에게 특히 인기였기에 목숨을 뺏긴 이들도 주로 가난한 아이들이었다.
거북이등딱지로 만들던 머리빗은 거북의 생존을 위협했고, 대체제로 만들어진 셀룰로이드 빗은 인화성이 강해서 여성들의 생명을 위협했다.
염색물질, 새로운 소재의 의류들, 희한하기까지한 폭이 좁아 걷기조차 힘든 치마, 뒤집어지면 일어나지도 못하는 치마, 숨쉬기도 곤란한 코르셋 등 다양한 의복의 흑역사를 이야기한다.
지금은 어떨까?
여전히 옷들은 우리를 위협한다.
목화는 물을 많이 필요로 하는 작물 중 하나다. 값싼 임금에 밤을 새가며 일하는 인도와 중국의 어린아이들이 만들어내는 싸구려 옷들은 값싸지만 위험한 물질로 염색되어 전 세계에 팔려나간다. 그리고 그런 싸구려 옷들은 한번 입고 버려지기도 한다. 이런 패스트 패션은 지구를 오염시키며 인간을 위협한다.
서구의 위험한 폐기물들을 인도가 받아들이면서, 인도의 의류며 벨트는 방사능 수치가 높다.
육상용 신발접착제에는 신경독을 가지고 있으며, 데님 연마작업에는 모래를 이용한 디스트레스 공법이 사용되는며 이로 인한 부작용으로 많은 노동자들이 규폐증으로 사망한다.
지금도 유독성 화학물질이 사용되어 호르몬의 분열을 일으키는 티셔츠들이 대량으로 팔려나간다.
과거 위험했던 패션들이 지금도 여전히 다른 방식과 다른 모습으로 위협하고 있다.
패션의 역사를 소개하면서, 그 속에 담긴 사회적 의미라던가 억압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과거의 패션은 어느 것 하나 평범한 것이 없다. 위험하거나 멸종을 초래하거나 혹은 환경을 오염시키거나...정말 진정 살아있는 모든 것에 폐가 되지 않는 것은 석기시대 패션밖에 없는걸까. 그러나 석기시대 패션은 몸매관계상 패스....다.
버리려고 쌓아 둔 옷들을 다시 천천히 꺼내본다.
예전엔 옷 하나하나가 참 귀했다. 맘에 들면 몇 번이나 보고 또 보고나서 엄마에게 말하면 열에 두 번 정도는 엄마의 지갑이 열렸던 기억이 난다. 언니들 옷 중에 마음에 드는 옷이 있으면, 깨끗하게 입으라며 잔소리도 했다. 어차피 그 옷은 내 옷이 되니까.
어릴 적 손목이 헤지도록 입었던 옷들, 작아진 스웨터를 주전자 주둥이에서 나오는 수증기로 다시 펴서 새로 짜주던 엄마의 모습, 추석빔으로 받은 바지가 정말 좋아서 만지고 또 만져보며 오래도록 곱게 입었던 기억들. 패션이랄 것도 뭣도 없던 시절이지만, 그래도 되돌아보면 소중한 기억이다. 많지 않은 옷이지만 참 소중하게 입었었다.
옷이 흔하고 가격이 싼 이유는, 결국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아이들이 말도 안되는 임금으로 긴 시간 노동을 하기 때문이다. 옷에도 올바른 소비가 필요하다.
축구공을 꿰매며 독한 약품으로 눈까지 멀어가던 아이들, 카카오열매를 따기위해 팔려와 갇힌 상태에서 매질을 당하던 아이들의 상황이 알려지고 불매운동이 벌어지면서 그래도 조금은 나아진 환경이 만들어지고, 임금수준도 올랐다. 훗날 지금의 패션이 패션의 흑역사로 남지 않도록…
( 글을 올리는 중에 슬픈 기사를 접했다. 좋아하는 작가님 ㅠㅠ 노은님작가님의 부고기사.
아이처럼 천진난만한 그림들을 통해 많은 이들을 행복하게 해 준 작가님 고맙습니다.
그림으로 시를 쓰시는 분, 순수하고 맑은 마음의 화가 노은님. 하늘에서 작가님이 그리신 순수한 친구들과 아름다운 꽃들에 싸여 행복하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