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화성 탐사선을 탄 걸리버 - 곽재식이 들려주는 고전과 과학 이야기
곽재식 지음 / 문학수첩 / 2022년 7월
평점 :
화성탐사선을 탄 걸리버
고전을 과학의 시선으로 본다면 어떤 독후감이 나올까.
바로 곽재식작가님의 이런 책이 나오지 않을까.
물론 워낙 지식이 넓고 방대하셔서 고전의 해석뿐만아니라, 사회적 배경과 역사지식
그리고 그 틈새에 숨어있는 과학을 기어이 찾아내서 넓고 친절하게 풀어낸다.
<길가메시>의 홍수이야기를 통해 지구의 기후변화를
<일리아스>의 무기들을 통해 철과 운석을 말한다.
<변신이야기>에서는 특히 오르페우스를 이야기하는데, 최초의 오페라인 몬테베르디이 <오르페오>에 대해서, 특히 <오르페오>속 지옥잔치에 나오는 캉캉춤을 소개한다. <흑인오르페>란 영화도 소개하는데, 아주 오래전 본 기억이 난다. <흑인 오르페>의 “카니발의 아침”이란 노래나 <오르페오> 속 “캉캉춤”은 정말 익숙하고 너무나 자주 들었던 음악이다.
특히 캉캉춤은 내겐 운동회를 떠올리게 했지만, 남편말로는 군대? 노래라고 한다.
작가님은 변신이야기를 통해선 만신전인 판테온, 그걸 만든 기술인 시멘트에 대해 이야기한다.
(레미콘이 레디 믹스 콘크리트의 준말인걸 첨 알았다.)
<천일야화> 에서는 인도 아라비아 숫자와 알콰리즈미의 알고리즘 이야기가 소개된다.
<수호전>에서는, 수호전 인물들이 천상계 별 속 신령들의 영향으로 나타난 것이란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다며, 송나라 소송이 만든 <수은의상대>를 소개한다. 물시계로 나무인형이 자동으로 북을 치며 시간을 알리고, 밤하늘의 별 이름을 방향에 따라 알려주는 역할도 한다.
송나라때 곽경이란 인물이, 별자리 태어난 시 등을 따져 불사신의 사주를 타고났다는 이들로 육갑신병을 만들어, 금나라가 쳐들어올 때 하얀 옷을 입혀 앞에 세운 적이 있다고 한다. 결말은 뭐 다들 아는 그대로다.
허균이 자신의 죽은 부인을 기리는 <망처숙부인김씨행장>을 소개하는데. 이 책보단 <도문대작>이 더 흥미롭다. 유배지에서 허균이 쓴 책으로, 어느 지역의 어떤 음식들이 맛있는지 소개하는 책이라고 한다.
“강원도 떡은 금강산 석용병, 전라북도 과자는 전주 백산자, 전라남도 차는 순천 작설차, 충청남도 새우는 서해 대하, 충청북도 과일은 보은 대추, 경상북도 과자는 안동 다식, 경상남도 과자는 밀양 율다식, 경기도 음식은 북한산 두부 등등이 그때 골라본 것들이다.” 156페이지
<걸리버 여행기>에서는 네덜란드배에 일본인이 타고 있는 부분에서 시작한다.
왜 네덜란드 배에 일본인이 타고 있는것일까.
그 이유로 우리나라의 김감불과 김검동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평민 김감불과 노예출신 김검동은 연철에서 은을 추출하는 ‘연은분리법’을 완성한다. 그러나 조선은 검소하며 농사를 중시여기는데다가, 혹여 소문이라도 나면 주변 강대국들이 은을 내놓으라 괴롭힐까봐 오히려 이 기술등을 묻기에 바빴다고 한다.
그런 기술이 일본에 전해져, 일본에선 은을 대량생산할 수 있었고, 주로 중국에서는 은이 통용됨으로 네덜란드인 등이 일본에서 은을 구매하고, 중국에서 그 은으로 차와 비단을 샀다고 한다.
만약 우리가 은을 열심히 추출했다면 운명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네덜란드와 우리가 친하게 지내게 되고, 걸리버 여행기의 네덜란드 선반엔 조선인이 몇 명 타고 있다고 적히게 되진 않았을까.
그러면서 ‘아스트롤라베’란 기구 하나를 소개한다.
고대 그리스 점술용 별 관찰도구이지만, 중세 아라비아인들이 개량해서 항해시 방향과 위치를 알아보는 도구로 만들었고, 이걸 유럽인들이 항해에 이용했던 것.
조선 또한 이와 유사한 장치를 만들어, 눈으로 보는 바퀴란 이름으로 혼개통헌의라 불렀다 한다.
그러나 별관측에 쓰였을뿐, 적극적으로 항해용으로 쓰이지는 않았다고 한다.
같은 물건임에도 나라별 차이에 따라 그 쓰임새가 달라지고, 세상을 여는 문이 되기도 하지만 쇄국을 펼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시대를 반영하면서도 시대를 초월하는 고전 속에 담긴 과학이야기는 하루키 소설에 등장하던 도너츠를 떠올리게 한다. 세상이 도너츠라면, 그 세상의 시공간을 꿰뚫는 도너츠 구멍같은 재미?
(이외에도 더 많은 책들과 다양한 내용들이 담겨 있다.)
눈이 많이 내려 남극이 눈으로 덮이면 남극 지역은 그만큼 더 하얗게 변한다. 여름철에 자동차를 만졌을 때 흰색 자동차보다 까만색 자동차가 훨씬 뜨거운 것과 같은 원리로, 하얗게 변한 남극은 더 시원해진다. 남극이 시원해지면 추운 날이 더 많아진다. 그러면 눈이 더 많이 내릴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남극을 하얗게 덮은 부분이 늘어난다. 남극이 더 시원해지고, 다시 더 추운 날씨가 되고 눈이 더 많이 내린다. 이렇게 작은 변화가 그 변화를 크게 만드는 방향으로 자기자신에게 영향을 미쳐서 반복되는 현상을 ‘양의 되먹임 positive feedback‘ 이라고 부른다.
쉬운 예를 들어보자면, 옛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이 어떤 정도의 과학기술을 갖고 있는 시대를 살았는지 이해하면 그 인물들이 겪었던감정을 좀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된다. 배를 타고 바다 먼 곳으로모험을 떠난 사람의 이야기를 읽는다고 할 때, 과연 그 시대의 항해기술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알고 있다면, 그 모험이 과연 얼마나 위험한 도전이었는지를 좀 더 실감 나게 느낄 수 있다. 반대로, 문학 속에묘사된 과거 시대의 실감 나는 광경이 지금은 사라진 옛 시대의 기술을 더 가슴에 와닿게 느끼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현대 한국의 독자가 현대의 한국에는 야생 호랑이가 살지 않는다는 사실을확실히 알고 있는 상태에서, 조선 시대 이야기에서 그 당시로는 최선의 기술을 이용해 호랑이를 물리치기 위해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덫을 놓는 장면을 읽는다면 감흥은 달라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