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으로 살다.(스콧님 소개로 읽게 된 책이다.)
지금의 나보다 어린 나이에 떠나버린 이들.
나보다 어리게 살다 죽어간 이들.
그런 이들에게 불꽃같이 살다 갔다고 하는건가.
그들은 뭐가 그리도 급했는지 황급히 떠났을까.
아직도 그려야 할 그림들이, 만들어야 할 작품들이 잔뜩이었을텐데,
그들의 머릿속에 꿈틀거리던 그 수많은 꿈들을 어떻게 접고 떠났을까.
갑작스런 병마와 사고, 혹은 유명세에 어찌할 바 몰라 휘둘려 잘못 접하게 된 약물들.
그들의 사인은 다양하다.
혹은 그들 삶의 비극이, 마치 한 편의 불멸의 영화처럼 낙인되어
그의 작품보다 더 가치를 지니기도 한다.
우스개로 작가의 작품을 사고나면 요절하기를 바란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이 책에 소개된 이들은
사고로, 혹은 때 이른 죽음으로 오히려 그들의 작품들이 평가절하되거나 혹은 작품이 아닌 삶으로 프리미엄이 붙은 듯 오인되는 이들에 대해, 혹은 잊힌 작가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준다.
신화를 걷어내고, 그들의 불우함이란 포장을 벗겨내고, 진짜 삶 속에서 어떻게 고군분투하며 작품들을 만들어냈는지, 그들이 꿈꾸던 세상은 어떠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학대와 가족들의 자살, 끔찍했던 할아버지의 틈에서 살아남았지만, 유대인학살은 피해가지못한 샤를로테 살로몬.
로버트 카파의 여성편력의 이유로, 혹은 로버트 카파의 수식어처럼 사용되지만, 그녀 스스로 누구보다 용감하게 전쟁의 포화속에서 더 가까이 그 본질을 찍어내려 했던 게르다 타로.
필릭스 곤잘레즈 토레스의 사탕무더기 작품을 한참 바라보았다.
사람대신 사탕무더기가 미술관 한구석에 무더기로 쌓여있다.
관람객들은 사탕을 집어 먹기도 하고, 주머니에 넣어가기도 한다.
사람들은 그 사탕의 껍질을 까서 입에 넣고 깨물기도 하고, 오래오래 그 달콤함을 느끼며 굴려 먹기도 한다. 껍질들은 바닥에 버려지거나 바람에 날리며 어느 순간 사라지고, 사탕 또한 그렇다. 다 사라지는 건 아니다. 달콤했던 추억, 희미하지만 동글한 사탕을 깨물었던 그 순간. 갈수록 옅어지겠지만, 삶의 기억이란, 누군가에 대한 추억이란 그런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사탕껍질을 벗기고 오물거리던 그 누군가의 삶도 껍질은 날리다 사라지고, 누군가의 기억에 달콤함으로 혹은 시큼함으로 또는 아그작 거렸던 그 순간으로 기억되다 서서히 잊혀지겠지.(성적인 의미로 해석이 많이 된다고는 하지만, 나는 삶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해준다고 느꼈다)
실제 가정집을 이등분해서 보여주던 고든 마타클라크의 쪼개기,
너무나 아름다워 오히려 그녀 사후 작품들이 평가절하되었던 폴린 보티.
“여배우는 보통 뇌가 작다. 화가는 보통 긴 수염을 갖고 있다. 화가이면서 금발인 아주 똑똑한 여배우를 상상해 보라. 여기 폴린 보티가 있다”
폴린 보티를 소개하는 1962년 잡지 기사다.
그녀와 그녀의 무리는 현재에 대한 향수를 느낀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그녀는 그것은 거의 신화, 그러나 오늘날의 신화를 그리는 것과 같다 고 말했다. 현대의 마르스와 비너스는 먼로같은 영화스타드리라고 생각했다.(현대미술의 이단자들 295페이지)
그녀는 <세상의 유일한 금발>이란 작품에서 마릴린 먼로를 그렸다.
소련스파이로 알려진 크리스틴 킬러에 대한 그림 또한 그렸지만, 지금 그 그림의 소재는 알 수 없다고 한다.
그 외에도 인도의 프리다 칼로라 불리는 암리타 셔길, 모더존베커, 오브리 비어즐리, 에바 헤세, 보초니, 로버트 스미스슨 등이 소개된다.
행복하게 살았습니다의 마침표는 아니다. 그럭저럭 살다갔습니다의 마침표도 아니다.
갑작스레 잉크가 쏟기듯 그렇게 번지고 흔들리는 마침표다.
그들의 작품으로 찍힌 마침표는 여전히 사람들 마음속에 번지고 스며들어 흔들어놓는 마침표.
이 책을 읽으며 떠오른 작가 한 명,
불꽃의 찰나를 담은 이, 일본의 야마시타 기요시다.
(지적장애와 언어장애를 가지고 평생 방랑을 하며 자유를 추구한 작가, 일본의 고흐라 불리기도 한다. 주로 사인펜 등으로 불꽃놀이를 그렸다.
불꽃놀이는 대체로 중국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우리 조상도 화통도감등을 통해 독자적으로 화약을 제조한 후, 환산희라는 이름으로 불곷놀이를 즐겻다고 한다. 유럽에선 13세기쯤 중국에서 유입되엇고 바로크시대 유럽에서 성행하던 불꽃놀이락 역으로 일본에 수입되어 하나비란 행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하나비는 불꽃이다. 한순간에 가장 아름다웠다가 사라지는 찰나의 예술이라고 불리는 불꽃, 그들에게 어울리는 이름같지만 그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너무 얕은 수식어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