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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인사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2년 5월
평점 :
은하철도와 영화 A.I 가 떠오르는 소설
철이하면 떠오르는 것은?
철수와 영희의 아류같은 철이와 순이?
아니면 90년대 인기를 끌었던 철이와 미애?
내게 철이는 은하철도 999다.
호시노 테츠로, 성야철랑, 별의 철길, 그리고 그냥 철이.
책 속 주인공 철이는, 철학할때의 철이라곤 하지만, 어쩌면 작가님도 은하철도 999의 철이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배경이 아주 닮아 있기 때문이다.
돈 많은 자들은 장기들을 기계로 교체하고, 어느 순간 영생을 위해 기계인간이 된다.
그들에겐 죽음과 고통이란 인간적인 면모가 사라지고, 쾌락과 권태만이 남는다.
쾌락을 추구하기 위해, 그들은 살아있는 인간들을 사냥하며, 철이의 엄마 또한 사냥당한다.
철이가 꿈꾸는 것 또한 영생의 삶, 기계인간의 몸이다.
그럼에도 선택의 순간이 왔을 때 우리는 쉽게 영생을 택할 수 있을까.
선이처럼 자연스럽게 살다 가길, 겨울엔 눈이 오고 따스해지면 그 눈이 서서히 늑는 것처럼 말이다.
혹은 업로드된 정신이라 부르기 애매한 집단 지성으로, 마치 여왕벌이나 개미군집처럼 일부분이 되어 살아갈것인지 무엇을 선택하는 게 옳은지는 알 수 없다.
가봐야 아는 것, 그 앞에서 죽음을 맞이할 때 그때서야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을 알수 있지 않을까.
여기 휴먼매터스란 대단한 기업이 있다.
여기 연구원인 한 남자가, 인간과 너무나 흡사한 새로운 안드로이드를 만들고 철이라 이름 붙인다. 아버지란 이 남자는 마치 창조주처럼, 자신이 만든 인간과 거의 흡사한 철이가 가지는 고통과 번뇌에 대한 책임감과 부담감을 어쩌지 못한다.
“아빠는 언젠가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후머노이드를 개발할 때에도 선택을 해야 한다고. 인간과 같이 살아가야만 하는 휴머노이드에게 무한정의 능력치를 줄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따라서 설계자는 휴머노이드에게 어떤 능력을 어디까지 부여하고 어떤 기능은 제한해야 하는지, 그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만약 인간을 만든 창조주가 있다면 같은 고민을 하지 않았을까. 불곰에게 이길 수 있는 강력펀치를 줄 것인가, 생각하고 꿈꿀 영역을 줄 것인가...)
태어나는 것이 나을까에 대한 안드로이드 달마와 클론 선이의 대화들에선 태어나지 않는게 오히려 나을 뻔했으나, 어차피 태어났다면 조금은 행복하게 살아도 되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다.
“민이는 아예 태어나지 않은 존재가 아니니까요. 민이는 이미 태어났고 말씀하신 것처럼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었지요. 저는 민이가 다시 의식을 회복해서, 그러니까 과거의 기억을 그대로 가진 채로 다시 깨어나 그것의 의미를 스스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의지로 생을 살아가다가, 누군가로부터 폭력적으로 살해당하거나 하지 않고, 자연이 정해준 수명을 다하게 될 때 자연스럽게 우주의 일부로, 다시 의식과 영성이 없는 존재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거예요.”
폭력에 의한 죽음을 맞이하는 로봇고양이 데카르트.
동물의 신음은 그저 마치바퀴의 소음에 불과하다는, 생각하기에 존재한다는 데카르트는 더 이상 생각이 인간의 점유물이 아님을 보여주는 미래의 세계에선, 사라지는 것이 맞는 결말인지도 모른다.
더 이상 생각은 인간의 것만이 아니다. 책 속 세계에선 휴머노이드와 클론이 더 인간다운 선택들을 해나가며 꿈꾸고 상상하며 살아간다
상상과 생각하는 유일한 존재로서의 가치를 잃은 인간들이 사는 곳.
첨단기술로 창조주가 되었지만, 갈피를 잡지못하는 신들이 미쳐버린 이 곳.
인간이란 종의 멸종은 지구에겐 별 일 아닌 듯, 해가 지고 뜬다.
인간이란 종에게 보내는 지구의 작별인사.
부작용) 이 책을 읽으면 자꾸만 쇄골 중간을 누르고 싶어진다.
그리고 또 하나,
읽을수록 자꾸 오버랩 되는 영화가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AI다.
책 속 민이와 비슷한 이유로 태어난 데이빗은 엄마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다.
그러나 냉동되어 있던 진짜 아들이 돌아오면서 데이빗은 버림받는다.
사람이 되면 엄마가 받아줄거라 믿는 데이빗은 그렇게 긴 여정을 떠난다.
그러면서 영화 속에서 마주하게 되는 두 이야기, 바로 피노키오와 오즈의 마법사다.
이 책에서도 계속 언급되는 오즈의 마법사.
싸고 먹고 자야하는 인간들이 참 귀찮겠다면서도 그런 인간이 가진 심장을 얻고자 하는 허수아비, 사람이 되고자 모험하는 피노키오.
그러나 데이빗은 사람이 될 수 없다.
가장 사람다운 모습으로 따뜻한 마음을 가졌음에도, 데이빗은 나무대신 첨단 기계로 만든 피노키오이며, 심장이 없는 허수아비일뿐이다.
2천년이 지나고, 외계인인지 혹은 어떤 완전한 존재인지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데이빗을 긴 잠에서 깨운다. 이제 유일무이한 존재가 된 데이빗, 인간이란 종에 대한 지식도 데이빗을 통해 그들은 얻는다.
이 책 속 과학자 아버지는 철이를 만들 때, 가장 인간다운 휴머노이드를 만들어 인간의 아름다운 유산을 계승시키고자 한다.
AI에선 데이빗이 바로 그 역할을 한다.
그리고 마지막 소원, 엄마와 함께하는 행복한 하루.
이제 지구상에서 유일무이한 존재가 된 데이빗이, 가장 사랑하는 존재인 엄마에게
작별인사를 한다.
이런 류의 소설이나 영화는 닮아있다. 그럼에도 AI가 내게 최고의 영화 중 하나인 것은 조엘 오스먼트가 데이빗 역을 너무 잘해내서일 수도 있고, 결국 마지막으로 남는 존재가 AI라는 것, 그리고 너무나 인간적인 데이빗을 보면서, 인간이라는 것을 무엇으로 정의할 것인가에 대해 던지는 물음 때문이다. 인간의 쾌락을 위해 만들어진 성인로봇 조, 그리고 데이빗이 만나는 다양한 로봇들에게, 너희는 로봇일뿐 언제든지 파괴할 수 있어 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안드로이드의 수용소, 애완로봇으로 싫증나면 버려지는 유기로봇, 장기교체를 위해 만들어지는 클론들...있을 법한 미래의 이야기들을 창조주, 기억의 업로드를 통한 삶과 죽음의 경계에 대한 무의미함 등 온갖 이야기들 생각꺼리들이 담겨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