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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우린 죽고 이딴 거 다 의미 없겠지만 - 그럼에도 사소하지 않은 나의 일상에 대하여
사치 코울 지음, 작은미미.박원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11월
평점 :
결혼식 전날밤 엄마는 살포시 내 손을 잡으며 지금이라도 싫으면 말하라고, 모든 걸 해결해 주겠다고 말씀하셨다. 결혼식 전 날 들뜬 새신부에게 그 말은 귓등으로도 들리지 않았지만, 그 날 밤 엄마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네 인생의 마지막 sos란 느낌으로 ㅎㅎ 작가의 엄마는 우리 엄마와도 닮았다. 주로 주걱이나 집개 혹은 냄비뚜껑으로 위협하시던 모습도 닮았다 ㅎㅎ
사치 코올은 브라만계급 힌두교 인도출신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이민 2세대다. 태어난 곳은 캐나다지만 짤랑거리는 인도식 팔찌와 친척들 그리고 유색인으로서의 다름을 겪으며 자랐다. 캐나다에서 나고 자랐지만 그녀의 집은 작은 인도다. 그녀의 몸 또한 인도식이다. 백인 주류 흉내를 내보려 하지만 그건 그녀가 아니다. 사랑하는 이들을 모두 외면하고 자신이 받은 따스함을 부정할만큼 백인주류집단도 그리 멋지진 않다.
여성이다. 인도계다. 보편적 예쁨과는 거리가 멀다. 그녀는 낯설고 소수다. 그러니 입 닥치고 조용히 고개 숙이며 살라고? 그녀는 그럴수가 없다고 말한다. 그녀 몸에서 끊임없이 자라는 인도식 뻣뻣한 털들이, 아빠가 물려준 독특한 유머 감각이, 두고 볼 수없는 불합리함이 그녀를 싸우게 한다.
책제목처럼 어차피 우린 죽고 이딴 거 다 의미 없겠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위해 온갖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글을 쓸 것이다.
뉴욕의 내 아파트에서는 다른 소리가 난다. 고양이가 밥그릇 긁는 소리, 앞문 잠기는 소리, 이불 정리하는 소리. 이런 소리들은 느낌이 다르다. 내게 위안을 주지 않는다. 내 것이고, 내책임하에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부모님 집에서 들리는 소리는부모님의 것이다. 그 집에 있으면 모든 것이 괜찮고, 영원할 것이며, 안전할 거라고 약속하는 듯한 바로 그 소리 말이다.
삽질 쇼핑 투어 동안 들어간 가게에서마다 우리가 거친 필수 코스가 있다. 머리도 안 들어가는 옷, 머리는 들어가지만 어깨가 안 들어가는 옷, 그리고 머리와 어깨는 간신히 들어가지만 가슴에 걸려서 날 마치 유방이 네 개 달린 여자로 보이게 하는 옷. 피팅룸에서 이 세번째 옷을 입고 나올 때마다 엄마가 드러내는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여서, 그 실망감을 병에 진공 포장한 다음 이민자 출신 엄마를 그리워하거나, 자기를 슬픈 표정으로 쳐다봐줄 흰머리 아줌마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팔면 돈 좀 벌겠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엄마가 말하길, 아빠는 이 요상한 모자를 한번 써보시겠어요 하는 식으로 캐나다 이민을 엄마에게 정중히 청했다고 한다. 엄마는 이 염병할 미친놈이 지금 나보고 여기저기 얼음이랑인종차별이 똘똘 뭉친 나라로 가자고 하네 대신 이 모자 한번써볼까? 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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