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 대한 참혹한 기록들
<아연 소년들>
(소년병, 가끔은 영웅을 꿈꾸고, 아직 삶도 죽음도 전쟁도 잘 모르는 어린 아이들이 끌려가, 아연으로 된 관에 살점 몇 덩이로 담겨져 다시 고국으로 돌아온다. )
내가 서 있는 곳이 어두울수록 별은 더 잘보인다. 그러나 전쟁이라는 고통과 암흑은, 별도 없는 절망일뿐이란 생각이 든다.
어린 청년들이 선동당해 혹은 강제나 사기로 맨몸뚱이로 전쟁의 최전선에 선다. 사지가 잘리고 온 몸이 갈가리 찢겨져 날아간다. 죽어가는 병사들은 뜨거운 모래 위에서 진갈색빛 피를 흘리며 어머니를 부른다.
조국은 그들을 기만하고 버렸다. 열악한 환경에 보급도 제대로 되지 않고 동성이건 이성이건 강간과 매춘, 폭력과 무자비함이 존재하는 곳.
인간답다는 걸 버리고 인간이었음을 잊어야 살 수 있다. 그러나 살아남아 뒤돌아보니 그 시절의 나를 나는 용서할 수 없다. 마약과 술, 그리고 마지막엔 자살이다. 혹은 무표정한체 밤마다 전우들의 절규와 자신을 향해 오던 선임들의 발길질을, 자신앞에서 터져버린 동기의 내장, 그 물컹거림의 꿈에서 깨어나 의자 밑으로 문 뒤로 숨어 온 몸을 옹그린체 고통과 악몽이 끝나길 기다린다.
그들에게 안식처는 없다. 그들 자신의 과거와 지금이 지옥이기에 어떤 장소에서든 이젠 그 곳은 지옥이다. 사람들은 그들의 지옥을 무시했다. 끌려가거나 선동되고 속아서 간 그들을 손가락질하며 어리석다고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은 잊었다. 전쟁에 나섰던 청년들도 왜 그 곳 사막에서 피를 흘렸는지 명분조차 없음에 더 울분을 참을 수 없다. 동정도 연민도 존경도 없다. 그렇게 그들은 조국에게 버려졌고 주변인들에게선 낯설어졌다.
만약 내 아이가 태어난다면 절대로 전쟁터엔 보내지 않겠다던 젊은 병사의 말이, 그 병사의 처절한 경험에 의한 것이기에 더욱 큰 울림이 있다.
어머니들은 아직 소년같기만 한 어리기만 한 아이를 무덤에 묻었다. 혹은 미쳐버린 아이를 면회하기위해 음식을 만드는 내내 눈물을 흘린다. 사지없이 돌아온 아이가 혹여 자살을 선택할까 두려워 잠 들 수 없는 어머니도 있다. 차갑고 낯선 눈동자의 아이를 보며 예전의 내 아이는 아프간에서 죽어버렸다며, 전쟁에 보낸걸 후회하는 어머니도 있다.
강간에 이어 너무나 모자란 보급품에 매춘을 나서는 여성군인들 이야기도 있다. 악몽을 안고 돌아온 그녀들에겐 낙인과 말없는 발길질이 날아든다.
죽거나 술에 취해거나 , 정상인듯 하지만 실제론 전혀 정상적이지 못한 너덜한 내면을 대강 기워 살아가는 이들.
아무도 원하지 않았고 영광도 대의명분도 없는 곳에서 소중한 젊음들이 쓰레기처럼 버려져 쌓였다. 그러고나면 가끔 싸구려 아연관에 대강 담겨져 조국으로 돌아오지만, 부모들은 그 시신이 자신의 아이인지 확인도 못한체, 눈물로 무덤을 채운다.
그 곳의 후덥한 바람과 날리는 모래들은 기억할까. 낡고 닳은 군복,아무 성능도 없는 방탄조끼, 부실하다못해 벌레가 우글거리는 배급,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푸시킨과 도스토옙스키에게 구원을 구하던 그 밤, 폭력과 살의가 번뜩이는 사막의 밤, 청춘들의 시신들 위로 별도 뜨지 않던 그 밤들을.
<책 속 문구 >
1.며칠 전에 치과에 다녀왔어요……… 다들 괴혈병에 걸리고 치조염에걸려서들 돌아왔거든요. 염소산을 얼마나 많이 먹었게요! 이 하나를 뽑았고, 이어서 두번째 이도 뽑았어요…… 하도 아파서 그 충격에 마취제가 잘 안 들었어요) 갑자기 말이 터져나오는데……… 멈출 수가 없는 거예요…… 여의사가 혐오스럽다는 듯 나를 쳐다보더군요. 얼굴에 고스란히 다 드러나더라고요. ‘이 남자는 입은 피범벅을 해가지고 계속 떠드네 하는 표정이었죠. 나는 모두가 우리를 바로 그런 눈으로 바라본다는사실을 깨달았어요. ‘이 사람들은 입은 피범벅을 해가지고 계속 떠드네.…’중사, 특수부대 전사
2. 탄참전 병사들을 모두 영웅이라고 치켜세울 때였죠. 용맹한 국제용사들이라고요. 우리 아들은 살인자였지만요…… 아들은 다른 이들이 그곳에서 한 일을 여기서 했기 때문에 살인자가 됐어요. 똑같은 일을 두고다른 이들에게는 메달과 훈장까지 수여했으면서…… 도대체 왜 우리아들만 심판대에 세운 거죠? 아들을 그곳으로 보낸 사람들은요? 살인을 가르친 그 사람들 말이에요! 나는 아들에게 살인을 가르치지 않았다고요……… (쓰러지듯 주저앉아 비명을 지른다.)아들은 내 주방용 손도끼로 사람을 죽였어요…… 아침에 도끼를 가져다 다시 찬장에 넣어놓았더군요. 마치 스푼이나 포크를 다시 제자리에 갖다놓은 것처럼………나는, 아들이 두 다리 없이 돌아온 그 엄마가 부러워요…… 술에 취해 엄마에게 행패를 부려도요. 온 세상을 미워하고…… 짐승처럼 엄마에게 덤벼들어도요.
3.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악령들』에 나오는 구절이다. ˝확신과 인간, 이둘은, 많은 부분에서 서로 다르다…… 모두가 다 잘못이다…… 모든사람들이 이 사실을 분명히 인식할 수 있다면!˝ 도스토옙스키는, 인류는문학과 과학에서 규정하는 것보다 자신에 대해 더 많이, 훨씬 더 많이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생각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블라디미르 솔로비요프의 생각이라고 밝혔다.
만약 내가 도스토옙스키를 읽지 않았다면, 나는 엄청난 절망에 빠져을 것이다.
( 1. 이 책의 배경은 아프간전쟁이다. 쿠데타로 친소정권이 들어섰지만, 그에 대한 반발로 무자헤딘이란 반군 게릴라들 단체들의 공격으로 내전이 시작되었다. 친소정권을 돕기위해 소련은 아프간파병을 결심했다. 외세에 정복된 적 없는 아프간은 생각보다 힘든 상대였고, 근 10년을 끈 전쟁은 소련의 베트남전쟁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대의명분도 없이 수많은 자본과 무기, 어린 병사들의 목숨을 앗아간 무의미한 전쟁이었다. 그리고 이 전쟁이 소련의 몰락을 과속화시켰다는 설도 있다. 2차대전 참전은 내 나라와 내 가족을 지킨다는 명분이라도 있었지만, 아프간에 간 병사들에겐 명분도 영웅도 없고, 멸시와 경멸 속에서 괴로워했다.
2.작가님은 이 글을 쓰면서 아프간 참전 병사나 전사자의 어머니 등에 의해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
(작가님을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는다.>로 접했다.
2차대전 당시 독소불가침 조약을 깨고, 독일은 소련을 침공했다. 수 많은 러시아의 여성들이 군에 참전했다. 마스코트나 사기진작의 효과도 있었지만, 실제 그들은 명사수로 혹은 정말 전쟁동료로 활약했다. 그러나 전쟁 통에 상관과 침대를 같이 쓰기도 하고, 독일군에 붙잡히면 참혹한 고문과 죽임을 당한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전쟁에 참전한 사실을 숨겨야 한다. 못마땅한 시선과 같은 여성들의 배타적인 행동들. 전쟁은 여성들을 두 번 아니 수 십번 죽인다. 여성으로서의 삶, 인간으로서의 삶, 군인으로서의 삶, 동료로서의 삶. 나라를 지키려 나섰지만 그 길엔 명예도 위로도 없었다. 동료들이 외면하고 여성들이 손가락질 하는 나라가 버린 여군들.
그들은 조국을 위해 환영 받으며 군대로 갔지만, 남자들이 개선장군처럼 돌아올 때, 마치 개구멍을 찾듯 그렇게 고개를 숙이며 돌아와야 했다. 2차대전 참전 후 경멸을 받았던 여군들과, 소련의 수치라며 외면받는 아프간군인들의 모습이 닮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