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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日記 - 황정은 에세이 ㅣ 에세이&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1년 10월
평점 :
사람이 애쓴다.
사람이 애쓰는 일이다. 이 말이자꾸 맴돈다. 기계들이 움직이고 거대한 쇠조각들이 날고 달리지만 그 뒤엔 언제나 사람이 애쓴다. 결국 그렇다. 사람이 애쓰고 사람이 살아가는 일.
말과 글에는 주술의 힘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우린 힘들다는 이에게 어깨를 토닥이고 뭐라도 한 마디 보태주고 싶다. 휘청거리는 이의 뒤에서 내 말들이 내 몸짓이 조금이나마 지지대가 되어주길 바라며.
힘들다는 이에게 털어놓으라고도 말한다. 들어줌으로서 같이 분노하고 같이 울기도 하면서, 그러다 대범한 척 애써 위로도 하면서 그렇게 감정을 나누려 애쓴다. 사람들을 통해서라도 그 아픔이 흘러 흘러 희석되길 바라며.
황정은 작가님의 글들도 그렇게 흘러가길 바란다. 흘러 흘러 누군가의 마음을 식히고 데우며 자신 또한 그렇게 흘려보내길.
(김혼비의 책을 읽으면 항상 웃게 된다 . 가끔 진한 감동에 눈물 찔끔하기도 하지만. ~ 지금 다정소감을 같이 읽고 있어서인지 비교가 ㅠㅠ)
황정은 작가님의 책은 항상 여러 번 울게 된다. 특이하게 슬픈 장면이 아닌 곳에서 눈물이 툭 하고 떨어진다. 작가님을 잘 모르지만, 그냥 소설에든 어디든 결핍과 상처가 담담하게 정렬된 그녀의 문단들을 읽다보면, 주인공의 내면 속 우울과 슬픔이 잔잔하게 행간들을 적신다. 하루키의 마른 우물이 , 그 깊이와 적막함이 작가님의 글에서 느껴지다가, 반짝이는 삶은 아니지만 모나지도 상처주지도 않으려 조심스레 앞으로 나가는 마음이 보인다.
작가님의 글엔 마른 우물도 있지만, 그 우물을 비추는 말간 달도 있다.
에세이에서 볼품은 없지만 소중한 유년의 마음을 담은 눈사람을 만난다
잊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한 다짐을 읽는다. 그렇게 고립된 듯 작가님의 섬에서 누구보다 더 사람들의 상처와 공감하며 쓴 글. )
이 책을 읽고 나선
1.서보 머그더의 도어. 보관함에 담으려니 이미 있다 ㅎㅎ예전 북플님들이 추천 많이 하신 책)
2.로런 엘킨의 도시를 걷는 여자들
3.크리스티앙 보뱅의 작은 파티 드레스
4. 데버라 라비와 록산 게이의 책들을 주섬주섬 담고 있다
수십년 동안 사촌과의 일을 내가 지은 죄처럼 떠안고있으면서도 나는 그 일이 아이들의 호기심 때문에 벌어질수 있는 일, 남자아이와 여자아이 사이라서 있을 수 있는일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렇게 말하는 어른들이 있고 그렇게 말하는 소설들이 있고 그렇게 말하는 영화들이 있다. 그말들이 ‘어린 시절의 ‘호기심‘이라고 일컫는 욕망들이 실은쌍방의 욕망이라기보다는 일방의 욕망이며 호기심이라는것을 나는 최근에야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다. 남자아이들이 주도하는 모험에서 여자아이들은 만져지고 꿰뚫린다. 남자아이들이 호기심을 충족하기로 마음먹고 모험을 행할때, 가장 가까이 있는 여자아이가 대상이 된다. 남자아이들은 ‘어린아이다운‘ 호기심을 충족하고 ‘모험‘을 완성하지만여자아이들은 남에게 말하지 못할 수치로 그 일을 기억에남긴다. 일곱살에 겪은 일을 마흔이 넘어서도 잊지 못한다.
나의 부모는 네가 이 개똥밭 출신이라는 걸 잊지말라고 내게 경고한 적이 있다. 나는 출신이라는 걸 생각한적이 없고 어디든 개똥밭이라고 생각한 적도 없는데 그들은 그런 걸 생각하고 있었다니, 자기 삶을 그런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니, 놀랍고 상심했지만 이제 그런 말은 예전만큼 나를 흔들지 못한다. 괜찮지는 않고 여전히 흔들리지만진폭이랄지 파형이랄지 그런 것을 어느 정도는 내가 조절할 수 있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나는 가장 가까운이들의 나쁜 말과 태도와 행동에 영향을 받으며 살고 있을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안다. 그를 향해 당신을 손상시키면서까지 자기가 살고자 하는 이를 거절하고, 멀어지라고, 어떤 형태로든 그를 돌볼 수는 있겠지만 그의 비참을 자기삶으로 떠안지 말라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그러나 그 대신 가물치를 물에 돌려두었다고 썼다. 해당화를 심고 작약을 두고 보았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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