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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가는 짐승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평점 :
필립로스 두번째 책. 네메시스와 많이 달라서 처음엔 놀랐고, 그러나 더러움과 난잡함 사이 크고 깊은 쓸쓸한 구멍 하나 느껴져 대단하다 생각했다.
노련한 사냥꾼의 발칙한 사냥일기.
주인공이 언급한 발튀스 그림이 연상되는 이야기다. 모딜리아니보단 발튀스가 더 어울릴 듯 하지만 읽다보니, 발튀스 그림 속 미성숙한 소녀들의 모습보단 모딜리아니의 그림이 맞겠구나싶다.
늙은이는 자신이 여전히 살아있네! 라는 걸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아직은 자신의 매력에 확신이 서지 않는, 혹은 어린마음에 다양한 정복이란걸 경험하고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솜털 송송한 제자들을 노린다. 그들에게서 젊음을 느끼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늙음의 냄새를 지우고 싶다. 얕고 가벼운 관계, 그리고 오랜 기다림과 덫, 치밀한 듯 계획을 세우며 그는 늙음을 지연하려 한다. 결국 그는 구부정한 어깨로 피아노와 함께 외롭게 늙어가겠지. 이게 문제다. 바로 죽지 않는다는 것. 낡아지고 늙어가면서 여전히 삶은 이어진다는 것, 주변의 젊음과 생기발랄함 속에서 고독해진다는 것.
어차피 우리는 모두 죽어가는 짐승이지만 죽음과 삶 사이 그 작은 틈으로 데이비드는 사랑대신 섹스를 택했다. 죽음에 대한 복수.
마지막이 흥미로웠다. 누구였을까 독자? 또 다른 콘수엘라? 자신의 목소리? 죽은 친구 ? 작가? 혹시 내 마음의 외침? ㅎㅎㅎㅎ
유통기한이 다 되어가는 데이비드와 아직도 아름답고 젊지만 폐기처분될지도 모르는 제자 콘수엘라.
삶과 죽음 사이 작은 틈으로 난잡하고 더러운 꽃이 끈질기게 살아남아 피어있다. 보도블럭 사이 들꽃처럼 아름답진 않지만 밉진 않다.
(그에게 섹스는 죽음과 늙음에 대한 반작용이다. 삶과 죽음 사이 균형을 맞추는 것. 그에게 여자는 그저 사물이다. 즐겁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사물들과의 유희, 그렇지만 콘수엘라를 만나고 주체로서의 그녀앞에 서면서 혼란하다. 주체를 가진 그녀는 그가 어찌할 수 없다. 그녀의 행동에 상처받을 수 밖에 없다. 쪼금 고소했다 ㅎㅎ)
(주인공은 죽음에 대한 복수로 성욕을 택했다면
나는 죽음에 대한 복수로 식욕을 ?! 택한건가 하는 마음이 들었다. ㅎㅎㅎ 이 책의 문장들 깊이와 통찰은 정말 대단함을 느끼게 한다. 북플 친구님들 소개로 알게 된 작가와 책들, 북플이 좋은 이유다 *^^*)
콘수엘라 혼자만 알아. 콘수엘라는 이제 나이의 상처를 아니까. 늙는 것은 늙어가는 사람 외에는 누구도 상상할 수 없지만콘수엘라는 이제 그렇지 않아. 이 아이는 이제 젊은 사람들이 하듯 시작하는 곳에서부터 뒤로 짚어가며 시간을 재지 않아. 젊은사람들에게 시간은 늘 지나간 것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제 콘수엘라에게 시간은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미래가 남았느냐 하는것이고, 이 아이는 자신에게는 남은 게 없다고 믿어. 이제는 시간을 앞으로 헤아려서 재. 죽음에 얼마나 가까워지는지로 시간을 헤아려. 환상, 메트로놈의 환상, 똑딱,
노년을 상상할 수 있어? 물론 못하겠지. 나는 하지 않았어. 할수 없었어. 그게 어떤 건지 전혀 몰랐어. 잘못된 이미지조차 없었어ㅡ 아무런 이미지가 없었어. 사실 누구도 다른 것을 원하지않아. 어쩔 수 없기 전까지는 아무도 이 가운데 어떤 것과도면하고 싶어하지 않아. 이 모든 게 나중에 어떻게 될까? 여기서는 둔감함이 관례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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