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나잇 시리즈 중 1번째
이반 일리치의 죽음 ( 톨스토이)
메멘토 모리와 바니타스를 떠올리며.
삶이 시작될 때 그리고 정점을 향해 갈때 우리는 마치 평생의 삶이 보장된 듯 계획을 세우고 삶을 설계한다. 삶의 시작엔 죽음도 함께 함을 망각하고 삶만 분주히 준비한다. 그리고 죽음이 다가오면 분노하고 억울해 한다. 왜 나인가부터 벌써 갑자기? 죽음은 억울할 수도 있겠다 삶의 시작부터 같아 걸음을 내딛었는데,단지 시작의 방향이 삶의 길이 끝나는 곳에서였을 뿐
주인공도 마찬가지, 그래서 고통 속에서 삶을 분노를, 자신이 죽은 후 삶의 전개에 대해 고통스러워한다.
죽음을 거부하다가 기다리다가 혹은 희망에 젖었다가 또 다른 날엔 체념과 고통 속에 분노가 가득하다.
죽음앞에서 내 삶이 부정되고, 죽음 앞에선 좋았던 것들조차 의미가 없다. 어린시절의 나와 성장한 후의 나는 다른 사람같다. 삶이 부정되는 죽음앞에 주인공은 두려움으로 그리고 자신이삶을 잘못 산 것인지에 대한 불안으로 고통으로 절망한다. 죽음앞에선 그런 모든 일들도 무의미한 것. 자루 속에 갇혀 어둠을 헤메던 주인공에게 한 줄기 빛, 죽음이 찾아온다. 책 속 글처럼 이제 끝났다. 죽음은 끝났다. 주인공에게 더 이상 죽음은 없다
그가 바란 것은 솔직함, 돌아보니 그의 삶 속 수많은 인물들과의 관계며 명성과 직업 자부심을 가지던 그 모든 것은 거짓일 뿐
순박한 모습으로 그저 죽음이란 삶의 과정이라며 주인공을 위해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 하인 게라심, 그의 손을 잡고 울음을 터트리는 아들.
죽음앞에 선 사람의 심리와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놀랍다. 뛰어난 성찰과 심리묘사 등은 너무나 생생한 동시에 감동을 준다. 죽음을 앞둔 주인공과 잠시 함께 함으로써 삶에 대해 돌아보게 한다. 외롭고 쓸쓸한 죽음앞에서 , 그 고통과 고독에 맞설 좋은 기억들과 행복은 무엇일까. 그렇게 손을 놓고 떠날 그 자리에 그 무슨 분노와 미움 미련이 있을까.
( 죽음 앞에서 결국은 홀로 서 있어야 함을 삶의 허무함 그럼에도 삶이 주는 의미를 무섭도록 슬프고 외롭게 표현한 소설이다. )
책 속 문구 ~
< 이 거짓 주변 사람들과 그 자신의 거짓이 이반 일리치의 마지막 나날들을 해치는 가장 무서운 독이었다 >
<나는 산을 올라가고 있다고 상상했지. 하지만 일정한 속도로 내려오고 있었던 거야. 그래. 그랬었던 거야. 분명 사람들 눈에 나는 올라가고 있었어. 하지만 정확하게 그만큼씩 삶은 내 발아래서 멀어져 가고 있었던 거야.
그래 다 끝났어 죽는 것만 남았어. >
( 아래 그림은 한스 홀바인의 대사들. 그들이 상류층이면서 과학적 지식과 예술에도 조예가 깊음을 알리려는 마음이 그림 속 정물들에서 드러난다. 이들의 책과 단검엔 25와 29. 그들의 나이다. 프랑스의 대사와 주교로 헨리 8세의 마음을 돌리려 하지만 사랑에 빠진 그를 돌리기엔 역부족이다. 그렇지만 그들도 막을 수 없는 죽음. 해골의 도상이 이그러진채 왜상기법으로 그려져 있다. ~ 원통의 거울을 그림앞에 놓으면 제대로 해골이 나타난다. 여기 해시계는 4월 11일 10시 30분. 헨리8세가 아라곤의 캐서린과 이혼한 날, 서명한 시간을 나타낸다. 이 외에도 끊어진 류트 줄 등 심상치 않은 암시들이 그림에 가득하다. 응접실을 꾸미며 높아진 연봉에 희망 차 하던 주인공 또한 그 공간에 일그러진 죽음도 공존함을 몰랐겠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