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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욱의 고고학 여행 - 미지의 땅에서 들려오는 삶에 대한 울림
강인욱 지음 / 흐름출판 / 2019년 6월
평점 :
고고학하면 보통 모험가, 채찍과 중절모를 쓴 남자 등이 떠오른다. 실상은 쪼그리고 앉아 삽질하며, 솔로 흙을 털어내고 긴 시간과 노력을 들여 깨진 조각들을 맞추고, 보고서를 쓰고 예산을 타내기 위한 기안서를 수십장을 써내는 일이 다반사인데도 말이다.
대박 난 영화의 영향이 이리도 크고 질기다. 고고학하면 인디애나 존스가 자동으로 떠오르니 말이다. 중절모에 채찍과 총, 여기 저기 종횡무진하며 사악한 도굴꾼들과 싸우지만, 실상 도굴꾼들보다 나은 점이 뭔가 싶다.

내가 처음 본 인디애나 존스는 2탄인 마궁의 사원이었다. 원숭이 두개골을 먹는 장면이 충격적이었던, 거기 나온 꼬마아이가 키호이콴이라고 <구니스>에도 나오곤 했는데, 요즘은 뭐하나 모르겠다. 그 후로 언니들과 나는 인디애나 존스 팬이 돼서 여름이면 나오는 시리즈를 꼬박꼬박 개봉 첫날에 찾아가서 봤고, 리버 피닉스가 어린 인디애나 존스 역을 했을 땐 환호성을 질렀지만 그렇게 요절할 줄은 몰랐다. 그러고 보면 <몬타나 존스>도 있다. 동물들이 등장하는 만화영화판 인디애나 존스, 성격이며 옷차림이며 거의 판박이 수준? 단 이들은 사람이 아니라 사자들이다. 어릴 적엔 왜 강아지들이라고 착각했는지 모르겠다. 아마 강아지들이길 바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 환상을 가득 품고 고고학책을 읽노라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모험대신 음모가, 스릴대신 제국주의의 응큼함과 잔인함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실망은 또 다른 의미의 멋짐으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진실을 찾아 바로잡는 이들의 수고로움과 끈질김, 그닥 드러나지 않는 일들에 대한 그들의 열정이다.
인디애나 존스를 검색하면 같이 뜨는 인물이 하나 있다. “로이 채프먼 앤드루스” 대략 인디애나의 모델쯤 되는 고고학자? 성격이며 인성이며 그닥 좋은 평판은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귀신고래 때문에 왔던 적이 있고, 주로 몽골에서 공룡화석을 연구한 사람이다. 같이 연구한 사람중에 모리스박사님~ 이 분이 석주명선생님과 연결된다고 한다. 연구 후에 조선을 거쳐 일본으로 가려다가 잠시 착각으로 개성에 가게 됐고(경성으로 가려다 발음 혼동으로 개성으로 가게됐다는 설이 있다.)여기서 석주명선생님의 나비컬렉션을 보고 반했다고 한다. 그 후 석주명선생님은 모리스박사의 주선으로 다양한 지원을 받아 마음놓고 연구를 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아이의 그림책에서 본 기억이 난다.(나비박사 석주명이야기~란 제목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청동기시대의 보고, 비파형동검이 무덤이 아닌 집자리에서 처음으로 발견되었고, 수백개의 고인돌이 발견된 이미 1980년대에 어마어마한 유적이 있음이 확인되어 사적으로 지정된 곳, 그 곳에 결국 자본주의와 개발의 논리로 레고랜드가 들어선다고 하다. 사적으로 지정된 곳임에도, 비파형동검이 제례가 아닌 일반 집에서도 활발히 사용됨에 대한 첫 발견임에도 결국 졸속으로 급하게 대강 발굴된 후 그 곳엔 국적불문의 레고랜드가 들어선다. 물론 아이들이 좋아할 수도 있고, 어른들도 행복할 수 있다. 레고랜드라니 얼마나 환상적인가. 하지만 굳이 그곳에?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엄청난 유물이 묻힌 그 곳에 왜? 후손들에게 어떤 낯을 들고 무슨 변명을 해야 할까 싶다. 주로 강가에 살았기에 유적들은 강가에 많다. 사대강으로 얼마나 많은 유적들이 사라졌는지 추측조차 힘들 정도라고 한다. 서울개발에 밀려 나간 풍납토성이며, 일본에 의해 도굴된 경주의 유적들, 얼마나 많은 유적들이 그렇게 사라졌는가에 대해 한번쯤 반성케 한다.
고고학의 발달은 제국주의와 함께 한다. 민족의 우수성을 보여주기 위한 고고학의 발달은 찰스도슨이 “필트다운인 사건”이나 후지무라 신이치의 조작된 구석기 유물등의 위조사건을 일으켰다. 일본은 에가미 나부오가 주장한 “북방기마민족기원설”을 지지하며, 북방에서 한반도로 그리고 일본으로 일왕가문이 건너왔다면서 북방이 일본이 되찾아야 할 땅이며, 임나일본부설이 타당함을 주장한다. 물론 허무맹랑한 이야기며 증거는 없다.
그 외에도 트로이 유적을 발견했으나, 황금을 파내려 트로이 유적을 파괴했고, 그 황금을 자신의 아내에게 씌운 슐리만이나, 서봉총의 황금유물들을 평양기생에게 씌우고 입힌 고이즈미 아키오 등에 대해 비난하고 있다.
항아리 찌꺼기에 남은 성분으로 술의 기원이나 재료를 찾고 (탄소연대측정법은 아이러니하게 맨하튼 프로젝트팀의 리비박사에 의해 만들어짐. 모든 것을 파괴하는 기술에서, 과거의 흔적을 찾는 기술을 발견하다니 뭔가 아이러니하다.)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찾는 고고학자들. 예전 어떤 책에서 고고학자들이 과거의 집터를 찾으면, 제일 먼저 파보는 곳이 화장실이라고 하는데 생각해보면 삶의 쓰레기들이 가장 그 시대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옷을 벗고 밭을 갈며,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고
고인돌 위에서 제례 후 그릇들을 깨며, (이승과 저승은 반대이니, 그릇의 용도도 반대로 )
혹은 누군가는 먼 여행길에서 얻어먹은 맥주맛을 못 잊어,
길고 긴 길을 걸어 보리 씨앗을 얻어왔겠지.
삼신할미가 산다는 우유의 호수인 우마이에서 아이 하나 점지해 달라 빌면서 마유주(말젖술)와 쿠미스(우유발효음료)를 바치고,
삶을 마친 망자에겐 환생과 순결, 치유를 의미하는 자작나무 껍질을 둘러줬겠지.
명복을 빌며, 대마씨앗을 빻아 뜨거운 돌 위에 올려 놓고 대마증기욕으로 심신을 씻기도 했지. 엄청 부자인 누군가의 무덤에 돼지턱뼈가 37개나 같이 묻혔지만. 이번 망자에겐 돼지뼈를 하나밖에 넣어줄수 없었다며 슬퍼하기도 하겠지.
배가 자주 아픈 아이를 위해, 샤먼에게 얻어 온 마황이나 광대버섯을 조심스럽게 키우기도 하며, 힘들 땐 누군가가 타는 공후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을 삶.
(아래는 책 속, 광대버섯을 든 노인과 공후를 타는 벽화)


세월이 흘러 삶의 모습도 바뀌었지.
한 무제는 고조선의 젓갈로 어제도 밥을 뚝딱 두 그릇 먹었다지. 한 무제의 밥도둑은 간장게장이 아니라 동이족 젓갈이었나 보다.
신라의 밥도둑은 바다사자였을까? 황남대총의 제사 음식엔 온갖 식재료가 가득한데, 특이하게 바다사자가 있다.
고구려인은 침 잘 놓기로 유명해서, 연변의 소양자 유적엔 바늘귀가 없는 바늘들과 매끈한 돌이 무덤에서 발견되었다. 어쩌면 침과 안마용 돌일수도 있단다. 그러면 중국 모든 만물기원설에서 침과 관련해선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다고 한다. (북방민족들은 자연환경이 척박해서 아무래도 피부병, 종기가 많았다. 그래서 날카로운 돌로 종기를 째서 치료했고, 그것이 발달해서 침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그런 침술은 문신과도 연결되는데, 주로 혈자리 등에 문신이 그려져 있는 것, 문신도 침술도 결국 치유이자 치유를 위한 주술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부여계통 부족 유물에 귀이개가, 그리고 발해에선 한쪽엔 잔털제게를 위한 족집게가 달린 귀이개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물고기 모양이 귀엽다.

이 책에서 발견한 재미있는 이야기.
미야자키 하야오~ 지브리 스튜디오, 비행기덕후. 아이가 어릴 적 같이 봤던 만화들
이웃집 토토로를 좋아했는데 고고학과 연관이 있단다. 꾸준히 자신의 연구를 계속하며 재야의 고고학자로 살다 간 후지모리 에이지가 이웃집 토토로의 모델이라는 것(후지모리는 야오이 시대가 아닌 그 이전 죠몽시대부터 농사가 시작되었다고 주장했으며, 처음엔 비웃음을 받았지만 기술의 발달로 꽃가루 등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면서 정설이 됨. 하야오가 어릴 때부터 알았고 존경했던 분이라고 한다.) 붉은 돼지 또한 고고학과 관련이 있다.
강인욱작가님의 <테라 인코그니타>와 이번에 읽은 <강인욱의 고고학여행> 두 권의 책은 고고학과 관련된 역사적 사실뿐만 아니라, 역사에 대한 올바른 관점과 과거의 흔적을 대하는 자세 등에서 배울 점이 많다. 또한 크지 않은 나라에서 얼마나 많은 문명이, 나라가 사라지고 세워졌는지, 그 흔적들을 찾아가다 보면 만나게 되는 진실들은 앎의 즐거움과 미래를 맞이하는 올바른 자세를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책 속에서 찾은 글귀,
“문명이란 어둠과 혼돈의 깊은 바다 위에 떠 있는 얇은 얼음장과 같다~ 워너 헤어초크~”
“조상의 위대함이 나의 위대함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 정예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