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 박사와 하이드 (반양장) 펭귄클래식 31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박찬원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지난 주말에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를 보고 왔다. 큰 아이가 중학생이었을즈음 내한 공연으로 본 적이 있지만 내용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홍광호가 부르는 confrontation이 정말 기대가 되었는데, 역시나 노래는 따라올 사람이 없을 정도로 환상적이었다. 하지만, 극 자체는 조금 지루했고, 배우들의 연기도 조금씩은 어긋나는 느낌도 있었다.  너무나도 익숙해서 다 알고 있는 듯한 소설 <지킬 앤 하이드>를 뮤지컬 본 김에 읽어봤다. 딸이 책과 뮤지컬은 완전히 다른 내용이라고 했는데, 정말 그랬다. 

뮤지컬에서는 지킬이 하이드라는 인격체를 만들게 된 이유가 아버지 때문이었다. 정신질환으로 자신을  잃어가는 아버지를 보면서 사람의 정신에서 선과 악을 분리할 수 있는 치료제 연구를 시작했다. 이사회의 반대로 임상실험을 할 수 없게 된 지킬은 스스로 실험대상이 되었고, 악으로 가득 찬 하이드가 탄생했다. 이사회 임원들을 살해하는 등 하이드는 점점 강해졌고, 하이드를 통제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른 지킬은 결국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했다.  약혼녀 엠마, 술집에서 만난 화류계 여자 루시라는 인물들도 등장시켜 지킬의 사랑, 고뇌와 함께 비극을 극대화 시키는 역할을 했다. 

소설은 전혀 달랐다. 등장인물도, 하이드를 탄생시킨 배경도. 단지 자신의 쾌락을 위해서였다. 지킬이 죽은 후 친구에게 남긴 지킬의 고백으로 사건의 전말을 알 수 있었다. 경제적인 풍요, 훌륭한 신체, 다른 이들의 존경, 무엇 하나 모자람 이 없었지만 쾌락을 탐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었던 지킬이었다.

내가 뿌리 깊이 이중적이라 해서 위선적인가 하면 그건 전혀 아니다. 나의 두 가지 모습 모두 진실한 것이었다. 자제심을 버리고 부끄러운 일에 뛰어드는 나 역시, 환한 태양 아래 지식의 증진 혹은 슬픔과 고통의 경감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나와 다르지 않은 내 자신이었다. -p106

나는 생각했다. 만약 각각의 본성을 별개의 개체에 담을 수 있다면 , 참을 수 없는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게 사는 일이 가능해지지 않을까? 부조리한 존재는 그의 고결한 쌍둥이의 열망과 자책으로부터 해방되어 그만의 길을 가고, 정의로운 존재는 흔들림 없이 확고하게 높은 곳을 향한 그의 길만 가면 될 것이다. 그는 선행을 하는 가운데 기쁨을 느낄 것이며, 더 이상 이질적인 악마가 행하는 불명예 탓에 괴로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들 모순되는 한 쌍이 함께 묶였다는 것은, 고뇌하는 의식이라는 자궁 속에 이렇게 극과 극인 쌍둥이가 계속 갈등하며 함께 지내야한다는 것은 인류가 받은 저주였다. -p107


실험에 성공하고 두 인격으로서 살게된 지킬은 하이드가 저지른 참혹한 짓들을 알게 되었고, 점점 하이드의 영향력이 커져가는 것을 느끼며 지킬은 괴로워했다. 인간에게는 악함보다는 선함이 더 강한 것 아닐까싶었다. 아니면, 역으로 하이드가 강해지고 있었다는 것은 악이 선보다 우위에 있다는 뜻이었을까? 우리가 악인이라고 못박은 사람에게 선함은 없을까? 착한 사람이라고 칭송하는 이에게 악함은 전혀 없는걸까? 선과 악을 이분법적으로 나누기는 힘들것 같다. 

소설에서 와 닿는 두 가지가 있었다. 당연 첫 번째는 지킬의 고백을 통한 인간의 심리를 들여다보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작가의 런던의 풍경들을 묘사하는 장면이었다. 런던 뒷골목의 스산함이 그대로 느껴지는 문장들이 좋았다. 단편도 두 편 수록되어 있었는데, <시체 도둑>은 메리 셸리의 '프랑켄 슈타인' 한 장면을 , <오랄라>는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를 떠올리게 했다. 쾌락과 영생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을 드러내는 이야기들이 공포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는 것이 묘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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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5-01-16 0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뮤지컬과 소설이 조금 다르군요 뮤지컬이라고 해서 똑같이 해야 하는 건 아니겠지만... 지킬과 하이드 책으로는 못 봤네요 제목은 알아도 못 본 책 많을 듯합니다 사람은 선과 악 두 가지가 다 있겠지요 두 가지로만 생각할 수 없기도 하고... 자기 마음에서도 둘이 싸우겠습니다


희선

march 2025-01-27 22:35   좋아요 1 | URL
전혀 다른 이야기였어요. 뮤지컬은 많이 자극적으로 만들었더라구요. 책은 오히려 단순한 느낌이었구요.
 


엄마에게 다녀왔다. 목욕을 시켜드리고 얘기를 나누다가 왔다. 치매가 점점 심해져가고 있다. 답답하고도 서글픈 마음이 이어지는 날들이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블로그 친구가 보내 준 책을 펼쳤는데,엄마를 떠올리고 말았다.


형이 전화에 대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더 견디기 힘드실 것 같다고. 나는 어머니가 입원해 있는 요양병원으로 서둘러 출발했다. 아침 일찍 차를 몰았는데 도착했을 때는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어머니와 나 사이가 아득하게 느껴져서 가는 내내 서러웠다.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어머니는 앙상한 나뭇가지처럼 누워서 눈을 깜박거렸다. 어머니의 손을 만지자 물기 없는 피부에서 낙엽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나는 어머니 등 뒤로 조심스럽게 팔을 넣어 끌어안았다. 마지막으로 엄마 품에 안겨보고 싶었는데, 마지막으로 어리광을 피워보고 싶었는데, 마지막으로 사는 일의 고달픔을 일러바치고 싶었는데, 한없이 가벼워진 어머니를 가만히 껴안아 주는 것으로 그 모든 희망을 갈음했다. 병원 앞 화단에 코스모스와 쑥부쟁이가 하늘하늘 피어서 무심히 흔들리는 무렵이었다.-p 25


나를 잊지는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가끔 고모 이름으로 부를 때가 있다. 다행히, 엄마가 좋아하는 시누이로 생각해줘서 다행이다 하면서 위로를 한다. 금방 나를 알아보긴 하지만, 언젠가 완전히 잊어버리는 날이 오지 않을까 두렵다. 아프다는 것을 알면서도 억지를 부리시는 모습에 화를 내고는 금방 후회한다. 엄마에게 살갑게 대하지 못했던 순간들의 기억이 나를 참 힘들게 한다. 나중에 더 많은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고 지금 최선을 다하려하지만 여전히 내 생활을 앞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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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5-01-04 0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님이 march 님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만나고 바로는 다른 사람으로 본다 해도, 곧 march 님인지 알아보기를 바랍니다


희선

march 2025-01-27 22:39   좋아요 1 | URL
저를 알아보기는 하시는데 다른 기능들이 자꾸 떨어져서 걱정이에요. ㅠㅠ

2025-01-04 1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1-27 22: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년 읽은 마지막 책















2025년 첫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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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1-04 1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1-27 2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년에 나쓰메 소세키 현암사 전집을 완독하는 것을 목표로 세웠고, 잘 마무리했다.

시작은 몇 년 전부터였는데 2024년에 마무리하고 싶었다.

2025년에는 어떤 독서 목표를 세워볼까?

1월이 시작되기 전에 계획을 세웠어야하지만 목표가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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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25-01-02 0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뚜벅뚜벅 걷는 길이 가장 즐겁게 빛나는 살림살이라고 느껴요.
새해에는 다른 글님으로 온읽기를 누리시겠네요.

march 2025-01-02 23:58   좋아요 0 | URL
숲노래님 너무 너무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시죠?
2025년에도 좋은 작가와 책들 많이 만나고싶어요.
새해에 좋은 일 가득하시길 바래요.^^

희선 2025-01-03 0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암사에서 나온 나쓰메 소세키 책 다 만나셨군요 다 보셔서 기분 좋으시겠네요 2025년에도 새로운 계획 세우고 잘 해나시기 바랍니다


희선

march 2025-01-27 22:36   좋아요 0 | URL
저 시리즈 찬찬히 다시 만나고싶은 생각도 있는데, 읽고 싶은 책들이 많아서 기회가 있을런지...2025년에는 어떤 책을 만나게 될까요? 희선님은 좋은 계획 있으세요?

2025-01-04 11: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1-27 2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일을 남의 일처럼 쓰는 것은 어쩐지 이상한 것 같지만, 원래 인간은 야무지지 못한 존재라 아무리 자신의 신상에 관한 일이라고 해도,그렇다고 단언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더욱이 과거의 일이라도 되면, 나와 남이 구별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일 것이다'로 변해버린다. 무책임하다는 소리를 들을지도 모르지만, 사실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앞으로도 의심스러운 부분은 늘 이런 식으로 써나갈 생각이다.-p29~30


갱부 밑에 그보다 열등한 족속이 있다는 것은 섣달그믐 다음에도 많은 날이 남아 있다는 말과 같은 것으로,나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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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16 19: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1-02 0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4-12-21 05: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5-01-02 0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