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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 한 구가 더 있다 ㅣ 캐드펠 수사 시리즈 2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8월
평점 :
캐더펠 수사는 자신이 지배하는 왕국의 그 어떤 부분도 소홀히 할 사람이 아니었다. 수도원 담장 밖에서는 사촌 간인 스티븐 왕과 모드 왕후가 잉글랜드의 왕권을 둘러싸고 수많은 인명과 재물을 희생시키며 일대 각축을 벌이고 있었지만 말이다.-p23
1권과 마찬가지로 수도원 텃밭에서 일하고 있는 모습으로 등장을 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는 말이 생각날 정도로 덤덤한 모습으로 맡은 바를 충실히 하고 있는 캐더펠 수사. 1138년 왕권을 둘러싼 내전 중 스티븐 왕은 반역의 무리 94명을 모두 처형했다. 수도원장과 함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성으로 갔던 캐더펠 수사는 공개처형된 사람들의 시신과는 다른 모습, 다른 곳에서 살해당한 것이 분명한 시체 한 구를 더 발견했다.
"그러나 프레스코트 장관님, 처형된 이들 중에는 숲속에 숨겨진 한 장의 나뭇잎처럼 은밀하게 살해된 사람이 하나 끼어 있습니다. 장관님은 제가 그를 찾아낸 것을 유감스럽게 여기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설혹 제가 못 봤다 할지라도 하느님까지 이를 보지 못하실까요? 설령 장관님께서 저를 침묵시킬 수 있다 쳐도, 제가 입을 다문다해서 하느님까지 침묵하시리라 생각하십니까? "-p 77
이렇게 살인 사건을 조사하게 된 캐더펠. 살인이 정당화되는 전쟁터이고, 전쟁터에서의 죽음이 억울하지 않은 죽음이 있겠냐마는 이건 다른 이야기였다. 헛된 죽음을 만들 수는 없었다. 결말은 당연히 살인자를 찾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지만 등장인물들의 서사가 촘촘하게 얽혀 있었다. 진심은 서로 통한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진심을 다하는 사람들. 범인은 정체를 감추고 있어서 예외라고 해야겠지만 착한 사람은 계속 착한 사람이었고, 타인을 배신하지 않아서 좋았다. 그런 점들이 추리소설에서는 마이너스가 될지 모르겠다. 등장인물들을 이야기하자니 스포가 될듯해서 할 수가 없다. 매력적인 인물이 침 많은데. 십자군 원정에 참여해 성지를 누비고, 전투가 그칠 날이 없다시피 한 성지의 해안을 순회하는 배의 선장으로 10년이나 일한 사람이라 강한 이미지지만, 캐더펠 수사가 인간을 대하는 모습은 한없이 따뜻했다. 그리고 노련했다.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고, 역으로 이용할 줄 알았다. 추리소설이 서정적으로 읽히는 경험은 이 시리즈가 처음인듯하다. 잔잔하게 흐르는 물결을 따라 가다보니 목적지에 도달한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어떤 이에게는 고통이 될지도 모르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는 것이 문학에서 만날 수 있는 일반적인 것들이었다면 이 책에서는 그 틀을 과감히 깼다. 1권에서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 특별했던 것처럼 , 2권에서는 때론 진실을 묻어두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했던 것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캐더펠 수사는 특별하고도 매력적인 탐정이다.
"하지만 이건 정의가 아닙니다. 수사님과 저는 한 사람이 저지른 죄의 진실을 만천하에 드러내야 했고, 또 다른 사람의 진실은 은폐하지 않을 수 없었죠." "정의에 대해 하는 말인데, 정의는 전체 이야기의 절반도 채 안 되기 마련이오."-p366, 3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