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장의 살인
이마무라 마사히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엘릭시르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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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클리셰인데 클리셰 아닌 느낌의 클리셰를 이용한 추리소설이라고 할까. 너무 뻔하디뻔한 구성의 밀실추리를 좀비라는 독특한 소재로 감싸안으며 추리소설을 새롭게 변주했다고 느껴진다. 뻔한 추리소설 장르에 새로운 시도를 한 것만으로도 큰 점수를 준다. 나머지는 개인의 취향에 맞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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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집주 2
주희 지음, 박헌순 옮김 / 한길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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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적이며 윤리적인 주희의 해석, 자신만의 독창적인 시각이 들어 있는 다산 정약용의 해석. 이 두 해석의 하모니가 이 책의 묘미가 아닐까. 다만 한가지, 책에 가득한 한자의 숲을 지나야 그 묘미를 느낄 수 있다는 게 이 책의 제약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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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에서 시작된 내 동양철학 책읽기는 도가 사상을 거쳐 묵가와 순자에서 한비자로 이어지는 법가쪽에 이르렀다. 아마도 법가를 넘어간다면 손자 같은 병가 사상가들과 그외의 사상가들로 넘어갈 것 같다. 아, 아무리 생각해도 배움과 책읽기에는 끝이 없다. 읽어도 읽어도 모자랄 것 같은 갈급함만 남는 것 같고. 어느 순간에 만족함을 알아야 할 텐데, 아직까지는 만족함은 없고 부족함과 조급함만 있다. 나 같은 소인의 공부(??)는 갈급함,조금함,부족함으로 인해 갈길이 멀고 힘들다. 하지만 포기는 없다.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곳까지 해보는 것.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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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빠져 죽지 않기>를 읽다가 첫부분에 나오는 책을 읽다보면 글을 쓸 수 밖에 없다는 구절에 눈길이 갔습니다. 그 구절을 보면서 저는 '그렇지. 나도 읽었기 때문에 글을 쓸 수 밖에 없을거야.'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비록 지금은 쓰지 않고 있지만 쓰게 될 거라는 위안. 위안은 글을 써야겠다는 마음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내 마음은 다시 글을 써야할 때가 온 것 같다는 걸 느꼈습니다. 이제 시작해야겠죠. 어떤 식으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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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30 2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31 1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번 모임 후기는 그냥 제 생각에 따라 제 방식대로 한번 써보겠습니다.

 

일반적인 후기가 아니라 오늘 모임을 하고 나서 제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들을 정리한 것이라고 이해해주세요.ㅎㅎ

 

A: 묵자에 대해서는 잘 파악이 되지 않습니다. ‘겸애’라는 사상을 이야기하며 평등을 위해 노력한 것 같은데 ‘평등’과는 모순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서요.

 

B: 묵자‘가 말한 ’겸애‘=’차별없는 사랑‘이라는 이상은 현실에서 구현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자는 ’겸애‘를 실현시키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이상을 현실로 구현해내기 위한 현실에서의 몸부림. 묵자의 사상을 이상을 현실화하기 위한 최선의 현실적인 노력으로 파악하신다면 조금 더 이해가 쉬울 것 같습니다. 전쟁을 막기 위해, 전쟁없는 세상을 위해, 전쟁으로 위기에 빠진 이들을 돕기 위해 전쟁에 나서는 것 같은. 일견 모순되는 것 같아 보이지만, 묵자에게는 이상을 현실화하기 위해서 무엇이든 해야만 했던 걸로 보입니다. 그들에게 이상은 현실에서의 실천 없이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죠.

 

A: ‘성악설’을 믿는 악명(??)높은 인물로 유명하지만, 순자는 인간이 교육이나 교화를 통해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인물처럼 보입니다. 그런 순자가 악명(??)과는 달리 괜찮아 보였어요.

 

B: 공자나 맹자보다 후대의 사람인 순자는, 공자나 맹자나 살았던 시기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황 속에서 살아가야 했습니다. 전쟁은 계속 일어나고 사람 목숨이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는 극심한 혼돈의 상황에서 순자는 공자나 맹자가 주장한 ‘인’이나 ‘의’로는 이 시대를 헤쳐나가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순자는 ‘예’를 강조하며 인간을 ‘예’로써 다스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순자의 인간에 대한 판단은 인위적인 ‘예’를 강조하는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맹자의 ‘측은지심’처럼, 우리 마음 속 깊은 곳에 간직된 인간의 어찌할 수 없는 선한 마음 같은 개념 대신 순자는 인간이 나빠질 수 있지만 동시에 선해질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바로 ‘예’ 같은 인위적인 외부의 교육이나 교화를 통해서요. 조금 보충해서 말하자면, 동양철학에서 말하는 성선설이나 성악설은 서양에서 말하는 본성과 양육 논쟁과는 조금 그 결이 다릅니다. 순자가 말하는 성악설은 인간이 악한 마음을 타고 났다거나 인간이 악마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가능성에 조금 더 주안점을 두고 있습니다. 인간의 마음이란 충분히 악해질 수 있지만 동시에 충분히 선해질수도 있다고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물론 맹자에 비해 순자가 인간을 나쁘게 보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에 근거해서 순자를 성악설을 믿는다고 말한다면 저도 할말은 없지만요.^^;;

 

A: 한비자가 말하는 법가 사상은 왕 같은 통치자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 좋은 사상 같아 보여요. 통치자의 입맛에 맞는 말을 하고, 통치자에게 유리한 입장에 서 있으니까요. 반대로 말하면 통치자로 대변되는 국가라는 시스템에 ‘개인’이 쉽게 희생될 수도 있을 것 같아 불편한면도 있었습니다.

 

B: 제가 보기에 한비자로 대변되는 법가 사상은 춘추전국시대의 왕 같은 통치자의 구미에 딱 들어맞는 사상처럼 보입니다. 그들이 원하는 말, 그들이 필요한 말을 정확하게 해주니까요. 저는 그래서 한비자를 개인적으로 춘추전국시대의 ‘정치컨설턴트’라고 부릅니다. 다른 제자백가 사상가들보다 훨씬 통치자들이라는 그 시대의 정치수요자들에게 강력한 구매력을 발휘하게 만드니까요. 그리고 법에 의한 통치를 주장하는 법가 사상가들은 현대인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유가나 도가,묵가에 비해 훨씬 더 가혹하거나 비인간적으로 느껴지는 게 사실입니다. <한비자>에 나오는 구절들이 실제로 그런 부분이 있는 건 사실이니까요. 그러나 <한비자>라는 책은 단순히 가혹한 주장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비자는 스승인 순자, 그 이전의 도가나 유가 사상을 받아들이고 종합하여 발전시키고 자신의 시대에 맞는 사상을 전개한 인물입니다. 시대의 맥락에 맞을 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정치수요자들에게 잘 들어맞는 사상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저는 한비자를 높이 평가합니다. 비록 그의 최후가 좋지 못했다고 해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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