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민음사 사서四書
동양고전연구회 역주 / 민음사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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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7.논어-공자(민음사)

 

1-1 선생님꼐서 말씀하셨다. ‘배우고 그것을 때에 막혀 나가면 기쁘지 않겠는가?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즐겁지 않겠는가?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움을 품지 않으면 군자답지 않겠는가?’ _ 학이(學而)

 

저는 고전을 읽을 때 원전을 바로 읽지 않습니다. 먼저 원전을 설명하는 해설서를 읽고 어느 정도의 이해의 틀을 만들어놓습니다. 그 다음 단계로 저는 원전 읽기를 시도합니다. 몇 년 전 동양 고전을 열심히 읽기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해설서들을 읽고 나서 원전 읽기로 가는 건. 동양 고전에서 가장 먼저 손을 댄 것이 <논어>였고, <논어>도 해설서들을 원전보다 먼저 읽었습니다. 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해설서들을 읽으면서 저는 공자와 사랑에 빠져버렸습니다. 첫사랑이라서, 첫경험이라서 그런 걸까요? 사랑에 빠지니 공자의 모든 것이 좋게 보였습니다.

 

그런데 불꽃같은 사랑이란 게 영원하지는 않잖아요? 불꽃 같은 사랑의 시기가 지나면, 불꽃같은 열정이 식고 조금 더 현실화된 사랑의 시기가 도래해죠. <논어>와 공자에 대한 제 사랑도 똑같았습니다. 불꽃처럼 모든 걸 사랑하는 시기가 지나가고, 냉정하게 바라보는 시기가 도래하더군요. 그 때의 공자는 뛰어난 인물이지만 시대의 맥락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논어>도 모순적이고, 시대의 흔적을 담은 텍스트로 바라보게 되었죠. 저는 이런 냉정함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열정적인 옹호는 보지 못하는 많은 것들을 볼 수 있게 만들어주니까요.

 

지금 저에게 공자는 만고의 스승이라거나 사상의 대종사 같은 느낌은 아닙니다. 저에게 공자는 한 시대를 풍미한 사상가로서 이후 세대에게 큰 영향을 미친 인물 정도로서 생각됩니다. <논어>에 대한 평가도 동양고전 최강의 텍스트라거나 영원불멸의 진리를 담은 책으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읽다보면 좋은 구절이 많은 동양고전 정도로만 생각됩니다. (사실 저는 <노자><장자>를 성향상 더 좋아합니다.^^;;) 찬성과 긍정으로만 가득한 평가도 아니고, 부정으로만 가득한 평가도 아닌, 그 중간 어디쯤에서 왔다갔다하는 사상가이자 텍스트로서 공자와 <논어>를 바라보고 있다는 말입니다.

 

저는 긍정과 부정을 왔다갔다하는 상태에서 지속적으로 <논어> 관련 해설서들과 원전의 다양한 판본들을 읽었습니다. 민음사 판본의 <논어>도 민음사 번역본의 <대학>,<중용> 다음에 읽었죠. 번역이 다른 고전들을 읽다보면 작은 차이들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 작은 차이들이 책의 차별점으로 이어집니다. 제가 보기에 민음사 버전 <논어>의 번역은 초보자도 쉽게 읽을 수 있는, 바로 이해되는 번역은 아닙니다. 번역 언어 자체의 정확성에 더 치중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상세한 해설이 덧붙여 있어서 읽는데 어려움은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논어>를 지속적으로 읽는다는 건, 텍스트를 통해서 공자의 음성을 계속 듣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제 마음에 들려오는 공자의 목소리는, 혼돈의 시대에서 자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주나라의 예법을 되살리는 것이자 인을 강조하는 것이고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가르침을 주는 것이고 사람에 따라 다른 가르침을 주는 것이자 실패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는 사람의 음성입니다. <논어> 읽기가 계속될 예정이니 이 음성은 앞으로도 제 마음 속에 사라지지 않고 꾸준히 이어질 겁니다. 잊혀지지 않는 과거의 목소리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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