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 실증적 <노자> 읽기 글항아리 동양고전 시리즈 14
리링 지음, 김갑수 옮김 / 글항아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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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48.노자-리링(글항아리)

너무 오랜만에 서평을 쓰려고 보니 너무 힘드네요.^^;; 뭘 어떻게 써야할지 몰라서. 그래도 차근차근 예전을 생각하며 한 번 써보려 합니다. 어떻게든.

생각을 다듬어 봅니다. 어떻게 써야 하는가. 여러가지 방안이 떠오릅니다. 사실 이 글을 쓰기 전에 그 방안 중 몇 가지에 따라 글을 써봤습니다. 결과는 쓰다가 맘에 들지 않아 몇번을 지우고 다시 쓰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제는 쓰는 것도 지겹고 힘들어서 이 글은 그대로 두려 합니다. 그대로 두려고 보니 의식의 흐름대로 쓰고 있네요.^^;; 어쩔 수 없습니다. 의식의 흐름대로 쓰지 않는 것이 지금의 저에게는 너무 힘들네요. 의식의 흐름대로 쓰는 것만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인 것 같습니다. 따라서 의식의 흐름대로 쓰고 그에 따르겠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머릿속으로 그동안 저의 노자 독서에 대한 흐름들이 스쳐 가네요. 그 순간들을 단순하게 몇 글자로 정리하는 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도 해보자면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겠네요. 진짜 제 '노자 독서사'(^^;;)는 '상전벽해'(桑田碧海)라는 말처럼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제가 처음 '노자'를 읽었을 때의 노자는 신비롭고 오묘하며 쉽게 이해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이고 초월적인 느낌의 책이었습니다. 제가 그때 얼마나 노자라는 책의 신묘함에 빠져들었는지.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노자를 통치철학이자 정치철학이자 처세서로 바라보는 해석서들을 읽으면서 저의 노자에 대한 생각은 크게 변화하게 됩니다. 지금은 오히려 그게 맞는 것처럼 느껴지네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처럼 한 책에 대한 해석의 느낌이 변화한 것이죠. 어쩌면 최근에 나오는 노자 해석서들의 경향을 제가 따라가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의 흐름이 대세를 이루고 그에 다른 이들이 따라간다면 저도 어쩔 수 없는 것이죠.

리링의 <노자>도 이런 흐름을 따르고 있습니다. 반어적이고 은유적이고 오묘하고 신묘한 표현들이 가득하지만 그것들이 가리키는 것은, 통치자의 통치술이자 정치철학이라는. 단지 리링답게 특유의 실증적인 노력들을 글속에 담아내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해석을 더하면서, '리링스럽다'는 느낌이 더해죠 있죠. 이미 '상전벽해'의 변화를 겪은 저에게는 익숙해서 부담없는 책이었고, 저의 변화한 노자 해석에 확신을 더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쓰고 보니 이전에 봤던 어떤 정치인의 대화가 기억납니다. 그 사람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전에 가득했던 욕심을 버리고 나니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라고. 그 말을 보고 <노자>가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비운만큼 채울 수 있고, 버린만큼 더 얻을 수 있다라는. 일견 철학적이고 초월적으로 보이는 '노자'의 말은 실생활에 잘 적용될 수 있는 말인 것이죠. 물론 이 해석이 무조건 옳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생활의 여러 상황들을 들여다보면 <노자>에 나오는 말들이 얼마나 잘 적용될 수 있는지 깨닫게 됩니다. 제가 그 말대로 제대로 할 수만 있다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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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도 안 읽고 유튜브나 인터넷 방송 같은 영상 매체만 보고 있으니 내 머리가 멍청해지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어쩔 수 없이 이제부터 조금씩이라도 짧은 글을 써보자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것을 실천하는 것뿐...

1.

그런데 뭘하지?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할 말이 없으니 할 말이 없는 것 자체'를 글로 써야 하나?

아니 이왕 쓰기로 했으니 요새 품고 있었던 정치적인 생각들을 마구 글로 쓸까?^^;;

음... 그건 못하겠구만. 오프라인이 아니라 온라인에서는 정치적인 생각들을 글로 쓰는 걸 하지 않기로 했으니.

내 머리를 스치던 정치적인 생각들은 다 날아가고,

다시 다른 생각을 해본다.

무엇을 써야할지 모르겠다.

해서 '무엇을 써야할지 모르겠다'라는 생각 자체를 여백에 채우고 끝내련다. ㅎㅎㅎ

어차피 짦은 글을 쓰기로 했으니 이 정도 쓰는 것도 다행이다.

다음에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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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책을 거의 안 읽고 있습니다.

왠일인지 책이 거의 안 읽히네요....

유튜브를 너무 많이 보고 인터넷 방송도 너무 많이 봅니다...

영상에 끌려서 문자랑 멀어진 것인가?

그러기에는 뭔가 아닌 것 같고...

어쨌든 잠시 시간을 가지고 다시 책 읽기로 돌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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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2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7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백승무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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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을 읽어나가면서 나는 개인적으로 실망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생각하는 문학의 기준, 문학성이라는 잣대의 측면에서 <부활>이 못미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부활>은 톨스토이의 이상과 관념과 사상이 지배하는 소설이다. 문학이 톨스토이의 이상과 사상에 잡아먹혔다고 해야하나. 어떤 전형적인 도식을 짜놓고 거기에 맞춰 소설을 쓴 느낌이랄까. 사실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를 비교해보면, 톨스토이는 인물의 개인적인 심리묘사와 장광설에 치중하며 소설 전체의 설계가 헐거워보이는 도스토예프스키에 비해, 소설 전체의 구성을 잘하는 소설 설계자로서의 능력이 돋보이는 작가이다. 그런데 그런 작가의 설계가 너무 도식적이고 뻔해보였으니 실망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나니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어차피 <안나 카레니나> 이후로 톨스토이가 문인의 길보다는 사상가, 철학자로서의 길로 나아가기 시작했다고 한다면, <부활>은 그 시절의 흐름을 담을 수밖에 없다. 문인에서 사상가, 철학자로서의 길로 나아간 이가 예전과 같은 소설을 쓸 수는 없을 터. 결국 <부활>은 톨스토이가 그 당시 자신이 생각하는 소설의 구성에 딱 맞게 지은 소설일 것이다. 자신의 이상과 관념에 딱 맞는 구성으로서 <부활>이라는 소설을 썼다는 말이다. 그렇게 본다면 <부활>에 무턱대고 실망을 표할 수는 없다. 이미 다른 길로 가버린 대문호의 삶을, 현재의 내가 되돌릴 수도 없고, 내 스스로의 문학적 기준을 넓혀서 바라보면 되기 때문이다. 내 스스로의 문학적 기준을 넓혀서 바라보니 <부활>이 달리 보였다. 문학의 길에서 사상과 이상의 길로 들어선 한 문인의 삶의 여정을 기록하는 문학으로서. 내가 바라본 그 길에서 톨스토이는 동시대의 압박과 현실의 무게 속에서도 자신의 이상과 사상이라는 버거운 짐을 짊어지고 나아가는 구도자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그의 나름의 구도의 길에서 태어난 이 작품에 어찌 낮은 평가를 내릴 수 있을까. 나는 <부활>을 <부활>답게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마음 한켠에서는톨스토이의 문학을 좋아하는 이로서 톨스토이 특유의 소설이 '부활'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일어나는 것 또한 막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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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kfkstk 2020-03-12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 @@
 

무언가 멈춘 나날들이었다. 책읽기도 글쓰기도.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코로나 19의 여파도 아니고.

그냥 책읽기나 글쓰기 멈춤 버튼을 누른 것처럼 행동했다.

그럼 이제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것인가?

그것도 잘 모르겠다.

뭐 흘러가는 대로 흘러갈 수밖에 없겠지.

그 멈춤의 나날들 속에서 그나마 읽었던 책들에 대한 예의로 짧은 감상평이나 남겨야겠다.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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