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은 죽임당하지 않을 것이다 켄 리우 한국판 오리지널 단편집 2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2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2023-36.신들은 죽임당하지 않을 것이다-켄 리우

 

책을 읽으면 언어가 제 몸으로 들어옵니다. 제 몸에 들어온 언어는 나의 뇌리에 박혀서 정신을 형성하고 사고방식을 이룹니다. 그러니까 제가 책을 읽으면 그 책들은 저의 정신을 형성합니다. 책들이 저 자신이 되는거죠. 책과 나의 합일.

 

<신들은 죽임당하지 않을 것이다>를 읽기 전에 읽은 책들을 적어봅니다. 알랭 바디우의 <참된 삶>, 조르조 아감벤의 <세속화예찬>, 재독철학자 한병철의 <정보의 지배>, 포스트모던 사회를 예측한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의 <포스트모던의 조건>. 특정한 의도를 가지고 읽은 건 아닌데 읽다보니까 지속적으로 인문학 책만 읽고 있었습니다. 이런 인문학 책들을 계속해서 읽다보니까 저도 모르게 저 책들의 언어가 제 몸으로 흘러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켄 리우의 <신들은 죽임당하지 않을 것이다>를 읽었죠. 이제 <신들은 죽임 당하지 않을 것이다>은 제 머리 속에서 저만의 방식으로 맥락화되고 구조화됩니다. 제가 어떤 방식으로 저만의 맥락화나 구조화를 했는지 한번 적어보겠습니다.

 

이 책에는 싱귤래리티 3부작의 프리퀄격인 포스트휴먼 3부작이 있습니다. <신들은 목줄을 차지 않을 것이다>, <신들은 순순히 죽지 않을 것이다>, <신들은 헛되이 죽지 않았다> 3부작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들의 핵심에는 유물론이 있습니다. 서양 철학의 오래된 사고방식 중 하나인 유물론은 이 세상이 물질로만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합니다. 정신 같은 비질적인 실체가 있다는 유심론과 오랫동안 대립해왔던 유물론적 사고방식으로 무장한 이 소설들은 인간의 정신활동이 뇌의 뇌파의 상태라는 입장에서 소설을 전개해나갑니다. 당연하게도 이런 인간의 정신은 대뇌스캔을 통해서 인간의 죽음 이후에도 데이터 속에도 살아남고, 데이터 속에 살아남은 포스트휴먼들은 자신들만의 숨가쁜 전쟁을 벌입니다. 그것이 현실에도 영향을 미치고요. 그리고 그들은 최종적으로 인간 이후의 삶을 데이터 속에 준비해두는 방식으로 이어집니다. 여기에서는 모든 것들이 물질이자 데이터로 존재합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포스트휴먼이 인간 이후의 삶을 준비하며 데이터 속에 구현한 삶의 방식이 어떻게 보면 현실의 무게감 없는 정신의 삶과 비슷하다는 점입니다. 저는 여기서 유물론과 유심론이 만난다고 생각합니다. 유물론의 끝에서 데이터로 구현된 정신의 삶이 유물론과 유심론이 만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 짐은 영원히 그대 어깨 위에>는 어떤가요? 저는 이 작품이 경이라는 감정을 잘 표현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번 생각해봅시다. 인류가 우주로 나가서 외계행성을 찾아냅니다. 그런데 그 행성에는 외계 문명이 남긴 유적이 남아 있습니다. 인류는 운 좋게 외계의 언어를 해독해냅니다. 거기에는 몇 십 만년 전에 사라진 자연재해로 사라진 외계문명의 서사가 담겨있습니다. 인간의 삶으로는 상상이 안 되는 몇 십 만년 이라는 시간의 흔적이 담긴 유적 앞에서 어떤 감정이 느껴지나요? 자연재해로 하루 아침에 사라진 문명의 흔적 앞에서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해야할까요? 백년도 안 되는 인간의 삶이 아니라 몇 십 만이라는 시간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유적 앞에서 저는 경이로움을 느낄 거 같습니다. 이건 칸트가 말하는 숭고와는 다른 감정입니다. 자연의 범접할 수 없는 거대한 자연물 앞에서 느끼는 감정인 숭고에는 경이로움과 함께 공포도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이 소설에서 느낀 건 공포보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슬픔이었습니다. 하루아침에 사라진 문명에 대한 슬픔. 그리고 그 문명의 이야기를 몇 십 만년 뒤에야 알게 되는 경이로움. 자연 앞에서, 거대한 시간의 힘 앞에서 우리 인간은 그렇게 약하고, 우리 인간이 만든 문명이라는 것도 얼마나 힘이 없는지 깨닫게 되는 감정으로서.

 

<북두>는 어떤가요? 한국의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출병한 명군의 입장에서 써내려간 이 소설은 역사를 보는 다른 관점을 이야기해줍니다. 역사는 승자의 입장이라고 말하며 서양의 역사가들은 근대화과정에서 서양에 패배한 동양의 역사를 진보와 발전이 멈춘 역사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다른 관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왜 명은 발전을 멈추었는가? 정화의 해외원정 당시 명은 당시 서양문명이 이루지 못했던 발전을 이루었는데 왜 그들은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는가? 이 작품에서는 명이 선택을 한 겁니다. 어떤 선택? 세상을 이기심과 자연파괴로 나아가게 만들 것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하며 인간을 더 많이 죽지 않게 만드는 방식의 삶으로. 실제로 이후에 그들의 문명이 실패할지라도 그들은 그 삶의 방식을 선택한 겁니다. 선택이 옳은지 그른지는 시간대마다 다 답이 다를 겁니다. 지금에서야 서양이 더 나은 선택을 한 것처럼 보이지만 더 미래에는 어떤 선택이 옳은 것인지 지금과는 다를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다만 제가 말하고 싶은 건, 그 때의 선택이 서양에서 말하는 미개한 선택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 나름의 선택이었다는 거죠.

 

이 외에도 저는 소설들에서 저만의 맥락화를 이루어냈습니다. <루프 속에서>, <1비트짜리 오류>, <장거리 화물 비행선>, <카산드라>, <풀을 묶어서라도, 반지를 물어 와서라도>에서도 각각의 소설들에서 저만의 어떤 특정한 사유의 흐름을 읽어냈습니다. 이 글에서 다 말할 순 없지만 제가 그 생각들을 하게 됐다는 점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구요? 앞에 있는 책들의 영향으로 이 책을 읽게 됐다는 명확한 증거이니까요. 그러니까 저는 확실히 깨닫게 됩니다. 제가 읽은 책들이 저를 만든다는 사실을, 제가 읽은 책이 저와 저의 삶을 만드는 만큼, 저는 앞으로도 책을 읽어나가며 책에 대해 무수히 바뀌는 많은 삶들을 살아가게 될 것 같습니다. 책에 따라 무수히 바뀌는 저 자신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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