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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의 세계사
가와기타 미노루 지음, 장미화 옮김 / 좋은책만들기 / 2003년 10월
평점 :
절판
2.설탕의 세계사-가와기타 미노루
설탕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좋아해서 그 무엇보다 '세계상품'이 되기 쉬운 특성을 가지고 있다.(14)
사탕수수가 있는 곳에 노예가 있다.(36)
오로지 세계시장에서 팔리는 세계상품이 될 만한 농산물만을 생산하는 모노컬처 형태의 농업이 성행하고 플래테이션이 전개되면서 아시아와 아메리카, 아프리카 각지에서는 카리브 해에서와 마찬가지로 풍경과 사회형태, 인구밀도 등의 격변이 일어났다. 플랜테이션은 해당 지역의 사회를 순식간에 파괴했는데, 그 결과 플랜테이션이 성했던 지역 대부분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개발도상국을 면치 못하고 있다. 플랜테이션이 사회와 경제발전을 저해하고 한쪽으로 치우치게 했던 탓이다.(49)
동시대 영국인의 표현을 빌자면 실로 "위대한 설탕이여, 그 모든 것을 능가하는 존재여"라고 말할 수 있는데, 설탕의 이런 위대함도 노예무역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105)
카리브 해에서 산업이 발달하지 못한 이유는 흑인들이 게을러서가 아니었다. 진짜 이유는 이 지역이 세계상품인 설탕의 원료, 즉 사탕수수의 생산에 적합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유럽인들은 이곳에 플랜테이션을 건설하고 '모노컬처' 사회를 사회를 도입함으로써 이 땅의 현재와 미래의 잠재성장력을 철저히 착취했다.(182)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왜 이런 모습이 되었는지, 여기에 오기까지 어떠한 역사적 변천을 거쳤기에 지금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인지를 연구하는 것이 역사학이다.(186)
E의 고백
(중략)
설탕을 미시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과학이 동원될 것입니다. 분자식은 C12H22O11이고, 포도당과 과당이 1→2 글리코시드 결합으로 결합한 이당류라는. 이걸 쉬운 말로 하면 사람들이 좋아하는 단맛이 나는 물질이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좋아하는 단맛이 나는 물질인 '설탕이 어떤 성분인가'라는 질문이 '설탕이 어떻게 생산되느냐'나 '설탕이 어떻게 오랫동안 인류사에서 인기를 누렸느냐'라든가 '설탕에 대한 인식이 왜 바뀌었느냐'라는 질문으로 바뀌면 이제 문제는 단순히 미시적인 과학의 영역에서 근대세계체제론을 동반하는 역사학이나 경제학,정치학과 같은 거시적인 영역의 학문으로 옮겨지게 됩니다.
거시적인 영역에서 설탕을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설탕의 대량생산이 가능한 사탕수수는 식물의 특성상 대량의 노동력을 동반하고 토지의 비료분을 소묘시켜 땅을 황폐화시키기에 필연적으로 노예제도를 동반하고 지속적으로 재배지를 넓혀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대항해시대, 근대세계체제,유럽의 성장과 변화,제국주의,식민지시대의 식민지무역과 노예무역 같은 그 시대의 상황과 맞물려 돌아가면서 설탕은 단순한 설탕이 아닌, 흑인노예들이 아프리카의 고향에서 노예상에게 잡혀 아메리카에서 설탕을 생산하는 플랜테이션 농장으로 폭력적으로 잡혀가면서 거기서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고 생산되는 물질이 됩니다. 식민지 지배층인 소수의 백인들은 흑인노예들을 폭력적으로 착취하고, 흑인노예들의 피와 땀과 눈물로 만들어진 설탕은 중하층 백인들에게 영양분을 공급하고, 백인들이 먹고 마시며 지급한 돈과 삼각무역을 통한 이득은 흑인노예들을 착취하는 백인들의 부를 늘리고, 그 소수의 백인들의 부와 설탕을 먹고 영양분을 획득한 다수의 백인들이 다시 백인들이 유럽 국가를 부유하게 하는 구조를 보노라면, 우리가 쉽게 이야기하는 설탕 하나에 얼마나 많은 역사의 흐름과 연관되어 있는지 알게 됩니다.
과학으로 분석하면 단순한 하나의 물질인데, 그것이 사용되는 역사적이고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맥락을 들여다보노라면 너무나 엄청난 역사적 흐름과 만나게 되는 것이지요. <설탕의 세계사>를 읽고서 깨닫게 되는 미시적 진실과 거시적 진실의 교차 앞에서 저는 '미시사 연구'가 말하는 어떤 역사적인 인식을 느낍니다. 미시와 거시가 하나로 이어진다는. 설탕이라는 미시적인 물질 안에 거시적인 '역사'가 깃들어 있고, 거시적인 '역사'가 미시적인 '설탕'을 통해 드러난다는 게 <설탕의 세계사>라는 미시사 책이 말하는 것이죠. 결국 미시와 거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되고, 미시가 거시가 되고 거시가 미시가 되는 거시와 미시의 결합을 <설탕의 세계사>는 보여줍니다. 글을 쓰다 보니 불교 사상에서 유명한 용수의 연기설이 떠오릅니다. 모든 것이 이어져있다는 용수의 연기설이 <설탕의 세계사>의 주제가 아닐까 말도 안되는 상상이 드네요.^^;; 여기까지 하고 이 글을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