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퍼민트 (양장)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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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페퍼민트》의 중심인물은 열아홉 살이 되어 고3을 겪는 시원과 ('지원'으로 개명한) 혜원이다. 열아홉, 고3. 그렇다, 이 소설은 청소년문학이다. 뻔하겠지만, 열아홉 살이라는 설정은 선입견적으로 성장소설일 것이란 판단을 유보시키지 않는다.

소설은 먼저 식물인간이 된 엄마를 간병하며 살고 있는 시원의 일상과 바로 다음으로 단란한 가족의 품에서 여느 고3과 다를바 없이 살고 있는 혜원의 일상이 짧게 대비되면서 시작한다. 이 대비되는 일상은 시안과 혜원 사이의 과거와 이후 이야기의 분깃점이자 시작점이면서 '어쩔 수 없는 일'이 만들어 놓은 어쩔 수 없는 결과이기도 하다.

📖 "어쩔 수 없는 일이었잖아. 고의도 아니었고." (45쪽)

소설 《페퍼민트》는 어쩔 수 없는 일로 말미암아 어쩔 수 없이 삶의 변화를 겪는, 그래서 '어쩔 수 없는 일'에 대한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어쩔 수 없이 관계가 붕괴되고, 어쩔 수 없이 서로 잊고 잊혀진 삶을 살아가다, 문득 우연한 만남으로 어쩔 수 없이 과거를 뒤적거리면서 서로 몰랐던 사실을 어쩔 수 없이 알게 되고, 서로 알지 못한 서로의 현실을 어쩔 수 없이 목격하게 되는 순간들의 이야기.

이미 소설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란 프록시모 바이러스이자 그와 관련한 이야기라고 밝히고 있다. 이 점으로 이 소설이 우리 사회가 최근 2년 반 넘게 겪고 있는 코로나 시대를 비유하고 있음을 여지없이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일'로 표현하고 강조하는 것은 아마도 이 소설이 '관계'에 대한 물음을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쩔 수 없다'란 말은 참 애매하다. 주체적으로 이 말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인데, 객체적으로는 '의도적으로 회피한다'고 받아들여질 수 있다. 반대로 해석될 수도 있다. 다만, 해석의 여지는 서로의 관계성에 따라 다르게 변화된다. 소설 《페퍼민트》의 묘미는 바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 과연 어쩔 수 없는 것인지, 아니면 어쩔 수 있는 것이나 어쩔 수 없다는 것인지, 그리고 그 어쩔 수 없다는 것은 누구의 판단이며 누구의 의지인지 등 그 순간을 독자로서 판단하면서 인물들의 관계뿐만 아니라 우리들이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서로 관계맺음에 대한 고민까지 깊이있게 돌아보려는 노력에 있지 않나 싶다.

예를 들어, 혜원의 엄마가 외국에 나갔다가 프락시모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귀국했고, 이를 숨긴 채 생활하다 슈퍼 전파자 N번으로 정체가 탄로날 즈음 이미 시안의 엄마는 감염되어 이상 증상으로 병원신세를 지다가 결국 식물인간이 되어 버렸다. 이런 상황이었는데도 시안의 아빠는 혜원의 가족을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 모두가 서로를 증오하던 때에도 아빠는 다른 사람을 탓하지 말자고, 누군가를 미워하면 할수록 우리 마음은 병들 거라고 말했다. (147쪽)

시안 아빠의 모습에서 어른답다할 어른의 모습을 진하게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순간 코 끝이 찡한 감동을 느낌과 동시에 '나는 어른다운가'하는 반성을 하게 된다. 그 순간의 감정은 그렇다. 그런데,

📖 "따지고 보면 우리한테 법적인 책임 같은 건 없었어. 엄마 직장 동료들이랑 너희 학원 학부모들이 건 구상권 청구소송도 기가됐고. 아빠는 반대했지만 엄마가 우겨서 시안이네만큼은 목돈 만들어 줬어. 더 이상 뭘 어떻게 하니?" (203쪽)

이렇듯 부분적으로만 따지면 이 부분에서 시안 아빠에 대한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시안 아빠의 현실적 문제들, 그로인한 견디기 버거운 고통들을 십분 이해한다면 정작 배신감은 오히려 연민으로 전이되고 말일이다. 더불어 혜원 엄마에 대해서도 단순히 돈으로 자신의 잘못을 용서받을 수 있다고 행동한 것으로는 비난할 일이겠지만, 가족의 삶과 지극히 소중한 자식들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로 연민이 들 수밖에 없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도 중요한 일일 수 있다. 책임지는 사람 없이 잘못을 덮는 것은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서로를 이해하는 일을 우선하는 노력은 그럼에도 필요한 노력일 것이다. 우린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할 존재이니까.

사실 이러한 예는 소설에서 어른들의 행동에 대한 일화다. 그 사실을 주고 받아들이는 인물은 열아홉 살의 시안과 혜원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렇듯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을 시안과 혜원은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까?

어른들의 이야기는 상처와 고통에 대한 이야기로 점철되고 있을 때, 열아홉 살 아이들의 이야기도 상처와 고통의 이야기가 되어야할까.

그래서 작가 백온유는 '상처와 고통의 이야기가 아닌 작은 희망에 대한 이야기(작가의 말, 267쪽)'로 소설 <페퍼민트>가 읽히길 바란다고 고백한다.

사실 소설 속에서 시안은 혜원에게 '엄마를 대신 죽여달라는' 잔인한 부탁을 하는데,
혜원은 그 부탁을 쉽게 거절하지 못한다.

작가는 자신의 바람대로 이 부탁에 방점을 찍지 않고 이 일로 말미암아 시안과 혜원이 자신에게 주어진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아주 진지하고 솔직하게 극복해가면서 서로의 상처와 고통을 이해하고 보듬어가는 과정을 진득하게 풀어나간다. 이 과정이 바로 소설 《페퍼민트》가 성장소설로서의 백미를 장식하는 부분이라 할 것이다.

다만 그 과정이 그렇게 순조롭지 않음은 어찌보면 우리 사회가 그만큼 병들어 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현실은 드라마가 아니며, 비록 소설일지라도 그것은 보다 현실에 닿아있어야 할 것이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열아홉 살 시안과 혜원이 살아가는 삶이나 그들에게 그 삶이 비극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우리의 요구가 희망적이지 않더라도 희망적으로 풀어가기 위해서는 최우선적으로 봉착한 상처와 고통을 극복하거나 견뎌내야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마침내,

📖
그때, 누군가의 숨결 같은 바람이 등을 떠밀었고 나는 나도 모르게 그늘을 벗어나 한걸음, 햇볕이 있는 곳으로 나아갔다. (265쪽)

소설 《페퍼민트》는 그렇게 포근하고 따뜻한 마지막 문장으로 마침표를 찍는 순간 작가의 바람은 마치 동화처럼 이루어진 듯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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