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포머 : 패자의 역습 - Transformers: Revenge of the Fall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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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2년전, 친구와 전혀 기대하지 않은 영화를 본 후 느꼈던 그 벅참과 살아숨쉼을. 단지 만화영화 속 주인공이자 프라모델의 대상으로만 여겼던 로봇들이 눈 앞에서 생생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접했을 때의 그 감동은 정말이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렇게 그때의 그 설렘과 기대를 한가득 안고, 속편 격인 『트랜스포머 : 패자의 역습』을 접했다. 하지만.. 기대를 너무 많이 한 탓일까. 아니면 눈이 너무 높아진 탓일까. 1편 때의 그 만족 그 시원함은 사라지고, 2%, 아니 22% 부족한 무언가 찝찝함이 더 컸다면 너무 욕심인걸까.

무엇이 문제(?)일까. 그래픽? 한층 더 현란해지고 섬세해진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날고 부시고 점프까지 리얼하게 하고, 더 거창한 로봇들이 수시로 눈을 즐겁게 한다. 그러나 그것이 계속 이어지면.. 어느새 무감각해지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연기? 로봇들이야 완벽한 그래픽으로 재생된 행동 외에 목소리 연기는 여전히 잘 어울리고, 블록버스터형 배우가 된 '샤이아 라보프'와 한층 더 섹시해진 '메간 폭스'는 무난히 극을 이끌어간다. 연출? 『더 록』,『아마겟돈』,『아일랜드』로 내공을 쌓은 '마이클 베이'의 실력이면 최소한 못했다는 소리는 안 들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실망했다고 하는 스토리? 어차피 액션 위주 영화이니까 스토리는 그렇게 크게 생각 안했다. 솔직히 액션 영화 즐기는 사람 중에 누가 스토리를 다른 영화 장르만큼 중요시할까. 물론 『다크 나이트』같이 의외의 수작도 있지만, 스토리가 엉성하다고 해서 그렇게까지 큰 아쉬움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결론을 내렸다. 이번 속편의 느낌이 전편보다 덜한 것은 전편의 놀라움이 워낙 컸기 때문이라고. 로봇이 영화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인다는 자체가 신선한 충격이었기에, 그 충격을 이미 한번 경험한 이상 속편은 다 알고 있는 구성이어서 새로울 것이 없었다고 말이다. 만약 속편이 전편을 뛰어넘으려 했다면 그래픽만이 아닌, 무언가 더 특별한 것이 있어야 했다. 그것이 스토리가 되든 반전이 되든-

그래도 여하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광대하고도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 것은 인정한다. 여름에 딱 어울리는 영화! 노골적으로 예고한 만큼, 다음 편이 기다려지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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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하는 힘
강상중 지음, 이경덕 옮김 / 사계절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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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옥 씨의 선물로 마주하게 된 책. 어디서 들어본듯 만듯 또렷하지는 않은 인물 '강상중'이 적은 글.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에 몸을 맡기며 자기 성찰이나 의지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다수인 현실에 일침을 가하는 작품. 『고민하는 힘』이다.

고민. 분명 포괄적인 의미의 '생각'이나 깊이 있는 '성찰'과는 개념이 다르게 느껴진다. 사전을 찾아보니 "마음 속으로 괴로워하고 애를 태움"이란다. 흠.. 이래서 사람들이 고민하기를 싫어하는 건가?!

그렇다면 과연 강상중 교수는 고민 속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했기에 그것이 힘이 되어 사람의 삶을 윤택하게 해준다고 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고민하는 가운데 삶에 있어서의 의미, 관계에 있어서의 참뜻을 발견하고 진정한 인생을 살아가는 길을 찾게 된다는 것에 있다고 본다.

그래서 9가지 화두를 던지며 썰을 푸는 그의 이야기는 매우 호소력 있다. 그 이야기는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생뚱맞은 것도 아니다. 누구나 한번쯤은 느껴봤음직 하고 생각해봤을법한 것들을 저자는 고민이라는 개념으로 끄집어내어 공론화시키는 것 뿐이다. 그리고 그러한 공론화 속에 작가가 제시하는 힘이 인상깊게 전해지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자기의 성을 쌓는 자는 반드시 파멸한다', '타자와의 상호 인정을 통해서만 자아가 성립된다', '사랑은 그때그때 상대의 물음에 응답하려는 의지다', '사랑의 모습은 변한다. 사랑이 식을 것을 처음부터 겁낼 필요는 없다'는 구절은 동감을 넘어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이러한 결론은 충분히 고민하면서 뜻깊은 삶을 추구해온 사람만이 낼 수 있다고 믿기에, 이러한 해답을 발견한 그가 존경스럽다.

다만 그의 이러한 명쾌한 의견들이 얼마나 현대인들에게 영향을 줄는지는 모르겠다. 누군가는 그의 말을 벗삼아 실천하려고 노력할 것이고, 누군가는 콧방귀를 뀌면서 이미 다 아는 사실인데..라고 저평가할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강상중 교수가 우리에게 고민하는 힘의 저력을 보여줬고, 삶의 질을 추구할수록 고민은 더욱 필요하다는 것일게다.

'당신은 뱃속까지 진지합니까?'라는 질문에 뜨끔해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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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아시아 우리가 꿈꾸는 아시아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 엮음 / 해피스토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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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내가 참여연대를 좋아하는 것 중 하나는, 아니 내가 참여연대 인턴을 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아니 내가 참여연대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참여연대 내에 '국제연대위원회'가 있어서였다. 국제개발협력에 관심이 있던 나로서는 당연히 관심이 가는 분야였고, 비록 위원회 안에서 인턴을 하지는 못했지만 지속적인 관심과 교류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내 자신을 채찍질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국제연대위원회에서 야심차게 하는 일들 중 하나가 바로 '아시아 생각'에서의 칼럼 모음이다. 아시아에 관심을 가지고 더 나은 아시아, 더 행복한 아시아를 꿈꾸는 사람들이 열정과 의지를 가지고 기록한 하나하나의 이야기들은 그 자체로 살아숨쉬고, 또 글을 읽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기에 충분한 것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칼럼들을 모아 엮어낸 칼럼집도 반갑기 그지없다. 사실 홈페이지에 칼럼이 드문드문 실리면 그때만 반짝 관심을 갖기 일쑤였는데, 이렇게 책 한권으로 모아놓으니 더 집중되면서도 관심을 넘어 행동 - 칼럼 안 내용들을 확인해보고 참여방법을 알아보는 행동들로 이어질 수 있었다.

책을 보면서 무엇보다도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걸 다시 한번 뼈저리 느낀다. 유럽에 EU, 미국에 NAFTA가 있다면 동남아에는 ASEAN이 있다는 걸 아는지? 인도네시아의 손길이 지나간 동티모르에 이제는 호주의 손길이 뻗치고 있다는 걸 들어보았는지? 태국과 필리핀에서 자행되는 독재는 눈치챘는지? 태국의 노동자박물관은 가보았는지?

그래, 그래도 믿는다,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걸. 괴롭히고 고통을 주는 것도 사람이고, 회복시켜주며 기쁨을 주는 것도 사람이지 않은가. 우리의 조그마한 관심이 후에 큰 불씨가 되어 열정으로 활활 타오를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그러한 열정이 실천으로 옮겨져 선(善)을 살리고 행복을 만드는 길이 되길 간절히 두 손 모아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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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아나 존스4 -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 - Indiana Jones and the Kingdom of the Crystal Sk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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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아나 존스 3』를 언제 접했는지 기억조차 까마득하지만, 무튼 매우 즐겁게 본 기억이 난다. 그래서 난 그 기억을 붙잡고 오랜만에 정통 어드벤쳐 작품의 진수를 다시 맛보기 위해 새로운 작품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별로였다.

감독과 배우, 구성이 전작과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는 건 우선 반갑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다시 한번 나섰다는 것만으로도 반은 먹고 들어가고, 해리슨 포드의 노익장을 새삼 확인하는 재미도 솔솔하다. 죽을 위기에 닥쳐도 운빨 지혜빨로 헤쳐 나가는 것도 여전하고-

거기에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배우 케이트 블란쳇과 스필버그의 남자 샤이아 라보프까지 나섰는데. 무엇이 부족했단 말인가? 흠.. 생각해보면  『인디아나 존스 4』에 부족한 것은 없었다. 다만 너무 오랜만에 나오다보니 그것이 답보 상태로 느껴졌고, 그 동안 눈만 너무 높아져서 성에 차지 않았나 싶다.

그렇다. 마술들이 눈 앞에서 펼쳐지고, 강력한 로봇들이 화려하게 노니는 게 요즘인데, 이런 특별함도 없는 한 인간의 모험이 지금에 와서 매력적일 수 있었을까..도 싶다. 아무리 난관에 부딪히고 힘들어도 존스가 이길 것이라는 거 뻔히 알고 있는데, 또 분명히 고고학적인 유물이 나타나고 적은 그것을 빼으려 하며 결국은 해피엔딩이라는 거 속 들여다보듯 훤한데 말이지. 그러면 무언가 좀 더 특별한 게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것 또한 쉬워 보이지 않았다. 왠만한 재치있는 건 잭 스패로우 선장이  『캐리비안의 해적』에서 다 해먹었을 것 같고, 무언가 더 신비로운 보물이나 매력넘치는 미로를 선보일라카면 니콜라스 케이지가  『내셔널 트레져』에서 다 가로챘을 게 뻔하다. 『인디아나 존스』가 개척해놓은 길을 이러한 영화들이 다 쪽쪽 빨아먹으니, 남는 건 별 볼 일 없는 건덕지 밖에.

그만한 건덕지로 그 정도까지 한 것만도 대단하다고 해야나, 건덕지가 그랬으면 애초에 하지 않는 게 좋았을 거라고 신랄하게 비판하는 게 나을라나. 모르겠다. 선택은 이 영화를 본 후 당신의 몫.

적어도 나는 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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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의 진자 1 - 개정판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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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작가들이 몇 있다. '파울로 코엘료'가 그렇고,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렇다. '움베르토 에코' 또한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저명한 작가일 것이다. 특히 해박한 지식에서 우러나온 난해한 글은 독자를 미치게 ─ 그 어려운 문장들에 미치고, 그러면서도 쉽게 손을 놓을 수 없는 이상한 마력에 또한 미치게 한다.  

그의 작품은 「장미의 이름」이후 두번째였다. 쉽게 구하기도 힘들고, 접하기도 힘들며, 완독하기도 힘든 에코의 책이기에, 「푸코의 진자」를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글을 어떻게어떻게 꾸역꾸역 다 읽기는 했다만, 지금 심정은 약간의 울분과 분노와 억울함과 그리고, 어지러움. 

에코의 작품이야 워낙 이해하기도 힘들고 받아들이기도 어렵다는 것을 익히 들었기에, 그리고 「장미의 이름」으로 인해 한번 크게 데였기에, 지금의 내 나이 내 수준이라면 그래도 읽을 수 있겠지.. 하는 위안과 함께 최상의 타이밍이라 확신하고 큰 맘 먹고 접했건만, 이건 뭐... 왠만한 머리로는 도저히 따라가기조차 버거우니 원. 

그래, 뭐 에코의 의도대로 처음 부분을 일부러 어렵게 해놓은 건 그렇다고 치자. 시작이 반이라고, 가장 어려운 첫 시작을 감내할 수 있다면 정상을 오르는 기분으로 끝까지 완독할 수 있을 거라며 독자를 시험하려는 생각은 다분히 에코답다. 그러나 특히 「푸코의 진자」가 「장미의 이름」보다 몇백배는 더 힘겨웠던 것은, 당췌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갈피가 잡히지 않는 것이었다. 

「장미의 이름」 때는 그래도 수도원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진실이 주뼈대였는데, 「푸코의 진자」는 뭐.. 옆길로 빠지는 건 기본이고, 알 수 없는 인물들이 툭툭 튀어나와 알 수 없는 말들을 던지지 않나, 누가 누구 편이고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는 내용들은 어떻게 받아들이라는 건지.  

작가가 엄청나게 유식하고 모든 부분에 해박한 것은 익히 알겠다. 하지만 일반인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정도의 기호, 함축어, 언어들을 나열해 놓는 불친절함 또한 에코니까.. 하고 그러려니 넘어가야 하는 것일까? 그에게 글쓰기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다 이해하지 못해도 좋으니, 한 명의 독자라도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기를 바란 걸까? 아니면 독자로 하여금 열등감을 느끼도록 자신의 우월함을 확인받고 싶었던 것일까? 

아무리 괜찮은 글, 볼만한 영화, 좋은 작품이라 하더라도 독자나 청중들이 공감하지 못하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면 그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싶다. 단순히 이런 작품도 있다..라고 보여주려는 것도 아니고, 세상에는 이러한 지식들도 넘쳐난다..라고 자세히 제시해주는 것도 아닐 터인데 말이다. 넘치는 것은 모자라는 것만 못하다고, 에코의 이 작품은 해도해도 너무 지나쳤다고 본다.  

그럼에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의 글만이 가진 특유의 마력으로 인해 이번에도 역시 책을 쉽게 손에서 놓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나의 이런 행동은 어디에서 연유된 것인지도 사뭇 궁금하다. 에코의 책이니까, 그래도 기왕 읽은 거 다 읽어야지..하는 단순한 호기심의 발로였을까? 분명 어딘가에는 쉽고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거야..하는 인내심 시험이었을까? 아니면 나 심지어 이러한 책도 읽었다..하는 자랑심의 욕망이었을까? 

물론 그 무엇도 이해하지 못했고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덕분에 십자군 전쟁, 성당 기사단 혹은 장미 십자단이라 불리는 군대, 은비학, 푸코의 진자, 부동점 등 다양한 지식과 흥미로운 얘깃거리들을 알 수 있었던 것은 좋았다. 특히 어떤 사람이든지 자신만의 부동점이 있다거나, 자기가 쓴 진실을 독자에게 깨닫게 하려면 작자는 죽어야 한다는 부분은 다분히 섬뜩한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나름의 추리적인 요소와 반전도 있다고는 하지만.. 결국 그가 하고 싶었던 얘기는 무엇이었는지 하나도 기억에 남아있지 않은 걸.. ;ㅁ; 

아쉽다. 에코가 왜 이리도 쉽사리 이해 가지 않은 글을 썼는지 그 진의를 알 수 없어 아쉽다. 안타깝다. 그의 작품을 따라가지 못하는 내 역량이 참 안타깝다. 기다려진다. 그래도 이 시대 최고의 지성파 작가인 에코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 이번 작품이 특히 어려웠던 것은 에코의 무한한 지식에서 우러나온 각종 철학적·신학적·과학적·기호학적 용어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역자인 이윤기의 난해한 번역도 한 몫 했다. 물론 각종 언어로 된 글들을 원문과 의도를 살리려고 발음 그대로 쓴 것은 그렇다 쳐도, 한글로 풀이해도 될 말들을 굳이 한자로 쓴 부분이나 무언가 부족해보이는 주석들은 오히려 혼동만 불러일으킨다. 그래도 어떻게 하리, 나 같으면 에코 작품 번역할 엄두도 못냈을텐데. 그저 감사히 읽어야할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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