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은 재위하는 내내 크고 작은 질병에 시달렸는데 특히 눈병이 심했다. 시력이 나빠져서 말년에는 거의 장님이나 마찬가지였다. 세종실록에는 "내가 근일에 이르러 지척지간의 사람이나 사물조차 분간하지 못한다"며 안타까워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왕자 시절부터 몸에 밴 야간 독서 습관이 시력을 더욱 악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세종의 독서열은 즉위 이후에도 조금도 식지 않았다. 여전히 심야에 책을 읽었고, 식사할 때도 좌우에 책을 펼쳐두었다. 가히 공부벌레였고, 독서광이었다. 그야말로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 사람이 바로 세종이었다. 세종의 독서에는 특별한 비결이 없었다. 굳이 들라면 같은 책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는 것이다.
예세닌의 우울하고 고독한 모습과는 대조되는 아늑하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침실에서 자유로운 영혼을 지녔던 맨발의 무용수 이사도라 덩컨(Isadora Duncan)과 결혼하여 잠시나마 행복했을 그를 생각했다. 시인은 상트페테르부르크(Sankt Peterburg) 앙글르테르 호텔에서 자신보다 17세 연상이었던 덩컨과 신혼을 즐겼다. 시인은 죽음도 그 호텔에서 맞았다고 하니 다섯 번의 결혼(마지막 아내는 레오 톨스토이의 손녀 소피아 톨스토이였다)에서도 가장 사랑했던 여인은 이사도라 덩컨이었던 듯하다. 조국을 변화시키고자 했던 이상이 좌절된 것과 이사도라 덩컨과의 이별 등이 그를 죽음으로 몰았다는 설이 있지만 러시아의 한 천재 시인은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난 고독과 치열한 싸움을 하다가 지쳐 쓰러진 것이었다. ‘그를 견디지 못하게 했던 고독의 무게는 얼마나 컸을까?’ 나는 종종 여전히 나를 짓누르고 있는 고독의 무게에 대해서 생각한다. 심연 속에 침몰되어 있는 고독과 우울감은 그 무게를 상상할 수도 가늠할 수도 없다. 치열하게 싸워도 이길 수 없다고 판단될 때 누구나 고독으로부터 지게 되어 있음을 생각하자 시인의 고독했을 삶이 애달프게 다가온다.
마음을 사로잡은 건 뮤즈이자 아내 잔 에뷔테른(Jeanne Hébuterne)의 사진과 초상화들이다. 모딜리아니가 그린 잔의 초상화에는 없는, 눈동자를 가진 사진 속의 잔은 매우 아름다웠다. 2004년에 개봉한 영화 <모딜리아니>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당신의 영혼을 알게 되면 눈을 그릴 수 있을 거야." 화가는 평생 아내 잔의 영혼이 담긴 눈을 그리고 싶어 했다. <스카프를 맨 잔 에뷔테른>(1919)의 그림 속에는 잔의 눈동자가 희미하게 보인다. 드디어 영혼이 담긴 잔의 아름다운 눈을 만나기 시작했던 것일까?
이곳에서 새롭게 알게 된 건 모딜리아니가 조각을 했다는 사실이다. 한때 아프리카 원시 부족의 가면에 매료되었다는 화가는 길쭉한 타원형 얼굴의 조각상을 제작했다. 가늘고 긴 얼굴, 눈동자 없는 눈, 기다란 목, 화가의 초상화는 아프리카 원주민의 조각상을 닮아 있었다.
저자는 작곡을 공부한 음악 컬럼리스트. 발터 벤야민의 <도시 산책자>를 애독하였음을 힘주어 어필 하였고 저자가 책의 여기저기서 인용한 알렉스 로스의 <나머지는 소음이다>를 텍스트처럼 여기는 것 같았다. 작곡가 입장에서는 클래식 음악을 마냥 흘려 듣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나와 달라서 배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