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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 김환기 탄생 100주년 기념
이충렬 지음 / 유리창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한국의 추상미술 하면 떠오르는 그분 김환기, 사실 이분은 학교다닐적 그림 몇점만 본것이 다다 . 그당시는 추상미술쪽을 워낙 싫어하고 별 매력을 못느껴기도 하지만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사실을 그리는 것보다 그냥 대충 그리는것으로 추상으로 논하는 것이라는 짧은 생각이기도 했다. 이책을 통해 김환기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추상미술에 대한 해안을 넓히느 계기가 될것 같아서 좋은기회라고 생각이든다.
신안 안좌도 라는 섬의 지주 아들로 태어나 경성에서 일본으로 다시 안좌도로 내려와 자기만의 그림색깔을 찾으려고 했던 김환기의 깊은 고뇌가 느껴진다. 일본 추상미술에서 우리나라 백자, 항아리 , 여인등을 접목하여 자신만의 색깔을 만들어낸 그의 집념과 사상이 글 곳곳에 나타나있다. 화가 동료랑 다벗고 난상 토론을 하면서 추상화에 대한 생각을 굽히지 않았던 그열정이 김환기의 소중한 열정의 밑거름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김환기의 소중한 열정를 이어가게 만든것은 곁에서 열심히 보필을 해준 김향안이라는 부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흔세살의 나이에 교수직을 박차고 파리로 가서 그자신의 예술혼을 불태울수 있었던 것도 바로 부인이 곁에서 실생활에 책임을 졌기 때문이다. 엘리트 출신인 김향안 또한 영시를 읽는등 자신의 배움이 부족하지 않았지만 김환기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열정을 마음에 담아두고 끝임없는 인내의 세월을 보내줌으로써 김환기의 작품이 빛날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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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는 11월 10일자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작품으로 돈을 만들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그러나 작품이 팔려야 한다. 예술가가 훈장질해서 먹고산대서야……. 그림이 팔리는 신바람 나는 사회는 아직도 많은 세월이 쌓여야 할 것 같다”고 허탈한 심정을 토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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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생활에서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고 다시 홍대로 돌아와 교수직으로 돌아와 있던 중 쉰살에 다시 뉴욕으로 떠나 그곳을 그림을 그리다 생을 마감한다. 살아있는 당시에는 그림도 많이 팔지 못하고 지금처럼 명성이 대단하지 않아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살았다. 그럴수록 미술에 대한 열정에 타협을 두지 않았던 그의 작품들을 지금 다시 보게 되면서 아주조금 추상화에 대한 이해가 될것 같다. 얼마나 많은 시도와 작품의 해석, 그의 생각들을 캔버스에 나타내기 힘든지를 그의 생활상을 통해 알수 있었다.
추상미술과 민족적 정서인 조선백자를 접목시킨 그의 예술혼에 다시 감사를 드리게 되며 그가 마흔,쉰살에 프랑스나 뉴욕으로 간것은 새로운 서양미술의 배움이 아닌 자신의 추상화를 민족적 정서를 나타내는 추상화를 세계의 화가들과 경쟁해보고 싶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당시 ,지금도 서양미술에 은근히 우월함을 두고 있는 우리의 정서를 생각하면 그분의 예술혼은 얼마나 자주적이고 독립적이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동안 추상화에 대한 편견을 가진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세계 어느곳이든 미술기법은 공통된것이지만 그화법을 가지고 나타내는 정서는 어느나라 어떤 미술이 우월할수 없음을 ,미술작품속에 나타낸 정서에 느끼는 우리의 감정이 가장 중요한 화법이고 미술작품이라는 것을 알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