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를 듣는 소년
루스 오제키 지음, 정해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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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귀를 대고 소리를 들어보라.
 나무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나? 
소나무의 영혼은? 
흑연의 중얼거림은? 
페이지 13 


모든 사물의 소리를 듣게 된 소년이 있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 이후 화장장에서 들었던 아버지의 목소리로부터 주위의 모든 사물들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식탁, 벽, 운동화, 그리고 베니의 이야기를 하는 책의 소리까지도 .. 

베니는 모든 사물들의 소리에서 고통을 당하지만 엄마에게는 사실대로 이야기하지 못한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엄마도 세상과의 단절한 채 미쳐가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집에 점점 쌓이는 쓰레기, 살이 점점 쪄가는 엄마의 겉모습부터 아직도 베니를 아기 다루듯 하는 말투까지 


그러던 어느 날 수업 시간에 가위가 베니에게 어김없이 말을 건넨다. 가위는 폴리 선생님을 욕하면서 너에게 위선적이라는 둥, 그러니 가위를 들고 선생님을 찔러 버리라고 말한다.
베니는 참다못해 자신의 다리를 가위로 찔러버린다. 그 일로 인해 병원에 실려가고, 엄마와 정신과 의사와 상담을 하게 되고 그로 인해 정신 소아 병동에 일주일 입원하게 된다.
하지만 자신이 사물의 소리를 듣고, 선생님을 찌른 것이 새로 가게 된 고등학교에 알려져 퇴원 후 등교하면서 자연스럽게 전교의 왕따가 되어버린다.
베니는 엄마의 이메일을 위조하여 학교를 안 가고 도서관을 가게 된다. 도서관에서 매일 서가를 돌아다니며 책들을 둘러보고 읽고 하는 동안은 사물의 시끄러움이 덜해짐을 느끼게 된다. 


그러던 중 정신병원에서 잠깐 동경했던 소녀, 알레프를 도서관에서 만나게 되고 그 인연으로 거리의 부랑자 B 맨을 만나게 된다. 알레프와 B 맨을 통해 도서관의 비밀 장소와 제본소에 얽힌 신비스러운 이야기를 알게 되고 자연스럽게 베니는 자신이 사물의 소리로 인해 고통받는다는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러자 B맨은 걱정할 거 없다며, 자신도 소리를 듣는다고 하며 베니에게 모든 소리에 물어보라고 말한다. 

너는 진짜니 ?
라고 그러면 진짜 소리들과 가짜 소리를 구분할 힘이 생길 거라고 말한다. 이메일 조작으로 학교를 한 달째 안 가던 베니는 가출사건과 제본소에 상처로 인해 엄마가 교장선생과 통화하면서 학교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학교로 돌아간 이후 얼마 후 알레프와 B 맨 과도 연락이 되지 않고 정신과 치료와 엄마의 간섭으로 점점 힘들어 하게 되는데 … 

이 책은 갑작스러운 상실의 슬픔을 겪게 된 베니와 애너벨이 겪는 아픔의 시간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신파적 상황과 묘사가 아닌 독특한 방법으로 그들을 슬픔을 담담히 그려낸 작품이다. 
아들 베니에게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계기가 되어 모든 사물들의 소리가 들리는데, 주위에서는 소년을 정신병 취급하고 그 소년을 위로하고 이해하는 사람들도 정작 사회에서 버림받은 존재들인 부랑자와 가출 소녀이다. 또한 사물의 소리를 통해 판타지적이며 신비로운 이야기로 전환하고 때론 유령이라는 미스터리 한 부분까지 가미하면서 베니의 성장에 집중하게 된다. 

또한 엄마 애너벨의 상실 다루는 방식도 남편 상실 뒤에 경제적 고통과 함께 사랑의 상실에 허덕이는 여자의 삶을 로맨스, 미스터리적 요소를 적절히 섞어 묘사했다.


베니를 위해 살아야 하는 엄마 애너벨이지만 상실의 고통으로 넋을 잃고 산다. 베니의 우유를 사러 슈퍼마켓에 가서 중고매장에 들려 쓸데없는 찻주전자를 사던 그날, 그녀의 쇼핑카트에 (정리의 마법)이라는 책이 떨어지면서 그녀의 삶도 생각도 달라지는 과정을 천천히 보여준다. 

이 책의 재미는 베니와 책이 나누는 대화가 주는 문장의 깊이와 물음들에서 이야기를 멈추고 삶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주는 그런 매력이 있다. 또한 베니와 애너 밸 이 만나는 책들을 중심으로 책 속의 책 이야기,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단편 이름을 딴 알레프, 발터 벤야민의 책을 인용한 문장을 이야기하는 알레프 등등, 그리고 도서관과 책 이야기들이 두 모자의 삶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 
700페이지 가깝지만 읽는 동안 끊이지 않는 숨은 이야기들에 감동하고 베니가 듣는 소리와 애너밸의 상심에서 나오는 소리에 점점 빠져들게 될 것이다. 


상실의 아픔을 어떻게 건너야 하는지, 우리의 삶에 필요한 철학과 그리고 현시대의 환경과 사회문제까지 촘촘히 들여다보면서 생동감 있는 이야기까지 만나 볼 수 있는 올해 최고의 작품이 될 것 같다. 



그러므로 책이 건네는 베니와 애너벨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라. 


 남는 것은 이 이야기뿐이다. 


이야기는 당신네 사람들이 숨 쉬는 공기이고 당신들이 헤엄치는 바다이며, 

우리 책들은 해안가에서 당신들의 해류와 조류를 유도하고 억제하는 갯바위들이다. 
비록 아무도 읽어 줄 사람이 없다 해도,
책은 항상 마지막 말을 한다.  

페이지 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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