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 속의 나
도나토 카리시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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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하는 여자, 청소하는 남자 , 자살하려는 소녀 , 등장인물부터 범상치 않다.

도나토 카라시는 현실속에서 이루어지는 범죄를 밀도있고 세밀하게  그리면서  범죄의 근본적 원인에 대한 이해도 놓치지 않는다.  또한 흉악한 범죄속에서 우리가 남들의 고통에 쉽게 외면하는 현실을 꼬집는 이야기 꾼이다. 


이번 작품도 아동학대, 성폭력, 학원폭력, 매맞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촘촘하게 그렸다. 예상치 못한 반전도 함께 섞어서 . 그래서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그들의 이야기속에서 범죄자 뿐만아니라 우리가 이웃들의 고통에 눈감아서는 안되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탈리아 깊은 호수 곁을 지나던 청소하는 남자는 어떤 소녀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을 목격한다.

그 소녀를 구하고 청소하는 남자는 이내 현장을 도망치듯 떠나버린다. 

병원으로 옮겨진 소녀는 알고보니 그지역의 부자부부의 딸이였고 방송을 통해 생명의 은인을 찾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다. 


며칠후 소녀의 병실에 청소하는 남자가 몰래 들어와 자고 있는 소녀곁에서 무언가를 찾기 시작하고 그 소녀를 유심히 지켜본다. 사실 청소하는 남자는 어릴적 엄마가 자신을 죽이려한 트라우마 때문에 두개의 자아를 가지고 살면서 몇년째 연쇄살인마자아와 청소하는 남자로 살아가고 있다. 

연쇄살인범이 자살하는 소녀를 구하게 된 아이러니, 죽이기만 하는 그가 왜 소녀는 살리려고 했을까? 더군다나 자신의 살인의 흔적까지 노출하면서 , 그 깊은 이유는 청소하는 남자의 슬픈 어린시절이야기로 조금씩 드러난다. 


한편 , 사냥하는 여자는 매맞는 여성들을 찾아다니면서 도움을 주는 사람이다.  남편이나 남자친구의 폭력을 쉽게 신고하지 못하고 두려움에 떠는 여성들을 찾아다니면서 신고할 수 있도록 해준다.

하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이 두려움에 떨면서도 쉽게 신고하지 못하는 현실을 종종보면서 안타까워 하던 중 자살소녀의 호수에서 중년여성의 잘린 팔이 나온 것을 경찰을 통해 듣고 학대받던 여성 중 한명이 아닐까 조사하던 중 자살소녀와 깊은 연관성을 발견하게 된다. 


청소하는 남자와 사냥하는 여자를 이어주는 매개체가 된 자살하려는 소녀는 사실 학교에 인기 있는 남자로 부터 데이트를 시작하면서 그남자로부터 데이트폭력과 함께 동영상으로 협박받고 있다.

부유한 집안 아들인 그는 소녀를 돈을 받고 친구들에게 성매매를 시키는 놀이를 하면서 자살미수에 그친 소녀를 찾아와 또다시 성매매를 강요한다. 


전혀 연관성이 없는 세명의 화자들을 통해 사건은 점점 알수 없는 이야기로 빠져들게 되고 청소하는 남자이자 연쇄살인범은 계속 자살소녀곁을 맴돌고 한편 사냥하는 여자는 청소하는 남자의 실체를 따라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게 된다. 


이야기의 시작부터 알수 없는 관계로 시작되어 중반까지 가도 이 이야기의 결말을 알 수 없다.

연쇄살인범인 청소하는 남자의 악행에 치를 떨면서 자살하는 소녀곁을 지켜주는 그의 슬픈 어린시절의 이야기에 맘이 아프고 사냥하는 여자를 응원하면서 조금 더 천천히 와서 소녀의 복수가 끝나길 기다렸으면 하는 양가적 감정이 들었다. 살인범을 응원하고 싶지는 않치만 응원하게 되고 법보다는 주먹이 가깝다는 논리에 더 끄덕이게 되는 내자신의 추악함을 보게 되는 것 같아 인간은 이토록 섬짓한 존재인가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그러니 어쩌면 청소하는 남자속에 가둬둔 심연속의 나처럼 , 우리 모두는 내 안에 감춰진 또다른 자아가 공존한다는 것을 느끼면서 , 그 심연속의 나가 발현 되지 않을 수 있었던 평범한 일상의 기억들이 축복이라는 것에 감사하게 되는 이야기였다. 


지난달 인천의 아동학대 사건이나 데이트 폭력으로 살인하는 사건들을 보면서 이 소설이 단순히 이야기가 아닌 슬픈 현실을 엮은 실화같은 이야기라서 슬프다. 각자 아픈 과거나 기억들이 치유되지 못하면 그것이 결국 슬픈 사건이나 트라우마가 된다는 것을… 도나토 카리시 심연속의 나를 통해 말하는 것 같다. 

누구나 심연속의 나가 또다른 비극적 나가 될 수 있음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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