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장이 없는 삶이라도
김해서 지음 / 세미콜론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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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같은 산문이 있다. 문장안에 담긴 단어들이 감성적이다. 읽고 있노라면 긴 시 한편을 읽는 듯 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그녀는 시인이지만 첫책을 시집이 아닌 에세이로 내게 된 이야기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 시는 내가 아는 것 중 가장 근사한 것”라는 작가로서의 염원이 자꾸 자신이 원하는 삶으로 가지 못할때의 지난 날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삶의  더부룩한 내장을 보여주는 이야기라 부끄럽다는 표현 처럼 지난날의 절망과 고독 그리고 용기가 담겨진 에세이다. 하지만 너무 슬프지도 너무 긍정적이지도 않은 삶의 시간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읽다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 지며 감정이입이 된다. 


시보다 길지만 시처럼 젖어드는 에세이집이다. 

“이제 고요속에서 서서히 기쁘다 “ 라는 문장을 통해 고요와 고독을 알아가는 그녀의 인생이야기를 읽는 동안, 나의 인생의 다음 페이지를 그녀의 페이지를 통해 확인하는 것 같다.

그녀가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는 여러가지 상황들이 펼쳐진 이야기 안에서 나의 과거와 마주하는 시간을 갖게 하는 힘이 글 속에 있다.


최근 웬지 모를 불안의 나날이 이어지고 있는 나의 마음 속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용기를 준다.

단순한 불안과 예고된 불안의 경계를 짓는 용기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장들이 가득하다. 


내면의 불안과 투쟁해야지 한 사람의 고유한 서사가 만들어진다는 걸 이제 알고 “ 심심한 마음으로 환영한다. 다 받아들임 “ 하고 말 할 수 있다. 


불안이 우릴 잠식할 힘은 사실상 없다. 불안은 뿌리가 없으므로, 내 단단한 토양에 박힌 풀과 꽃 사이를 흘러 다닐 뿐이다. 이따금 부는 바람처럼 . 

페이지 39 


어릴적 동무인 친구 목화 와 자신의 현재의 모습을 보면 아직도 꿈을 이루지 못해 힘들지만 그래도 그들을 지탱하게 만든 힘은 무료한 일상을 무료하다 여기지 않는 것의 자신만의 바닥을 가지고 알아가는 힘이라는 부분에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나만의 바닥을 다지는 것, 그런 바닥의 힘을 믿지 못해 방황하고 절망했던 나에게 모질게 대했던 내가 떠올랐다. 그녀의 글은 이루지 못한 꿈때문에 아무 꿈이 없어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혹은 나같이 영문모를 불안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쓰기를 통해 자신을 단단히 지켜내는 그녀와 그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에 읽는 동안 어느새 내 자신도 단단해 질 것 같은 희망을 안겨주는 글이다. 고독을 짜릿하게 즐기는 발자국 소리가 그녀의 글 안에 담뿍 담겨 있어 이 가을 낙엽 밟는 소리보다 더 정겨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나는 나의 방식대로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아도 삶을 저버리는 게 아니라는 믿음. 그것을 위안으로 삼았다. 세상에서 가장 어색한 사람과 동거하는 기분으로 살더라도, 방점은 “같이 산다”에 있는 것이지 “어색학”에 찍히는 게 아니라는 것 . 

페이지 189 


지금도 내 다방에서는 필통 흔들리는 소리가 난다. 일부러 씩씩하게 걸어본다. 

찰캉찰캉. 이 소리, 사랑하는 곳으로 돌아가는 소리. 도망치지 않는 소리. 

나는 언제나 갈 것이다. 

내가 가야 할 곳으로 

페이지 149 


“겨울”은 혼자 서성이며 접어든 추운 비탈길이다. 좁은 보폭으로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나아가는 모든 지점에 겨울이 있다. 자기 안의 땔감을 연소시키면 작은 불씨 속 환상을 향해 걸어가는 시간. 

기울어짐의 시간 . 

페이지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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