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마트에서 울다
미셸 자우너 지음, 정혜윤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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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한국 남부지방 출신에 미국에서도남부에서 죽 살아온 탓에 아주머니의 성격이 더 직설적으로 변한 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짜 속마음은 알 수가없었다. 아주머니는 내가 어릴 때부터 봐온 다른 한국 여자들과 달랐다. 누구누구 엄마라는 이름으로 불린 그들은 따뜻하고 인자했다. 반면 아주머니는 자식이 없었고, 아빠나 나와 이야기할 때 저만치 거리를 두었다. 아주머니의 그런 차가운 태도에 우리는 저절로 몸이 얼어붙었다.
아주머니는 주방 조리대 위에 채소나 과일이 썩어갈 때까지 내버려두는 습관이 있었다. 부엌에 초파리가 꼬이기 시작했다. 당시에 엄마는 면역력이 위험할 정도로 약화돼 있었기에 아버지와 나는 아주머니가 사용하는 재료 중 혹시라도 상한 게 있으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래서 아빠는 아주머니에게 감 때문에 벌레가 꼬이지 않냐며 잔소리했고, 아주머니는 발끈해서 아빠가 공연히 예민하게 군다고 비웃었다.
어느날 저녁 식탁에서 나는 엄마 옆에 내 자리를 만들었다.
그런데 아주머니가 내 수저를 엄마 맞은편 자리로 밀어내고자기가 그 자리에 앉는 것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는 엄마한테 한글로 쓰기 - P180

"아빠가 재혼할 것 같아?"
"아마 하겠지." 엄마가 말했다. 엄마는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이미 아빠와 이야기를 나눈 것 같기도 했다. "또 아시아 여자랑 결혼하겠지." 나는 진저리를 쳤다. 또 아시아 여자일 거라니, 그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상상하니 굴욕감이 밀려왔다. 아빠가 손쉽게 누군가로 엄마를대체할 수도 있다는 것이, 아시아인 성애가 있을 수도 있다는것이 수치스러웠다. 그것은 두 사람의 유대를 하찮게 만들었다. 우리를 싸구려로 전락시켰다.
"난 못 참을 것 같아." 내가 말했다. "절대 못 받아들여 구역질나." - P212

나의 슬픔은 뜬금없는 순간에 들이닥치기 일쑤다. 나는 욕조에 엄마의 머리카락이 허다하게 남아 있는 모습을 보는 게어떤 기분인지에 대해서는, 5주 동안 날마다 병원에서 밤을지새운 일에 대해서는 태연한 얼굴로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H마트에서 낯모르는 아이가 뻥튀기를 담은 비닐봉지를 양손에 하나씩 집어드는 모습에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져버린다.
원반 모양의 그 앙증맞은 쌀과자는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엄마가 내 곁에 있고, 방과후에 둘이서 동글납작한스티로폼처럼 생긴 과자를 한입 크기로 입에 넣고 아작아작 씹으면 그것이 혀 위에서 설탕처럼 사르르 녹아버리던 행복한 시절이었다. - P13

그때부터 한 달에 한 번씩 김치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것이나의 새로운 치유법이었다. 오래된 김치는 찌개나 전이나 봄음밥에 넣어 먹고, 새로 담근 김치는 반찬으로 먹었다. 내가먹을 양보다 더 많이 김치를 만들었을 땐 친구들에게 나눠주었다. 부엌에 식료품 유리병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병에 종류으로 담긴 김치는 익은 정도가 제각각 달랐다. 조리대 위에선담근 지 4일 된 총각김치가 새콤하게 익어갔고, 냉장고에서갓 담근 깍두기가 수분을 내보내고 있었다. 도마 위에는 커다란 배추 한포기가 반으로 쩍 갈라진 채 소금물에 절여질 채비나는 엄마가 김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는 절대 사랑에 빠지지 말라고 주야장천 말했던 것을 떠올렸다. 너한테서 항상 김치 냄새가 날 거야. 그 냄새가 네 땀구멍으로 배어나올 테니까. 엄마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말했다. "당신이 먹는것이 곧 당신이다." - P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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