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사 1
장강명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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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2년 전에 사람을 죽였다. 칼로 가슴을 두 번 찔러 죽였다. 



라는 살인자의 고백으로 시작되는 이야기. 그런데 이 살인자의 감성이 남다르다. 

뭐 살인자라고 책을 안읽으라는 법은 없지만 , 이 살인자 도스토예프스키의 열렬한 광팬 같다. 

자신의 자아가 세개의 인격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소설 속 주인공 들이라고 한다. 


로자 : 죄와 벌 에서 라스콜리니코프의 애칭

지하인: (지하로부터의 수기) 에 나오는 이름 없는 화자에 대해 사람들이 붙인 호칭

스타브로긴: 악령의 주인공 

42페이지 


이 세 인격의 발현은 자신의 살인 이후 이루어 졌는데,  시간이 지날 수록 악령의 스타브로긴 쪽으로 더 강한 욕구가 일어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살인의 당위성을 펼치기 시작한다. 

그가 왜 살인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보다, 살인을 하고 나서 자신이 자수를 하지 않는 이유에 더욱더 촛점을 맞추며 철학적으로 넘어가 계몽 윤리까지 도달하는 모습을 보인다. 

살인에 대한 변명과 핑계처럼 보였던 그의 논리적 지식에 읽다보니 나도 모르게 자꾸 그의 논리에 점점 빠져 들어 고민하게 되는 이상한 중독에 빠진 느낌이 든다. 


그래서 읽다보니 내가 읽고 있는 그의 논리가 살인자의 논리가 아닌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해설서 및 그안에 깃든 인간의 본연적 심성과 기준을 집대성 한 책을 읽는 듯하다. 


하지만 그것을 중간 중간 깨뜨리는 장치를 심어놓은 장강명의 작가의 소설적 기법이 있다.

그것은 22년전 살인사건, 명문 여대생의 죽음을 재수사 하기로 한 강력범죄수사대 모습을 자세히 보여준다. 살인자의 핑계와 변명과 상반대게 말이다. 그래서 살인자의 논리를 읽다가 강력범죄수사대 연지혜의 시선으로 죽은 여대생 민소림의 행적과 그녀의 죽음으로 인해 풍지박산이 된 가족들의 이야기를 통해 살인이 허구가 아닌 현실임을 인지하게 된다.  살인은 소설이 아닌 현실이라는 인지적 오류 매장마다 각인 시켜 주는 환기효과가 들어있다. 


미모의 인기있는 여대생이라는 허구보다 현실의 민소림이 허울뿐인 가짜 인기와 미모와 다른 독선적인 성격, 그녀로 인해 상처를 입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도스토예프스키 독서모임 이라는 실체와 만나게 된다.  서로 다른 과의 학부생으로 구성된 독서모임에서 민소림은 자신만의 논리로 상처를 입히고 독재적인 휘두르면서 원한을 사기도 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사건의 진실에 조금 더 다가서는 모양새다. 


특히  오리무중이었던 민소림의 마지막 열흘동안의 행적에 대한 증언이 독서모임 한 회원의 증언으로 인해 사건은 전혀 다른 상황으로 전개되는 것 처럼 보이는데 … 


살인사건 + 문학 + 철학 이라는 절묘한 삼중주를 통해 장강명는 시스템과 변해가는 세상에서 우리가 변하지 않아야 할 그 무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대동단결이라는 말로 항상 기억되고 있는 대학의 문화의 변화, 빈부의 차로 인한 갈등등으로 인해 현재의 대학문화의 현실을 말해주며, 정치권에서 매번 쟁점이 되는 경찰과 검찰의 시스템의 변화와 문제들에 대한 이야기까지 놓치지 않고 있다. 미제 사건의 범인 찾기라는 단순한 논제 안에 감춰진 이야기가 우리와 사실 전혀 상관없는 것이 아닌 우리가 겪고 있는 미세한 틈이 점점 벌어지고 있는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물음을 던지는 것 같다. 


거기에 이 소설을 읽는 동안 마치 도스토예프스키 독서모임을 하는 듯한 재미와 함께 장강명이 아닌 살인자가 말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을 다시 읽고 싶어진다. 어서 재수사 2권의 범인을 만나고 살인자의 또다른 문학적 이야기를 다 읽고 나서 ( 백치)를 제일 먼저 읽고 싶어진다. 

소설을 읽다 또다른 소설을 읽고 찾아보게 만드는 그런 재미를 오랜만에 느낀 문제적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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