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토당토않고 불가해한 슬픔에 관한 1831일의 보고서 문학동네 청소년 60
조우리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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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나서 밸런스를 맞출 거야. 다음 생에서."
선생님은 사회복지사보다 사이비 교주가 더 어울려요.
문득 엄마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엄마는 피너츠 속 등장인물들이 다 조금씩 이상해서 좋다고 했다. 그러면서 영어 ‘Nuts‘가
‘제정신이 아닌‘과 ‘미친 듯이 사랑하는‘이라는 뜻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알려 줬다. 제정신이 아닌 상태는 미친 듯이 사랑하는감정과 닿아 있다고.(하긴 라이너스만 봐도 알 수 있다.) 어쩌면선생님은 미친 듯이 삶을 사랑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리고그런 선생님의 말대로라면 나는 슬픔의 할당량을 진작 다 채웠을 테니 기쁨만이 남은 것이다. 무근거, 무논리의 이론이었지만이상하게 위안이 되었다.

언젠가 끝날 줄 알면서 사랑하고, 언젠가 죽을 줄 알면서 사는 것, 인생이란 원래 그런 것이라고. 다들 그런 것쯤은 견뎌 가며 살아가는 걸까. 영화의 결말을 스포하면 사람들은 화를 내면서 이토록이나 끝이 분명한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지 허무주의에 빠지지도 않고.

"이 세상은 거대한 마트고 난 잊힌 재고품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해. 구석에 처박혀서 먼지만 쌓이고 있는데 마트 사장님은 나의 존재도 모르는 거야."
"마트 사장님?"
"마트 사장님은 신이지. 하나님 같은 암튼 나는 출시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물건인데 잘못된 장소에 잘못 놓여서 누구의 눈에도 띄지 못하고 닳아만 가고 있는 중이야."

"너, 불운의 속성이 뭔지 알아? 피하고 숨으면 더 찾아다녀. 자기를 의식하는 사람들한테 애정을 가지고 있거든. 아주아주 외로운 놈이야 그거."
"무슨 소리 하시는 거예요?"
"내 말 잘 들어."
선생님은 몸을 내게로 기울이고 목소리를 낮췄다. 인생의 엄청난 비밀이라도 알려 준다는 듯이. 그 비밀에서는 땀 냄새와 점심에 먹은 된장찌개 냄새가 났다.
"불행이 다가오면 움직여선 안 돼. 반응하지 말고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거지. 아침밥 먹고 점심밥 먹고 저녁밥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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