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터
유즈키 아사코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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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지. 왜냐하면 이 사람."
자기 말에 귀 기울여줄 상대가 없으니까, 라는 말은 꾹 삼켰다.
이렇게 주목을 받고 지지해주는 이성이 있어도, 사실을 왜곡해서 계속 떠드는 한, 가지이는 영원히 외톨이일 것이다. 아무리 소리쳐봐야,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 말을 홀로 배출하는 데 지나지않는다. 리카는 추하다고도 불쌍하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당연한 사실로 인식했다. 나름대로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일 테고,
그런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가지이는 이쪽을 조용히 보고 있다. 거봉 같은 눈이 리카를 빤히 보고 있다. 마치 도전하는 것처럼.
무엇이 거짓이고 무엇이 진실인가. 둘 다 별 차이는 없어. 그렇다면 내가 맛있다고 느낀 쪽을 선택하는 게 뭐가 나빠? 씁쓸한 진실이 도대체 몸의 어디를 채워준다는 거야. 살벌하고 재미없는 현실에 녹인 버터를 듬뿍 발라 향신료와 조미료로 맛을 내는 게 뭐가 나쁘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게 뭐가 나빠. 그것이 나 나름의키스이고 사아오며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역사에 기초한 진 - P568

호랑이의 뼈는 어디로 갔을까?
『꼬마 삼보 이야기』의 호랑이들은 나무 주위를 계속 돌다 버터가 됐다. 그런데 나무 주변에 뼈는 없었을 터다. 뼈까지 버터 속에녹아들었을까? 아니, 그렇지 않다. 뼈가 발견되지 않았다면 그 생물이 정말로 죽었는지 어쨌는지 모른다. 어쩌면 예상외로 호랑이들은 지금도 정글에서 건강하게 살고 있지 않을까??
가지이의 피해자들 역시 정말로 마음을 빼앗겼는지 어땠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녀에게 빠져 있다고 스스로 세뇌한 것은 아닐까? 만사 귀찮아서 먹는 것도 사는 것도 내팽개치고는, 가지이라는 격렬한 회전에 몸을 맡기고 일상을 방치한 데 불과하지 않을까? 가지이가 누군가에게 열렬한 사랑을 받았다는 눈에 보이는증거, 이를테면 지금 리카의 눈앞에 보이는 사야를 바라보는 시노이 씨의 눈빛이나 료스케 씨에게 고기를 나눠주는 레이코의 행동같은, 확고한 애정의 증거를 아직 한번도 목격하지 못했다. 전부가지이 마나코의 말뿐이다. - P588

그래도 칠면조 세이로소바는 리카가 자신의 욕구와 취향과 몸상태와 마주하여, 태어나서 처음으로 직접 고안한 자신만을 위한레시피였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독창적인 레시피를 아주 많이 만들고 싶다.
그중에서 괜찮은 것은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싶다. 좋아하는 상대든 거북한 상대든, 만난 적 없는 상대든 상관없다. 그 사람도 리카의 레시피를 응용해서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겠지. 자신이 느낀 마음의 흐름이나 기쁨을 누군가가 경험해준다면, 그것만으로 리카의 가슴은 뛸 것이다. 그렇게 해서 자신이 고안한 이름 없는 무언가가 색과 형태를 바꾸면서 세상에 파문처럼 번지면 좋겠다. 수프에 마지막으로 넣는 한 방울의 숨은 맛처럼, 그런 연쇄 작용을 마음 한편으로 희미하게 느끼면서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지금 가지이를 만나고 싶다. 만나서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이세상은 살아갈, 아니, 탐욕스럽게 맛볼 가치가 있어요, 라고, - P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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