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터
유즈키 아사코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지이 마나코가 악인이란 것은 틀림없고, 구제불능의 인격체일지도 모르지만, 이것만은 말할 수 있다. 돌아갈 곳이 없는 여자.
리카는 들이켜듯 소리 내어 면을 먹었다.
섹스가 끝난 뒤 훌쩍 밖으로 나와서 맛보는 라면, 그것은 상상했던 관능의 연장이 아니었다. 오로지 혼자서만 얻을 수 있는 자유의 맛이었다. 방에 남겨두고 온 마코토를 생각하고, 그가 자신에게 남긴 체취와 손가락 자국을 음미하면서 부지런히 면을 입으로 날랐다.
욕망을 끝없이 추구할 수 있는 이유는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아서다. 고향이라는 장소를 버리고, 제대로 된 직업도 친구도 없는 그녀가 이 도시에 가진 인식을 비로소 깨달았다. 도쿄에서 태어나서 자란 자신은 이 지역의 관습이나 가족이나 역사에서 좋든싫든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가지이에게 이곳은 언제까지나 나들이 장소이고, 화려한 무대이고, 멋대로 돌아다니다 창피함은 버리고 가는 이국이다. 여행중‘이라는 표현은 주제 파악도 못하고 오드리 헵번에 빙의해서 했던 소리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녀는 결혼 상대를 찾고 있었지만, 누구에게도 소속될 생각이 없었다. 그건 확실하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시간에 남자를 남겨놓고 나와서혼자 라면을 먹고 싶어질 리 없다.
1 ㅇ ㄱ하이 아 - P189

맛있는 것 먹으러 다니기 좋아하고, 요리 좋아하는 풍만한 체형. 그것만 들으면 대부분 남자는 ‘가정적‘이고 점잖은 여자라고,
멋대로 부풀려 상상한다. 자신들을 능가하는 감춰진 내면은 없겠지, 하고 방심한다. 그러나 정말로 그럴까.

리카는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했다. 식은 원래 개인적이고 자기 본위의 욕망이다. 미식가란 기본적으로는 구도자라고 생각한다. 우아한 말로 아무리 포장해도, 도전과 발견을 되풀이하면서그들은 자신의 욕망과 날마다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직접 요리를만들게 되면 점점 바깥 세계를 차단하고, 정신에 성채를 쌓게 된다. 불꽃과 칼을 사용하여 몸소 식재료에 도전하고, 제압하고, 마음대로 만든다. 가지이의 블로그를 다시 읽을 때마다 새로운 사실이 떠오른다. 지나친 고지식함. 먹고 싶은 것만 먹는다. 맛있다고생각하는 것만 먹는다. 욕망에 항상 충실하려는 일종의 고지식함이다.


세상의 엄마들이 매일 메뉴를 고민하고, 요리하느라 고생하는것은 자신이 먹고 싶어서라기보다 가족을 위해서일 것이다. 가지이는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싶은 타이밍에자신을 위해 만들었다. 남자들의 컨디션이나 취향 따윈 상관없었다. 그래서 그녀의 요리는 악마적으로 맛있다. 계속하더라도 힘들지 않을 만큼, 요리라는 행위 자체를 즐겼다. - P22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